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고문의 추억 – 안기부는 학생들을 어떻게 고문하였는가?(2) _안상운 변호사

2013-12-18 926

칼럼1

글_ 안상운 변호사

<전 호에 이어서>

보통 3, 4인 1조로 편성된 2개조의 수사관이 배정되지만 중요 피의자인 경우 수사관이 더 보강된다. 손00의 경우 총 19명의 수사관이나 담당하였다. 우락부락한 수사관이 손가락을 꺾는 우두둑하는 소리를 낸다든지, 책상을 내리치면서 한숨을 쉰다든지, “나는 간첩수사하는 사람이다, 너 같은 피라미는 상대도 안한다, 과학수사 해야 되겠다, 거짓말탐지기로 시험해봐서 만일 거짓말을 하면 정말 끝장이다”라고 위협하면서 “너 혹시 죽을지도 모르니까 동의서 써놓아라”라면서 보조수사관에게 “지하실에 가서 과학수사 준비 다 되었나 알아봐”라고 지시한다. 그 수사관은 잠시 뒤 돌아와 준비가 다 되었다고 보고한다.

 

안기부는 또한 피의자를 자기비하 심리와 자포자기 상태로 만들어 자기들 의도대로 파멸시키려는 방법도 썼다고 한다. 북한방송을 들었다거나 그것을 채록한 유인물(안기부는 이를 ‘외화물’이라고 한다)을 탐독했다는 것을 시인하라면서 “운전사 □□이도 봤다고 하는데 너는 그것도 못 봤느냐, 너는 운전사보다도 못한 놈이다”라고 한다든가, “수사투쟁하는 것이나 역량으로 볼 때 전대협 5기 애들은 형편없다”라든가, “사노맹 애들은 화끈하고 참 멋있었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 너희는 아무래도 실패작인 것 같다”라든가, “예전에 자민통 △△△는 조사받을 때 한마디 물어보면 알아서 대답을 쭉 하더라. 너는 뭐냐? 운동을 했으면 멋있게 자기 생각을 쭉 설명해봐라.

두 번 세 번 묻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하면서 자존심을 건드린다.

“너 자민통 ○○○ 알지?”

“모릅니다.”

“그럼 대오나 활조에 가입했지?”

“아닙니다.”

“그럼 넌 뭐냐, 너는 일개 행동대원에 불과하구나. 네가 어떻게 전대협 조통위 정책실장 했는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너를 시험해볼 테니 조국통일이라는 주제로 너의 생각을 한번 적어봐라”며 16절지 4장을 준다.

그래서 글을 써주면 “야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 여고생 낙서하는 거지”라며 면박을 준 뒤 분발케(?) 한다는 것이다.

 

“너 광역지방선거9)에서 (야당이) 왜 패했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정부에서 광역선거를 동네선거 하듯이 평가절하하고 공안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수사관은 “아니야 인마, 수서사건10) 터지고 하면서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투표율이 저조해서 그런 거야.11) 자식이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전대협 지도부라고”하며 반박하는 등 객관적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을 얘기하기도 하면서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보다 못한 놈이 무슨 전대협 지도부라고” 하는 투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자백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게 도대체 뭐냐. 아는 게 없어. 어떻게 너같이 무식하고 멍청한 놈이 정책위원을 했는지 모르겠다. 누구든 한 가지 주제를 주면 수십 장씩 빽빽하게 채워내는데 너는 겨우 2~3장밖에 못 채우느냐. 쪽팔리지도 않느냐” 등 열등감과 자기비하감을 조장하여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멍청해 보이지 않으려고 더 많이 더 열심히 자술서를 쓰게 된 때도 있었다고 한다.

