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변론] 차벽에 대한 위헌 판결에 대한 아쉬움

2011-07-26 191


차벽에 대한 위헌 판결에 대한 아쉬움


 


 


글_박주민(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정부가 국민을 모두 잠재적 범법자로 보고, 철저히 차단하고 배제할 수 있을까? 가능하지 않다는 데 크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경찰버스들로 서울광장을 둘러싸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 이래 2009.5.29. 하루 동안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를 위하여 경찰버스들을 철수하여 서울광장에의 출입을 허용한 이외에는 2009.6.4. 오전까지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출입하거나 통행하는 것 일체를 제지하였다. 최근 경찰의 위와 같은 차벽설치에 대해 ‘지나치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기에 위헌이다’라는 판결이 헌법재판소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그 동안 한 번도 그 위헌성에 대해 판단되어 오지 않았던 경찰의 차벽설치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단계의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기준은 ‘불법폭력시위가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덜 제한적인 조치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단 차벽을 설치하지는 말아라’는 것이며, 두 번째 기준은 ‘덜 제한적인 조치를 통해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차벽을 설치하되 집회와 관련 없는 일반인들의 통행이나 여가선용 등에 방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 두 가지 기준을 위반하여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면 그 행위는 위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그 동안 문제시 되어 왔던 차벽을 일정한 요건 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매 사안마다 경찰의 차벽설치행위가 위 두 가지 기준에 부합하느냐를 구체적으로 다투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좀 더 근본적으로 차벽설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헌성을 확인해줄 수는 없었을까? 아마 헌법재판관들은 차벽이라는 유용한(?) 수단이 없으면 무시무시한(?) 불법폭력시위를 막을 효과적인 수단이 없을 것이니 필요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은 타당할까? 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는 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착각에 기반 한 것은 아닐까? 여기서 필자가 기회만 되면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제 그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왔으면 하지만 이번 판결을 기해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집회가 과연 폭력적인가에 관한 것이다.


 


경찰 등은 집회나 시위를 관리함에 있어 자신들이 법적용을 엄격(?)하게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집회나 시위가 그 만큼 과격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왔다. 그러나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의 집회·시위 중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불법·폭력시위’는 전체 집회의 0.5%에서 0.7%대로 상당히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footnote]출처: 경찰청 홈페이지[/footnote] 그리고 그래프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평택미군기지이전반대와 한미FTA반대집회가 있어 대규모 시위가 많았던 2007년의 경우도 전체 집회의 0.5% 정도에서만, 촛불집회로 몸살을 앓았다던 2008년의 경우도 검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집회 중에 단 0.66% 정도에서만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footnote]출처: 검찰청 홈페이지. 『2008.5.2.~8.15. 총 106일간 지속, 집회 횟수 연 2,398회, 폭력시위 16회』[/footnote] 유럽국가 중에서도 집회에 대해 상당히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도 1997년 기준이지만 전체 집회 중에 거의 2.4%에 해당하는 집회가 폭력시위였던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집회문화는 거의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국책연구기관인 형사정책연구원은 ‘경찰의 강경한 집회·시위 진압이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폭력 집회의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특히 이 연구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2008년 촛불집회 당시의 차벽 설치 등은 오히려 시위의 폭력성을 증가시켰다’고 진단했다.[footnote]한겨레. 2010.3.4.자 기사: “경찰의 물리력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돼야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규정으로 인해 과잉진압 실태가 지적되고 있다”며 △집회의 불법성 판단 기준 △강제해산 방법 △시위자의 태도에 따른 단계적 대응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미국의 집회·시위 관리지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footnote] 이러한 연구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67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사회혼란에 관한 자문위원회(The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n Civil Disorders)’를 조직하여 도심폭동 등을 조사하도록 한 결과, 조사된 24개 폭동 가운데 절반가량이 경찰의 시위관리 잘못으로 폭동이 시발된 점을 지적한 바 있으며,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로 인하여 조직된 ‘폭력의 원인과 방지에 관한 위원회(National Commisson on the Cause and Prevention of Violence)’ 또한 ‘집회시위의 통제에 있어서 과도한 물리력의 사용은 시위를 오히려 과격하게 만들 수 있어 현명한 방법이 아니며, 시위를 존중하고 이와 타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지적하였다.[footnote]<도심대규모집회 불허정책 위헌성 검토>, 국회입법조사처, 12-13쪽[/footnote] 따라서 우리나라 집회 중 폭력집회의 비율이 적은 것도 적은 것이지만 그나마 벌어지고 있는 폭력집회 중 상당수가 경찰의 과잉한 대응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집회나 시위에 과잉하게 대응하는 것이나 차벽을 설치하여 집회은 최갑수 교수가 지적한 대로 현 정권이 국민을 잠재적인 폭도로 보는 ‘폭민관’(暴民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footnote]경향신문, 2009.2.15.자 칼럼: “현 정권의 폭민관”[/footnote] 섬겨야 하는 국민이 아니라 억눌러야만 하는 폭도들에 대해서는 ‘과잉한 수단’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들어줄 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위와 같다면 경찰 등이 집회나 시위에 대해 무리한 법집행을 할 실질적 이유도 없고, 특히 집회시위의 폭력성을 오히려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차벽을 설치할 정당성(폭력행위를 막는다는)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집회나 시위에 대한 인식을 의심해 보고, 이런 실증적인 근거들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면 차벽에 대한 근본적인 판단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존 B. 베리가 지은 ‘사상의 자유의 역사’라는 책은 ‘인간의 뇌는 게으르다’는 말로 사상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의 뇌는 게으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가진 자와 자유롭게 토론하거나 혹은 자유롭게 연구하지 않으면 기존에 배운 바대로 혹은 관습대로 판단하고 사고한다는 것이고, 결국 인류와 역사의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니 가지게 된 ‘폭력집회에 대한 이미지’, ‘우리나라 집회는 폭력적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지 않고 게으른 뇌에 따라 생각해서는 집회의 자유는 점점 더 형해화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2010년 집회시위의 현황과 문제점


