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랑고시랑] 봄꽃 노래 – 정종진 회원

2013년 4월 12일 minbyun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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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노래

정종진_특별회원



1. 계절이 와서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은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_ 환절기 中, 박준

4월이 벌써 열흘 넘게 지났는데도 하늘엔 눈이 지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봄은 항상 더디 오고, 수이 간다. 그것도 시나브로 왔다가, 부지불식간에 가버려 우리는 항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읊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사계절 금수강산은 옛말이고, 덥고 습한 우기와 차고 건조한 건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많이 들리는 요즘 봄은 일종의 환절기다.

환절기에는 그 특유의 묘한 미감이 있다. 상반된 기운들이 맹렬하게 싸우며 전혀 다른 다음 것을 태내에 잉태시키는 순간, 그것이 ‘환절기’다. 온난한 대기가 한랭한 기운을 밀어내며 섞이는 순간, 언제까지고 굳게 닫혀 있을 것만 같던 동토(凍土)를 뚫고 싹이 움트고, 개구리가 튀어 오른다. 마치 섭씨 백도를 즈음하여 물이 기화되는 순간의 수면의 상태가 짜릿한 감동을 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것은 지식인의 영원한 방법론이자 굴레인 ‘변증법’의 아름다운 정합성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때, 외인은 변화의 조건이 되고, 내인은 변화의 근거가 되어 갑자기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듯 피어오르는 것, 그것이 봄꽃이다.

2. 꽃이 피고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 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_ 목련전차 中, 손택수

지금 한반도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언제라도 미사일의 포연이 하늘을 갈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쟁에 대한 위기감으로 긴장상태인 반면, 당장 오늘(12일)부터 여의도와 석촌호수 등에서는 봄꽃 축제가 시작한다. 이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월이 아무리 하수상하더라도 자연의 시계는 거짓 없이 가는 까닭이 크겠지만, 그 이면에는 이 시대의 서민들, 즉 하우스푸어에게는 주택담보대출 연체 가압류라는 폭탄이, 청춘들에게는 학자금대출 연체가압류라는 폭탄이, 파업노동자에게는 손해배상 및 가압류라는 폭탄이 위치 추적 장치를 단 미사일처럼 따라 붙어 다녀 매일매일 이미 전쟁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 시인이 전차라 말한 꽃 소식은 힘차게 북진하여 이제 바로 코앞까지 당도하였다. 봄의 전령 산수유는 이미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고, 개나리도 온 몸에 황금 종을 달고 바람결에 까르르 웃어대고 있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백목련, 자목련도 차오르는 달처럼 벙그러지고 있고, 벚꽃과 복사꽃도 연분홍 성장(盛裝)을 한 가인(佳人)처럼 그 꽃잎을 흩날리고 있고, 그 모양보다 향기로 봄을 증언하는 라일락은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그 꽃말처럼 미련 없이 잎새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있기도 하다. “양지바른 담장 아래 부치지 못한 엽서처럼 빛바랜 꽃잎 수북”(목련, 이병훈)한 꽃그늘에 앉아 그 “사이 사이를 빈틈 하나 없이 파랗게 채운 한낮의 하늘”(젖은 꽃잎, 도종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에 이런 호사가 다 허락될까 싶어 무엇인지 죄스럽기도 하고, 그런 꽃내음 나는 봄밤에는 “그래도 딱 한 잔만 더, 하고 검지를 세워 흔들며 포장마차로 소매를 서로 끌”(봄밤, 김사인)기도 싶고,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졌으면 싶은”(前의 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봄인 것이다.

3. 꽃이 지더라도

오후 내내 도라지 밭을 매었다
밭을 점점이 덮은 꽃잎 흙에 묻히고
꽃 향기도 함께 묻혔다
그댄 지금 어느 산을 넘는지 물어볼 수도 없어
세상은 흐리고 다시 적막하였다

_ 젖은 꽃잎 中, 도종환

그렇게 봄은 왔지만 지금 서울에서 마음의 허리띠 풀어 놓고 꽃을 노래하기란 힘겹다. 지난 4일 서울 중구청은 덕수궁 대한문 앞 설치되어 있던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와 농성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단과 녹색 펜스를 설치했다. 이와 같은 철거가 새로 설치한 천막 한 동에 대해서는 철거명령이나 계고, 영장 제시 없이 행정대집행을 실행한 것이어서 법적인 하자가 있고, 농성장 자리에 설치한 화단은 보행에 방해가 되는 토석을 쌓는 행위라 도로법 등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의 불법 여부를 떠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사회적 타살로 일컬어지는 쌍용차 사태의 아픔을 보듬겠다고 한 정치인들의 약속은 아직 무엇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꽃을 심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일까.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 곳에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낱낱의 생명이야 무엇 하나 소중하고 어여쁘지 않겠냐만, 그 꽃들이 심어져 있는 꽃밭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꽃밭이 아닐는지. 그 꽃밭과 사람들을 가르는 철책은 자본의 이해에 따른 불시의 해고의 위협 속에 숨죽여 불안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벽으로 새기면 될까.

봄은 왔지만, 꽃노래를 부를 수 없는 이런 상황은 비단 서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기술한 바와 같이 한반도 전체는 전쟁 위기라는 삭풍 속에서 숨죽이고 있으며, 이미 한바탕 꽃소식이 흐드러졌던 경남에서는 공공의료가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지난 겨우내 인수위 아스팔트 위에서,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 전주, 아산, 평택, 울산의 철탑과 하늘 길 위에서, 인천 콜트 콜텍 길거리 위에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단결광장 위에서 피었던 얼음꽃들은 아직도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저 어여쁜 봄꽃들이 피고 지는 동안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를. 고은 시인의 짧은 시로 글을 매조지 해 본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 그 꽃”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그 꽃들과 어깨 걸고 함께 봄날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