“PD 애들은 주장이 뚜렷하고 소신이 있는데 NL 애들은 하나같이 비겁하기 짝이 없다”, “○○는 노래시키면 소신껏 김일성장군가만 부르더라. 너도 한번 해봐라” 해서 모른다고 대답하면 몽둥이와 함께 파렴치하고 줏대가 없으며 비겁한 놈이라는 인신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때는 ‘교수님’ 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와 ‘이론투쟁’을 하자고 하면서 진술을 유도하고 응하지 않으면 멍청하고 옹졸한 사람으로 비하시켜버린다는 것이다.

 

B조의 수사관은 인간적으로 친밀하게 접근해온다고 한다. 예컨대 원산폭격을 30~40분 정도 당하고 있는데 한 수사관이 들어와서 중지시키더니 원산폭격 시킨 수사관을 그가 보는 앞에서 혼을 냈다. “□□는 내 학교후배이기도 하고 고향후배이기도 하여 나와 각별한 사이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하고 꼭 상의하고 나서 하라고 했는데 왜 네 맘대로 고생시키느냐.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라”면서 피의자에게 어디 아프지 않느냐며 관심을 가져줘 제일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도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하지 않자 나중에는 욕을 제일 많이 하고 이번 수사로 옷을 벗겠다고 하면서 강압수사를 하였다는 것이다.

야참시간에 쉴 때는 확실히 쉰다는 취지 아래 더욱 친밀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야 솔직히 그 문제 너 알고 있지?”, “야 인마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말 안하냐. 옆방에서는 다 말했는데”, “지금 상부에서는 너한테 새로운 게 잔뜩 나올 것 같은데 나오는 것이 제대로 없다고 야단법석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신문투쟁을 전담하는 새로운 팀으로 전원 교체될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등 직접 술을 한잔 따라주면서 회유와 협박, 우회적인 수사, 때로는 취기를 이용한 진술유도 등의 방법으로 고도의 신경전을 펼치기도 하며 “솔직히 네가 충격을 받을까봐 말 안하려고 했는데 옆방에 있는 ○○○가 너보고 프락치라고 그러더라. 너 때문에 잡혔다는 것이야” 등 이간질도 자행했다는 것이다.

또 수사 초기에 말을 잘 못하고 어리숙하게 보이면 직급이 높은 사람이 와서 수사관을 모두 내보낸 뒤 아주 점잖고 따뜻한 어투로 “옛날에 간첩 ◎◎◎도 나에게 전향했다. 그 친구가 교도소에 있을 때 내가 찾아가면 공장에서 일하다가도 저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고는 선생님하면서 뛰어오곤 했었다. 너도 생각을 잘해봐라. 우리하고 손잡고 일해보지 않을래. 그러면 너는 지금이라도 내보낼 수 있다. 내가 그 정도는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니 어디 네 생각을 한번 말해봐라”면서 프락치를 하라고 회유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누나를 두 번째 면회한 날 밤 야식 때, “네 누나가 너 고문받았는지 알아보려고 온 몸을 살펴볼 때 네 ××를 잡아 만지더라. 너 혹시 예전에 누나와 성관계 갖지 않았니”라는 더러운 추궁을 2시간가량이나 하고 또 애인에 대해서도 주소, 전화번호, 학교 등 기본적인 사항을 알려주면 “여자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를 지켜줘야 하는데 너는 지조도 없이 애인에 대해 다 말해버리니, 너도 남자냐”라며 인격적 모독을 느끼게 하여 자포자기 상태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애인을 추가로 잡아왔다.”, “간부 ○○○를 검거해 옆방에 데려다놓았다”며 자백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동지의 허위진술서를 제시하면서 왜 뻔한 사실을 너만 부인하느냐면서 피의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한다.

