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020617)위헌적인 직권중재제도를 철폐하고 파업지도부에 대한 체포방침을 철회하라

2002-11-25 91

<성명서>

위헌적인 직권중재제도를 철폐하고 파업지도부에 대한 체포방침을 철회하라

현재 경희의료원, 카톨릭 중앙의료원(강남·여의도·의정부 성모병원), 부천성가병원, 제주 한라병원 등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 일부 병원사업장들의 파업이 월드컵 열기만큼 뜨겁게 계속 중이다.
정부는 전국민이 화합하는 월드컵 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차수련 위원장, 현정희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경희의료원 8명, 카톨릭 중앙의료원 6명, 울산병원 4명 등 20여명의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였고 수십명의 간부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등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을 물리력으로 진압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또한, 병원사용자들은 직권중재제도로 인한 실정법위반을 이유로 불성실한 교섭태도, 노동조합 파괴행위로 일관하여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카톨릭 중앙의료원은 노조지부장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요구하고, 경희의료원은 재단측 관계자가 노조간부를 만나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하고 있다. 또한 카톨릭 중앙의료원 소속 모병원장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하면서 ‘외부 보건의료노조 집행부가 주도하는 병원 파괴행위’ ‘오로지 투쟁과 파괴를 통한 민주노총의 목적달성만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는 유인물까지 공공연히 배포하고 있다. 본 사태에 대한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을 정부와 사용자들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병원은 직권중재제도를 빌미로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이 실정법을 위반한 ‘불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병원노동자들이 위반한 것은 오로지 헌법에 위배되는 실정법일 뿐, 그 내용이나 형식에서 정당한 것으로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71조 (공익사업의 범위 등)는 병원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필수공익사업장에서 분쟁이 벌어지면 해당 사업장은 조정신청을 할 수 있고 그 조정기간이 15일이다. 그리고 조정이 실패하면 다시 15일간 중재에 회부된다. 그리고 중재재정이 내려지면 행정소송을 통하여 이를 다툴 수 있을 뿐이다.
결국, 필수공익사업장은 조정기간 15일, 중재기간 15일 등 합계 30일 동안 쟁의행위가 금지될 뿐만 아니라 중재재정이 내려지면 아예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이는 결국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박탈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노동3권 중의 하나인 단체행동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다. 지난 5. 23.를 기준으로 보건의료노조 산하 98개 병원사업장이 조정을 신청하여 그 중 8개 병원은 교섭을 계속하기로 하여 조정이 종료되지 않았으나, 나머지 90개 병원 중 23개 병원은 조정성립, 그리고 폐업신고한 병원 일부를 제외하고 남은 57개 병원 중 53개의 병원사업장이 직권중재에 회부된 것을 보더라도 직권중재제도로 인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얼마나 침해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모임은 이미 지난 2000년에도 이 제도가 위헌이며,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파업을 부추기는 것으로서 즉각 철폐되어야 함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도 지하철노조와 문화방송노조의 파업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9명중에서 5명이 직권중재제도에 대하여 위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다만, 그 수가 위헌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족수(6명)에 이르지 못하여 합헌 결정이 내려졌을 뿐이다.(헌법재판소 1996. 10. 26. 90헌바19, 92헌바41, 94헌바49 결정). 다시 말하면 내용적으로는 위헌이나 형식적으로만 합헌인 것이 바로 직권중재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최근 2001년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당시 이루어진 중앙노동위원회 중재회부결정에 관한 직권회부결정무효확인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은 노동조합법상의 직권중재제도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하여 기존의 합헌결정에 불구하고 다시 위헌심판제청인용결정을 하여 이 사건이 아직도 헌법재판소에 계속중이다.(서울행정법원 2001. 11. 16.자 2001구23542 결정). 이미 한 번 헌법재판소에서 결정이 내려진 사안에 대하여 법원이 재차 위헌심판제청결정을 인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현행 직권중재제도의 위헌성은 명백하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정당한 법치주의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지 위헌적인 악법과 형사처벌로 강제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본 사태의 신속하고도 평화적인 해결을 위하여 다음 사항을 촉구한다.

첫째, 단체행동권을 박탈하고 사용자의 불성실교섭을 부추겨 파업을 유도하는 위헌적인 직권중재제도는 즉각 철폐되어야 한다.
둘째, 위헌적인 직권중재제도에 기하여 발부된 체포영장은 즉시 철회되어야 하고 노조간부에 대한형사처벌은 중단되어야 한다.
셋째, 본 사태의 해결을 위하여 정부는 노사간의 평화적인 대화분위기를 조성하라.
넷째, 병원사용자들은 위헌적인 직권중재재도를 근거로 노동조합 파괴에만 나서지 말고 성실한 자세로 교섭에 응하라.
다섯째, 사법당국은 경희의료원의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지배개입, 카톨릭 중앙의료원의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 등 사용자측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

2002년 6월 1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최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