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내 생애 봄날, 류신환 변호사를 만나다.

2015-03-11 2

마이크를 잡고 좌중을 즐겁게 하는 류신환변호사님이 참 부러웠더랬습니다. 그런 류변호사님의 입에서 소극, 수동, 괴로움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꽤 많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내 생애 봄날인 것 같다는 말에는 슬그머니 질투가 나기도 하더군요. 인생은 역시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가 있는가 봅니다. 숨기고 싶을 것 같은 사진도 흔쾌히 허락해 주신 유쾌한 류신환 변호사님을 만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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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먼저 류변호사님을 잘 모르는 회원들을 위해 간략하게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류신환 저는 2001년도에 연수원 30기로 수료해서 3년간 공익법무관으로 있다가 법무법인 한결에서 2004년에서 2013년 3월까지 근무했고 2013년 4월부터 여기 법무법인 지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변은 2004년부터 언론위원회 활동을 했고요. 중간에 열심히 못하다가 작년부터 좀 열심히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열심히 한 다음에 인터뷰를 했었어야 하는데.(웃음)

 

김지미 그럼 변호사 시작하면서부터 민변에 가입하신 건가요?

 

류신환 네. 그때 한결에 계셨던 조광희 변호사님이 언론위원장이셨어요. 그 때 조광희 변호사님이 영화 쪽 일을 많이 하셨어요. 나중에 영화사 봄 대표로도 일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때 저작권, 영화, 이런 표현의 자유 영역에 있는 부분들까지 언론위원회에 포섭이 됐었는데 제가 그때 한결에서 지적재산권팀에 소속이 돼 있었어요. 그래서 언론위원회에 가입을 하게 된 거지요. 그런데 민변 언론위원회에서 그런 주제들 관련해서 할 만한 일들이 그 당시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언론위 활동이 부진했었는데 언론사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 보도피해 이런 문제로 오히려 범위가 좁혀지면서 지금은 주제나 활동 목표가 분명해진 것 같아서 관련된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언론위원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아요.

 

김지미 그러면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언론인권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라기보다는 첫 직장인 한결, 그리고 한결에 계셨던 조광희 변호사님의 영향을 받아서 민변 언론위원회에 가입하시게 된 건가요

 

류신환 예, 그런 면도 있지만 제가 대학 다닐 때 법과대학 안에 있는 법대신문사라는 동아리활동을 계속 했거든요. 물론 그때도 기자로서의 자질이나 이런 것은 부족했지만 신문을 낸 경험이 있고 기사를 쓰고 편집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매킨토시 컴퓨터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기사를 쳐가지고 마분지 같은 두꺼운 판에 모양만 딱 잡아가지고 잘라가지고 그걸 인쇄소에 맡겼어요. 밤새 그것을 하다가 고생도 많이 했죠. 아무것도 멋모를 때 신문을 냈었어요.

 

김지미 언론 분야 말고 민변에 가입하면 어떤 활동을 하겠다라고 생각한 분야가 또 있었나요

 

