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반올림의 낭만변호사, 임자운을 만나다.

2016-01-28 2

유난히 추웠던 1월, 민변 14기 자원활동가들은 임자운 변호사님과 강남역 8번 출구 반올림 농성장에서 만났습니다. 비록 몸은 추웠지만 임자운 변호사님의 열정적인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자신이 행복한 일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는 ‘낭만’적인 임자운 변호사님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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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자원활동가 처음에 임자운 변호사님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만해도 얼굴을 몰랐었는데, 삼성이라는 거대한 상대와 싸운다는 이미지 때문에,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어요. 모 변호사님이, 사진을 함께 찍으면 안 되는 사람이 몇 명이 있대요. 사진을 함께 찍으면 자기가 오징어가 된다고 해서.. 그 중 2위가 바로 변호사님이라고! (웃음) 참고로 1위는 조국 교수님이랍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자운 변호사 조국 교수님하고 같이 언급되다니요~.. 안돼요. 큰일나요.(웃음)

 

박재홍 처음에는 기자를 지망하셨던 적이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같은 맥락에서 방송 기자나 앵커도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다가 변호사의 길로 방향을 바꾸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임자운 그 계기가 특별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언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막연한 동경 같은 거였어요. 기자라는 직업이 참 멋있다. 사회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알리고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하고. 그래서 실제 언론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민언련이라는 단체에 가서 신문모니터를 하는 회원활동도 해봤어요.

 그런데 기자라는 꿈 자체가 원래 막연했기 때문에 진로가 확 바뀌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변호사를 택하게 된 것은 법학과를 다녔고, 법이라는 분야가 공부할수록 더 관심이 가는 학문이기도 했어요. 교수님들께서도 법학이라는 분야를 깊게 들어가려면 자격증이 있는 게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셔서 사법고시에 뛰어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5년 반정도 공부를 해서 합격을 한 거죠.

 

박재홍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하신 건데 시험 준비 과정은 어떠셨어요?

 

임자운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머리가 좋거나 시험을 위한 공부에 능하거나 실력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경쟁하는 것을 싫어하고 힘들어 하는 편인데 사법시험은 치열한 경쟁이잖아요. 그 안에서 버티려면 무엇보다 내가 왜 이것을 해야하는지 동기부여가 확실히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런 거 없이 막연하게 고시공부를 시작해서 생각보다 슬럼프가 빨리 찾아왔고 길게 겪었죠. 처음에 한 1년은 열심히 잘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런 저런 방황을 겪었고, 그러다가 두 번째 2차 시험을 떨어졌어요. 2차 시험 두 번째 떨어지면 1차를 다시 봐야 하는데, 사실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시기가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가장 힘들거든요.

저는 다른 것보다도 제가 이 공부를 계속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확실한 동기를 찾아야 했어요. 그러한 상황에서 우연찮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자원 활동을 하러 갔어요. 공감에서 정정훈 변호사님 일을 돕게 됐는데, 일 자체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공감 변호사의 모델이 제가 그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행복한 사회인의 모델이었어요. 제가 그 때 이미 나이가 서른이 다됐을 때였는데,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직장 생활을 하는데, 주변 직장인 중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고시생인 저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보였어요. 직장인 친구들이 날 위로한다고 찾아 왔는데, 오히려 제가 그들을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죠. 그런 것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재밌고 즐겁게 사는 것이 참 힘들구나 라고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는데, 공감 변호사님들은 참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 모델을 본 것이 제게는 결정적이었죠. 저렇게 살고 싶은데, 저렇게 살기 위해서는 변호사 자격증이 필요했고, 그 힘으로 고시 공부를 더 했어요. 그러다가 운이 좋아서 2년 정도 더 하고 합격을 했어요.

 

박재홍 어렵게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셨는데 일반적인 판, 검사, 변호사의 길 말고 공익을 전담하는 변호사 혹은 활동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임자운 2차 시험을 6월에 보고 10월에 발표가 있기까지 시간이 있어서 그 때 제가 인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한 2달 정도 있었는데, 그 때 ‘아, 진짜 재밌게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더 강화가 됐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이면 특별히 더 즐거워하고 행복해지는지 알게 됐어요. 인도에서의 2달이 너무 행복했거든요. 내가 특별하게 즐거워지고 집중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을 찾아서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강화된 채 연수원에 들어간 거죠. 연수원 2년 동안 저는 계속 그 고민만 한 거예요. 뭘 하고 살아야 재밌을까. 연수원 성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을 때 얻게 되는 것들이 제게는 별 의미가 없었거든요. 법원, 검찰에 가는 것이나 큰 펌에 가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죠.

