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두발 자유는 ‘고작’ 두발 자유가 아니다” ─ 학생인권법안 발의의 의미

2021-12-01 3

“두발 자유는 ‘고작’ 두발 자유가 아니다”

-학생인권법안 발의의 의미

-작성: 강영구 회원

“머리가 어깨에 닿으면 묶어야 하지만, 눈썹 위로 묶어선 안됨, 똥머리 안됨(목덜미 드러나면 야하다고 함), 집에서 한 고데기 머리도 안됨, 머리집게 안됨, 구루푸 안됨, 색깔실삔 안됨”

“속옷은 흰색만 되고, 치마는 무릎 덮어야 하고, 마이 안 입으면 외투 착용 금지, 신발은 단색에 복숭아뼈 아래, 양말도 단색에 복숭아뼈 위, 실내화는 슬리퍼 안되고 무조건 고무 실내화이여야 합니다”

“이런 걸 어기면 벌점을 준다고 하였고 너 내가 원하는 곳 들어가고 싶어도 벌점 때문에 막히게 만들거야 등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런 조사를 통하여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고작 몇개월도 채 남지 않은 학교 생활이지만 저 이후에 학교에 다닐 후배분들이 하루 빨리 조금이라도 편안한 학교생활을 했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청소년 인권단체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21년 3월부터 5월까지 ‘우리 학교에 아직도 이런 복장 규제가 있어요!’ 설문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설문 조사 결과 전국 152개 학교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소속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적인 복장 규제에 대하여 제보를 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제보 내용은 여전히 학생을 ‘인권의 주체’가 아닌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우리 학교의 현 주소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92돌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2021년 11월 3일 국회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이 발의되었습니다(박주민 의원 대표발의). 2010년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지 11년, 2006년, 2007년 국회에서 최순영, 권영길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지 15년만의 일입니다. 위 법안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던 학생, 청소년, 시민단체들이 당일 일제히 환영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민변][성명] 학생인권법안의 발의를 환영하며, 21대 국회는 학생인권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라!

 

학생인권법안은 크게 3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모욕과 체벌 금지, 두발규제 금지와 같이 학생인권 침해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금지하고, 학생에 대한 징계사유를 제한하였습니다(자유 및 평등권). 또 학생회를 법제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토록 하는 한편, 학생생활과 관련된 학칙 제·개정시에는 반드시 학생회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였습니다(참여 및 자치권). 마지막으로 학생인권 침해행위에 대한 구제기구로서 교육청에 반드시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센터를 두도록 하였습니다(구제기구).

이러한 학생인권법안은 그간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걸어갈 발걸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보급과 함께 노컷운동, 체벌금지운동, 강제자율학습폐지운동, 학생회 법제화 등 학생들의 목소리 역시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체벌 금지, 강제보충학습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2007년 12월 국회에서는 구체적 내용이 모두 빠진 채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선언적 조항만이 통과되었습니다. 추상적인 동 규정이 학교 현장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으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이후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는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0교시수업, 야간보충수업, 사설기관 모의고사 금지 등 그간 학생인권 보장을 위하여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였던 최소한의 지침이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단위학교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학교 안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당시 학생들이 ‘미친 교육 OUT’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배경입니다.

이러한 입법의 공백 속에서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학생인권 보장을 약속한 이른바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습니다.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는 전국에서 최초로 체벌 금지, 두발복장규제 금지, 표현의 자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이어 2011년 광주, 2011년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이후 2013년 전북, 2020년 충남, 제주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현재까지 총 6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앙정부는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성과를 수용하여 학생인권을 보장하기는커녕, “획일적 조례보다는 학교 구성원의 동의를 거쳐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체벌이나 두발규제 문제를 ‘단위학교의 자율’에 맡기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 등 조례의 효력을 부인하는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즉, 2011년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도구 또는 신체를 이용한 ‘직접 체벌’은 금지하되 팔굽혀펴기 등과 같은 ‘간접 체벌’은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였습니다. 또한, 2012년 1월 서울시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자, 같은 날 교육과학기술부는 대법원에 조례무효확인청구를 함과 동시에 조례효력정지신청을 하였습니다. 조례가 상위법에 위반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어 2012년 4월에는 학생의 두발복장 규제, 소지품 검사 등을 학칙의 필수적 기재사항으로 하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였습니다.

이처럼 학생인권조례는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학생인권 보장이라는 크나큰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사무를 규율하는 조례의 특성상 끊임없이 상위법 위반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서조차 두발·복장 규제 등 학생인권 침해행위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례가 있는 지역의 현실이 이러하니, 조례가 없는 지역의 현실은 더 열악합니다. 지역별 조례를 넘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게 된 이유입니다.

사진출처: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페이스북

교원노조의 자문 변호사로 일해 온 저는 제 일을 계기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라는 연대체에서 학생인권법 초안을 만드는 일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선거·정당 관련법 개정, △학생인권법과 학생인권조례 제개정,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을 위하여 2017년 9월 출범하여 현재 전국 371개 단체가 가입하고 있는 전국 연대체입니다. 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작’ 학생의 두발 길이를 위해 법률까지 만들어야 하냐고, 학생의 두발 길이 정도는 학교의 자율에 맡길 문제 아니냐고. 그러나 이에 대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 길이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속옷 색깔조차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과연 스스로를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두발 자유는 ‘고작’ 두발 자유가 아니라 ‘존엄에 대한 열망’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에 국가가 응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법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존엄을 향한 열망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 교문 앞에 멈춰 선 인권이 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민변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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