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밖의 민변]-일을 잘해야한다는 것을 법인의 제1가치와 전략으로 삼아

2001-09-25


다음은 “일 잘하는 전문가 공동체로서의 로펌”이라는 제목으로 <시민과 변호사> 9월호에 실린, 양영태(법무법인 지평) 회원의 글입니다.

‘변호사 천명 배출시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기획 특집 중 한 꼭지이며, 분량상 여기에서는 양영태 회원의 글만 싣도록 하겠습니다.

<시민과 변호사> 9월호에 실린, “변호사의 집단화(한원규 변호사)”, “변호사의 집단화-전문화 미디어로펌; 그 도전과 희망(법무법인 정세)”, “전문변호사시대, 어떻게 엮어갈 것인가(신현호 변호사)”의 글을 함께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회원 양영태 변호사

필자가 소속해 있는 법률사무소는 ‘법무법인 지평(Horizon Law Group)’이다. 이 글에서는 위 법률사무소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가지게 된 관점에서 ‘변호사의 집단화·전문화’내지 ‘다수 변호사 시대의 생존전략’에 관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평’은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Shin & Kim) 출신의 변호사 10여명 (미국 변호사 1명 포함)과 고등법원 판사 출신으로 개업 중이던 강금실 변호사가 의기투합하여 2000년 4월 3일 설립한 로펌이다. 기업으로서의 법률회사보다는 가치지향적인 전문가 공동체를 만들어 자유롭고 공익적인 변호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로펌 신설의 동기였고, 대형 로펌에서 훈련한 전문성으로 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그 과정을 통하여 종합 로펌으로의 성장의 기틀을 만들겠다는 것이 전략이었다.

그리하여 사무소도 테헤란로에 마련하고, 벤처 기업법무를 시작했다. 벤처기업은 기업으로서의 일반성과 벤처기업으로서의 특수성을 겸유함에 따라 요구되는 법률서비스도 일반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사 운영과 관련된 각종 법률자문과 국내·국제계약의 검토, 외자유치와 M&A, 증권·금융 등의 기업 법무와 벤처기업의 특수성에 따른 Cyber Law, IT 및 Bio 관련 법률자문, 특허 등으로, 소송업무 보다 비소송(자문)업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벤처기업은 대기업 못지않게 복잡하고 다양한 계약 등의 법률관계를 맺는 데다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기업 내에 법무인력이 부족한 관계로, 섬세하고 신속한 자문을 제공하는 전문 변호사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대형 로펌은 외국 회사나 대기업 등의 고객 일과 대형 딜을 우선적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어 작은 벤처기업의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것 같고, 송무변호사의 경우 소송업무에 특화되어 국제계약 등 기업자문업무의 경험이 많지 않은 관계로, 벤처기업법무시장에서의 법률서비스 공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지평’은 ‘벤처 전문 로펌’을 표방하고 출범하였다. ‘벤처 전문 로펌’을 정의한다면, ‘벤처기업을 주된 고객층으로 하여 벤처기업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요구하는 법률서비스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는 종합 로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벤처 전문 로펌’이라고 하더라도 그 업무 내용은 기업활동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특히 코스닥 등록업체의 경우 대기업 고객과 업무 내용에 차이가 별로 없다. 이러한 점에서는 ‘벤처 전문 로펌’도 대형 로펌과 마찬가지로 종합 로펌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대상이 벤처기업인 까닭에 스톡옵션, 인터넷, 지재권 등 특유의 업무가 더 많이 제기되어 이들 분야에 있어서 전문성이 더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일반 종합 로펌과는 준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벤처 전문 로펌’은 고객층을 특화한 것이어서, 의료, 산재, 국방 등 업무 분야를 특화한 ‘부티크 법무법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든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고객층이나 업무 분야에 집중하여 전문화하고 향후 고객층이나 업무 분야에 집중하여 전문화하고 향후 고객층이나 업무분야를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의 측면에서는 공통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티크 로펌’의 핵심 화두는 ‘당해 전문 영역에서의 우월성’이 될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지평’의 변호사 등은 밤12시를 넘어서까지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어느 정도 로펌으로서의 자리는 잡았다고 생각된다. 올해 들어 전문영역의 확대와 전문성 강화를 위해 법원과 금감원 출신 변호사 등 전문가 8명을 영입하여 전문가 수가 총 25명으로 성장했다. 고객도 상장기업 및 코스닥등록기업 20여개를 포함하여 100여개가 넘고, ‘지평’이라는 브랜드도 어느 정도 알려진 것 같다. 성장의 비결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주체적으로는 일정한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신뢰하며 배려하는 관계의 변호사들이 열심히 일한 점, 객관적으로는 벤처기업의 등장에 따라 ‘지평’이 적임자인 법률시장이 존재하고, 법률시장이 ‘아는 변호사’ 보다는 ‘그 일에 가장 맞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한 점 등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성공한 벤처기업은 필연적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이 되어 그 법률요구도 증대되는 바, 이에 제대로 부응하기 위해서는 전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일정 규모 이상의 종합 로펌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지평’도 벤처영역에서의 우위를 더 확고히 하면서도 금융, 소송 등으로 업무를 확장해 가고 있다.