 그러다가 인권법 학회 학회장을 맡게 됐어요. 학회 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첫 모임에 갔다가 개강 총회 준비랑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총회 진행 중에 회장을 뽑겠다고 했더니 다들 웃더라구요. 이미 정해진 거 아니냐고. 학회장이라는 자리가 크게 인기 있는 자리도 아니다 보니, 나서는 사람이 뭘 맡게 되는 식이었죠. 그렇게 학회장으로서 인권법 학회 활동을 하다 보니까 공익 법률 기금 사업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42기인데, 사법연수원 공익 법률 기금 사업이라는 것이 41기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걸 주도한 분이 41기 인권법 학회장이었어요. 매우 의미있는 사업이 어렵게 시작되었는데 그 사업에 연속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당연한 과제처럼 여겨졌죠. 그래서 낭만 펀드라는 이름으로 42기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했어요.

 

박재홍 이름도 참 멋있네요~!

 

 임자운 (웃음) 연수원 안에서 낭만 펀드 홍보를 할 때, 연수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면 동기 중에 공익인권 활동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왔을 때 활동비를 지원하는 기금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럼 누가 나올 거냐? 라는 질문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결국 사람, 선수가 필요한 거죠. 사실 저는 낭만 펀드를 만들 때만 해도 공감에 가고 싶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낭만 펀드와 제 진로를 연결시키지는 않았었는데, 기금을 만들어 나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두 가지를 연계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어차피 저의 지향이 낭만 펀드의 취지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고, 그러면 기왕 하는 김에 같이 하자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같이 준비했던 연수원생들이랑 뜻을 모아 낭만펀드를 홍보할 때 저랑 이은혜 변호사 두 명을 같이 얘기하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저의 진로는 낭만 펀드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게 될 변호사가 되어 버린 거구요. 물론 제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당시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고 상당부분 낭만 펀드라는 사업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기금의 지원을 받는 변호사로서의 활동 계획을 세워야 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기금을 가지고 공익 인권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여러 가지 모델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공감도 있고 희망법, 민변 상근 변호사도 있고 등등. 하지만 낭만 펀드라는 기금은 어떻게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내는 기회가 되어야지 기존에 있던 자리를 채워 넣는 결과가 되면 그건 좀 소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다 싶은데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시민단체로 가는 것이 답일 것 같았어요. 흔히 하는 말로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인권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싸우는 분들은 단체 활동가들이니까. ‘직접 활동가가 되어서 또는 활동가와 함께 변호사 활동을 하는 것이 맞겠다.’ 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어느 단체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거기까지가 활동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박재홍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노동, 아니면 산재, ‘반올림’ 구체적으로 좁혀져 왔을 것 같은데요.

 

임자운 처음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 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았었어요. 제가 공감에서 변호사 실무수습을 할 때 ‘지금 일하시는 영역이나 함께 활동하는 단체에서 제가 일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드렸었는데. 사실 그 질문자체가 잘못되었던 거 같아요. 사람은 모든 영역, 모든 단체에 다 필요했거든요. 그 때 빈곤, 장애, 노동 관련 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결론은 변호사가 필요한 곳은 많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결국은 내가 일하고 싶은 영역이나 단체를 먼저 선택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변호사님들, 활동가님들 많이 만났습니다. 단체 중에는 철폐연대, 홈리스행동 등등을 다녔죠. 그 중에 ‘반올림’도 있었어요.

 노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호감이랄까 동경 같은 게 있었어요. 노동이라는 분야가 저에게 주는 특별함은 있었죠. 제가 연수원 다닐 때 김진숙 지도위원님의 타워 크레인 투쟁이 있었어요. 제가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데, 그분의 말이나 글을 볼 때마다 울컥울컥했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 정말 다양한 문제들, 인권이 침해되는 현장들에서 결국 던져지는 질문은 ‘돈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노동은 그러한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던지는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의 가치가 결국 사람의 가치이고 그것이 자본이 추구하는 이윤의 가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싸움이니까요. 결국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를 직접 들고 싸우는 곳이 노동이다 라는 생각을 한 거죠. 그렇다 보니 진로를 찾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 쪽으로 갔죠.

