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상상력으로 법을 돌아보라! – ‘하하하변’, 하주희 변호사 인터뷰

2021-05-20 3

 

상상력으로 법을 돌아보라!

– ‘하하하변’, 하주희 변호사 인터뷰

 

인터뷰어: 허자인 (출판홍보팀) / 편집: 허자인, 허진선

 

허자인(이하 “허”):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하주희(이하 “하”): 하주희 변호사입니다.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교육·청소년위원회 활동을 많이 했었고, 민변 사무차장을 하고, 현재는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JFK 영화를 보고요. 옛날 사람인 거 티 나죠? 하하하. 1990년대 영화인데, 지금은 영화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막상 법대에 가니, 법이 정의를 실현시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법대 다니면서는 변호사 생각이 없어졌어요. 그 당시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광주 학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했었어요.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고… 뭐 이딴 법이 다 있냐고 생각했죠. 그래서 학생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랬어요. 변호사가 되기로 한 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 때문이기도 했고, 궁여지책이기도 했어요. “공부를 하면 안 되겠니?”라고 하셔서요. 신림동 들어가기 전에는 학원 강사도 했었어요, 대치동에서…….

 

허: 학원 강사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요?

하: 맞아요(웃음). 저는 울산 노동자의 자식인데, 서울에 와서 깜짝 놀랐잖아요. 이 조그마한 게 공장이라니? 울산에서 공장이라 하면, 차로 들어가서 한 바퀴 쫙 돌아야 하는 곳이거든요. 하하하! 공장장이 자기 아들도 못 보낸 법대를 당신 자식을 보내셨다고 좋아하셨죠. 갑자기 편찮아지시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공부하면 안 되겠냐고 말씀하셔서 결혼하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는 곳이었으니까. 멋진 선배들도 많이 계셨고요.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었거든요. 법을 해석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고요.

 

허: 미군위 위원장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어요.

하: 4년 했어요. 미군위 간사도 오래 했죠. 제가 위원장 됐을 때가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였어요. 그때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용산기지 평택 이전, 탄저균, 사드 같은 굵직한 한-미간 군사적 문제로 이슈들이 많았어요. 그런 문제에 얽힌 법적 문제점을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소송도 하고 시위도 하고, 성주에도 가는 등 민변 선후배들 다 같이 여러 활동을 했었어요.

민변 전체 결의로 함께한 사드배치 중단 요구 기자회견

 

우리 사회에서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영역이죠. 분명히 그 문제로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있는데도 그런 거예요. 그런 부분들을 알려야겠다, 실제 피해 입은 주민들과 연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근거가 되는 정책과 관련하여서도 법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케이크와 감사패를 받고 웃고 있는 하주희 변호사.

 

위원장 그만두고 나서는, 활동하면서 하기는 어려운 연구들을 하려고 했어요. 최근에는 유엔군사령부 문제에 대해 변호사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유엔사는 정전관리기구인데도 불구하고, 비무장지대 출입통제를 하고 있죠. 과연 그런 활동들이 지금도 유효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참 어려워요. 외교나 국제관계들이 규범적으로 정리가 잘 안 되는 것들이 많죠. ‘힘의 논리’이긴 하지만요. 미군위 내부에서도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에요. 7월에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고요.

 

허: 1인 시위 하다가 연행되셔서 소송하시기도 했죠? 소액이긴 하지만요.

하: 너무 적죠? 하하하. 1인당 20만원이에요, 200만원이 아니고(웃음).

사드 들여온다고 발표 나왔을 때 미군위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1인 시위를 밀어낼 줄은 상상도 못했죠.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거예요. 인권위에 진정도 냈어요. 첫날 밀어내고 나서 인권위 조사관도 왔다 갔어요. 미 대사관 앞 시위 보장해야 한다는 과거 인권위 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었죠.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나간 하주희 변호사와 그를 밀어내는 경찰들. (출처: 민중의 소리, http://www.vop.co.kr/A00000993030.html)

 

미군위는 그런 생각이 강하거든요, 다른 단체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그런 활동을 하는 게 공감을 얻기 힘든 일로 치부되어서, 더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종북’이라고 하거나요. 그래서 우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직 대법원에 있습니다. 현재 위원장님인 김종귀 위원장님이 대리를 해주셨어요. 의뢰인들은 원래 신경 안 쓰잖아요? (저는) 철저히 의뢰인의 입장에 있었죠, 하하하.

그 외에는, 오산에서 활주로 공사한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우리나라 환경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어요. SOFA에도 국내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 있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국내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없으니까요. 활주로를 만들기로 한 결정이 언제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어서 취소소송의 제소기간인 90일이 지나서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었어요. 당연무효는 아니라서 기각되긴 했지만, 판결 이유 중에는 국내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은 있었고요.

