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엄마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의 의의

2021-11-30 2

‘엄마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의 의의

이근옥 회원(사단법인 선)

2021년 2월, 엄마의 성과 본을 쓰기를 원하는, 출산이 임박한 부부가 상담을 해왔습니다. 저희는 ‘이혼 후 재혼인신고’를 하는 방법과 성본변경청구를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면서, 이혼 후 재혼인신고를 하면서 모의 성과 본을 쓰겠다는 협의서를 작성하는 편이 확실하다고 안내를 드렸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 개정된 민법에서 ‘혼인신고 당시 부모가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고 하며(민법 제781조 제1항 단서) 엄마의 성본쓰기를 제한적으로 허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두 방법 중 무엇을 택할지 고민해보겠다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21년 여름, 그 부부는 아이를 출산한 뒤 ‘성본변경청구’를 하고 싶다고 하며 사무실을 재방문하였습니다. 아무리 서류상 이혼이라지만 이혼을 하기 원치 않았으며, 더군다나 숙려기간 때문에 출산 전 이혼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면서 성본변경청구를 택했던 것입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가족법연구팀은 이 부부의 성본변경청구를 대리할 변호인단을 모집하였고, 9명의 변호사가 머리를 모아 성본변경청구서를 작성하여 2021. 9. 9. 서울가정법원에 청구서를 접수하였습니다. 청구서에는 현행 제도를 ‘출생신고 시 부모의 합의로 자녀의 성과 본을 정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국회와 관련 정부부처 역시 부성주의를 폐지하자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며 엄마의 성과 본을 사용하는 것이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의뢰인 부부의 자녀가 엄마의 성과 본을 쓰게 됨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리를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유지되어야 한다’ 는 헌법 제36조와 연계하여 주장하였습니다(청구인의 개인정보가 삭제된 성본변경청구서를 보시려면 이 곳을 클릭!).

 

"엄마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이라는 제목의 현수막을 앞에두고 8명의 사람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청구서 접수로부터 한달 여가 지난 2021. 10. 13. 자녀의 성과 본을 엄마의 성본으로 변경한다는 청구가 허가되었고, 2021. 11. 9.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해당 허가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많은 기자님들이 ‘이번 판결이 엄마의 성본쓰기가 허용된 첫 사례이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성본변경은 민법 제781조 제6항에 존재하던 제도로서, 자녀의 복리를 위해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청구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자녀의 성과 재혼가정에서 계부나 양부의 성과 본으로 변경을 구하는 경우’ 또는 ‘이혼이나 사별 후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서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변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주석민법』 제781조 참조). 한편 혼인 중 아버지의 성이 놀림이 된다는 사유로 어머니의 성으로 성본변경청구를 하여 인용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결정은 엄마의 성과 본을 쓰는 것이 ‘성평등한 가정에서 양육될 권리’와 연결되며, 이는 자녀의 복리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주장하여 받아들여졌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의의는, 이번 사건 이후 제 주변에서 엄마 성본으로의 성본변경 절차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엄마의 성을 쓴다는 것은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며, 아빠 성을 쓴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 인구는 이미 생각보다 꽤나 많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려 응답자의 ‘73%’가 자녀의 성과 본을 출생신고시 부모의 협의로 정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저희 변호인단은 시민들의 인식 변화도 성본변경청구서에서 다루었습니다.)

아직 법과 제도가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엄마의 성본쓰기를 원하는 많은 이들이 성본변경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사진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