류신환 그때는 아주 분명한 지향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정치적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변호사로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이 공간에서 선배들한테 배우면서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민변에 들어왔던 거죠. 민변에 가입하는 것 자체는 워낙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동기유발 같은 게 없었던 면이 있죠. 그래서 사무실이 너무 바빴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하는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민변 활동을 소홀히 하고, 또 소홀히 하다보니까 동력은 자꾸 잃어 갔던 거죠. 그래서 위원회 회의조차도 많이 빠지는 그런 시기가 계속 되다가 제가 자극을 받게 된 것은 2008년도 촛불 때에 조중동 폐간 국민캠페인이 있었잖아요. 거기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줄여서 언소주라고 하는데 언소주 사람들 23명이 기소가 된 적이 있었어요. 조중동이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서 왜곡된 논조를 가지고 기사를 내보내니까 조중동에 광고를 싣는 광고주들한테 전화해서 조중동의 논조가 바뀌지 않으면 광고를 싣지 않겠다라는 뜻을 조중동에게 전달을 해라라는 운동을 벌인 거죠. 우리나라 소비자운동으로서 획기적인 사례였는데 촛불국면이 사그라지고 난 다음에 조중동에 이어서 어떤 압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고주들이 언소주에 포함되어 있던 네티즌들을 다 고소를 한 거예요. 그래서 운영진 23명이 한꺼번에 다 기소가 되었죠. 이 운영진들은 일반 시민들이셨는데, 일반 시민들인 사람들이 그런 캠페인을 벌였다는 이유로 다 기소가 된 거예요. 2명은 심지어 구속이 됐었어요. 그때 그 사건에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를 하게 됐는데 그 사건을 하면서 제가 많이 느꼈어요. 그 사건의 피고인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이셨거든요. 그런 분들이 조중동이 잘못된 의견을 호도해서 알리고 있다, 사회가 바뀌려면 조중동이 바뀌어야 된다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운동을 벌여서 실제로 조중동의 광고 수입이나 이런 부분들에 영향을 미쳤거든요. 대단한 운동이었는데, 그 분들이 검찰에 기소되고 일부 대표 운영진들은 구속까지 되는 상황이니까 얼마나 위축이 됐겠어요. 재판을 진행하는 우리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피고인 수도 많고 수십 개 되는 광고의 광고주들이 모두 나와서 증언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고된 재판이었고, 피고인 중에는 공무원이나 교사도 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여기서 벌금형을 높게 받거나 집행유예형을 받거나 하면 생업을 잃게 되는 분들도 상당히 계셨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이 법정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것이 옳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가 큰 감동을 받았어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기가 있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믿고 그대로 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인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일인지를 그때 재판을 하면서 제가 느끼게 되고 배우게 된 거죠. 나도 이렇게 어중간하게 힘 빠져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이런 마음일 때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신 안상운 변호사님이 언론위원장을 해보지 않겠느냐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 때 언론위원장이 공석이었거든요. 그 때는 자극을 받아서 의지가 솟던 때라 제의를 받아들여서 언론위원장을 하게 되었어요.

 

김지미 언론위원장을 몇 년부터 몇 년까지 하셨던 거죠?

 

류신환 2009년부터 2012년 2월까지 3년 정도 했어요.

 

김지미 언론사에 의한 인권침해나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구조 같은 활동으로 주제가 명확해졌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반면에 예전에 언론위가 담당했던 표현의 자유라든지 영화나 저작권 같은 영역은 오히려 제외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언론위 활동 영역이 협소해졌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류신환 ‘언론위원회’ 하면 주제가 명확해 보이지도 않고 언론이라는 환경 자체가 흔하게 노출되어 있어서 특별한 분야로 여겨지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문제의식으로 2010년경에 우리 활동 영역을 넓히고 방향을 좀 바꿔보자해서 위원회 명칭을 ‘표현의 자유 위원회’로 바꿔보자라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부결이 됐어요.

 

김지미 이유가 뭘까요?

 

