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6/27(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서경식)

2007-06-20 190

<아홉번째 공부모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파란 하늘에 동그란 풍선, 물방울 같은 풍선.
노란 풍선, 빨간 풍선, 초록 풍선 많기도 하여라.
그 많은 풍선 중에 내건 하나도 없네”

국민학교라 불리던 곳을 다니던 어린 시절, 한명의 예외도 없이 시내공원에 단체로 끌려 가 시라는 걸 쓰라고 강요받았을 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썼던 시 랍니다. 이런 걸 시라고 쓴 나도 한심하고, 한심한 걸 공개적으로 창피 당하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고 딴 짓하며 뛰어 놀았더랬습니다. 그 후로 시라곤 쓸 일도 없었지만 읽지도 않았었지요. 시는 욕조였습니다. 고문도구 말입니다. 박노해의 ‘짤린 손가락’을 볼 때까지는. 이렇게 매마른 어린시절을 지낸 사람에게 ‘한시 미학 산책’은 고문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첫 장을 넘길 때까지도.

허허 근데 웬걸. 첫 번째 이야기 ‘허공 속으로 난 길’이란 제목을 대하면서부터 책 속은 향기 나는 꽃길이었습니다. 공부모임의 좌장 좌세준의 표현대로 ‘득음’이 소리 길을 깨닫는 것이라면, ‘한시’는 허공 속으로 난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는 시인만이 짓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풍경, 자연이라 할 수 있는 景이 감흥, 시상, 시감이라 할 수 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의 매개인 경이 시의 배아인 정과 합해 하나의 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시내공원이 도살장 같았던 국민학생에게 시상이 떠오를 이유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던 겁니다. 시는 소리있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없는 시라고 합니다. 확~하고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그 느낌을 좀 더 진하게 전해볼까요?  

그림을 좋아했던 송나라 휘종황제는 시구를 던져 그림을 그리게 하는 참 배부른 취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휘종이 던진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라는 시구에 어떤 그림이 맞춤일까요. 1등한 그림은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는 그림이었습니다. 구한말의 고종도 품격높은 화가 허소치를 놀릴 심산으로 농탕한 남녀를 기대하며 ‘춘화도’를 주문했다지요. 그러나 허소치가 한 수위였습니다. 깊은 산속 외딴 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만 한 켤레씩 올려놓은 거지요. 이렇듯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그 의경을 전달하는 감칠나는 맛입니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독자를 외롭게 만들어야 하고, 괴롭다는 말을 않으면서 읽는 이의 가슴을 뒤집어 놓아야 하는 거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야 한답니다. 이 대목에서 한참 분위기 잡다가 방귀뀌듯 왜 준비서면이 떠오르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는 누워서 낮잠 자듯 손쉽게 나오는 건 아니라고 하네요. 시인의 삶이란 곁에 누운 병든 아내의 신음소리처럼 고달프고 괴로운 것이랍니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입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신선세계, 존재하지도 않는 피안을 향한 회귀의 몸부림을 쳐야지만 나오는 것이 시라고 합니다.

시는 독자의 처지에 따라 참 달리도 읽힙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새내기 강은옥은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흰머리 어버이 근심하실까 저어하여, 금년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를 추천했고, 김선수 선배는 먼저 간 아내를 그리는 시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를 추천합니다. 홀아비 되지 말자는 교훈을 떠올랐다나요. 물론 감상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통시와 현대시, 서양시와 동양시의 미감차이도 분분했고, 시와 시 아닌 것의 차이도 오고 갔습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우리 너무 사치부리는 것 아냐’하는 자문도 했지만, 바쁜 일상에서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님에 모두 공감하였습니다. 한껏 감상에 젖는 시간 속에서도 모두가 다른 느낌과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고, 나와 다른 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한시를 배우고 나니 한결 시를 대하는 것이 가벼워졌습니다. 내보이기 부끄러운 시라도 끌쩍거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자연히 시구가 흘러나옵니다.

야심한 밤 형광등불 꺼질 줄 모르고
심장을 토해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두 눈 시뻘겋게 쥐어짜고 비틀어도
막힌 글은 도무지 나올 줄을 모르네
피곤하다 할일 많다 한숨 내 쉬지만
무거운 이 발걸음 공부모임 향하네
천근만근 이 내 몸을 벗들과 녹이나니

정민선생의 이름이 드높아서인지, 공부모임의 소문이 드넓어진 것인지 이번 모임부터는 변호사 아닌 분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을 가르치시는 경기대 김기봉 교수님, KBS의 김성환 피디님이 새로 동참했습니다. 충정의 김정헌 변호사님도 반갑고요.

다음 모임은 계획을 바꿔 ‘시대의 증언,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의 저자 서경식 선생을 모시고 강연을 듣기로 했습니다. 월례회를 겸하기로 한 겁니다. 공부모임에서 ‘서양 미술 순례’로 만났던 바로 그 저자이십니다. 과거 유학생 간첩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서승, 서준식 두분의 동생이고, 일본 도쿄경제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전세계를 돌며, 영원한 이방인,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 밖의 유대인, 재일교포 등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강연을 하시는 인권전도사이십니다.

그리고 7월엔 국보법 위반으로 현재 우리 회원들의 변론을 받고 있는 이시우의 ‘민통선 평화기행’을 들고 민통선 기행을 할까 합니다. 그가 찍었던 사진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지요.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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