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인권위][공동성명] 혐오에 굴복해 후퇴한 「2022년 교육과정 개정안」을 규탄하며 “교육부는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성평등의 가치와, 성소수자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라!”

2022-11-15 2

혐오에 굴복해 후퇴한 「2022년 교육과정 개정안」을 규탄하며

“교육부는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성평등의 가치와,

성소수자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라!”

 

교육부(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2022. 11. 9.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이하 「2002년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를 실시하면서 그 내용과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2022 교육과정 개정안」의 정책연구진은 공청회와 2차 ‘국민참여소통채널’에서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수정·보완한 안을 교육부로 제출하였고, 교육부는 ‘역사, 도덕, 사회, 보건, 음악’ 등 쟁점이 지속되는 시안에 대하여 교육과정 개정 협의체, 교육과정심의회 등을 통해 쟁점사항을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밝힌 ‘쟁점이 지속되는 시안’이 무엇인지는 지난 2022. 9. 교육부가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국민 의견 7,860건의 주요 내용을 밝힌 것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사회, 도덕 등 교과에서 ‘성 관련 용어 및 문장 기술에 대한 수정 요구’가 주를 이룬다. 구체적으로는 성소수자 용어 삭제,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수정, 동성애와 성전환 관련 내용 제외, 낙태 관련 내용 삭제, 양성 이외의 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 삭제,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재생산권 용어 등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시민사회 및 교육현장을 비롯한 각계의 전문가들은 명백히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하고, 교육에서의 성평등 관점을 크게 후퇴시키는 차별적 주장들에 대해 즉시 문제를 지적했고, 교육부가 성평등한 교육과정을 추진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국민 의견’ 중 아주 일부 주장에 불과한, 혐오와 차별의 논리를 받아들인 데서 더 나아가, 부끄러움도 없이 국가기관의 공식적 보도자료를 통해 성소수자 혐오와 성차별적 관점을 버젓이 드러냈다. 먼저 교육부는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사례로 기존에는 ‘장애인, 이주 외국인, 성소수자 등’을 예시로 들고 있던 것을 ‘성별·연령·인종·국적·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 구성원’으로 수정하였다. 보도자료를 통해 수정이유를 ‘사회적 소수자를 폭넓은 관점에서 학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으나, 동시에 ‘성소수자 용어에 우려가 있어’ 삭제하였음을 거리낌 없이 명시하여 스스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편협한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

 

교육부의 변명은 사회적 소수자 권리보장과 차별금지를 어떻게 교육하고,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통해서도 쉽게 반박된다. 해외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면, 차별 사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정책을 두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차별 사유의 열거 없이 일반적인 차별금지 정책만을 두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보다 차별적 발언 등 괴롭힘 피해를 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교의 교육자들 역시 차별 사유가 열거된 괴롭힘 방지 정책이 없는 학교의 교육자들보다 차별에 기반한 학생의 괴롭힘 행위에 개입하는 것이 용이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도덕·보건 교육과정의 수정 내용을 설시하면서도 ‘성(性) 관련 표현에 지속적으로 제기된 국민의 우려를 고려하여’, 기존 ‘성평등’ 용어를 ‘성에 대한 편견’,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 등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교육과정에서조차 ‘성평등’을 ‘성평등’이라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그 자체로 성평등하지 않은 현실의 민낯이다. 성평등한 교육과정을 경험하지도,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교육과정 개정을 다루는 기성세대가 지금의 아동·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성·생식 건강과 권리’로 수정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재생산권’은 상호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를 가질 권리와 임신과 출산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 등을 포괄하는 말인데,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생식’으로만 표현할 경우 권리 보장의 측면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낙태죄 폐지 반대’를 주장하던 이들이 ‘재생산권’에 대하여도 혐오의 논리를 내세워 반대해 온 것에 비추어, 재생산권이 삭제된 교육과정 안에서는 아동·청소년이 성에 관한 권리를 배우고 행사하는 데 왜곡된 상을 형성할 우려가 크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대한민국 정부에 ‘성적지향 및 성 정체성을 적절히 포괄하여 각 연령에 적합한 성교육을 제공할 것과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차별적이고 성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표현을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사무소는 2019년 ‘아무도 뒤에 남기지 않는(Leaving No One Behind)’ 원칙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성소수자를 교육환경에 포함시키는 것’을 명시하면서 국제 인권법에 따라 성소수자 학생들이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는, 폭력과 차별이 없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국가는 학생에 대한 인권보장의 책무를 이행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개악된 「2022년 교육과정 개정안」을 내놓은 교육부의 처사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앞으로 남은 행정예고 기간 동안 교육부는 시민사회와 전문가, 무엇보다 지금 성소수자 학생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드시 경청하고 반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육부가 그동안 개정 교육과정을 마련하기 위해 고려한 것이 혐오차별의 목소리인지, 평등하고 포용적인 학교에서 나와 타인, 사회와 세계를 탐색하며 광범위한 인생의 경험 및 학습 과정을 누릴 권리가 있는 아동·청소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순간 모든 곳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는 교과과정에서 용어를 삭제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받으며 성과 재생산권을 탐구하고 안전하게 누릴 권리가 있는 모든 아동·청소년의 목소리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2022. 11. 1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사단법인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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