 


사실 이미 집회의 자유는 상당히 위축되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집회·시위의 발생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footnote]자료출처: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규약 이행에 관한 제4차 국가보고서 초안(2011.1) 작성: 경찰청[/footnote]















































연도


2005


2006


2007


2008


2009


발생건수


11,036


10,368


11,904


13,406


14,384


참가인원


2,928,483


2,617,893


2,327,608


3,082,069


3,092,668


미신고 불법집회


1,001


826


588


3,155


980


불법폭력시위


77


62


64


89


45


경찰부상자


893


817


202


577


510


 


그런데 2010년에는 단 8,811회의 집회·시위만이 발생했다. 이는 2009년도의 14,384회에 비해 무려 38%가 감소한 것이다. 이를 두고 경찰관계자는 5월 1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3년간 수사당국이 집회·시위 참가자에게 무조건 법을 적용해 입건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시위꾼을 위축시켰다. 그 효과가 지난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footnote]국민일보, 2011년 5월 18일, 『집시법 위반 ‘수사권 남용’ 위험수위·····집회 시위 확 줄었는데 기소·무죄율은 확 늘었다』[/footnote] 과연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집회·시위가 평년과 같은 수준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불법폭력시위가 줄어들었다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과 집시법은 어찌되었든 평화로운 집회에 대한 보장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회·시위 자체가 급감하였다는 것은 위 경찰관계자의 발언대로 ‘집회·시위가 위축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집회·시위가 위축되었다 하더라도 법을 엄정하게 집행한 결과로 그러하였다면 이 역시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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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찰의 집시법위반에 대한 기소와 그 결과를 보면 위와 같은 반론은 그리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6년부터 2010년간의 기간 동안 검찰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은 크게 늘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집시법 위반 혐의로 법원에 접수된 건수는 2006년 206건 이후 매년 늘어 2010년에는 501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5년 전보다 2.5배 늘어난 수치다. 특히, 2010년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집회와 시위가 크게 줄었음에 반하여 기소는 급증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footnote]국민일보, 전게 기사[/footnote]


 


반면에 집시법위반혐의에 대한 무죄율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집시법 위반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비율은 2006년과 2007년에는 2%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8년 3.1%(15건), 2009년 4.0%(20건)으로 증가하더니 2010년에는 7.4%(35건)로 크게 뛰었다.[footnote]국민일보, 전게 기사[/footnote] 전체 기소 범죄에 대한 무죄율이 2 내지 3%정도에 그치는 상황에서 7.4%는 매우 높은 수치이다.


 


결과적으로 집회·시위에 대한 무리한 기소를 포함한 경찰권의 남용이 있어 왔고, 이는 실질적으로 집회·시위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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