류신환 방향이 다르다는 거였죠. 언론위원회가 그동안 보호하고자 했던 가치는 지나친 언론보도로 인해서 사람들이 받는 피해, 침해받는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이었는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그 반대편의 가치에요. 더 많은 표현을 용인하고 더 많은 공유에 조금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되죠. 물론 표현의 자유도 한계가 있고 침해되는 인권과의 경계도 있기 때문에 다루는 기준과 한계는 동일할 수 있지만 방향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그때 수긍을 하고 명칭 변경이 안됐죠. 그 당시는 위원회 활성화가 더 급한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망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런 논의들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 그때 바뀌지 않고 우리 영역을 일단 기본적으로 가지고 왔던 것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 위원회는 선배 층이 두텁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위원회가 선배들이 없는 상태에서 후배들만 쭉 오던 상황이었는데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선배들이 활동을 이어오니까 전·현직 위원장인 한명옥, 김준현, 류신환 위원들이 위원회 활동의 주축이 되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실 것이기 때문에 경험들이 쌓이면서 이것을 토대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김지미 현 위원장인 김준현 변호사도 언론인 출신이지만 로스쿨이 도입되고 난 이후에 민변에 언론인 출신 회원이 상당히 많이 늘었거든요. 언론과 법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류신환 그런 분들을 언론위에서 적극 영입을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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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구제 이외에도 언론과 관련된 현안들이 꽤 있는 편이잖아요. 몇 년 전에 종편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변에서도 공동모니터링단을 출범을 해서 모니터링을 하고 보고서를 발표했잖아요. 종편이 계속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고 모 종편은 공중파를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가고 있는데, 종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류신환 종편이 출범한 것이 2011년 말이었는데 이전까지는 언론위원회에서는 방송분야에 관해서 전문적으로 고민해 온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종편이 당시에 가장 큰 이슈가 된 거죠. 그래서 민변에서도 힘을 보태고 함께 활동을 할 필요성이 있어서 제가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민언련에 있는 종편 관련 모임에 참여를 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같이 고민을 했었어요. 그때는 2012년 정권교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종편들에 대해서 어떤 조건과 기준을 가지고 재허가를 줄 것이냐. 그러려면 법에 필요한 내용이 무엇이냐. 이런 내용으로 교수님들하고 함께 법안을 만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헛물을 켠 거였죠. 그래서 현실적으로 빛을 보진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느낀 게 있었어요. 처음에 종편이 선정이 되고 난 다음에 언론운동을 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종편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파산을 하거나 문을 닫을 것이다라고 예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빗나갔죠. 아이가 자기 먹을 것을 안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방송도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관계되는 사업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빚으로 유지가 되더라도 이미 출범을 하면 쉽게 문을 닫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그 영향력이 엄청나잖아요. 그러니까 그 영향력을 포기할 리가 없죠. 그래서 앞으로도 종편문제는 우리 사회의 굉장히 이슈가 될 것 같아요, 다만 종편이 내놓는 기사 때문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종편문제를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가 이게 앞으로 언론위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가야 할 주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언론위에서 올 한 해 특별주제로 잡은 게, 종북이라는 표현이 특히 종편에서 많이 나오는 표현이잖아요. 종북이라는 표현이 이 사회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민주화 또는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서 덧씌우기 낙인찍는 그런 표현으로 활용이 되고 있는데 그 표현과 관련된 문제점에 관해서 우리가 작년부터 판례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공부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김지미 종편이 없어지기를 소망하는 건 너무 현실가능성이 없고, 그렇다면 견제나 통제의 방향으로 가야 된다 그런 말씀인가요?

 

류신환 네. 그렇죠. 언론소비자가 언론을 직접 통제할 순 없으니까 대신 그 언론 스스로가 자정노력을 하든가 아니면 시청자들의 어떤 대응을 두려워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수단들을 많이 만들어 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언론소비자운동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 우리 사회의 언론 소비자운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활성화 돼있지 않은 것 같아요. 2008년도에 만들어진 언소주, 조중동폐간카페, 그 카페가 제가 보기에는 가장 대중적이고 힘이 강력한 운동단체였어요. 그런데 그런 단체들이 소송에 휘말리고 구속이 되고 하면서 동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소비자 단체들의 운동을 애초에 싹부터 자르려고 하는 반대편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혔다고도 할 수 있겠죠. 앞에서 말한 언소주 회원 중에 구속된 2명 중 한 명은 벌금형, 한 명은 집행유예를 받았거든요. 또 조중동에 대한 업무방해에서는 무죄가 다 났어요. 그러니까 신문사에 대한 소비자운동의 정당성을 일정 정도 인정받은 판결이 된 셈인데, 결론은 그렇게 났지만 조중동 언론에 대한 소비자운동의 불씨는 많이 꺼진 상태가 된 거죠.

 

김지미 그런 소비자주권운동의 백업의 역할을 민변이 해줄 수 있다면 간접적으로나마 언론소비자운동에서 한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게 앞으로 언론위원회나 민변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도 있겠네요.

 

류신환 네. 맞아요. 언론인권센터는 언론보도로 인한 인권침해 부분에 대한 상담·구제, 그리고 그 외에 기자들 교육, 모니터링 이런 활동들을 하는 시민단체라고 한다면, 민언련이나 언론연대는 언론정책이나 방송·통신 이런 정책적인 차원이나 입법운동, 제도개선 운동 같은 것들에 대한 의견들을 많이 냈던 것 같고, 또 언소주는 일반 시민들이 주체가 돼서 언론의 주인이 시민이고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에 대한 운동을 해온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여러 영역의 시민단체들이 좀 유기적으로 잘 결합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민변도 그 한 축이 되어야겠죠.

 

김지미 변호사님은 언론사 상대로 정정보도나 손배청구 같은 거 많이 하시잖아요. 최근에 민변을 대리해서 하는 사건도 있구요.