전대협 대표들을 해외에 파견하기 전에 미리 해외나 국내 재야단체와 상의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을 집요하게 하였으나 계속 부인하자 방향을 약간 바꾸어 전대협 조통위 출범식이 끝나고 뒤풀이자리애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면서 이미 위원장과 ○○○, □□□도 시인했다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은 출범식(1991. 6. 1)이 끝나고 6월 20일경에야 조통위 정책실에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출범식 때는 없었는데도 그가 자백했다는 말에, 오히려 내가 허위로 자백하면 다른 동지들이 고초를 겪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민족민주운동권 전반에 대한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마음속의 신념을 꺾으려고 한다. ○○○는 사생활이 문란하여 몇 차례 임신했다가 애를 떼기도 했다느니, ○○그룹 애들은 세미나 한 뒤 그룹섹스를 해왔다느니, 재야 지도자인 ○○○는 첩이 있다느니 하면서 재야도 믿지 못하게 공작하였다는 것이다. “너는 전대협 내부에 우리가 심어놓은 프락치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하여 전의를 상실케 하려고도 했다고 한다. 또 송치일이 5일 남았을 때 “너 여기서 나가려면 앞으로도 보름 정도 더 있어야 한다. 어떻게 또다시 보름을 더 보낼래. 빨리 얘기하고서 편히 지내라. 우리는 수사기간을 연장하여 30일까지 너를 데리고 있을 수 있다”며 기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민족민주운동 진영과 전대협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북한→한민전→비합법 지하조직→주사파→전대협의 연계고리를 찾는 것이 최대의 수사방향으로 보였다고 한다. 북한 노래를 불렀다거나 북한방송을 들었다거나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한민전 강령을 외웠다는 추궁이 끊이지 않았다. 모든 전대협 간부를 ‘자민통’과 ‘조통’, ‘관악자주파’, ‘반제청년동맹’으로 구분하여 그림표를 완성한다. 연방제 통일방안은 ‘자민통’ 조직의 공식입장이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강조한 간부는 악착같이 ‘자민통’ 조직원으로 만들어냈으며 ‘비핵군축’을 강조한 간부는 의심의 여지없이 ‘관악자주그룹’에서 전대협에 파견한 간부로 진술서를 작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구치소로 송치되기 직전 마지막 2~3일간은 이미 작성한 방대한 자술서의 미흡한 부분이나, 국가보안법을 확실히 걸 수 있도록 어정쩡한 부분을 보강하는 수사자료 정리기간이라고 한다. 또한 안기부에서 작성한 진술서 등은 법정에서 부인하면 휴지조각이 된다는 변호인의 말에 안기부는 진술서의 내용이 번복되지 않도록 ‘다지기 작업’을 한다고 한다.

“검찰조사 받을 때 여기 와서 마찬가지로 솔직하게 진술해라”, “네가 아무리 부인해봤자 소용없다”, “법정에서 고문에 못 이겨 진술했다는 비겁한 말은 하지 마라”, “너희 선배들 보면서 배신감마저 느꼈다”, “너는 그러지 말고 당당하게 너의 주장, 너의 사상을 모두 남자답게 멋있게 피력해보아라. 그런 사람은 안기부도 평가해준다” 등 안기부에서의 진술내용을 반복하지 말라는 직․간접적인 세뇌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또한 검찰에서 풀려날 수도 있다면서 반성문이나 소견서를 요구한다고 한다. 반성문까지 쓴 피의자가 법정에서 쉽사리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검찰로 송치되기 전날 ‘쫑파티’에서 담당 실장은 “박종철이 하나가 죽어나가자 5공이 무너졌다. 그리고 강경대 하나가 죽어 6공이 휘청거렸다. 안기부에서 전대협 간부들이 고문 도중에 죽는다고 상상해봐라.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도 전기고문, 물고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시대가 변한 만큼 안기부도 옛날의 중앙정보부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검사들은 피의자들이 진술을 거부하면 “그러면 너만 손해다. 너한테 불리한 것은 거부하고 유리한 것만 대답해라”며 회유했다고 한다.

 

구속자들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안기부 수사관은 적절한 폭력의 사용과 다양한 심리전을 펴 최대한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체제가 민주화로 나아감에 따라 육체적인 폭력의 사용은 그 정도가 줄어들고 그 반면 고도의 심리전을 통해 어쩌면 더 철저히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안기부가 경찰이나 보안사 등 타기관의 수사관들과 무엇이 다른가.

