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여연심변호사를 만나다.

2016-02-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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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회비회원이라 강조하는 여연심 변호사는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에 상당히 미안해했습니다. 하지만 여연심 변호사야말로 민변 밖에서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민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그라니 맑은 눈으로 어찌나 막힘없이 조리 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다른 분들에 비해 턱 없이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숨가쁘게 진행된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김지미 오늘 인터뷰도 자기소개로 시작할게요.

 

여연심 저는 법무법인 지평에서 일하고 있는 여연심이라고 합니다. 변호사 된지 10년차고 그래서 민변회원도 10년차 되었습니다. 실제 활동은 잘 못하고 있지만 회비는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는 말을 꼭 써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여변호사님은 연수원 수료하실 때 화제가 됐던 인물이잖아요. 감히 넘볼 수 없는 연수원 수료 성적이 4등. 저로서는 400등도 어려운데 말이죠.(웃음) 그 정도의 최상위 성적이면 법원으로 가는 게 기정사실화 되고 있던 현실에서 민주노총 법률원으로 가셨어요. 그것 때문에 언론에도 많이 나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여연심 공부를 하면서 민변 활동 같은 것을 하는 변호사가 돼야지 이런 막연한 상은 있었는데 민주노총 법률원은 잘 몰랐어요. 노동변호사라는 관념 자체가 생소했고 그냥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연수원에 갔는데, 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에 가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법률원 변호사님들도 알게 되고 실무수습을 그쪽으로 나가면서 더 친해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게 됐어요.

 

김지미 민변 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공부하면서부터 가지고 계셨다면 학창시절에도 공부만 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여연심 대학 때는 쪽방촌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꽃마을이라고, 지금 대법원 맞은편 거기가 원래 저희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판자촌이었어요. 지금 법률원에 있는 김태욱, 우지연 변호사가 다 저랑 같은 동아리였습니다. 되게 순수한 동아리였는데, 왜 다들 법률원에 갔지?(웃음) 초등학생 아이들 가르치는 공부방이었어요. 들꽃공부방이라고. 지금은 없어졌어요.

 

김지미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이었으니까, 일종의 빈활 비슷한 건가요?

 

여연심 네. 맞아요. 여름에는 빈민활동도 계속 다녔고, 전철연이라고 철거민 조직하고 같이 연대활동도 할 수 있는 곳도 해보고 그렇게 했었죠. 그런데 주된 활동이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김지미 이런 쪽에 특히나 끌렸던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에도 여러 갈래의 운동이 있는데.

 

여연심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제가 사실 공부하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서 철학책, 사회과학책 읽는 동아리들은 안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몸으로 하고 아이들 좋아하니까 아이들 가르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하게 됐어요.

김지미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오면 그럼 연수원 다니실 때 법원이나 검찰은 생각이 없으셨나요?

 

여연심 특별히 선을 정해놓고 된다 안 된다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검찰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제가 잘 속아 넘어가고 사람을 잘 추궁하지 못해요.(웃음).

 

김지미 부모님이나 주위에서 우려가 있었을 것 같아요. 노동변호사라고 하면 고생할 게 자명하고 실제 법률원 변호사님들의 노동 강도는 세기로 유명하잖아요.

 

여연심 부모님은 아쉬워하시기는 했는데 강하게 반대하진 않았어요. 제가 그때 나이가 31살이었고,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어 하면 반대를 하는 성격은 아니시거든요. 오히려 연수원 동기들이 성적 좋은데 왜 그러냐며 아쉬워했어요.

 

김지미 법률원이 초창기여서 조금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법률원에서 어떤 일들을 주로 하셨고 막연히 꿈꾸던 노동 변호사라는 생활이 기대하던 것과 비슷했었는지 궁금합니다.

 

여연심 지금 법률원 변호사님들이 하는 일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요즘은 비정규직 소송이 늘어난 게 좀 다를까. 그때도 여전히 징계나 해고사건, 노조 관련된 사건, 집시법 관련된 형사사건 위주로 많이 했었어요. 법률원에서 시보를 했었기 때문에 생각했던 변호사 일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들어가서 3년 동안 일하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더 배우고 이런 일을 했었야 했는데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신입 변호사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김지미 그건 민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민변도 최근에는 신입변호사연수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지만, 제가 1년차 때만 해도 그런 프로그램이 전혀 없어서 좀 힘들었었거든요.

