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기고] 또다시 재현된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2022-11-04 4

또다시 재현된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김상현 회원(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카툰의 의미 및 카툰 <윤석열차>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만진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후원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은 2022. 7. 18.부터 같은 해 8. 19.까지 고등부 및 중등부를 대상으로 청소년들의 웹툰 및 카툰 작품을 공모받아 심사 후 대상을 비롯한 각 부문별 금상, 은상, 동상, 특별상 등의 수상작들을 선정하여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위 수상작들을 전시하였다.

올해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이 공모한 부문 중 하나인 ‘카툰’이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를 의미하는 명사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카툰에 있어서 정치 풍자와 같은 사회 비판적인 시선은 필수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열린 공모전에서 중등부 카툰 부문 금상 수상은 아버지의 직업 또는 지위가 자녀의 입시에 미치는 영향을 풍자한 <아빠찬스>라는 작품이, 고등부 카툰 부문 동상 수상은 ‘태아도 생명이다, 낙태는 죄악’이라는 팻말을 든 사람이 임산부석에 앉아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는 행태를 풍자한 <임산부석>이라는 작품이 각 수상하였다.

 

그리고 올해 공모전의 고등부 대상은 웹툰 작품이 차지하였기에, 고등부 ‘카툰’ 부문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라는 카툰이라 할 수 있다.

위 <윤석열차>라는 카툰 작품은 작가가 지난 대선 기간에 윤석열 대통령이 윤석열호라고 명명한 열차 안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의자에 발을 올린 일에 착안하여, 여러 논란에 휩싸여있는 김건희 여사가 기관사로 등장하고, 그 뒤로 검사들이 열차에 탑승해 있으며, 열차 앞에는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당한 노인, 청년, 군인, 여성이 피해자들로 등장하는 것을 비롯하여, 열차가 지나온 뒷 배경에는 ‘여성가족부’ 빌딩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그림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윤석열차> 카툰은 정치적 소재들 중 현 정부를 향한 주요 비판 지점과 현 정부로 인한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아닌지를 명료히 짚어내어, 사회 비판적인 시각의 그림으로 현 정부의 분위기를 매우 풍자스럽고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문체부의 만진원에 대한 행정조치 예고

위와 같은 <윤석열차> 작품의 창의성 및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문체부는 2022. 10. 4.경 보도자료를 통해 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카툰을 전시한 만진원에 대하여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전시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라는 이유로 엄중 경고 및 승인 취소 등 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이례적으로 표명하였다.

그리고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다음 날인 2022. 10. 5. 국정감사에 출석하여 “순수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시킨 만진원에 대해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2022. 10. 24. 열린 종합감사에서도 역시 문체부의 위와 같은 조치에 전혀 사과할 뜻이 없다는 입장만을 재차 반복하였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카툰’은 정치 풍자와 같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필수적 요소에 해당하고, 해당 공모전의 다른 카툰 부문 수상작들 역시 ‘(사)교육’ 또는 ‘낙태권’ 등과 같은 정치적 요소를 중요한 메시지로 담고 있음에도,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가 <윤석열차> 카툰만을 ‘정치카툰’으로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윤석열 대통령 및 그 주변인들을 카툰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임을 어느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및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제22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의 ‘예술의 자유’ 역시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는 문화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을 선언하고 있으며, 제9조에서 국가는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대한민국 헌법의 ‘문화국가 원리’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2013. 12. 30. 「문화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위 문화기본법에서는 모든 국민은 정치적 견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문화권을 가짐을 천명하고 있으며(제4조), 국가 역시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할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제5조 제1항).

그러나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는 정부에 대판 비판적인 내용들을 표현하는 예술인 및 예술인 단체들에 대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암암리에 작성하여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였고, 결국 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피해를 입은 예술인 등이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인정하였다.

법원은 예술인들의 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인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하고, 공모사업 등에서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행위 등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하였고, 블랙리스트를 실행하였던 관료들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정부가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어떠한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반대한다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이유, 특정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또는 정부에 반대한다거나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예술작품 또는 창작물을 창작, 전시, 상연,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해당 개인이나 단체, 예술작품 또는 창작물 등을 일방적으로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 및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지원 여부에 차등을 두는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이러한 헌법상 원리들을 구체화한 문화기본법의 규정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8. 1. 23. 선고 2017노2425, 2017노2424(병합) 판결 등 참조].

