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법원 앞 시위에 대하여(권두섭)

2002-03-08 49


다음은 <시민과 변호사> 2월호 ‘지상공론’에 실린 권두섭회원의 글입니다.

현재, 권두섭회원은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 글은 법원 앞 시위에 대한 옹호의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지상공론의 주제인 ‘시위문화’에 관한 문제는 먼저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는 통로와 다양한 의견수렴의 장이 마련되어 있고, 현실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필자는 오늘날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처한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민주노총에서 법류차장이라는 직책으로 있다보니 민주노총 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당하는 집시법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소송업무를 하지 않던 2000년에는 집단접견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의 사람들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났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시위현장에서 연행된 사람들이었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폭처법위반, 일반교통방해, 집시법위반이라는 네 가지 죄명이 공식처럼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집회신고 과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침해사례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경찰 당국(정부)에 의한 선택적 허가의 대상일 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사진제공 참세상뉴스>

오늘날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처한 현실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집시법의 대부분의 “…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신고의 관할 관청인 경찰 당국은 이러한 집시법의 재량규정과 정해진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는 집회의 성격상 이의제기 절차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자의적으로 집시법을 운용하고 있다. 즉 집회의 성격, 주최 단체, 시기와 장소를 고려하여 사실상 선택저긍로 허가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주요 집회 장소인 대학로, 종묘공원, 서울역, 시청 근처, 광화문, 경찰청 앞, 명동이 모두 근처 상인회, 관변단체, 기업들에 의해 짧게는 1개월에서 6개월까지 위장집회신고가 되어 있다(2001년). 이미 이러한 위장집회신고를 통한 집회봉쇄는 2000년 아셈대회시 경찰이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강남일대 모든 도로와 장소에 공기업, 관변단체 이름으로 위장집회신고를 한 사례도 있다(한겨레 2000. 10. 4.자 보도). 시청 주변 주된 집회 장소인 덕수궁 앞 인도는 2001년에는 자유총연맹 서울지부, 바르게살기운동 서울시협의회, 새마울운동 서울시지부 등 관변단체들이 10일 단위로 돌아가면서 남대문경찰서에 1년간 집회신고를 해놓고는 실제 집회를 개최하지 않았고, 2002년엔 바르게살기운동 서울시협의회가 6월 30일까지 한 달치씩 여섯 번에 걸쳐 덕수궁 주변 및 서울시 의회, 시청 주변 인도라는 매우 포괄적인 기재하여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이때 경찰 당국은 다른 집회신고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금지통고함으로써 사실상 실제 집회를 개최하려는 시민사회단체의 집회를 봉쇄하고 있다.

대사관 100미터 내 집회금지규정을 악용하는 사례도 자주 문제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재벌에 항의하는 집회가 계속되자 삼성 본관 옆 태평로 빌딩에 싱가포르 대사관(1997년)을 입주시켰고, 다시 삼성생명 본사 앞으로 장소를 옮기자 엘살바도르 대사관을 유치했다(2000년). 시민단체와 해고노동자들이 이번에는 국세청이 입주해 있는 종각 삼성타워 건물에서 집회를 하자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하여 집회를 봉쇄하였다(2000년). 최근에 등장한 1인 시위의 시작은 참여연대가 종로 국세청 앞에서 삼성재벌의 세습을 비판하는 집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인 시위는 법률상의 집회나 시위가 아님에 착안하여 대사관 100미터 금지규정을 피하고자 고안된 것이었다. 종로에서 행진이 있을 경우 늘상 종로2가에서 경찰병력과 시위대 간 몸싸움이 벌어진다. 시위대들은 종각으로 돌아서 명동성당까지 가겠다고 하고 경찰은 대사관이 있어서 안되니 좁은 길로 돌아서 가라고 한다. 그, 대사관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집회이고 그냥 지나가는 것 뿐인데 경찰이 막으니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들로서는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시위가 격해지기도 한다. 이때 만일 앞줄에 서있다가 연행되거나 사진 채증이라도 되면 영락없이 위 네 가지 죄명이 붙게 된다.

이 외에도 26개 항목 이상의 자세한 신고사항을 집시법에 규정하고 만일 신고 내용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경찰이 개입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즉 신고내용에서 현저히 일탈한 경우가 아님에도 신고 내용과 사소한 차이를 이유로 해산명령(건설운송노조집회에 신고된 인원보다 30명이 초과하였다는 이유로, 전교조집회에 신고 시간을 25분 넘겼다고 강제해산 및 연행한 사례)을 하거나 경찰력을 투입하여 철거한 일(지난 6월 16일 제2차 민중대회에서 집회물품으로 신고하지 않은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상징물이 있다는 이유로 강제철거한 사례)도 있다. 이미,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를 악용하여 단순히 폭력집회를 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학생단체의 집회에 대하여 경찰이 자의적인 금지통고를 하는 것이나 ‘주거지역과 이와 유사한 지역’이라는 해석 여하에 따라서 상당히 광범위한 장소에서 경찰이 거주자들로부터 시설보호요청서를 받아 대부분 금지통고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거지역을 고려하여 제한통고를 하면 족함에도 무조건 금지통고하는 것이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도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해 놓고 이를 이용해 자의적으로 금지통고하는 경우도 있다. 집회와 행진이 있을 만한 곳은 대부분 주요 도로이기 때문에 경찰 당국의 선택에 따라 허용할 수도 있고 금지할 수도 있는 규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언론은 집회가 있을 때마다 늘상 폭력시위·시민불편을 동원해가며 부정적으로 보도하기에 급급하다. 멀리 해남에서 올라온 농민이나 창원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에게도 주말은 일주일간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지친 몸을 쉬거나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유일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를 마다하고 집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은 시민불편과 교통장애를 말하면서 개념도 불명확한 ‘선진시위문화’를 말하기 전에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집시법, 재량규정을 악용한 경찰 당국의 자의적인 법집행,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로 인하여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한국전 당시 민간인학살을 규탄하는 유족들의 미국 백악관 앞 집회를 취재하고 쓴 어느 기자의 글을 보면 당시 5∼6명의 경찰만 나와서 집회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고, 노인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례적으로 스탠딩 집회를 허용했다고 한다. 늘 시위 참가자들보다 많은 무장경찰병력(사실상의 군인)이 출동하고 주변 상가와 경찰 앞쪽에는 수십대의 비디오 카메라, 사진기가 계속 시위대를 향해 촬영을 하며, 사복을 입은 정보과 형사들이 통보도 없이 무전기를 들고 수시로 집회 장소에 출입하면서 10분 간격으로 정보보고를 한 상황이 일일이 사찰기록처럼 남아 법정에 제출되는 우리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이미 헌법에서 이를 보장하는 순간, 교통을 방해하고 타인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을 예정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어느 한도를 넘어서야 타인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 자체로 이미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기본권이라는 점 때문에 어느 정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가신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다른 사람들의 권리행사를 비난할 때 그것이 언젠가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법원 삼거리에도 인근 대성학원의 교직원들이 집회신고를 2월말까지 해두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한다.
필자는 시위로 차가 막혀도다른 사람들의 집회의 자유에 관용을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집회가 있는 날에도 수천명의 경찰병력이 신체 건장한 1001부대를 앞세워 출동하는 일은 없어지길 바란다. 언론도 이를 비난하기에 앞서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구속에 항의하는 법원 앞 집회를 했다는 것을 양형 가중사유로 삼을 것(대구지방법원 사례)이 아니라, 법원도 검찰도 법원삼거리에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귀기울여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