수사 경험이 많은 구속자는 그 차이점을 안기부 수사관들의 프로근성이라고 말했다. 경찰 대공과 형사들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투쟁』이라는 책12)을 포함하여 수사신문투쟁과 관련된 민족민주 운동권의 자료들을 빼놓지 않고 학습해나가는 20대 젊은 수사관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반성과 함께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정부비판을 서슴없이 하는 수사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애창하는 수사관, 조직의 이론을 꿰뚫고 있는 노련하고 경험 많은 수사관 앞에서 자신과 조직을 보위하려는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검찰에 송치되면 검사는 피의자들을 거의 매일 불러 조사를 하므로 송치된 다음날인 7월 27일 나는 서울구치소로 면회 가서 그들에게 안기부의 보도자료를 보여주면서 검찰조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피의자는 흔히 안기부에서의 20일간의 구금생활을 하면서 강압수사로 인하여 허위자백을 했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검찰로 송치되어 당일 안기부의 송치의견서와 같은 내용의 조서를 작성한 뒤 서울구치소에서 한두 달간 다소 편안히(?) 지내다가 1심 재판이 시작되면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한다.

이제 와서 부인하는 이유가 뭐냐는 재판장의 질문(추궁?)에 대해 안기부에서 폭행하고 잠을 재우지 아니하여 일단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허위자백을 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법부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그들의 태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심하게 말하여 검찰에 송치된 날 그에 대한 재판은 이미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안기부에 연행됐을 때 판가름이 났는지도 모른다.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판사가 거의 배척할 수 없다는 당시 형사재판의 실무를 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13) 고문금지, 자백증거배제, 변호인의 조력권 보장, 공판중심주의, 증거주의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법 조문으로만 치장되어 있던 어두운 현실을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견․변론투쟁을 통하여 비록 느리지만 서서히 살아있는 형사사법의 근본적인 변혁이 나타는 계기가 되었다. 48시간 불법구금 위법, 영장실질심사제도의 도입, 변호인 접견금지에 대한 준항고 인용, 가청거리 내 변호인 접견 접근 금지, 밤샘 수사의 금지 등이 그러하다.

 

이 사건 이후 “인권변호사라고 하는 놈치고 진정으로 피의자들을 생각해주는 놈 없고 그들을 팔아서 정치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안기부 수사관의 말이 진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정치를 해보려고 하지 않은 필자야말로 안기부의 ‘공작’에 놀아난 것일까? 아니면 인권변호사의 자격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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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6 쿠데타로 폐지된 지방의회의원선거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시․군․구 기초의원선거는 같은 해 3월 26일에 실시되었고, 광역의원선거는 1991년 6월 20일에 실시되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995년에야 부활하였다.

10)1989년 3월 택지개발 지구로 지정된 서울시 강남구 수서, 대치 택지 개발 예정지구를 일반 주택청약 예금자들과의 형평에 맞지 않게 경제기획원, 국세청, 군부대, 언론사 등 영향력 있는 기관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던 특정조합에 공급함으로써 빚어진 비리 사건이다. 이 지역은 법적으로 국가나 민간업자가 개발하여 일반에 공급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1991년 1월 21일 정치권의 압력과 한보 그룹의 로비를 받은 서울시가 법적 근거 없이 이 지구의 민간 주택조합 소유토지 3만 5500평을 이들 조합에 특별 분양키로 결정함으로써 그들 조합원과 한보그룹에 특혜를 주었다. 수사 과정에서 한보그룹이 청와대 관계자, 국회 건설 위원회 소속 의원들, 건설부 등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준 사실은 밝혀냈지만, 외압과 배후의 실체에 대한 수사는 한계를 드러낸 채 마무리되었다. 외견상 부총리를 포함한 정부의 개각으로 일단 수습을 하였으나 6공하의 정·경·관 유착관계를 보여 준 사건이다.