 

또한 문체부가 운영하였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백서 발간을 통하여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집권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 등을 통해 법・제도・정책・프로그램・행정 등의 공적(公的) 또는 강요・회유 등의 비공식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등 권력을 오・남용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국가범죄이자 위헌적이고 위법, 부당한 행위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상술한 바와 같이 문체부는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윤석열차> 카툰 작품을 공모전에서 금상 시상하고 축제에서 전시한 만진원에 대하여 엄중 경고하고 이후 후원 승인 취소 등의 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예고한 바 있으므로, 위와 같은 문체부의 행위는 공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예술인 또는 예술인 단체를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였던 방식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전혀 다르지 않은 행위에 해당한다..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가 <윤석열차> 작품이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는 이유 및 만진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예술작품 또는 창작물을 전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만진원에 대한 후원 승인 및 추후 지원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것은, 위 블랙리스트 사건의 법원 판결 내용에 따르더라도 문화국가의 원리 및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지원 여부에 차등을 두는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위 헌법상 원리들을 구체화한 「문화기본법」 규정에도 어긋나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제정 및 시행

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반성하며,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확실히 보호하기 위하여 2021. 9. 24. 제정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2022. 9. 25.부터 시행되었고, 위 법 제5조 제6항에서는 “국가기관등은 예술지원기관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예술지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7조 제2항에서는 ‘공무원 및 예술지원기관 등은 불이익의 위협 등을 행사하여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의 예술 활동이나 예술 활동의 성과를 전파하는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제8조 제2항에서는 ‘국가기관등 및 예술지원기관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예술지원사업에서 특정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를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차별행위’를 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최근 시행되었음에도, 문체부는 만진원에 대한 후원 승인 취소 등의 불이익 위협을 행사하여 만진원의 예술 활동성과를 전파하는 활동을 명백히 방해하였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순히 정치적 의견 등만을 이유로 만진원을 예술지원사업에서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차별행위를 하고 있는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가장 준수하여야 할 문체부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후 가장 먼저 해당 법을 위반하는 웃지 못할 사태를 초래하였다.

박 장관을 비롯한 문체부는 “순수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아온 중·고생 만화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시킨 만진원이 문제”,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이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반한다.”라고 주장하는 등, 청소년이 순수한 예술 외에 정치적 의견 등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의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만 18세 이상의 청소년의 경우 이미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고, 만 16세 이상의 청소년의 경우 정당 가입 역시 가능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오히려 청소년의 정치적 의견을 아무런 이유 없이 달리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또다시 재현된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는 문체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제반 책무들을 규정하고 있으나, 문체부는 오히려 정부에 비판적인 작품을 전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만진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조치 등을 취함으로써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명시적으로 위반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제정 이유 및 경위 등을 고려해봤을 때 문체부가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위반하여 자행한 위 불법행위들은 이미 법원에서 헌법상 권리 침해에 해당하여 금지되어야 함을 판단한 ‘블랙리스트’ 사건의 기존 문체부 행위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행위에 해당한다.

즉 불과 몇 년 전 블랙리스트를 작성함으로써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유린한 주역에 해당하는 문체부가 아무런 반성 없이 또다시 유사한 블랙리스트 사건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인들의 예술적·정치적 표현은 문화권을 가진 국민이자 문화국가 실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행위로서 정당한 존중 및 충실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고, 국가기관등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예술지원사업의 결정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도록 함으로써,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에 따른 ‘문화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예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할 책무를 진다.

그런데도 오히려 불합리한 차별을 더 조장하고 정부에 반하는 예술인들의 예술적·정치적 표현에 재갈을 물리려는 문체부의 작금과 같은 태도는 어떤 이유에서든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할 것이며, 문체부는 지금 당장이라도 기존에 예고한 행정조치 등의 입장을 철회하고, 만진원 및 <윤석열차> 카툰 작가에게 사과하여야 한다.

또한 문체부는 헌법·문화기본법·예술인권리보장법 등을 명시적으로 위반하여 이번 사태를 촉발한 것에 대한 엄중한 반성과 함께 확실한 재발의 방지를 약속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체부에 더 이상 또 다른 블랙리스트 사건을 재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첨부파일

기사.png

수상작.png

윤석열차.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