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여성위][보도자료] 안희정 전 지사 형사 항소심 의견서 제출

2018년 11월 23일 minbyun 296

 

[보도자료]

안희정 전 지사 형사 항소심 의견서 제출

 

서울고등법원은 2018. 11. 29.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업무상 위력간음 등’에 대한 항소심 제1차 공판기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올해 미투 운동으로 알려지게 된 사건들 중 가장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은 사건 중 하나입니다. 미투 운동으로 인하여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이 시점에서 이 사건 판결 내용은 단순히 한 개별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넘어 성폭력 사건의 판단기준, 성인지 감수성에 기초한 사실관계 인식 등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논의와 학습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성년·장애인 피해자가 아닌 성인 피해자에 대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사건은 그 동안 판례가 많이 축적되지 않아 위력의 의미와 행사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 사건은 이러한 판단에 있어 선례로서 중요한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그 동안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 개선 연구, 성폭력·성희롱 예방교육 등을 수행하면서 성폭력·성희롱 사건에 대한 판단에 성인지 감수성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바, 이 사건이 가지는 사회적·법리적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면서, 본 위원회가 지금까지의 여러 활동을 통하여 축적하여 온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인지하고 있는 이 사건 원심 판결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합니다.

 

다만 본 위원회는 이 사건 피해자를 직접 대리하고 있지 않으며, 이 사건 원심 판결문과 수사·공판 과정에서의 피해자 진술 내용 이외의 다른 수사·공판기록 내용을 검토한 것이 아니므로, 본 위원회의 의견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본 위원회는 이 사건의 구체적인 증거관계나 기록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 이 사건의 결론을 단정 짓거나 이 사건 원심 판결의 내용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단지 본 위원회가 제기하는 문제점이나 의문점들에 대하여 항소심에서 좀 더 면밀한 심리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어떤 결론이든 성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취지에서 항소심 재판부에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가 본 위원회의 위와 같은 의견서 작성 과정 및 의견 제출 취지를 감안하여 항소심 심리 과정에 있어 본 위원회의 의견을 참작하여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고 재판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2018112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위 은 진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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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의견서 주요 내용

 

올해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판결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 원심은 성인지 감수성에 따른 사건의 이해를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로 언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판결 선고 이후 이 사건 원심의 판결이유 중 상당 부분이 실제 현실에서의 여성들의 경험이나 인식,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현실과는 많은 괴리가 있고, 판결의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이 사건 원심 판결은,

(1)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간음 또는 추행죄에 있어서 위력의 행사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 오류가 있습니다.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와 같은 무형적인 위력의 경우 특별히 위력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언급 등 별도의 ‘위력 행사 행위’가 없더라도, 그러한 지위와 권세를 가진 사람이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추행이나 간음에 나아가면 그것이 곧 ‘위력을 이용한 추행 또는 간음’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하며, 위력의 존재 이외에 별도의 특별한 위력 행사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요하지 않는다는 점은 기존의 판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심 판결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와 같은 무형적인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하는 것이 형법상 위력의 해석에 부합하는 것인지, 나아가 위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행사’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현실적․법리적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2) 이 사건 원심이 위력의 일반적 행사 혹은 위력의 존재감 남용 여부를 따지거나,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하는 것은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의 인정범위를 비합리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으로서 부당합니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에서 위력과 간음·추행은 ‘수단-행위’의 관계에 불과할 뿐 ‘원인-결과’의 관계로 볼 수 없으며,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은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보호법익일 뿐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범죄 성립이 인정되는 구성요건의 일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심은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구성요건을 잘못 적용하였습니다.

 

(3) 원심 판결은 무죄 판결과 결정적으로 모순되는 사정들에 대한 판단이 부재하였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폭로 직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는 입장 표명을 한 바 있으나, 이 사건 원심은 이에 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피고인의 입장 표명은, ① 사건이 폭로된 직후 피고인이 밝힌 첫 번째 입장 표명이었다는 점, ② 피고인 본인이 직접 스스로 밝힌 입장이라는 점, ③ 법률검토나 주변의 조언을 충분히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를 한 것으로서 진정성이 담보된다는 점, ④ 입장을 보류하거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내용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것을 명확하게 부인하는 취지라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신뢰성이 있고 이 사건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또한 1) 피고인이 먼저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는지 질문한 사정, 2) 피고인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를 먼저 부른 것은 항상 피고인이었다는 사정 등은 둘 사이의 관계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정임에도, 이 사건 원심은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무시하였습니다.

 

(4) 원심 판결은 피고인 진술과 피해자 진술에 대하여 극명하게 다른 불공평한 판단기준을 적용하였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뿐만 아니라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 역시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검사에게 유죄의 증명 책임이 부여되는 현행 형사소송법 구조 하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로서 피고인이 유죄임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주된 판단 대상으로 삼고 증명 책임의 정도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타당하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물리적인 증거가 거의 없고 서로 상반되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만이 전부인 경우가 많은 성폭력 범죄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피고인의 진술 아니면 피해자의 진술 둘 중 하나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뿐만 아니라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 역시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원심은 경험칙에 어긋나고 자체 모순이 있음에도 피고인 진술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판단을 하였고,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 허위로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나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막연한 사정만을 근거로 피해자를 과도하게 의심하고 이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반영하였습니다.

 

5) 개별 공소사실에 관한 이 사건 원심 판결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1) 피해자가 사후적으로 보아 더 적극적으로 거절하거나 저항할 수 있었다고 보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였고, 2)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피해자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임에도 원심은 피해자를 부당하게 의심하고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였고, 3)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피고인이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피해자의 설명을 부당하게 배척하였고, 반면 4) 피해자의 메시지에 따른 거절의 의미를 부당하게 배척하고는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생각하는 행위태양만을 합리적인 반응으로 상정하는 오류를 범하고는 피해자의 합리적인 대응방식을 재판부가 인정하는 특정한 행위만으로 한정한 뒤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은 피해자를 의심하였습니다. 또한 5) 그 동안 많은 사건에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경우 2차 피해를 입고 회사를 떠나는 쪽은 대부분 피해자인 여성이었던 경험으로, 대다수의 직장 내 성폭행 피해자들은 사건을 공론화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특히 같은 직장의 동료인 경우에는 가해자인 상급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피해자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충분히 많기 때문에 더더욱 피해 사실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원심 판결은 “추행 사실을 두려워해야 하는 주체는 피해자가 아니라 피고인임이 분명”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반으로 판결을 하였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