11)당시 기초의원선거의 투표율은 55%, 광역의원선거는 58.9%에 그쳐 1987년 13대 대선(89.2%)이나 1988년 13대 총선(75.8%)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것이었다.

12)1988년 백산서당에 출간된 조한백의 저서이다. 그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은데 안기부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 검거될 때부터 수사과정, 재판과정, 형집행과정 전반에 걸쳐 ‘투쟁’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이러한 책을 ‘탐독’하여 검거한 피의자들의 수사 태도 등을 예측하고 역으로 대비하였다는 것이다.

제1장 검거에서 옥중투쟁까지의 개관
1. 경찰조사 = 11
(1) 연행 = 12
(2) 압수, 수색 = 18
(3) 경찰신문 = 19
(4) 입건 = 20
2. 검찰취조 = 20
3. 재판과정 = 21
4. 형확정 이후 교도소 생활과정 = 24
제2장 검거, 수사투쟁과 보안원칙
1. 수사기관별 특성 = 25
2. 취조에 대한 투쟁의 기본원칙 = 29
3. 취조투쟁의 방식 = 32
(1) 기본수사 원칙과 이에 따른 대응양식 = 32
(2) 시기별 중요 내용과 대응방식 = 37
(3) 기타 = 44
4. 검거투쟁에서 도출되는 평소활동의 보안원칙 = 50
5. 대경찰 투쟁 이후 검열과정 = 52
(1) 평가, 반성, 징계의 주체 및 내용 = 53
(2) 평가, 반성의 내용에 따르는 징계 = 53
6. 검취투쟁 = 56
제3장 재판 (법정) 투쟁
1. 재판이란 무엇인가 = 59
2. 기존 재판 (법정) 투쟁의 몇 가지 문제점 = 60
3. 재판 ( 법정 ) 투쟁이 제형태 = 61
(1) 진술투쟁 = 61
(2) 재판거부투쟁 = 66
제4장 옥중투쟁과 대중활동
1. 감옥이란 무엇인가 = 71
2. 기존 옥중투쟁, 활동에서 잘못된 관점 = 72
3. 옥중 대중의식화, 조직화활동 = 74
(1) 소내 대중 분류 = 74
(2) 대중활동의 원칙과 그 실현방도 = 82
(3) 대중조직화의 원칙과 방도 = 90
4. 활동가 조직건설 및 조직생활 = 94
5. 옥중투쟁 = 97
(1) 옥중투쟁의 의의 = 97
(2) 옥중투쟁의 원칙 = 98
(3) 옥중투쟁 분류 = 99
(4) 옥중투쟁 전술지침 = 102
6. 소내폭력의 종류 = 105
제5장 가족과 바깥 동지들의 지원활동
(1) 검거에서 수사과정까지 = 112
(2) 법정투쟁 지원 = 115
(3) 옥중투쟁 지원 = 116
부록Ⅰ : 소내 투쟁사례 = 117
부록Ⅱ : 소내 사상투쟁과 조직건설의 모범 = 127

13)대법원 2004. 12. 16. 선고 2002도537 전원합의체 판결,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본문은 “검사가 피의자나 피의자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검증의 결과를 기재한 조서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에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성립의 진정이라 함은 간인·서명·날인 등 조서의 형식적인 진정성립과 그 조서의 내용이 원진술자가 진술한 대로 기재된 것이라는 실질적인 진정성립을 모두 의미하는 것이고, 위 법문의 문언상 성립의 진정은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실질적 진정성립도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는 검사 작성의 피고인이 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인바, 검사가 피의자나 피의자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형식적 진정성립뿐만 아니라 실질적 진정성립까지 인정된 때에 한하여 비로소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판결 이전에는 피의자신문조서에 피의자의 서명날인만 있으면 거의 대부분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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