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국회의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비준동의안 통과를 환영한다

2002-11-08

국회의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비준동의안 통과를 환영한다

오늘(1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한국정부가 지난 2000년 3월 로마규정에 서명한 이후 그동안 진전을 보지 못해왔던 비준절차가 마무리되었고,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형사재판소의 당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인권보장 노력에 적극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집단살해, 인도에 반하는 죄, 침략범죄 등과 같은 심각한 범죄행위에 대한 불처벌을 종식하고 나아가 그러한 범죄의 예방에 기여하게 될 중요한 국제사법기구이다. 대한민국 역시 위와 같은 범죄로 고통 받았던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바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바로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하여 설립된 것이며, 앞으로 국제형사재판소는 피해자를 위한 정의실현과 더불어 그러한 심각한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국제형사재판소 가입 이후 대한민국이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이후 조치들을 취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상기하며, 이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는 조속히 로마규정의 국내실시를 위한 입법조치를 취해야 하며, 입법 마련에 있어 민간단체의 참여와 의견개진을 적극 보장해야 한다.

로마규정에서 관할하는 범죄는 당사국의 국내사법절차에 의해 처벌되지 않을 때 혹은 국내사법절차가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보충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가 처벌을 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국은 로마규정 관할범죄인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죄 및 침략행위 등에 대한 적절한 처벌규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로마규정은 관련범죄의 시효부적용원칙, 보편적 관할의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국내법이 이들 원칙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최근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반인도범죄의시효등에관한특별법의 제정운동과도 입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규정은 관할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부적용원칙을 천명하면서도 다만 규정발효 이후의 범죄에 대해서만 관할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국제형사재판소가 과거의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국내적으로 과거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 내지 정지하는 입법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국회는 이후 이행입법을 마련함에 있어서, 향후는 물론 과거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자행되었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까지 공소시효를 배제 내지 정지하는 입법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덧붙여, 이행입법을 마련함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로마규정의 단순한 국내법으로의 편입이 아닌, 국내 형사법 전반에 걸친 인권기준의 향상이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의 목적과 정신에 어긋나는 반인권적 불처벌협정 체결을 강력히 거부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미국민에 대한 기소면책을 보장하는 쌍무협정을 체결할 것을 각국에 강요함으로써 국제사법질서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쌍무협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범죄혐의자의 신병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인도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미국 국내법원에서의 기소 및 수사조차 명확히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범죄인에 대한 불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불처벌을 종식시키고 이를 통하여 그러한 범죄의 발생을 예방한다는 국제형사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설립정신을 정면으로 손상시키는 행위이다. 이미 미국은 지난 7월부터 대한민국에 대해 이러한 불처벌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력을 가해오고 있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떠한 불처벌협정도 체결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국회의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비준동의안 통과를 다시 한번 진심으로 환영하며, 대한민국의 비준이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과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형사재판소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02년 11월 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