로펌 개설 이후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걱정 투성이였다. 개업자금의 마련과 사무공간의 확보에서부터 고객 유치 등이다. 대형 로펌과 같은 브랜드 파워도 없고, 고위 전관 출신의 원로 변호사님도 없는 상황에서, “일을 열심히 잘하면 고객은 늘어난다”는 믿음 한 가지만 믿고 나설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믿음이 실현된 것 같다. 그래서 ‘지평’이 생각하는 ‘생존전략’은 과거도 현재도 앞으로도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일을 최고로 잘하는 로펌을 만들자, 둘째, 변호사들이 주인으로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나, 문제는 구체적인 실현 방법인 것 같다. 생각건대 일을 잘하는 로펌이 되려면, 보다 먼저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법인의 제1가치와 제1전략으로 삼아, 구성원들이 이를 공유하여햐 하며, 내부 시스템과 분위기도 돈 잘 버는 변호사보다 일 잘하는 변호사를 존중하고, 대충 일하더라도 수익만 내면 되지 않느냐는 견해를 철저하게 배척해야만 한다. 다음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의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문제인데, 이는 당해 법인의 가치에 따른 선택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지평’의 경우에는 그 동력을 소속 변호사들간의 경쟁이 아니라, 애정과 신뢰, 자존심과 책임감, 모두가 주인인 민주적 공동체에서 찾는다. 이러한 방식은, 경쟁이 초래하는 법인내에서 업무능력의 불균등의 심화가 법인 전체의 능력을 제한하는 문제점을 지양하고, 단절된 개인의 실력의 합 이상의 더 큰 능력을 창출해 낼 수 있게 한다고 생각된다.

셋째로는 우수한 변호사는 모으는 일인데, 그 방법도 당해 법인의 가치에 따른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들어오려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가장 이로운 곳을 택하려고 하겠지만, 그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므로, 로펌은 자신들이 원하는 신규 멤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지평’은 일 잘하고 공익 지향적이고 민주적인 로펌을 지향한다는 가치와 기업으로서의 로펌이 아닌 전문가 공동체로서의 로펌을 지향하는 조직문화에서 법인의 비전과 개인의 저눈가로서의 성장가능성을 제시하는 길을 택했다.

넷째로는 리서치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리서치 시스템의 끊임없는 개선이 중요하다. 또한 기업자문을 하려면 영어가 필수적인 바, 변호사들의 어학연구 프로그램과 유학 등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할 일이라고 보여진다.

다섯째로는 ‘전문화’를 지향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법률 문제가 어려워지고 분야도 넓어져서, 다수의 변호사들이 각자 일정 분야를 특화하여 전문화하고 이를 종합화해야만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여섯째로는 복수의 변호사가 크로스 체크하는 것이 정확한 법률의견을 내는데 필수적이므로 일을 잘하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것같다. 마지막으  다양한 기업의 요구에 대하여 총체적인 해법을 제공하려면 여러 분야의 전문성이 종합되어야 하고, 이러한 전문화와 종합화를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변호사가 모여야만 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 같다.

다음으로 변호사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문제는, 각 법인마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지평’의 경우는 몇몇 변호사들이 오너 내지 파트너로 전권을 행사하지 않고 모든 변호사 등이, 더 나아가 직원들도 일정 범위 내에서 주인인 민주적 관계를 조직의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그래서 법인의 영문명도 대표변호사 등의 영문 이름을 쓰지 않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가 동업자(파트너)가 되어 권한과 책임을 동등하게 가지고, 의결권도 평등하게 1표이며, 수익 배분도 그 편차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다. 원칙을 합의하여 신조, 윤리헌장, 규약 등 각종 규정으로 만들어 공유하고, 모든 문제를 각 단위별 회의에서 논의하여 결정하고, 회의록을 보관함으로써, 사람이 아닌 ‘원칙’이 지배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변호사들이 소속 로펌을 자기 회사로 진정으로 생각할 때, 그 자발성과 헌신성은 일을 잘하게 하는 최선의 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법인 앞에도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형 사건 수임의 어려움이나 대평 로펌보다 수임료를 싸게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나 외국 로펌의 진출이 허용되는 미래 등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간명하다.

상당한 문제는 앞서 살펴본 원칙 내지 전략이 바르다면, 그것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기만 하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법률시장개방 등의 문제는 그 환경을 예측하고 외국 로펌과의 제휴를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수 변호사 시대가 과거에 비해 변호사들에게 어려운 환경임은 분명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생존의 길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