 그런데 변호사님들이나 활동가분들 만나며 들어보니 노동이라는 분야에서 특히 산업 안전보건 쪽은 방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노동을 임금, 해고, 산재로 나눴을 때 임금, 해고에 비해서 산재는 관심도 적고 관련 연구도 적다는 거죠. 그러면서 저의 관심사가 노동에서도 산재 쪽으로 가게 되었고, 그 와중에 ‘반올림’ 활동가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죠. 사실 ‘반올림’은 제 진로와 무관하게 이미 관심이 가던 곳이기도 했어요. ‘삼성반도체 백혈병’이라는 사건이 여러 사람들에게 주는 울림이 있잖아요. 그래서 연수원 때 인권법학회에 반올림 활동가인 공유정옥 님을 모시고 강연을 듣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같이 일하면서 그냥 ‘콩’이라고 부르는데, 그 때 콩의 강연이 참 좋았어요. 내용도 그랬지만, 이 사람이 강연하면서 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묘한 동질감 같은 것도 느꼈죠.

 

박재홍 같이 우신건가요?

 

임자운 그건 아니구요. 무슨 말을 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도 눈물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저도 그런 편이거든요. 그래서 콩의 강의를 들으며 ‘눈물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혼자 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왜 ‘반올림’을 택했냐고 물었을 때 앞에서 얘기한 여러 과정들이 있었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앞에 얘기했듯이 저는 거창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이쪽 일을 택한 건데, 그러면 누구랑 일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고 보는 것이 제일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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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공유정옥님 같은 경우 콩이라고 부른다고 하셨잖아요. 마찬가지로 변호사님의 애칭이 따로 있나요?

 

임자운 ‘임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운 동지’, ‘자운’ 이렇게 부르기도 해요. 사실 ‘자운동지’라는 호칭을 제일 많이 부르는 것 같은데 우리끼리는 그냥 ‘자운’ 이렇게 부르죠.

 

박재홍 좀 더 핫한 것을 기대하고 질문했는데.. (웃음)

 

장현경 자원활동가 이제 반올림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 1월 12일날 옴부즈만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한 재해예방대책에 합의하셨는데, 이에 대한 설명과 평가 부탁드립니다.

 

 임자운 재해예방시스템은 굉장히 중요한 걸 도입을 한 것이에요. 사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게 사회적 감시체계를 마련하는 거였어요. 이 문제는 9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고, 2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나왔는데, 삼성은 계속 자기들이 잘하고 있으니까 자기들한테 맡기면 된다는 입장을 취해왔거든요, 지금도 직업병 문제 관련해서 입장내는 것 보면 꼭 자신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관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붙인다 말이죠. 그런데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거 말고 독립성을 갖춘 외부 전문기구가 들어가서 조사를 했을 때는 회사의 안전보건 관리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매번 문제가 드러났어요. 그런데도 삼성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거나 스스로 평가한 내용들만 가지고 ‘이봐라,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해요. 저는 그러한 태도 자체가 직업병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봐요. 지나친 자신감과 폐쇄적인 태도요.

 고용노동부가 2013년에 종합진단한 보고서를 보면, 삼성이 대단히 방어적이다,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안 내놓더라 이런 말들이 보고서에 쓰여 있어요. 삼성의 그런 태도가 반도체 직업병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니네들이 잘하고 있다고만 하지 마라. 너희들이 분명 잘하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러한지,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당장 개선해야할 사항은 없는지, 외부 감시를 받아들여라.” 라는 얘기를 9년째 하고 있는데, 이제야 성과를 이룬 거죠. 이번 대책협의를 통해 옴부즈만위원회가 도입이 되었고, 그 위원회는 일단 외부전문가들로 구성이 되어있어요. 그 분들이 공장 내부 상황을 진단할 것이고,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선방안까지 발표를 할 거예요.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조사도 할 것이고. 거기에 삼성은 다 협조를 하도록 되어있죠. 진단의 결과, 역학조사 결과, 개선안 이행사항 평가 결과 등은 다 보고서로 작성되어 공개될 거에요. 그게 최소 3년간은 이어지도록 되어있죠. 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감시체계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장현경 ‘삼성’이라는 기업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추어보면 이번 합의가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임자운 삼성이라는 기업이 안전 보건을 어떻게 다루냐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거든요. 메르스 사태를 보면 알잖아요. 한 병원이 보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전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만들어 내는지, 그 병원이 폐쇄성을 고집했을 때 국가적으로 어떤 위기가 만들어지는지를 봤잖아요. 반도체 직업병 문제도 비슷하거든요. 300명 가까운 피해자가 알려졌다는 것은 이미 전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 해요. 독립된 외부 기구가 내부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 상황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죠. 물론 이번 합의 과정이 쉽지 않았고 그 내용에 부족한 부분도 있어요. 그래도 이 정도라도 만들어 낸 것은 의미가 있죠.