 

허: 미군기지촌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정부가 국민들을 보호하지 않는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두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해요.

하: 패소하면 원고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게 두렵지, 다른 건 없어요. 운이 좋으면 법원이 진지하게 한 번씩은 살펴보는 것 같아요. 두렵다기보다는 국민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정말 안 되는 걸까?’라고 고민하는 용기요. 동등한 협상관계라기 보다는 실제로는 일방적이고,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데도, 정부는 국익을 이야기하잖아요.

두려움보다는 무기력이 찾아오죠, 계속 안 되니까. 그럴 때는 주변 사람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셔요(웃음).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힘을 내는 거죠.

 

허: 변호사님이 위원장 하실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 소송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계속 이끌어가는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는데 바로 여기 있었군요!

하: 네. 사람과, 술과…(웃음).

 

기지촌 문제로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미국 심포지엄 2019년

 

허: 그러고 보니 교육위에서도 많이 활동하셨죠? 국공립대 기성회비 반환소송도 하시고.

하: 네네, 교육위에서는 초중등 교육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는데, 저는 고등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대학생활의 경험에서 자유로운 학문공동체, 아무거나 수업 듣고, 공부하고, 수업 안 들어가도 되고, 특히 당시 법대는 아무도 출석체크를 안 했거든요 (하하하) 미군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국 현대사 책을 보아서였거든요. 그런 것처럼 자기의 길과 진로를 대학에서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처음에는 학생들이 징계 받는 것들 대응하다가, 반값등록금 운동 관련한 대응을 하기도 했어요. 반값등록금 관련해서는 사립대의 경우 적립금, 국공립대의 경우 기성회비 관련 문제를 제기했었고요.

 

기성회비반환소송 기자회견 사진. 기성회비 반환과 반값등록금 운동에도 함께하셨었다고. (출처: 21세기대학뉴스, http://21unews.com/xe/uni/31615 )

 

허: 기성회비가 정확히 뭔가요?

하: 정체불명이에요. 육성회비랑 비슷해요. 기성회장이 기성회비를 부여하고, 이 기성회비는 수업료와 함께 고지서에 나와요. 그 고지서에서 80%를 차지하는 게 기성회비고요. 수업료를 많이 올리지 말라는 사회적 합의랄지 압박이 있는데, 기성회비는 예산으로 안 잡혀요. 학교들의 쌈짓돈이죠. 어디에 쓰는지 공시할 필요도 없고요. 수업료를 5% 올리면 기성회비를 10% 올리는 등 등록금 인상률의 주범인데 아무리 봐도 법적근거가 없는 거예요. 과거부터 있던 고민인데 사립대는 알아서 없앴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소송이 있었거든요. 당시 대리인이 장경욱, 진선미 변호사님이었어요. 국립대는 아직까지 남아 있었고, 등록금 인상의 주범이고 마침 반값등록금 운동이 활발했고요. 총장들의 비리 문제와도 연결됐고, 기성회비로 교수님들 급여 항목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 급여로 주는 사례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다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하하. 마침 반값등록금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고, 1심 법원은 상당히 진지하게 보았어요. 굉장히 열심히 법리적으로 검토해서 청구원인을 엄청나게 분석하고, 오만 머리를 다 썼어요. 불법행위, 부당이득……. 결국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1심 판결이 났죠. 평등한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등록금 문제는 중요했고요. 반값등록금 운동의 효과로 그 이후로 등록금이 동결됐죠. 반값등록금 운동의 성과랄까요? 실제로 반값등록금은 안 됐지만. 그 이후로 국가장학금 같은 것도 생기고.

 

허: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하: 하하하! 내 덕분은 아니지만 너무 잘됐네요!

 

호탕하고 큰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하주희 변호사님의 별명은 ‘하하하변’!

 

 

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법무법인 율립 홈페이지도 봤는데, 여기서도 사립학교 관련된 활동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율립 소개도 부탁드려요.

하: 법률 률(律)자에 설 립(立)자. ‘법이 서다’, 혹은 ‘법을 세우다’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유능한 후배변호사님들과 함께 창의적 활동을 하려고요.

민변의 이른바 ‘삼대 상(신인모범회원상, 모범회원상, 멋진회원상)’을 탄 오민애 변호사도 있고요, 박현서 변호사, 송봉준 변호사, 신의철 변호사가 함께 있어요.

