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대법원의 부실한 판단을 비판한다.-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결정에 부쳐

2015-07-17 0

대법원의 부실한 판단을 비판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결정에 부쳐-

 

어제(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사건의 항소심을 파기하여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 유.무죄의 판단은 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항소심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한 ‘시큐리티’와 ‘425지논’이란 제목의 텍스트(txt)파일의 증거능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시큐리티’와 ‘425지논’은 국정원 직원 김기동이 쓴 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파일로 ‘425지논’은 주로 인터넷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유포할 “이슈와 논지”의 내용 및 이와 관련하여 활용할 기사 등이 담겨 있고, ‘시큐리티’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들이 담겨 있다.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달리 위 두 파일이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의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와, 같은 조 제3호의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에 해당한다고 보아 증거능력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파일들을 기초로 검찰이 주장한 트위터 계정 1257개 중 716개를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관리했다고 인정했고, 이 716개의 트위터 계정이 트윗·리트윗한 글 27만 4800개를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위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다. 425지논 파일의 상당 부분은 출처를 명확히 알기 어렵고, 시큐리티 파일 중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트위터 계정은 그 정보의 근원, 기재 경위, 정황이 불분명하고 그 내용의 정확성, 진실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이다. 또한  대법원은 다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메일 계정에서는 두 파일과 같은 형태의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이 두 파일이 심리전단의 업무 활동을 위하여 관행적 또는 통상적으로 작성되는 문서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425지논’의 경우 항소심에서는 위 파일에 등장하는 연속된 날짜들을 확인하였고, 주말과 공휴일 등 업무일이 아닌 날짜에는 작성되지 않거나 그 전날에 휴일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이슈와 논지가 함께 기재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또 위 파일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트위터 계정에서 반복적으로 트윗, 리트윗되었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러한 항소심의 사실확정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구체적으로는 아무런 오류도 지적하지 않은 채 막연히 그 증거능력을 부정한 것이다.

그리고 ‘시큐리티’의 경우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된 다수의 트위터 계정이 사용자, 대표계정 등으로 구분되어 정리되어 있었는데, 업무에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을 이렇게 정확하고 자세히 기재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또 대법원은 다른 심리전단 소속 국정원 직원들의 메일에서는 위 두 파일과 유사한 파일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위 두 파일의 증거능력 부정의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런데, 뽐뿌나 보배드림과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것을 역할로 하는 심리전단 산하 사이버 3팀 소속의 국정원 직원인 김하영의 노트북에서는 그가 주로 활동했었던 ‘오늘의 유머’ 사이트의 게시물 관리방식, 게시물의 순위를 조정하는 방식, 활동 시 주의사항, 자신 혹은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하였을 닉네임 등이 기재되어 있는 “메모장” 파일이 발견된 사실이 있다. 트위터를 통해 활동하는 사이버 5팀 소속 김기동의 메일에서 발견된 ‘시큐리티’와 ‘425지논’은 김하영의 이 “메모장” 파일과 같이 자신들의 활동공간에서의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도 무시한 것이다.

이렇듯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항소심에서의 고민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거나, 상식에 반하고, 고려할만한 다른 사정들을 애써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번 국민들로 하여금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의심하게 한 판결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제 공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갔다. 비록 국정원의 선거개입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의 범위가 좁아졌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유머’등에서 행했던 행위나 1심에서 인정한 11만여건의 트윗, 리트윗 행위가 여전히 존재하며, 대선시기에도 정치적 관여행위를 지속했다는 판단도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사와 목적이 있었음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정치적 고려에 치우치지 말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법원 스스로도 이번 판결은  ‘425지논’과 ‘시큐리티’ 이 두 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것이라고 애써 선을 긋고 있기에 더욱 눈치 볼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검찰은 그 동안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추가적 증거의 제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검찰의 소극적인 기소유지가 지속적으로 지목되어 왔었다.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더 확실히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환송심에서는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최근 국정원이 전 국민을 감시대상으로 놓을 수 있는 “RCS”라는 해킹프로그램을 불법적으로 구매하여 사용하였다는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위 프로그램의 구입시기가 총선, 대선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와 맞물려 있기에 국정원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대한 의혹이 다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국민들은 국정원을 둘러싼 이러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 의혹에도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받고 있다. 이 사건의 향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을 다시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단죄가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검찰과 법원의 제대로 된 모습을 촉구한다.

 

 

2015. 7. 1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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