 

장현경 ‘사과’, ‘보상’, ‘재해예방대책’이라는 세 가지 쟁점 중에서 ‘재해예방대책’이라는 한 가지 산은 넘으신 건데요. 아직도 ‘사과’랑 ‘보상’에 있어서는 삼성의 태도가 여전하잖아요. 우선적으로, 삼성은 직업병 문제에 관한 ‘사과’를 할 때, 여전히 두루뭉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나요?

 

임자운 농성 시작한 지 100일째 되던 날이었던 1월 14일에 권오현 대표가 피해자 여섯분과 함께 “사과 이벤트”를 했어요. 기자들 앞에서 사과문 전달하고 사진 찍고 그랬죠. 그 때 삼성 측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봤는데, “9년 만에 백혈병 갈등이 해결되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조정의 3대 의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삼성은 오랜시간 동안 이 문제를 그저 무시하고 있었어요. 존재하지 않는 문제 취급 했죠. 2007년에 황유미 씨가 돌아가셨을 때 유미 씨 죽음 자체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유미 씨를 포함한 다른 직업병 피해자들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냥 덮으려고만 했죠. 그런데 법원에서도 산재 인정이 되고 노동부의 조사결과에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피해자들은 더 많아지고 영화도 만들어지고 외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그러다보니 결국 덮을 수만은 없게 된 거죠. 그러자 삼성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이제는 사람들이 이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믿기를, 그렇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거죠. 2014년에 권오현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한 후부터, 그렇게 태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권대표가 사과발표를 하는 순간부터 “이 문제는 해결이 된 거다.” 라고 사람들이 믿어 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언론을 동원해서 그런 메시지를 계속 주는 거죠. 이번 “사과 이벤트“는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에요. “다 해결되었다.”고 대놓고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교섭이나 조정이 이어져 온 과정을 보면 지금 삼성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예전에는 상황이 조금 복잡했어요. 피해자들끼리 분열도 되고 “했다. 안했다.“ 말이 바뀌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년 7월에 조정권고안 발표 된 이후부터 이어진 일들을 보면 문제는 분명해요. 예방 대책 하나 겨우 합의 본거고, 나머지 사과랑 보상 문제는 삼성이 계속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삼성은 계속 거짓말과 사실왜곡을 하고 있는데, 삼성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언론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삼성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직업병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될 거예요. 피해자들의 싸움도 계속 될 거구요.

 

장현경 사과 문제에 있어서 어떤 점이 가장 갈등을 빚고 있는 건가요?

 

임자운 반올림이 요구하는 사과라는 것이 “산재를 인정하라”가 아니에요. 직업병 인정이라는 것은 공단이나 법원의 몫인 것이지, 삼성이 인정한다고 해서 그게 직업병이 되는 게 아니에요. 법령상의 직업병 인정 기준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와 연계된 문제이기도 하구요. 우리는 삼성에게 “안전관리 잘못한 거 맞지 않느냐, 산재 인정 방해한 것도 맞지 않느냐, 그리고 이 문제 제기한 사람들한테 인권침해 한 것도 맞지 않느냐.”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삼성이 마땅히 인정해야 되는 구체적 사실 관계들을 지적을 하고 이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현실적인 사과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사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에요. 최소한의 잘못 인정은 있어야 하는 거고, 그 내용을 교섭을 통해 정하기로 했으니 그 약속 지키라는 거죠. 그런데 삼성은 자기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흠이 가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결벽증‘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지금 피해자들에게 하는 말이 고작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라는 거잖아요. 삼성 정도 되는 기업이면 비록 회사가 잘못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병들고 죽은 것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보살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거잖아요. 그런 말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겠냐는 거죠. 피해자 분들은 “우리가 언제 보살펴달라고 했어? 너희들이 잘못한 거 인정하라는 거잖아.”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죠.

 

박재홍 정말 그런 방식의 사과는 들었을 때, 화만 날뿐이지. 이건 사과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 같네요.

 

