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기고]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

2022-05-02 3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

-김재왕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장애인 시위에 대해 유력 정당 대표가 비난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 대표와 장애인 단체 대표의 TV토론도 처음이었다.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장애인 단체 요구에 응답하였다는 뉴스, 장애인 단체가 시위를 재개하기로 하였다는 뉴스를 아침 라디오 뉴스 첫 머리에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광화문역사 한 켠을 5년 넘게 점거하였어도, 시설에서 몇 사람이 맞고 죽어도 사회부 뉴스로 다루어지는 정도였다. 장애인 문제가 이렇게 대중적으로 회자된 것이 처음이었다.

토론자 사이에 눈높이가 맞지 않는 토론회도 처음이었다. 휠체어에 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토론회에 나왔다. 그 날은 그가 소원을 이룬 날이었다. 그는 TV토론에 한 번이라도 장애 문제가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었다. 그런데 박경석 대표가 소원을 이루는 장면에서 방송사는 두 토론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은 채 자리를 배치했다. 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탁자는 토론 시간 내내 박경석 대표 앞에 어정쩡하게 놓여 있었다. 장애 문제를 이야기하는 토론회에서조차 장애인 토론자를 고려한 자리는 없었다. 방송사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토론자를 예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썰전라이브 '장애인 이동권'토론 캡쳐. 죄측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뒷모습이 보이고 맞은편에 안경을 쓴 진행자가 앉아있다. 진행자 맞은 편에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가 앉아있는 옆모습이 보인다. 삼각구도로 배치된 자리에 박경석 대표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은 자리 배치가 눈에 띈다. (출처: jtbc news 유튜브 채널)

<썰전 라이브 : ‘장애인 이동권’ 토론회 (jtbc news 유튜브 채널 캡쳐)>

사람들 대부분은 머릿속에 장애인이 없다. 지하철을 건설할 때 휠체어 사용자가 지하철을 탈 리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처음에 휠체어 사용자를 생각하였더라면 승강기를 설치하였을 것이고, 지금에 와서 승강기를 설치하는 데 돈이 얼마가 든다고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휠체어 사용자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 휠체어 사용자가 토론회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설계하고 기획하는 순간부터 장애인을 염두에 두는 시각에서 장애인 접근권 보장은 시작된다.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려면 돈이 든다고 한다. 사실 돈이 들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이 말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그렇지 않은 계단형버스보다 비싸다. 저상버스 1대 사는 돈으로 계단형버스 2대를 사거나, 저상버스 2대를 사는 돈으로 계단형버스 3대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돈이 없으니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저상버스와 계단형버스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버스를 모두 탈 수 있는 사람뿐이다. 저상버스만 탈 수 있는 사람에게 계단형버스는 버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저상버스는 돈이 든다는 생각은 계단형버스를 탈 수 있는 사람의 시각이다.

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다. 계단형버스 2대 대신 저상버스 1대를, 계단형버스 3대 대신 저상버스 2대를 도입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휠체어 사용자가 탈 수 있는 버스 1대를 도입하기보다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하지 못하는 버스 2대를 사는 선택을 해 왔다. 소수의 휠체어 사용자가 큰 불편을 겪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편한 상황을 선택한 것이다. 버스 수가 많아진 만큼 배차 간격을 줄일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 배차 간격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 반대로 누군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없거나 버스를 많이 기다리게 되었다. 결국, 장애인 접근권의 문제는 자원을 비장애인에게 배분하면서 발생한 문제이다.

장애인 접근권 보장은 지하철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시설이나 설비를 만들 때 장애인이 그 시설이나 설비를 이용할 수 있다고 고려하지 않는다면, 자원을 배분할 때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행사를 준비할 때 무대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지 확인한 적이 있는가. 수어통역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데 돈을 쓸지 망설인 적은 없는가. 몇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쓰기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사실 필자도 이 질문에 솔직히 답하기 부끄러울 때가 많다. 장애인 접근권 문제는 정부와 국회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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