[특별기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6․15, 10․4선언과의 관계

2013-08-19

[특별기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6․15, 10․4선언과의 관계

 

글_이석범 변호사

<지난 호에 이어 계속>

2. 6·15 선언과 10·4 선언의 법적 성격

 

(1) 6·15 선언은 남북정상이 직접 만나 평화와 화해·협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남북한의 정상이 서명함으로써 구체적인 실천사항에 합의한 문서이므로 상당한 정도의 규범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6·15 선언의 규범력에 대하여 조약으로 체결할 의사가 없었다는 주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6·15 선언이 ‘정치적 선언’ 내지 신사협정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정상이 서명하고 합의사항의 이행을 확약했다는 점, 위 선언이 향후 남북한 관계와 통일방안에 대한 기본원칙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 남북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노력에 대해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공인하는 점 등에서 실질적으로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 이상의 일정한 법적 효과를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6·15 남북공동선언은 형식적으로 ‘신사협정으로서의 선언’이지만 실질적으로 남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의 규범창설을 지시하는 ‘연성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정치적인 의미에서 위 선언은 ‘한민족공동체 내부에서 사회적 가치와 효력을 갖는 문서’임은 부인할 수 없으므로 적어도 정치적 규범력을 가진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 10·4 선언에 대하여는 ‘남북교류협력법’이나 ‘남북관계발전법’ 소정의 절차에 따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비준하였기 때문에 법적인 발효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법률적 효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툼의 소지가 없다. 다만, 위 선언의 합의 내용에 대한 견해차이로 인하여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되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이 있었으나,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합의서에 해당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리고 2007년 11월 8일 남북합의서 제18호로 관보에 게재됨으로써 절차를 완료하였다.

 

 

 

3.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선언과 10·4 선언의 관계

 

(1)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선언과의 관계

 

 

 

1)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선언의 특징을 분석하면 북한은 기본합의서의 균형주의, 제도화, 구체화에 반대하는 반면 6·15 선언의 불균형주의, 비제도화, 비구체화를 선호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본합의서와 6·15 선언을 비교함에 있어 첫째, 전자는 일괄주의·균형주의를, 후자는 분리주의·불균형주의를, 둘째, 전자는 남북평화 공존우선을, 후자는 통일 및 관계개선을, 셋째, 전자는 분야별 기구의 제도화를, 후자는 합의이행을 위한 기능적 목적기구의 운영을, 넷째, 전자는 사업의 구체적 내용 명시를, 후자는 사업의 기본방향 제시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6·15 선언은 형식적 차원에서 보면 기본합의서와 관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 내용과 이행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6·15 선언은 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채택한 것이고, 기본합의서 가운데 남북한이 우선적인 관심 사항을 중점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본합의서가 이행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2) 이산가족과 비전향장기수 문제에 관한 인도적 문제의 해결방안인 6·15 선언의 3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7조와 제18조와 동일하고, 남북경협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사회, 문화 등 제반분야의 교류·협력에 관한 6·15 선언 4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5조와 제16조, 제22조를 적용한 것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 남북기본합의서와 10·4 선언의 관계

 

1) 10·4 선언은 6·15 선언과 달리 기본합의서를 분야별로 실천의제들을 체계화·구체화하였다는데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즉 기본합의서가 탈냉전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남북관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여 정립한 강령적 성격을 띤 것이라면, 6·15 선언은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시범사업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10·4 선언은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의 실천사업을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0·4 선언의 합의를 실행해가면서 기본합의서에 구체적으로 합의한 내용들을 각 부문별로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2) 남북관계의 상호존중과 신뢰관계에 관한 10·4 선언 제2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남북화해의 제1조와 제2조에 해당되고,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10·4 선언의 제3항과 제4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5조와 제2장 남북불가침 제9조와 제10조, 제11조, 제12조를 적용한 것이다. 남북경협에 관한 10·4 선언의 제5항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제15조와 제22조를 확대·발전시킨 것이고,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에 관한 10·4 선언의 제6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6조와 제22조를 적용한 것이며, 인도주의 협력사업에 관한 10·4 선언의 제7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7조와 제18조를 적용한 것이다. 국제무대에서의 남북협력에 관한 10·4 선언의 제8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21조와 제22조를 적용한 것이다.

 

 

 

(3) 6·15 선언과 10·4 선언의 관계

 

2007년 10월 4일 체결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제목 자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다시피 6·15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의 확대·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것임을 서문과 제1항에서 명백히 규정하였다. 또한, 10·4 선언 제1항에서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한 것은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그대로 승계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므로 논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보면 2007년의 10·4 선언은 2000년의 6·15 선언을, 6·15 선언은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시간적으로 확대·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4. 소결 – 법체계적 지위 기본법과 집행법과의 관계

 

 

 

(1)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그리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는 1972년 이전의 남북관계나 법체계의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결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남·북한 당국의 근본적 결단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근본규범에서 유래하는 헌법적 규범에 해당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의 구체적 내용들은 헌법규범 단계상 ‘헌법률’에 해당되거나 적어도 법률적 효력을 가진 규범내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6·15 선언의 “1. 남과 북이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점”과 “2. 통일방안에 합의한 점” 그리고 10·4 선언의 “1.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점,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한다는 점”과 “4.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점” 등 역시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서 유래하는 헌법규범상 근본결단에 해당되는 근본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2) 헌법규범 단계론에 비추어 볼 때, 6·15 선언과 10·4 선언의 구체적인 내용들과 그 내용들의 적용 내지 위임인 후속합의서들이 헌법상의 최고 규범에 해당된다고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행법률의 제정 등을 통하여 국내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다면 적어도 법률적 효력의 규범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4대 경협합의서”들은 남북관계발전법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 이미 법률적 효력이 부여된 남북간의합의서들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이론상 근본규범에 해당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 공동의 이익과 번영’이라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주요한 합의는 법체계상 ‘기본법’의 지위에 있고, 그의 구체적 적용인 6·15 선언과 10·4 선언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집행법’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법의 성격은 우리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에 따르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들은 평화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의무가 있으므로 ‘촉진법’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지 출처 : 서울경제신문
이미지 출처 : 서울경제신문

 

 

Ⅲ. 결 론

 

 

 

(1)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전후하여 남북이 지향하고 있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의 번영’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여 번영된 한민족의 통일국가를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남북한 모두에게 부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진정으로 통일지향적인 평화공존의 관계로 만들어 나가려면 종전과 같이 정치적·전략적인 관점이 아니라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즉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이행과제들에 대하여 남북은 헌법 또는 그에 준하는 법제도적 규범력을 갖추고 이미 합의된 이행과제가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법시스템과 정치시스템의 상호작용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남북관계개선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략의 구상을 위하여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한 법 체계내에서 차지하는 법적 지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선언과 10·4 선언과의 관계가 상호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밀한 내적 연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법리적으로 논증하였다.

 

(2) 그리고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가 단순히 한민족공동체의 건설과 한민족의 평화통일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체제의 정립 및 세계평화에의 기여를 그 목표로 하고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의 공동번영’은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북간 정상차원에서 최초로 1972년 7․4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하였다. 위 원칙과 정신은 진보와 보수의 정파를 넘어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담겨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 선언과 노무현 정부의 10․4 공동선언에 연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들간의 2차례에 걸친 합의를 무시하거나 6·15 선언과 10·4 선언이 남북기본합의서와 무관한 것처럼 보는 견해들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과 그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마지막으로, 민족의 번영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19대 국회와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정신과 변화된 현실 상황을 반영하여 보다 진전된 제2차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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