안혜성 논외의 질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앞에서 변호사님께서 언론과 관련되어 해주신 말씀에 관해서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 때 언론인을 꿈꾸기도 하셨는데, 삼성 직업병 일을 하시면서 언론이 기업과 유착된 모습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자운 법률가와 언론인 모두 지켜야할 직업윤리라는 게 있잖아요. 법률가와 언론인은 분명 어느 정도의 사회적인 역할, 지위를 인정받는 직업이에요. 법률가의 경우, 사회 구성원들이 법을 존중하고 따라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 법을 다루는 법률가에 대해서도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있죠. 그러면 법률가로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죠. 언론인에게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 존중이 분명 있죠. 그래서 언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존재하고, 언론인이라고 하면 인정받는 권위 같은 것도 있죠.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특별히 더 보호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면 그에 따른 책임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분명히 명심하고 고민해야 하는 원칙같은 것들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최근 삼성 직업병 문제와 관련된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냥 일반 직장인들 같아요. 위에서 시키니까 쓰고, 보도자료가 나오니까 쓴다는 거에요. 수백 명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문제가 자기들에게는 그저 오늘 하루 써야 하는 여러 개의 기사들 중 하나일 뿐인 거에요. 그러니 취재도 안 해요. 반올림의 입장이 어떻다며 신랄하게 비판을 하면서, 우리가 낸 성명 같은 것은 읽어 보지도 않고 우리 쪽에 전화 한번 안 해요. 반올림의 입장을 삼성의 입을 통해 파악하는, 웃기는 상황들이 펼쳐져요.

 14일에 삼성이 “사과 쇼”를 할 때도 삼성이 보도자료를 배포했더라구요. 근데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문장 자체가 기사 투로 쓰여 있어요. 그냥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면 바로 기사가 될 것처럼 쓰여 있어요. 소제목도 뽑아져 있고 심지어 참석자들 인터뷰도 회사가 다 따놓았어요. 그러니 14일 관련 기사들 한 번 보세요. 그 현장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고, 누가 어떤 표정을 지었으며, 그 행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등에 대해 쓰는 내용이 똑 같아요.

 

박재홍 그럼 그게 다 보도자료에 있던 그대로라는 말씀이신가요?

 

임자운 네 보도자료 내용이랑 똑같아요. 그러니까 그걸 그대로 쓰면 기자는 기사를 쓴 게 되는 거고, 그것으로써 자기는 할 일을 한 게 된 거예요. 그게 현재 언론의 모습입니다. 언론인으로서의 가치나 정의를 떠나서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거죠.

 

장현경 보도 자료식의 기사를 봤을 때 “150 명 중에서 100명이 보상을 받았다.” 이런 내용을 봤어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보상 진행 절차나 보상 현황에 관해서는 어떤 문제가 있나요?

 

임자운 일단보상’이라는 것이 벌어진 과정을 보면, 교섭이랑 조정 원칙을 파기한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약속 파기하고 시행한 것이 내용적으로 괜찮으면 그냥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삼성이 보상대상 심사도 하고 보상액까지 다 일방적으로 산정해서 제시를 해요. “우리는 딱 이렇게만 줄 수 있으니 이거라도 받을 거면 사인해라”라는 식이에요. 그렇게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피해자들은 당연히 너무 일방적인 태도에 불만이 많고 보상금 액수에도 불만이 많아요. 오랜 시간 투병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분들한테 위로는커녕 치료비 보장도 안 되는 돈을 제시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의 제기를 하면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다.“라고 말을 잘라버린데요.

 게다가 그런 상황 자체가 다 은폐되어 있어요. 그래서 ‘보상신청자 150명’ 저는 그 숫자 솔직히 못 믿겠어요. 1000명이 될 수도 있고 100명이 안될 수도 있죠. 지금 삼성의 입을 통해서만 상황 파악이 되도록 해 놓았어요. 그 자체도 큰 문제죠. 작년에 삼성이 보상 신청 기한을 정해서 못 박아 놨잖아요. 피해자들은 12시가 되면 문이 닫히는 상황에서, 이 절차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따질 겨를이 없죠. 당ㆍ부당을 따져서 버티는 사람도 있고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당장 생계비나 치료비가 절박한 피해자들은 들어가서 참담함을 감내하면서 보상을 받는 거예요. 삼성은 그 숫자를, “이 만큼이나 보상했다”고 홍보하고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상황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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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지금 말씀하신 것이 ‘사람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 했을 때’ 저 쪽은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삼성과 맞서서 활동을 하고 계신데, 혼자만의 싸움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특히 국제 연대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자운 반올림의 국제 연대라고 하면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우리 싸움을 외국에 알리는 거죠.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만 해도 국내에서만 열심히 싸운다고 될 문제는 아니거든요. 삼성은 어쩌면 외국의 소비자, 외국의 언론들을 더 두려워하죠. 그래서 국제적인 연대를 요청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외국의 활동가에게 연대 성명을 요청한다거나, 외신들의 취재에 적극 응하거나 영문블로그도 운영하구요.