 

여연심 맞아요. 저도 그게 제일 아쉬웠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은 지평이라는 꽤 큰 로펌에서 일을 하는데 법률사무소가 크면 교육시스템이 잘 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투자를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여력이나 비용도 있고 이 사람을 키우는 게 자산이 된다라는 것을 알고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법률원이나 여러 공익인권변호사 단체는 그게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저는 민변에서든 변호사단체에서든 그런 교육의 역할을 잘해줘야 한다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민주노총 입사하면서 남긴 한마디가 저는 와 닿던데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필요한 만큼 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사건수임은 거절한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런 것이 기쁨을 준다’ 이거 여변호사님이 하신 말씀인가요?

 

여연심 제가 직접한 것이 아니라 아마 그때 경향인가 어디에서 법률원 변호사 전체를 취재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권두섭, 송영섭변호사님 다 나왔던 그런 기사였으니까 누군가가 하신 말일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이런 생각을 갖고 일했었던 것은 맞아요. 지금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필요한 만큼 번다. 되게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여연심 필요한 만큼 잘 버시는지 늘 걱정이에요.

 

김지미 민주노총에 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소송 중에 하나로 뉴코아 비정규직 투쟁을 꼽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연심 1년차 때부터 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것도 있고, 그때 기간제법 시행 때문에 뉴코아와 이랜드 노조에서 공동으로 투쟁을 조직을 했는데 제가 뉴코아를 담당한 변호사인 셈이었어요. 투쟁을 준비할 때부터 노조분들하고 밀착해서 여러 가지 조언들을 많이 해주기도 하고 물론 제가 배우는 게 더욱 많았지만 그런 관계를 맺어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너무 친해져서 나중에 제가 객관성을 잃어서 좀 힘들었어요. 몇 달 동안 수배생활을 하는 김호진 당시 부위원장님은 제가 정말 좋아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못나가서 너무 괴로워하고 극단적인 생각도 때로는 하고 이런 걸 다 알게 되니까 같이 괴로웠어요. 지난주에 그 당시 다른 부위원장님 한 분이 있는데 그분을 만나서, 소주를 한 잔 했거든요. 그 분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때 노조활동했던 분들 해고당했던 분들이 다 그 뒤로 여러 가지로 힘들다고 알고 있어요. 다시 비슷한 직장에 취직하기도 어렵고.. 그래도 자기는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똑같이 투쟁할 것이란 얘기도 하시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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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주위에 여러 우려에도 민주노총 법률원에 가셨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3년 정도 있다가 국선전담변호사로 진로를 바꾸셨어요. 이전에 인터뷰 하신 걸 보니까 노동·형사사건에 관심이 있었다라고 말씀하신 게 있던데,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서 국선전담을 선택하셨던 건가요?

 

여연심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법률원을 그만두게 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 로펌으로는 가기 싫고 개업할 자신은 없고, 저는 그때는 노동사건을 하면 법률원의 업무를 뺏는 셈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좀 꺼려지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국선전담이 그러면 여러 가지 타협책으로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해서 됐죠.

 막상 전담을 해보니까 제 성격은 일을 찾아서 하고 싶은 성격인데, 되게 좋은 일이지만 적성에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일자리를 찾다가 지평 쪽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1년 10개월하고 그만두게 되었어요.

 

김지미 제가 알기로는 국선전담 끝나고 지평으로 바로 가신 건 맞는데 그 사이에 법원에 지원을 하셨었죠?

 

여연심 네. 맞아요.

 

김지미 그런데 안 되셨잖아요. 연수원 성적이나 국선전담 경력 등을 봤을 때는 경력직 법관으로 여변호사님만한 분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여연심변호사가 안되면 민변에서는 아무도 법원으로 갈 수 없다는 얘기도 돌고 그랬어요. (웃음).