 

류신환 지금 민변을 대리해서 하는 사건이 2가지인데, 한 가지는 세월호 유족 폭행사건이 있었을 때 경찰서에 기자들이 갑자기 들어오니까 김종보 변호사가 ‘진짜 저는 이렇게 들어오실 줄 몰랐어요’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을 TV조선이 당시 세월호 유가족 지원하고 있던 박주민 변호사로 자막을 내고 민변이 세월호 유가족 변호를 맡지 않기로 했다고 기사를 낸 사건이예요. 사실 관계도 달랐지만 어떻게 민변까지도 이럴 수 있느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민변이 부담을 느껴서 변호를 맡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도함으로 인해서 민변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저하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사진도 맞지 않는 사진을 내보내고, 이름도 박주민이라는 이름을 내보내고 그랬지요. 이 사건은 원래 무변론 선고기일이 잡혔다가 이번에 판사님이 바뀌면서 심리를 해 보고 판결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하면서 합의부로 보내 버렸어요. 바로 며칠 전에.

 

김지미 TV조선은 왜 대응을 안하죠?

 

류신환 우리도 이거 거져 먹는 건 아닌가 그런 기대를 잠깐 했었는데.(웃음) 또 한 건은 조선일보사하고 조선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건데 우리 회원 8명이 징계개시청구가 됐잖아요. 그 때 조선일보에서 민변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들을 마구 쏟아냈어요. 그 건을 지금 언론위 부위원장인 이강혁 변호사하고 같이 하고 있어요. 이 건은 상대방의 답변서가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지미 요즘처럼 신문이나 언론에 민변이 많이 등장하는 때가 없었잖아요. 앞으로도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고 하면 언론위에서 할 일이 많아지겠어요,

 

류신환 그런데 이 부분은 우리가 신중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어디까지가 언론에 의해서 비판받고 공개되어야 되는 대상인지 이런 게 항상 우리가 고민하는 주제인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민변은 이미 사회적 활동 범위가 너무 넓고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의 깊이나 넓이가 커진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단체나 세력으로부터의 비판도 감수해야 될 범위가 넓어진 게 사실인 것 같아요. 더군다나 민변이 변호사 집단이기 때문에 소송이라는 수단을 통해가지고 비판세력들에 대해서 자꾸 이의를 제기하는 게, 잘못하면 그 비판의 목소리를 억제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무제한적인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비판받을 사람은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 라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면 민변은 이제는 비판의 대상이 될 만한 그런 책임감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민변이 일종의 공적인물이 됐다 라고 보시는 거네요.

 

류신환 네. 그래서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먼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쟁송을 고민하기 보다는 민변이 조금 안으로 돌아보고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고 쟁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을 때, 민변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취지를 사무처와 많이 협의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쪽에서 균형을 가지고 앞으로 대처해나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김지미 우리 언론위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이제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사실 제가 기억하는 류신환 변호사님은 송년회 때나 총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뒷풀이 사회를 보시는, 민변의 전문 엠씨로서의 모습이 더 강력히 기억에 남거든요.

 

류신환 그렇죠? 저도 그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요.(웃음)

송년회

 

김지미 엔터테이너적인 끼가 본인에게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류신환 있는 것 같아요.(웃음) 어릴 때부터 특히 대학시절부터 사회를 보는데, 뭐라 그럴까 어릴 때부터 저는 집회 사회자보다는 뒷풀이 사회자로 특화된.(웃음)

 

김지미 그러면 어렸을 때 오락부장 이런 것도 하고 그러셨어요?

 

류신환 그렇지는 않았는데 그런 욕구는 강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한 번 웃겨보려는. 수업시간에 한마디씩 해서 웃기려고 하는 이런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중간에 한마디씩 하면 선생님은 나보고 조용히 하라고 그러고, 애들은 제 말에 웃기는커녕 제가 이름이 류신환이잖아요. 그런데 제 별명을 ‘유치한’이라고.(웃음) 유치하다고 제 별명이 한동안 유치한이었어요. 그럴 정도였으니까 썩 훌륭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민변 송년회나 이런 데서 사회를 보는 게 저는 참 즐거웠는데 한동안은 다른 분들한테, 후배들한테 기회도 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에는 안 보게 됐죠.