 그리고 다른 측면은, 사실 이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반올림이 집중하는 문제가 전자산업의 노동건강권 문제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국내에만 한정 지을 이유는 없잖아요.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들 문제도 있고, 외국의 국내 기업 문제도 있고, 다 떠나서 그냥 어느 나라에 있는 어느 기업에서건 똑같은 문제가 벌어진다면 역량이 닿는 한 대응할 필요가 있는 거죠. 말하자면 우리의 목표는 ‘만국의 노동자여 건강하라’ 인거에요. 그런데 지금 전 세계, 특히 아시아의 전자산업에서 노동건강권, 환경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요. 산업 특성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규 물질과 기술은 계속 투입이 되는데, 점점 생산라인이 관련 규범과 사회 인식이 약한 나라로 옮겨지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노동자 직업병 문제는 곳곳에서 일어날 것으로 봐요. 그런데 아시아 다른 국가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그 문제들에 대해 반올림의 경험이 꽤 쓰임이 있는 거에요. 9년째 이 싸움을 하고 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삼성이라는 기업이 이미 매우 글로벌 하구요. 그렇다 보니 중국, 베트남, 필리핀같이 외국계 전자산업 공장들이 많이 옮겨지고 있는 나라들 중심으로 그 나라의 인권활동가들이 요청해 오는 것들이 있어요. 우리 경험, 피해상황을 알려 달라, 전자산업의 위험성을 알려 달라는 등등이죠. 아시아의 인권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유럽의 활동가들도 비슷한 요청을 하죠. 그러한 요청에 잘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반올림의 오랜 과제에요.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있구요. 하지만 아직까지 잘 못하고 있죠. 그분들이 갖는 관심의 정도에 우리의 대응 수준이 잘 못미쳐요. 외국어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요. 주변에 영어 잘하는데, 인권 활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 있으면 추천해주세요(웃음)

 

안혜성 여기서 지내는 것은 안 힘드세요?

 

임자운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대 활동가들이 번갈아 가면서 농성장을 지켜주고 있고, 100일 넘어가면서 익숙해진 것도 있습니다.

 

박재홍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임자운 여기서 지내는 것 자체보다는, 이것 때문에 멈춰있는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커요. 소송대리, 연구사업도 계속 해왔거든요. 특히 노동자 알 권리법 사업을 해왔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멈춰져 있어서 그게 좀 안타까워요.

 

장현경 현재 소송 결과 나온 것이 4건 정도 되는 것이 맞죠?

 

임자운 승소한 건은 재해 노동자 수로 따지면 다섯 분이죠. 근로복지공단에서 인정받은 분들까지 합하면 여덟 분 정도.

 

장현경 행정 법원에서 나온 판례를 보니, 재해 노동자가 재해로 인한 질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 입증을 하지 못하는 경우, 그것은 노동자에게 자료가 없기 때문이므로 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조금 덜어주는 판례가 나왔어요. 그런데 또 고등법원 판례를 보니 완전 다르게 해석을 했더라고요. 혹시 지금 현재 나오는 판례에 대해서 평가를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임자운 재해자 입증 책임의 원칙을 법원이 무시할 수는 없겠죠. 그 원칙을 자기들이 바꾸거나 전환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 원칙을 천편일률 적으로 적용하면 분명히 피해 받는 사람들이 나와요. 모든 원칙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개별 사안의 특성을 고려하여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은지를 좀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저는 황유미 씨나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 그러한 고민들의 결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변화와 성과가 있는 거죠. 옛날 같았으면 소송이 오래도 안가고 다 패소했을 거예요. 그런데 반올림 싸움이 계속되고 거기에 호응하는 여론이 만들어지면서 법원이나 공단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 거죠.

 직업병 인정기준에 관한 반올림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런 거에요. 입증 책임의 원칙이 재해자에게 있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지금 재해자가 뭘 입증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보라. 그들은 자기가 일하면서 어떤 화학물질을 썼는지도 모르고, 그 물질의 성분과 유해성은 더더욱 모른다. 병의 원인? 그건 의사들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모르는 게 투성이인 상황을 누가 만들었냐. 국가와 기업이 만들었고 현대 의학이 만들었다. 뭘 알고 싶어도 툭하면 영업비밀이라고 알려주지 않는 걸 어쩌냐. 근데 왜 모든 책임은 아픈 사람이 져야 하냐. 입증이 곤란하게 된 경위를 평가하고, 그 원인이 기업이나 국가에게 있다면 재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산재보험제도 취지에 맞다. 그런 거죠. 하지만 아직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은 이러한 고민들을 잘하지 않죠. 물론 궁극적으로는 법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구요.

