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희망의 공장을 찾아서

2012-01-30 142


[민변의 활동]


 


 


 


희망의 공장을 찾아서


 


 


 


글_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3기 정상규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2차 희망텐트가 있었다. 민변에서 로스쿨 실무수습 중이던 나는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님과1401745413.bmp 함께 쌍용자동차 희망텐트를 찾게 되었다. 1차 희망텐트에서 눈이 내려 화이트 희망텐트(?)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으며,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였던 13일 저녁 7시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에 다달았다. 실제로 전혀 춥지 않은 정도는 아니었으나, 한파가 온 날은 아니었고 겹겹이 옷을 준비하고 간 덕분에 큰 추위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때까지는……


 


 


절망의 공장 앞에 서다



사진으로만 보던 희망텐트 촌에는 생각보다 텐트가 많았다. 조그마한 3인용 텐트부터 대학교 축제 때 쓰는 주막용 천막까지 다양한 크기의 텐트가 줄지어 있었다. 권변호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1차 희망텐트 때 보다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2차 희망텐트를 찾은 듯 했다. 사람들과 텐트들을 뒤로하여 어둠 속에 SSANGYONG MOTOR라는 불빛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1272725377.bmp2차 희망텐트의 구호는 “분노하라!” 였다. 2009년 이 공장에서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된 2646명과 그들의 가족 중에서 지금까지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눈앞에 보이는 이 공장은 절망의 공장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그 정리해고가 부당해고에 해당함을 주장하며 이 자리에 모인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분노할지, 어떻게 분노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집회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양 가로 늘어선 천막 아래에는 음식을 팔기도 했고 바자회에서는 잡다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집회 신고도 무리 없이 되어있었고 경찰들은 공장 안쪽에만 있어 어떠한 충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절망의 공장을, 희망으로 포위하라!


 


해고자 가족 등 몇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초청 가수들의 흥겨운 무대가 분위기를 달구면서 1월의 추위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위협하지 못했다. 한 시간 가량이 흐른 뒤 진행자는 “자, 이제부터 공장을 포위하겠습니다!” 고 하며 불꽃놀이 화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천 명의 집회 참가자는 손에 불꽃을 하나씩 들고 공장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성질 급한 몇은 공장에 다다르기도 전부터 불꽃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공장을 둘러쌌을 때 수천 개의 불꽃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불꽃으로 포위하는 의식(?)을 거행한 뒤, 돌아온 사람들은 밝은 노래에 맞춰 제각기 놀기 시작했다. 바자회에서 물건을 사거나 옹기종기 모여 분식과 술을 먹으며 집회를 즐겼다. 연단에는 집회를 찾은 정당 대표자 및 정치인들이 올라와 3분간 발언을 하기도 하고, 뒤이어 수도 없이 많은 전국 각지 투쟁 사업장에서 온 노동자들이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발언(앞 선 정치인들의 발언 제한 시간이 3분이었으나 이를 지킨 사람이 없음을 뒤이어 오른 노동자가 지적하며 자신도 3분 제한을 지킬 용의가 없음을 알렸었다.)을 이어갔다. 그 중 재능교육에서 오신 분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아직까지 19명이 죽지 않아서 이렇게 힘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발언을 듣다보니 슬슬 발이 시려오고 몸에 추위가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흔들면1241643251.bmp 뜨거워진다는,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뜨거워지지는 않고, 흔드느라 몸이 뜨거워지는 놀라운 성능을 가진 핫팩을 얻어다 흔들며 몸을 녹이다가, 그래도 춥다 싶어 막걸리 한잔으로 몸을 덥히기도 했다. 그래도 추워서, 쌍용차 노조 측에서 제공한 드럼통 난로 근처에 모여들어 불놀이를 하며 그 유명한 최도은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 있었다.


