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재난에서 국민을 구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 4.16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에 대한 무죄판결을 규탄한다.

2021-02-16 2

[성명] 재난에서 국민을 구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 4.16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에 대한 무죄판결을 규탄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재판장 양철환, 구현정, 김재호)는 4.16 세월호 참사 당시 제대로 된 구조 활동을 지휘하지 않은 책임으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에 대해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신 등 기술적인 문제로 피고인들이 사건발생 직후 현장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고, 설령 ‘피고인들이 제대로 된 지휘를 했다 하더라도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이 이를 묵살하거나 허위보고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세월호가 예상보다 급속하게 침몰할 것으로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경 지휘부가 현장 지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세월호 구조 방기에 대한 해경 지휘부의 책임은 이미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인정된 바 있다. 광주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서경환)는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관련 책임자로 기소된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죄 사건에서 “해경 지휘부나 사고 현장에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이번 1심 판결은 기존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는 결정을 하면서도 그 근거는 매우 조야하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재난 상황에서 핵심적인 의사결정 등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지휘부에게 면죄부를 주고 현장에 출동한 말단 공무원들만을 처벌함으로써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성을 법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구조해야 할 국가의 헌법상 의무를 의미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공무원이 상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휘를 받지 못해 구조를 하지 못하면 처벌되지만, 지휘 권한을 가진 상급자가 처벌을 받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통신이 원활했어야 하고, 선원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야 하며, 선박이 예상보다 급속하게 침몰하지도 않아야 한다. 즉, 모든 것이 예측가능하고, 예상하는 대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부가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려고 하겠는가?

 

모든 것이 예상대로 진행되면 재난은 발생하지 않는다. 진도VTS의 퇴선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해경에 허위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현장에 도착한 123정이 신분을 속이고 퇴선하는 선원들을 확인하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였다면, 세월호가 예상대로 천천히 침몰하였다면 아마도 수많은 희생자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난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연속되어 발생한다. 재난 상황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미리 예상할 수 없었다’는 말로 포기할 수는 없다. 국가가 해양경찰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에 계급을 두고, 상급자와 하급자의 권한을 분배하며, 수난구호법에서 상급지휘관에게 결정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모두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경험과 권한을 가진 지휘관들이 제대로 된 지휘를 통해 현장의 잘못을 확인하고 국민의 생명을 살리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재판부는 발생하지도 않은 다양한 가능성들을 예상하여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지만, 중요한 가능성 하나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이, 아니 피고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동안 해양경찰 조직의 핵심 간부로서 전문성과 경험 그리고 그에 따른 권한을 행세하였을 피고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한 직후에 피고인이 가진 모든 수단과 권한을 총동원하여 현장에서 제대로 된 승객 퇴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이로 인해 퇴선명령이 몇 분이라도 일찍 내려졌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희생자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침묵했다. 만약 그로인해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 않은 피고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판결 직후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선고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워 즉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이번 판결에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의 부실한 수사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대응과정에서 결국 희생자들을 구조하지 못한 결과에 책임이 있는 대통령, 청와대, 정부책임자에 대한 혐의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대부분 혐의없음 처분했다. 현장구조세력 전부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에 넘겨진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수단 수사결과에 대해 항고할 예정이다. 다시는 이런 잘못된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된 재수사 결정이 있어야 한다. 검찰의 책임있는 모습을 촉구한다.

 

2021년 2월 1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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