 

김지미 사회를 여전히 보고 싶으신 거죠? 개인적으로는 류변호사님이 사회 보시는 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류신환 2010년인가 큐브 아고라에서 민변 송년회 사회를 보는데 그 날 개그맨 노정렬씨가 게스트로 왔었어요. 노정렬씨가 나보고 자기들은 죽으라는 이야기냐. 변호사가 그렇게 사회를 잘 보면 어떻게 하냐. 그 이야기를 해가지고 제가 한껏 고무됐었어요. 제가 칭찬에 완전 약하거든요. (웃음)

 

김지미 후배들을 위해 사회를 잘 보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류신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닌데, 제가 장점이 있는 부분은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이야기 잘 듣고 그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송년회를 한다 그러면 송년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래서 질문하고 그 분이 이야기하게 하고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이 잘 들을 수 있게 분위기 만들고. 저는 딱 한 가지 그것만 초점을 둬가지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게 잘 되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 번 하거나 직접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거 보면서 살짝 같이 분위기를 타거나 이렇게 하게 되면 자기가 참 좋았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자꾸 쌓이다보니까 노하우가 생기는 거죠.

 

김지미 이런 노하우를 풀 데가 있어야 될 텐데. 사실 변호사 업무는 재미가 없잖아요. 스스로 끼가 있다라고 하셨는데 이 끼를 어떻게 방출하고 사시나요? 얼마 전에 언론위 뒷풀이에서 노래방을 가서 밤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셨다는 제보를 받고 사진도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푸시나요?(웃음)

노래방 노래방1

 

류신환 그렇죠.(웃음) 그렇게도 많이 풀고 항상 사회자 모드가 되는 것 같아요. 점심시간에 우리 회사분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가 잘 안 나오면 나는 약간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그렇게 하고. 그렇게 평상시에 끼를 발휘하면서 거기에 만족하면서 살아요.

 

김지미 사회를 생활화 하시는 거군요.(웃음)

 

류신환 어쨌든 민변에서 사회를 제일 많이 봤거든요. 제가 어떤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다기 보다는 우리 민변분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관심이 있고 친절하게 배려해 주려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를 본다는 것은 축복인거죠. 그리고 그것은 아주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그 마음만 드러날 수 있게 해주면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에 후배 사회자들에게 뭔가를 전수하라고 한다면,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여기 오신 분들이 자연스럽게 자기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변호사들이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어 해요. 입이 얼마나 간질간질 하겠어요. 자연스럽게..그리고 끊는 것만 잘 해주면 돼요.

 

김지미 끊는 거 어렵죠. 변호사님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웃음)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법무법인 지향인데 한결에 10년 가까이 계시다가 지향으로 재작년에 옮기셨잖아요. 한결에서 지향으로 이적을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류신환 제가 여기 오기 전까지 변호사 활동을 돌아보면 약간 갈팡질팡 했던 것 같아요. 분명한 동기부여도 없이 수동적으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허겁지겁 따라가기에 바빴죠. 중간에는 이렇게 변호사를 한다는 게 과연 맞나 이런 자괴감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괴로웠어요 변호사 생활이. 그 시간이 꽤 길었던 거죠. 항상 일에 동력이 없었어요. 그래서 민변 일도 억지로 끌려 다니듯 하고, 열심히 못하게 되고, 회사일도 어느 때부터는 동력을 잃게 됐었어요. 그러다가 중간에 제가 잠깐 휴직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재충전이 좀 됐어요. 그 전에는 변호사일이 나한테 너무 맞지 않아, 나한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맞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을 제가 많이 했어요. 그럼 내가 지금 교육대학원 어떻게 한 번 알아볼까 맨날 그런 생각만 했는데. 쉬는 동안에 재충전되고 내가 하는 변호사 일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먼저 그걸 알게 되었어요. 이게 사람들의 어떤 큰 고민과 관련된 일이고 중요하고 큰 일이 닥친 사람들에 도움을 주는 일인 거에요. 이 일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구나라는 걸 새삼 다시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내가 맨날 나한테 맞지 않는다 어쩐다 생각만 하지 말고 한 번 열심히 해보자. 한 번 제대로 배워보면서 열심히 해보자. 한참 쉬었으니까 뭐라도 하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열심히 눈 딱 감고 10년만 제대로 배워보자 이렇게 생각을 했고. 그 전에는 회사라는 방패가 있고, 회사라는 이름으로 수임해 오는 사건을 수임을 하고 이렇게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정말 내 이름을 건 변호사로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 일을 제대로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거죠. 맨 땅에 헤딩해야 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설레더라고요. 그러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여기에 너무 훌륭한 분들이 많은 거에요. 바로 옆에 훌륭한 분들이 있으니까 항상 자극이 되고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에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지금 내가 10년간 배우기로 했기 때문에 10년간 배우면서 일을 하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2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는 약발이 남아있죠. 지금은 사무실 유지를 위해서 하는 사건하고 그 다음에 공익사건들도 꽤 있어요. 한결에 있을 때는 공익사건을 거의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사건들을 하면서도 내 마음이 안정 돼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더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고, 사건 자체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됐어요. 전혀 그렇게 되게 될 줄 몰랐거든요. 사건은 일이고 힘든 거라고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힘든 것은 힘든 거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사건자체에서 보람과 기쁨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도 느끼고 계신 거죠?