노동이나 교육 쪽 업무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노동 분야도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노동운동 했던 친구들도 많으니까요. 비정규직 사업장처럼 작지만, 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요. 수익과는 무관한 일도 많았지만 전에 있던 사무실 선배님들이 많이 이해해 주셔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자녀분들과 함께 다니시는 캠핑 사진! 변호사님이 어디 계신지 찾아보세요.

 

허: 변호사님과 말씀 나누어보니 많은 일을 하시면서도, 또 잘 되지 않는 일들을 많이 끌어오셨으면서도 밝고 쾌활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밝은 성격의 비결은 무엇이신가요? 취미 같은 것도 따로 있으신가요?

하: 요즘은 애들이랑 캠핑을 다니곤 해요. 근데 첫째는 많이 커서인지, 요즘은 전혀 함께 가지 않아요. 하하하. 그게 조금 고민이고요. 걷는 거 좋아하고, 요가는 정기적으로 하려고 노력했고요. 이 동네 헬스장과 요가학원에 뿌린 돈을 합치면 헬스장 하나 차렸을 거예요. 아쉬운 건, 일하다 시간 되면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술 한 잔 하는 건데, 요즘은 그런 걸 못해서 조금 아쉽죠.

 

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변호사님의 매력에 반한 익명의 후배 변호사들이 많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변호사님이 스스로 생각하시는 변호사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하: 그런 소식은 처음 듣는데요?(웃음)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사람도, 사건도 만나게 되고 그걸 꽤 오래하게 되고요. 이런 걸 후배분들이 나쁘지 않게 생각하신 것 아닐까 해요.

변호사는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사람도 만나고, 사건도 만날 수 있는 것 같고요. 저도 미군기지촌 위안부 소송 의뢰가 들어왔을 때, 잘 모르는 문제이니 공부를 하다가, 이 문제를 연극으로 만든 연출가나 다큐멘터리 감독을 만났고, 그러다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에도 관여하고 지금 블랙리스트 민사소송 대리인단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가 형성된 거죠.

 

 

허: 지금까지도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는데, 앞으로는 민변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하: 저는 민변에서 항상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첫 번째는 회원들 모두 한 번씩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것. 회원팀에서 무시했어요(웃음). 지금은 회원 수가 천 명이 넘어가서 어렵죠. 저는 선배들과 후배들과 함께 있는 게 좋고, 밥을 사도 한 번도 아깝지 않았어요. 밥 먹고 활동 안 하고 ‘튀어도’ 상관없었고요. 하하하. 저도 밥 먹고 술 먹고 사고를 많이 쳤으니까요. ‘회원들이 서로 만나서 일 년에 딱 한 번씩 밥을 먹으면, 10년이면 다들 한 번씩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활동을 잘 못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도 누군가는 알고 있을 거거든요. 그렇게 엮어서 서로서로 밥을 먹게 하고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직적으로는, 민변에 정책연구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우리가 변호사라고 ‘사법’만 할 게 아니라, 현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20대들을 모아 집을 달라고 하는 소송을 기획하거나 하는 거요. 국가가 보장해야 할 주거에 관한 권리가 우리에게는 사회권적 기본권이라고는 하지만, 헌법과 법리에 기반해서 국가의 의무를 도출해내는 기획 소송을 하는, 그런 걸 고민할 수 있는 연구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아, 영화 「기생충」이 ‘대박 났을’ 때 했었어야 했었어요. ‘하… 바로 지금인데…’라고 생각했었죠. 하하하. 지금이야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많이 하려고 하지만요. 이런 식으로 기획소송을 하고, 연구할 만한 분야들이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중인 ‘하하하변’.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되지 않을까?’를 생각해보자고 하는 모습.

 

허: 마지막 질문이에요. 변호사님에게 민변이란?

하: 우리 민변 20주년 기념행사 때도 이야기했던 건데요, 저는 민변이 진심으로 ‘울타리’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뭐든 하면 되고, 할 수 있는 울타리요. 우리가 민변이기 때문에 조금 모자란 것은 보호해주면 되고, 민감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들도 얼마든지 공익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고요. 저에게는 국가보안법, 미군기지, 내란음모 사건들이 그랬고요. 언제나 ‘민변이기 때문에’ 인권옹호와 공익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마음껏 활동하시면 좋겠어요.

 

 

민변 미군위에서 수많은 후배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하주희 변호사님을 만나 뵙고 돌아오는 길, 왜 그렇게 많은 분들이 하주희 변호사님을 편하게 따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너무 어려운 문제일까 봐, 한 번 가보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까봐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주희 변호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율립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밥 한 번 같이 먹고 도망가도 괜찮으니까요. 물론 함께하면 더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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