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인권위] [성명] 교육부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교구성원 조례 예시안’ 배포를 즉시 중지하라.

2023-11-29 8

 

1. 교육부는 2023. 11. 29.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이하 ‘학교구성원 조례 예시안’이라 함)을 발표하였다. 위 조례 예시안은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동시에 보호하는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고, 학생인권을 일방적으로 후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교육부에 이 조례 예시안의 배포를 즉시 중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2. ‘학교구성원 조례 예시안’에서는 교육 3주체(학생, 교사,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균형적으로 담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서 명시되어 있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 개성을 실현할 권리, 휴식권,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 구체적인 학생인권 내용을 모두 삭제하였다. 위 조례안 제2조 제4항에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은 이 조례에 열거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제7조 제1항 제6호에 ‘그 밖에 법령 등 학칙 등이 정한 바에 따른 학생의 권리’라는 문구를 넣고 있으나, 위에 언급된 권리들은 애초에 헌법이나 법령, 학칙 등에서 충분히 보장되고 드러나지 않은 채 경시되었던 학생인권의 핵심 내용들이다. 그런데 위 권리들을 위 조례 예시안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은 교육부가 결국 기존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시행된 취지를 무시하고, 사실상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3. 위 조례 예시안은 형식적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조금만 살펴보면 교사-학생/학부모 간의 권리, 책임간 불균형을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표제에서도 유독 교사에 대해서는 권리 외에도 ‘교원의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따른 별도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학생에게는 모든 학교 구성원의 권리를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아야 할 책임을 규정하면서도, 교원에게는 학생에 대하여 그러한 책임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교사의 ‘교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에 대하여 침해하지 말아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것도 위 조례 예시안이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점이다.

 

4. 위 조례 예시안은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을 모두 보호해야 할 조치를 마련해야 할 교육부가 충분한 고민 없이 학생인권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실책을 은폐하려고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위 조례 예시안 발표의 배경에는 최근 학교 현장에서 발생한 교사의 자살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사태가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의 원인은 학생인권조례에 두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도 충분히 보호하지 않고 있던 학교 현장에서, 각종 악성 민원 및 과중한 행정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에 대해 교육 행정 당국이 충분한 조력이나 보호 수단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교사들은 학교장이 교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강화하고, 최소 교육청 단위의 교사 업무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도, 그동안 교육부를 비롯한 교육 행정 당국은 이러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다가 비극적인 사고가 터지자 그 책임을 학생인권조례에 돌리고 있는 것이다.

 

5. 현재 교육부의 문제 인식 수준은 ①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보장되고 있어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교사들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② 교사의 생활 지도(통제) 권한을 회복해서 교사가 학생을 쉽게 통제하게 만들면 된다는, 현실과도 전혀 맞지 않는 착각에 빠져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전국 시도의 절반도 되지 않을뿐더러,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에서 일부 학생인권현실의 개선 현상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인권관련 구제 및 조정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못해 학생인권조례의 실효성은 교육 현장에서 아직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을 마치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보니 정작 현실에서 정말 필요한 교육철학적, 정책적 고민들은 모두 뒤로 밀려나게 된다. 교육부는 그동안 ① 학교와 교육의 목적과 역할은 무엇인지, ② 학교 안팎에서 학생이 성인과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인지, ③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취약한 학생인권 현실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고 그 안에서 교사의 역할과 역량은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지, ④ 이를 위해 교사의 노동권과 근무 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⑤ 학교 공동체에서 인권침해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그동안 의미 있는 대답을 내놓은 것이 전무하다.

 

6. 최근 각 시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훼손하려는 사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위 조례 예시안이 갖고 있는 의도는 다분히 노골적이다. 현재 서울시의회와 충청남도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무리하게 폐지하려다 시민 사회의 강력한 반발과 행정소송에 직면해있고, 경기도와 전라북도는 기존의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거나 학생인권조례와 별개의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위 조례 예시안은 전국의 시도 교육청에 명시적으로 학생인권을 축소하고 학생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라고 요구하거나,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조례를 추후에 제정하는 것을 막으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이는 중앙정부가 교육 행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으로, 지방교육자치제도의 본질과 교육의 자율성을 사실상 침해하는 조치이다. 위 조례 예시안은 각 시도 교육청이 조례안을 만들 때 자율적으로 참고, 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내용을 순수한 참고용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동안 교육계의 현실을 돌아볼 때 너무나도 자명하다.

 

7. 우리는 이번에 발표된 ‘학교구성원 조례 예시안’이 교사, 학생, 학부모 그 어느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학교 현장에서 학생인권을 노골적으로 축소시키려는 악의적인 조치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교육부는 즉시 위 조례 예시안 배포를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을 학교 현장에서 함께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2023년 11월 2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20231129 [아동청소년인권위] [성명] 교육부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교구성원 조례 예시안’ 배포를 즉시 중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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