 

김지미 민변 일을 통해서 보람을 느끼는 거냐고 물어보시는 건가요 지금? 느끼고 있죠 당연히.(웃음) 지금 변호사님 말씀 들어보면 지금이 봄날이시네요. 변호사님은.

 

류신환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사실은 이렇게 봄날이 와서는 안 되는 연차와 나이인데. 예를 들면 민변에서 가끔 실무교육 같은 거 한다고 메일이 오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항상 신입변호사님들을 우대를 하고 그 분들 위한 이런 것이다 라고 써서 보내주시잖아요. 그런 거 볼 때 조금 마음이 아파요. 내가 그런 거 진짜 듣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김지미 그렇죠. 연차가 있으면 교육을 받겠다고 나서기도 뭣하고 실제로 받으려고 해도 기회가 잘 없어요.

 

류신환 그래서 저도 그게 고민이에요. 나는 이제 새내기처럼 배우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제가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노동사건 같은 거- 변호사라면 꼭 배워야 되는 것들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욕구가 막 생기는데.. 내가 지금 십 몇 년 된 변호사가 이거 모른다, 처음부터 배워야겠다 이런 이야기 하기 쉽지 않잖아요. 민변에서 조금 문을 넓게 해가지고 선배분들 관심 있는 분들 다 오세요 이러면은 얼마나 좋겠어요. 마음 편하게 가고. 옆에 김 진 변호사는 그런데 강의하러 나가겠죠.(웃음) 그러면 내가 같이 강의를 들으면 난 좋다고 생각해요.

 

김지미 후배 변호사가 강의하는 것도 들을 수 있죠.

 

류신환 그럼. 진짜 진심이에요. 아이한테도 배우라고 했죠. 배우려는 마음이 있으면. 제가 지금 약간 연차가 많긴 하지만 방금 이야기한 취지대로 연차에 상관없이 활동을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언론위원회도 그렇고 다른 민변 활동에서도 그런 생각으로 해보려고 해요.

 

김지미 앞으로 변호사님 자주 뵙겠네요.(웃음)

 

류신환 또 괜한 말 질렀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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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변호사님이 연수원 30기시잖아요. 연차로 따지면 15년차가 되신 거죠. 중견으로서 후배변호사들에게 민변활동을 앞으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내가 이전에 이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라든가 그런 말씀을 한마디 해주세요.

 