 

박재홍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는 활동가가 되겠다는 인터뷰 기사를 하나 본 게 있습니다. 여기서 ‘건강권’과 ‘활동가’라는 말에 굉장히 와 닿았는데요. 변호사님이 생각하시는 건강권이라는 것, 활동가라는 것에 대해 말씀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과 함께 앞으로 꿈꾸고 있는 것까지 같이 말씀해주시면 더 좋습니다.

 

임자운 일단 ‘건강권’은 인권이잖아요. 거창한 요구가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권리죠. 누가 자기 몸 다쳐 가며 일하고 싶겠어요. 너무도 당연한 욕구이자 권리인건데, 이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해서 건강권이 중요 주제로 논해진다는 것이 굉장히 슬픈 사회인 것이죠. 우리나라 활동가가 스웨덴에 가서 “여기서는 일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대처하냐”고 물었는데, 그 사람들이 “일하다가 사람이 왜 죽냐”고 반문 했다는 거 아니에요. 노동 현장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 2000여명이 산재로 사망하죠. 현장 노동자들도 일하다 죽는 것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고 해요.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 거죠.

 그리고 지금 주장되는 건강권의 내용을 보면, 매우 기초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나의 건강을 국가와 기업이 지켜야 주어야 한다’는 것도 물론 있지만 ‘나의 건강을 나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도 있거든요. 알권리 같은 거죠.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는 ‘각자 도생’이 화두가 되었어요. 너무 신랄하게 보고 만 거죠. 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힘, 시스템, 의지 같은 게 없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각자의 생명과 건강을 스스로 잘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거에요. 그런데 또 질문이 던져지죠.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는 거죠.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알권리, GMO 문제 같은. 또 지역 환경에 대한 주민의 알권리, 업무환경에 대한 노동자의 알권리 같은 것 말이죠.

 노동자의 알권리만 놓고 보면, 가령 노동부가 어느 공장의 안전관리 상황을 진단을 해요. 그래서 보고서를 내요. 그 보고서에 보면 그 공장에 어떤 위험이 존재한다는 게 적혀 있어요. 그런데 그 현장 노동자들은 그 보고서를 볼 수 없어요. 보여달라고 해도 안보여줍니다. 그 보고서는 노동부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노동자가 노동부를 향해 정보공개 청구를 해요. 그런데 회사가 보고서에 대한 영업비밀 주장을 하면, 노동부도 보여주질 않습니다. 이런 식인 거에요. 그러니 각자도생할 수단과 방법도 잘 없는 거죠. 그래서 알권리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구요. 실제 정보공개청구 소송도 하고 있고, 관련 법률안도 만들어서 발의까지는 했었어요.

 또 ‘활동가’라는 말은 … 제가 처음에 반올림에서 활동할 때, ‘변호사냐 활동가냐’라는 질문들을 많이 받았고, 저 스스로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면서 나왔던 말인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의미 없는 고민인거 같아요. 저는 변호사이면서 활동가인 게 아니라, 활동가 인데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거죠. 제 정체성은 활동가에 있다고 봐요. 지금 반올림에는 노무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활동가, 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 있는 것 것처럼요. 그리고 앞으로는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게 되는 역할이나 주어지는 업무들이 매우 다양해 질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을 전부 ‘변호사’라는 자격 명칭으로 묶는 것이 매우 어색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활동가는 일 하면서 양복 안 입어도 되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요(웃음)

 

박재홍 점점 말씀하시면서 표정이 환해지고 살아나시네요.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호사님처럼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임자운 민변 변호사님 중에는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관심이 가는 인권 영역의 일들까지 매우 훌륭하게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를 같이 하기가 어려워요. 이런 개인적인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업 공익활동을 택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또 어떤 사안의 특성상, 가령 제가 하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 같은 경우처럼 산재보상보험법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닌 거죠. 일반적인 산재보상보험 시스템의 심사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산재소송에서 주로 어떤 법리가 다투어 지는지를 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반도체 공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해요.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대략적으로는 이해를 해야 하구요. 그리고 산업안전보건이나 산재보상에 대한 현행 법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도 연구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는 거에요. 그런 영역에서는 전업으로 그 일에 집중하는 변호사들도 필요한 것이구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변호사로서의 영리활동을 하다보면 공익인권활동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잖아요. 변호사 시장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경쟁이 더 치열해 진다고들 하는데, 저는 다소 과장 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그런 현상도 있거든요. 때문에 영리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이 공익인권활동에 시간을 쓰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지금 민변에서도 저년차 변호사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은 이유도 그런 거겠죠. 따라서 이런 상황을 그냥 방치했다가는 변호사의 공익인권활동은 점점 더 줄어들 거에요. 그래서 전담이 필요하다는 차원도 있어요.