 

여연심 저도 왜 떨어졌는지 모르니까 뭐라고 말씀 드릴 건 없는데 제가 민노당, 진보신당 활동을 하다가 탈당을 한 상태였는데 당 활동에 대해서 소명서를 내라고 하더라구요. 그거 때문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죠.

 

김지미 지평에 가신지 4년 정도 되신 것 같은데 지평이 공익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두루라는 법인을 따로 만들었잖아요. 지평에서 특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공익활동 분야는 어떤 건가요?

 

여연심 두루에 지금 일하시는 변호사님들이 세 분이세요. 예전보다 영역을 계속 넓혀 나가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장애인권 관련해서 임성택변호사님하고 많이 해왔었고요, 요즘은 기업과 인권분야라거나 아동인권분야 등으로 공익활동이 훨씬 체계화되고 있어요. 변호사의 자문이나 이런 것이 필요한 사건도 이분들이 많이 매칭해주시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김지미 공익활동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해보면, 대형 로펌들이 나서서 공익을 전담으로 하는 새로운 법인을 세우는 추세이긴 한데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들을 지원하는 측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있거든요. 여변호사님이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계신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여연심 네. 제가 인권이사로 있다보니까 여러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려움이 많으시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로펌소속으로 일하는 변호사보다 외부에서 자립해서 일을 해야 하는 공익변호사 단체들이나 나홀로 일하는 변호사님들에게 어떻게든 공적으로 지원이 필요하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됐고,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봤을 때 자립을 지원할 수 있는 초기단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 자립이라는 것이 금전적인 자립도 필요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서 훌륭한 공익변호사로 잘 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선배 변호사들이나 변호사단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을 해서 지금 가칭이기는 한데 프로보노지원센터라는 것을 서울지방변호사회 산하에 만들까하고 기획하고 있는 초기단계에 있습니다.

 

김지미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가 되신 지 1년 정도 되셨잖아요. 지난 집행부 때와 현 집행부의 인권위원회 역할을 보면 큰 차이가 있어요. 이건 순전히 인권이사의 역할 때문이다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어떠신가요?

 

여연심 독재체제라서 그래요(웃음).

 

김지미 여변호사님이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를 하시고 나서 의미 있는 사업들이 몇 가지가 있었어요. 집회현장에서의 인권침해감시 활동도 있었고 그밖에 여러 가지 기대할 수 없었던 성명이 나오기도 하고, 소녀상 지킴이 학생들도 만나시고 인권위에 진정을 하기도 했죠. 방금 말씀하셨던 프로보노센터도 기획단계이고. 인권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인권이사를 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여연심 기획을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좀 힘들었고 작년에는 조영래변호사님 기념사업을 제 소관 하에 해서 회사일을 조금 줄이고 그 일에 전담할만큼 일이 많아서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거는 그냥 열심히 일하면 되니까. 또 직원들도 워낙 일을 잘 해줘서 별로 어렵지 않은데, 회원들간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춰야 할까가 되게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서울회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이 되는 회원조직이니까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전화해서 항의하는 회원님들도 많이 계세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그 일을 반대하는 회원들도 개인적으로는 싫지만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라고 양해할 수 있는 그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로 인권위원회에서 제안했지만 못한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를 찾기 위해 다른 집행부나 회장님·부회장님이나 하고 계속 얘기를 하면서 설득도 하고, 제가 설득을 당하기도 하고.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김지미 민변하고는 다르게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연령층이나 가치관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 구성원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사업에 대해서 다 동의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러면 기존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에서 했던 것 중에 가장 큰 반대에 부딪혔던 사업은 뭐에요?