류신환 후배변호사님들한테 2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변호사 업무라는 측면하고, 그 다음에 민변 활동이라는 측면하고. 먼저 변호사의 업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변호사 업무에 대해서 본인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람과 사건에 자체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동화가 되었을 때인 것 같아요. 연수원 들어가서 첫 시간에 연수원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우리한테 물어봤어요. 여러분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더니 칠판에다가 두 글자를 딱 썼는데, 한자로 ‘誠意’라고 쓰신 거에요. 그때가 1999년도였는데 자기가 처음에 법조인이 될 때랑 지금은 너무 환경이 바뀌어서 이제는 손만 뻗으면 법조문을 찾을 수 있고, 판례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법조문을 외우고 판례를 외우고 어떤 법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법조인의 우열이 가려지거나 법조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떤 논리적 능력이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법조인이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건에 대한 성의, 사람에 대한 성의인 것 같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그 이야기를 참 감명 깊게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그 뒤에 제가 실제로 법조인이 된 뒤에 사실은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변호사가 되었을 때, 선배들이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사건에 관해서 에너지를 70%만 쓰는 법을 익혀야 된다 안 그러면 너 지쳐 쓰러질 거다. 저는 그것만 너무 염두에 둔 것 같아요. 100% 해보고 그 다음에 조금 줄여가야지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사건을 대하면 안 됐었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조건이 더 안 좋기 때문에 후배들이 변호사 일을 하면서 그런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을 조건인 것 같기는 해요. 그렇기는 하지만 제 경우를 보면 저는 예전보다 일은 더 많아지고 일에 쏟는 시간도 더 늘어났지만 젊었을 때보다 안 힘들거든요. 예전에는 막연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이 사건이 두렵고 내가 뭘 잘못하면, 이 사건이 잘못되면 그 당사자들이 어떻게 되느냐 이런 막연한 책임감. 지금은 내가 해야 될 부분이 분명히 있고 당사자들이 감수해야 될 부분들이 있고. 내가 해야 될 부분들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다라는 게 조금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의뢰인들과 같이 사건을 하면서 칭찬도 받고 고맙다는 얘기도 듣고 때로는 질책도 받고 비난도 받고 여러 가지 과정들을 거쳐 왔는데 그때 그 의뢰인들은 나하고는 한 발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약간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의뢰인들 대하면서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면서 의뢰인들도 내 한계나 내가 잘못한 부분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섭섭해 하는 부분도 있지만 또 더 열심히 해줬다는 부분에 대해서 정말 고맙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다음으로 민변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하는 변호사일 각각이 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게 개인에게 있어서 정의를 구현시켜 주는 일이잖아요. 각 사건에 있어서. 자기가 옳다는 자기 주장을 이렇게 드러내 주는 일이잖아요. 민변 활동은 조금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켜서 개인의 각 사건에서 구현되어야 할 정의를 조금 더 사회적인 품으로 넓혀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자기가 진실이 뭐지, 사실이 뭐지에 대해서 정말 진지한 관심이 있고, 만약에 사실이 이렇다면 이런 식으로 되어야 돼, 라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면 저는 아주 당연히 민변이 하는 일에 누구나 다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큰 부담을 갖는 것 일단 경계해야 하구요. 저는 처음에 민변 변호사가 되는게 너무 큰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야 되는 거 아닐까, 나는 너무 부족하고 고민도 부족하고 동기도 많지 않은데 이렇게 지레 겁먹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말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일단은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나 오늘 일 때문에 바빠, 의뢰인 만나야 돼, 뭐해야 돼, 집안 일 가야돼, 이렇게 핑계를 대면서 한 두 번씩 민변 활동을 중간에 끊게 되면 정말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한 번 멀어지게 되면 계속 멀어질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참여해서 조금씩이라도 활동을 하다보면 거기서 지금 당장은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과 기쁨을 오랜 시간 버티다 보면 분명히 느끼게 된다. 이런 이야길 해주고 싶어요.

 

김지미 제가 새겨들어야 되겠는데요.(웃음) 마지막으로 언론위원회 홍보할 수 있는, 신입변호사님들 언론위원회는 이렇게 좋으니까 오세요, 뭐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류신환 별로 없어요.(웃음)

 

김지미 그럼 없는 걸로 마무리하죠.(웃음)

 

류신환 잠깐! 잠깐!!(웃음) 제가 이런저런 경험으로 언론 현업에 있는 분들을 만나보니까 이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라는 걸 알게 됐고, 실제로 언론이라는 것이 가지는 영향력과 파워와 중요성이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조중동, 채널A, TV조선 등등은 문제가 있는 언론이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괜찮은 언론, 이렇게 약간 구분 짓고 있잖아요. 이렇게 하나의 기능적인 편이다, 저기는 완전 적이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변호사가 어떤 기업이 잘 되도록 자문을 해 주는 것처럼 언론분야가 굉장히 중요한 공적분야인데 조중동이든 한겨레, 경향이든 상관없이 어떤 기준에 맞게, 거기 있는 분들도 정말 자기 고민이 있고, 열심히 하는 분들이란 믿음을 가지고 그 의견들을 교류해 나가다 보면 그 중요한 위치와 역할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언론이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론위가 지금 여러 분야에서 그런 역할들을 해내고 있지 못하지만 언론이라는 분야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이제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많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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