 


 


희망의 텐트 안에서 그들을 만나다


 


시간이 자정을 향해 쥐도 새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을 때, 권변호사님께서 고향에서 함께 노조1273737092.bmp 활동을 했던 동생분을 만나 금속노조 포항지부 텐트 술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제법 큰 천막 안에 20명 가까이 되는 조합원들이 이미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여지껏 학생으로 공부만 했지 직장에서 일이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어 많은 조합원들 사이에 들어가게 된 것이 머쓱했다. 하지만 서로의 얘기를 하며 술 한 잔씩 마시다보니 우리 모두가 사람이거니 싶었다. 나도 결국은 학교를 마치고 노동자가 될 것이기에,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홍초를 탄 술술 잘 넘어 가는 소주를 들고 한 명씩 돌아가며 건배제의를 하다 보니 시간은 다시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뿔싸, 술 마시느라 김진숙 지도위원이 연단에 올라 발언하는 장면을 놓치고 말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각자 김진숙인 것 같이 느껴졌다.


 


박스채로 있던 소주들이 얼추 다 비워져 갈 때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침낭으로 몸을 감싸고 눈을 감았다. 텐트 안에 석유난로가 있던 터라 추울 것이라 생각지 않고 잠들었지만, 얼굴이 얼 것만 같아 몇 번이고 깨서 얼굴을 난로로 향하고 녹이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희망 텐트 안에서의 하루 밤이 지나갔다.


 


 


포위 작전 완수하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권영국 변호사님이 안보였다. 텐트 안을 정리하고 조합원분들께 인사를 한1129920791.bmp 1016269906.bmp후 권변호사님께 전화를 해보니 너무 추워서 차에 가 계셨다고 하셨다. 줄을 서서 아침식사로 준비된 육개장을 받아 배를 든든히 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바자회에 진열된 물건들이 서리를 맞고는 지난밤이 얼마나 추웠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집회를 열었던 장소를 모두 같이 청소하고 다시 연단 앞에 모였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공장을 갖가지 색띠로 묶는 또 하나의 의식(?)을 가졌다. 상당히 주술적인 공장 포위 작전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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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은 아니었다. 우리는 2년여 전 77일 간의 파업 현장이었던 쌍용자동차 공장 외벽을 따라 정반대 편의 문까지 행진을 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거나 노동가요를 부르기도 하며 그 큰 공장을 돌았다. 2년여 전 파업 당시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었던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출입문을, 이제는 사설 경비업체 직원과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로 공장 바닥에 썼다는 “정리해고 철회”라는 문구는 경찰들이 버스로 주차를 하여 가렸기 1321566135.bmp때문에 볼 수 없었다. 한참을 걸어 정문에서 정반대 편에 있는 문에 도착해서 정리집회를 가졌다. 각 조합의 장들이 한마디씩 한 후, 1박 2일 동안 고생한 모두에게,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싸워갈 해고자들과 그들에게 연대할 모두에게 수고했고 또 수고하자는 포옹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 이곳에서 처음 보았지만 줄지어 맞잡은 손들이 너무나도 뜨겁게 느껴졌다.


 


 


추신 ; 우리는 왜 희망이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이 쌍용자동차와 노동자들 간의 분쟁을 보며 왜 절망적이라고 표현하고, 이 분쟁의 해결을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 분쟁은 그들 간의 문제이며 그들만이 해결해야 할 주체인데, 내가 끼어드는 것은 아닐까? 법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계약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자면 계약 당사자인 그들의 문제에 우리가 희망이니 절망이니 하며 참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차 희망텐트의 날에 참석했던 수많은 투쟁사업장의 노조원들을 떠올려 보았을 때, 1131560824.bmp비정규직이니 부당해고니 하는 노사 갈등의 문제들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유성기업, 발레오전장, 풍산, 인천공항 세관, KEC, 현대자동차, 한진중공업, 기륭전자…… 이 날 집회를 찾은 투쟁 사업장 노조였다. 그 외 셀 수도 없이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소외. 이는 결국 내 이웃과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며, 내가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는 순간 나의 이야기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회사와 노동자 간의 계약을 상대적 강자인 회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러한 상황을 정치계와 법조계가 묵인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합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기까지 이르렀다면,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하는 것은 양심적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이 절망의 공간에서 희망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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