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이야기] 고시랑고시랑 – 봄에 관한 시 3제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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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사실 요새는 봄이 워낙 짧다.


3월이 되어도 여전히 계속되는 겨울 날씨에 봄이 언제 오나, 봄이 오기는 하려나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곤 한다.


봄의 지연, 실종과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신동엽시인은 ‘봄의 소식’이라는 시에서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봄의 소식(消息)


                                                      신동엽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 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봄이 맞아 죽었나. 지독히도 계속되는 겨울날씨에 진저리 치면서 우리들이 중얼거렸던 말이라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나, 봄은 이 시처럼 어느 순간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우리 집 울타리 밑에 우리도 모르는 새에 이미 와 있다가 어느 순간 꽃이 그 망울을 터뜨리듯이 순식간에 피어난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당도한 봄에 취해서 들녘마다 활짝 피어난 벚꽃들, 풀꽃들을 따뜻한 봄볕을 쬐며 마음 깊은 사람과 보곤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수동 화백은 <볼. 봄> 이라는 그림에서


 


‘말그대로 봄날입니다. 봄… 보아야할 (봄) 사람을 꼭 봐야해서(봄) 봄이 아닐까 싶은’


 


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남기고 있다.


봄이란 단어가 ‘보다’에서 왔다 쯤은 추측이 가능한데 (여름은 ‘열매가 열음’에서 왔다고 하고, 가을 겨울의 기원은 알 길이 없다고 한다.) ‘보아야할 사람을 꼭 봐야해서 봄’이라는 이수동 화백의 의미 정리가 멋들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당도한 봄도 4월 한달 남짓일 뿐, 5월초면 날이 더워지면서 어느새 여름 날씨가 되어버리고 봄은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짧고 무상한 계절의 순환에 대해서 사이몬 앤 가펑클은 ‘April come she will’이라는 시에서 사랑의 오고 감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April come she will


4월이 오면 그녀도 오겠지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


봄비로 냇물이 불어나는


5월이 오면 그녀는 내 품에서 다시 한번 휴식을 취하며 머물겠지.


 


June she’ll change her tune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6월이 오면 그녀는 마음이 변해 밤새도록 거리를 헤매다가


 


July she will fly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7월이면 그녀는 어디론가 훌쩍 날아갈거야, 한 마디 말도 없이.


 


August die she must


8월이면 그녀는 잊혀지겠지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September I’ll remember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9월이면 나는 기억하리.


이젠 가버린 그날의 사랑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떠나고 국면이 바뀌는 것은 비단 개인사뿐만 아니라 세상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진보진영은 이미 10년의 민주정부의 집권경험과 그 과오라는 점에서 국면이 전환되었음에도 좀처럼 예전의 손쉬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서 못 빠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민주진보진영이 정말로 ‘봄’을 맞이하려면 과거의 유산과 ‘기득권’ 에 안주하지 않고 바뀐 국면에 맞추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여야 할 것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생각을 얼마남지 않은 봄날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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