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피소된 시국사건 전문 변호사, 김승교

2010-04-14





   1999년 2월, 변호사 개업을 하자마자 국가보안법과 싸우기 시작했다. 친한 대학동기 중 1명이
 국보법 위반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7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국보법 위반으로 수배된 경원
 대학교 학생을 변호했다.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처벌받게 된
대학생 피고인을 돕고자 시작한 변
 론이었다. 같은 해 민혁당 사건, 방북단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국가보안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됐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보법 전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많은 사건을
 맡아왔다. 송두율교수 사건, 간첩 민경우 사건, 일심회 사건, 아람회 사건 등을 맡아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009년 법정에서 그는 변호인이 아니라 피고인의 자리에 섰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실천연대) 활동으로 인해 ‘이적단체구성’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두
 진술서에서 그는 “10년 내내 누구보다 많이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을 맡아 변론해온 제가 오히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법정에 서고 보니 마음이 더욱 무겁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보법 폐지의
 당위성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했다.


  김승교 변호사는 현재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4월 1일에 첫 재판을 했고, 5월 6일에 두 번째
 재판이 있다. 항소심은 1년 가까이 걸릴 것이라 한다. 번잡한 서초의 법원가에서 떨어져 도봉구
 에 위치한 김승교 변호사의 사무실을 방문해 최근 근황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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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연대 상임공동대표로서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으셨는데요, 실천연대에서는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직책은 그대로이고, 여전히 평화운동, 통일운동 중심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통일부 장관 퇴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분이 통일부 장관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실천연대는 이름처럼 ‘실천’을 위주로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활발하게 활동을 해온 편입니다. 매주 미 대사관 앞에서 금요집회를 열고 있고, 광우병 촛불 시위 때는 ‘6.15 TV’를 통해 시위를 24시간 생중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아래서는 통일부에 사회단체 등록을 했고, 정부 지원금도 받았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등록을 취소당하고 지원금도 끊겼습니다. 2000년에 만든 이후로 사업 제재를 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 작년에는 80년대의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인 ‘아람회 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셨는데요.


 아람회 사건 승소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2000년 4월에 사건을 시작한 뒤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1999년 말, 8.15 통일행사 참여로 수배된 한겨레신문 기자의 변호를 맡았습니다. 이 분이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였습니다. 형사재판을 마치고 나자, 아람회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셔서 제가 변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람회 사건은 실천연대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람회 사건을 의뢰하신 박해 전 씨가 2000년 10월에 실천연대 만드셨습니다. 같이 활동하자고 제안하셔서 처음에는 감사로서 참여했습니다.


   


– 아람회 사건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재판을 시작하면 모두진술 기회를 줍니다. 이 사건은 조작이 명백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재판을 마치자고 해서 모두진술을 1명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나머지 분들도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해보시라”고 해서 피고인 다섯 분이 즉석에서 진술을 하게 됐습니다.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글로 쓴 것 이상으로 논리 정연하고 또 감동적인 진술이었습니다.


 아람회 사건 피고인들의 특징은 신분이 안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 3명, 검찰 공무원 1명, 경찰 공무원 1명, 육군 대위 1명, 새마을금고직원 1명 총 일곱 명입니다. 이런 분들의 인생행로가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한 분은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온 몸이 ‘종합병원’일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지신 분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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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국가보안법이 ‘죽은 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근래에도 국보법위반으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나요.


 심지어 변호사들도 “아직도 국보법 사건이 있느냐”고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도 판결 많습니다. 작년에 100건이 넘었을 겁니다. 거의 다 유죄판결이고 완전무죄판결은 5% 정도입니다. 국보법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서 최근에는 인터넷에 글을 쓴 사람들도 국보법 위반으로 많이 기소되고 있습니다.


 수사를 시작하는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고소·고발·진정과 인지수사입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인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지는 검찰이 하기보다는 국정원, 보안수사대, 기무사, 경찰수사기관 등에서 합니다. 이러한 정보인력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사건을 낳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 보안수사 관련 인력이 4000명 정도 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간 보안수사 인력을 1000명 가까이 줄였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1년 만에 다시 1000명을 늘렸다고 합니다. 사건은 적은데 인력이 과도하게 배치되어 있다 보니, 생존을 위해 수사 인력들이 사건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 민변 활동도 빼놓을 수 없죠. 최근 활동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99년에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바로 민변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진보, 민주화,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사법시험을 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사회 운동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셈입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면 민변은 당연히 가입해야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초창기에는 열심히 민변 활동을 했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도봉구로 2007년에 사무실을 옮기면서 거리가 멀어져서 근 2년 정도는 소홀했습니다. 지금은 미군위원회, 통일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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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에 도봉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셨는데, 출마를 결심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정한 출마였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나가려면 시작이 있어야하지 않습니까. 민주노동당을 국민들이 알아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서서 호소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분당 등 내부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참 성장하던 정당이 좌초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어서 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길인 것을 알았지만 사무실까지 지역구인 도봉구로 옮겨가면서 출마를 했습니다.


  


– 도봉구 사무실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시내는 너무 번다하고 복잡한데, 여기오니 여유가 있습니다. 안정감도 있고요. 제가 대학 시절부터 이사를 좀 많이 다녔습니다.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면서 성북구, 강북구, 중구, 관악구, 강서구 등 서울 곳곳에서 살아봤는데 도봉구에는 꽤 오래 살고 있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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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이신 황정화 변호사님과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시는데요, 장단점이 무엇인가요.


 아직까지는 편한 점이 더 많습니다. 재판이 겹친다거나, 상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서로서로가 부탁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일 관련 부탁은 어려울 수 있는데, 부담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주체창법을 구사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노래할 때 음정과 박자가 제멋대로라서 ‘주체창법’이라 불립니다. (웃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 )







 



– 인터뷰 / 홍보출판팀 김란아, 박초롱 인턴
– 글 / 박초롱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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