 

여연심 반대에 부딪혀서 아예 못한 것들도 있구요. 한 것 중에서는 작년에 변호사회관 지하1층에서 노동인권토론회를 했었는데 그 안은 한 번 부결되고 다시 올려서 결국 가결이 됐었어요. 이때는 노동인권이라는 주제를 서울변회에서 다룬 적이 없었는데, 제가 내 관심분야인데 어쩔꺼냐 라는 식으로 약간 질렀어요. 그런데 어쨌든 회원들도 많이 오고 되게 성공적이고 재미있게 잘돼서 거기서 기운을 받아서 그 뒤로 서울회 혹은 서울회 인권위원회 주최로 몇 차례 그런 식의 토론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지미 2년이라는 시간이 뭔가 제대로 일하기에 짧은 시간일 수도 있잖아요.

 

여연심 아니에요~~(웃음).

 

김지미 서울회도 2년에 한 번씩 집행부가 바뀌기 때문에 사업의 연속성이 담보가 안 될 수도 있잖아요. 아까 말한 것처럼 다양한 층위의 회원들이 있으니까요. 이제 임기가 1년 남았는데 남은 1년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여연심 물론 집행부가 바뀌고 또 우리 회원들 생각이 바뀌면 하던 사업도 접을 수 있고 또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쨌든 저는 우리나라에서 공익변호사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고 그러면서도 초기단계니까 프로보노센터를 제도적으로 안정화시켜서 장기적으로 공익변호사님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고요, 그 다음에 이게 참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집회시위감시단은 올해도 꾸준히 해서 언론에도 나오고 우리 회원들한테도 알리고 이렇게 해서 서울변호사회는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가서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는구나라는 것을 인식시켜서 이런 활동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예요. 거기다가 더해서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인권침해현장을 많이 찾자고 위원장님이 얘기를 하셨고 다들 동의를 하셨잖아요. 저도 거기에 동의를 해서 집행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그런 활동 많이 해서 아 지방변호사회가 이렇게 찾아가는, 찾아가서 직접 침해 사실을 발굴하고 구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라는 그런 게 남아있도록 그렇게 활동을 하고 싶어요.

 

김지미 집회에서 인권침해감시단은 2번을 나갔었죠. 처음 나갔을 때는 집회 참가자들이 우리를 경찰 쪽 사람인 줄 알고 적대적으로 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게 안착이 되려면 많이 알려져야 되는 것들도 있을 테지만 내부적으로 이런 점들은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 있을까요?

 

여연심 아직 2번밖에 안 해서.. 이건 정말 실험적으로 해본 셈인데, 아직 초기단계여서 특별히 더 바랄 건 없을 거 같고 집회가 단지 주말에 있으니까 애기들을 봐야하는 부모님들이 나오기에는 굉장히 어려워요. 특히 날씨도 춥고 이러면. 그래서 아쉽다기보단 이걸 어떻게 하면 인권위원들도 힘들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그게 고민입니다.

 

김지미 프로보노센터가 아직 기획단계이긴 하지만 구상하시는 큰 줄기만이라도 설명을 해 주세요.

 

여연심 네, 어디까지나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 드리면 큰 줄기는 센터라는 기구를 독립적으로 만들고 센터장님도 모실 생각이에요. 꼭 상근이 아니더라도 이 센터 일을 중심으로 하는 분을 모시고 우리 회 직원들하고 함께 결합해서 주로 하는 업무는 프로보노 단체들을 지원하고 프로보노를 육성하는 거죠. 그래서 자립지원 펀딩도 해서 가능하면 많은 인원에 대해서 일정한 금액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이거는 제가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사업입니다. 그렇게 지원하는 사업과 교육하는 사업, 초반에 공익변호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자리를 잘 찾아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사업을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공익전담이 아닌 변호사님들 있잖아요. 일반 개업한 변호사님들이나 공익활동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매칭해주는 사업도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 공익변호사 활동이나 공익전담변호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간행물 같은 거나 아니면 책자 같은 것을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작년에 나우에서 지원해서 만든 공익입법메뉴얼 같은 거요. 그 다음에 공익변호사별로 이 주제를 좀 더 연구해보고 싶은데 비용적인 지원이나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하면 연구비 지원 같은 사업도 해보고 싶고요, 그 다음에 공익변호사 단체나 개인이 해외랑 접촉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국제대회 참가할 때 그런 것을 지원하는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꿈이 엄청 거창하죠.