 

박재홍 두 가지 측면을 말씀해주셨는데, 금전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낭만펀드를 만드신거고, 얼마 전에 보니까 올해부터는 감성펀드, 낭만펀드, 파랑기금이 합쳐지면서 사법연수원 전 기수를 아우르는 통합기금으로 바꾼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식의 기금 조성 노력들이 ‘나우’ 같은 곳도 있고 로스쿨에서도 나오고 있는데, 어쩌면 이게 생존과도 직결이 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처럼 공익 전담 변호사의 활동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체계에 관해 지금 상황에 대한 개선점으로 생각하신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사실 공익전담을 생각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있는데요. 이 부분이 좀 중요하게 생각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임자운 저랑 이은혜 변호사, 희망법에 있는 김동현, 류민희, 이종희 변호사 등이 지금 사법연수원 동기들의 지원을 받아 공익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러한 모델이 매우 의미있고 또 기금 사업 자체는 안정적으로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안들어요. 한계가 있죠. 가령 공익법률기금이라는 것은 법조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로스쿨 단위에서 만들어질 필요도 있는 거고, 그게 더 나은 방식이라는 생각도 해요. 또 공익 인권 활동을 희망하는 모든 변호사들을 이러한 기금으로 수용할 수도 없을 것이구요.

 새로운 방식이라고 한다면 … 가령 같은 사무실에 있는 변호사들이 어느 한두 사람의 공익인권 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을 거에요. 일종의 공산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일반 변호사 사무실에서 공익인권 활동을 전담하거나 그 활동에 비중을 많이 두는 변호사가 함께 일하는 방식이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중요하겠죠. 여러 가지 방식은 가능할 텐데, 저도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박재홍 마지막으로 공익활동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전업으로 공익활동을 하는 것의 장점이나 비전을 알려 주시면 좋겠어요.

 

임자운 지금 활동을 고민하는 분들한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변호사로서의 공익활동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돈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에요. 제가 생각할 때는 돈 보다 더 큰 이유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거를 하면 나는 가난해질 것이고, 어쩌면 평생 가난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데, 그렇게 대단한 일을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 같은 생각을 하는 거죠.

 재정적인 기반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죠. 그것을 직접 만들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민변에서 혹은 공익인권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선배 변호사들이 함께 고민해야죠. 그런데 일단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한번 해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든 뛰어 들어서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길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예를 들면, 좀 무모하더라도 단독개업을 하는 거에요. 임대료가 싼 곳에 조그맣게 사무실을 열어요. 그리고는 관심이 가고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아 다녀요. 민변에서도 관심 가는 위원회 활동을 꾸준히 하는 거죠. 관련 소송도 적극적으로 맡아요. 그러면서 여러 사람들이랑 관계를 맺고, 일도 배워나가는 거에요. 그러다 보면 경험이 생기고 네트워크가 생기면서 그게 실질적으로 영업에 도움을 주기도 하거든요. 선배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받게 되구요. 실제 그렇게 풀리는 변호사들을 봤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망설이다가 오히려 기회를 놓치는 모습도 봤구요. 현장에서는 정작 사람이 필요할 때 누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몰라서 일 자체가 흐지부지 되어 버리는 경우도 꽤 있어요. 어떤 식으로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런 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계속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일단 한번 질러 보시라’는 거에요. 돈도 중요하고, 나를 잘 가르쳐 줄 선배도 중요하고, 일반 송무 경험도 중요하고 … 그런 거 없이 무작정 뛰어 들었다가는 얼마 못갈 것 같고, 심지어 그 쪽에 해가 될 것 같고… 등등의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다 맞는 말일 수 있어요. 저도 비슷한 걱정들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건 그러저러한 조건들이 전부 갖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아무도 어떤 일도 못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러저러한 상황들은 의외로 일을 벌여 나가다 보면 상당부분 갖추어 진다는 거죠. 계속 망설이고 고민만 하다가는 결국 고만고만해지고 말아요.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마는 게 제일 아쉽죠.

 그래서 제가 고민하는 분들에게 말하는 것은, 일단 좀 움직여보시면 어떨까.

 

박재홍 행복을 찾아서 ?!

 

임자운 네, 그죠. 한번 질러보는 거죠. 뭐, 해서 아니면 말고.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선택을 할 때 거기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으면 결국 못해요. 그게 실패할 수도 있는 거고, 실패하면 또 실패를 통해서 얻는 게 있는 거고. 그런데 아무선택도 안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얻거든요.

 

장현경 오늘 임자운 변호사님과의 만남이 미래를 준비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자원 활동가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변호사님의 활동과 여러 도전들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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