 

김지미 6개 정도 말씀하셨는데, 결국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사업이고 일례로 펀딩을 얘기를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펀딩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연심 이거는 사실 회 내부 문제인데요, 회원들에게 돈을 받거나 이럴 생각이 있는 것은 일단은 아니에요. 지금 회에 있는 예산에서 일정부분을 공익변호사를 위한 기금같은 것으로 적립하거나 아니면 회에 여러 수입이 있잖아요. 그 수입 중에 요 부분은 이 기금으로 적립한다거나 이런 방식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공감에서 하고 있는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 같은 그런 거네요.

 

여연심 그걸 그대로 베낀 겁니다(웃음).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으시겠다 하셔가지고. 공감 변호사님도 매우 기뻐했어요. 공감도 앞으로 계속하시겠지만 많이 하면 좋으니까요.

 

김지미 제 개인적으로는 민변에서도 이런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민변 회원들이 여러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1-2명 선정해서 이것만 제대로 해봐라라고 지원을 해주는 것도 민변으로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라고 보거든요. 어쨌든 서울회에서라도 하셨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교육사업 같은 경우는 민변에서도 교육사업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데 인적자원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교육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이 있으신 거에요?

 

여연심 김지미변호사님도 들어와 계시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에 공익인권교육TF를 만들었어요. 일단은 전체회원들 상대로 국제인권법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4-5월, 2달에 걸쳐서 할 예정인데,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TF가 센터랑 결합을 하든지 구체적인 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공익인권활동과 관련된 심화학습, 실무적인 교육 이런 것도 가능하면 해야겠죠. 강사진 구성이 문젠데, 강사진 구성은 오랫동안 공익변호사 활동을 해오신 분들한테 맡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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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이제 민변 얘기를 좀 하면 여변호사님은 노동위 소속이시죠.

 

여연심 네~활동은 못하지만 노동위 회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꼭 좀 말해 주세요.(웃음)

 

김지미 지금이야 워낙 바쁘시니까 활동을 하기가 쉽지는 않으실 텐데 처음부터 회비 회원은 아니셨던 거죠?

 

여연심 사실은 처음부터 회비회원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1년차 때 민변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당연히 노동위 활동을 했고, 그때는 법률원 변호사들이 노동위에 결합을 많이 못했어요. 법률원이 생긴지 얼마 안 된 조직이라서 자기 안정화가 힘들었던 때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노동위 수요모임에 나와 본 것이 3번 밖에 안돼요. 그래서 뭐 먹었는지도 다 기억나요(웃음). 중국집 호화반점에서 짬뽕 먹은 거. 두어 달 전에 도시락 먹은 거. 그래서 이게 부끄럽기도 하고 간사님께도 늘 죄송합니다.

 

김지미 저희가 처음에 뉴스레터 인터뷰 기획했을 때 회비회원들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는 분이 계셨어요. 회비회원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물어보라고(웃음).

 

여연심 드디어 그걸 지키셨군요.(웃음) 저는 회비로밖에 기여하지 못해 늘 죄송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민변 회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아요.

 

김지미 그럼 회비회원으로서 민변에 바라는 점을 들으면서 인터뷰 마칠까 합니다.

 

여연심 이렇게 좋은 곳으로 이사도 오고 참 좋아요. 단, 좀 추운 것 같아서 온풍기도 구입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저는 회비회원이라 너무 부끄러운데 늘 돈도 안 되고 건강에도 별로 좋지 못하는데 열심히 하는 회원들과 사무처에서 일하시는 분들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노동위 텔레그램방을 정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보거든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우리 훌륭한 회원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보면 되게 힘도 나고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너무 힘들거나 지치지 않게 계속 그런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뭘하고 있다라는 걸 회원들한테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듣는 것만으로도 회비회원들에게는 힘이 됩니다. 회비 많이 벌게요.(웃음)

 

김지미 여변호사님이 민변의 지향과 동떨어진 일을 하고 계신 건 아니기 때문에, 민변에서는 여연심변호사님이 우리 회원이라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바쁘신데 점심도 못 드시고 이렇게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연심 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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