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개악, 이렇게 막아냈습니다.

2010-07-01 49




집시법 개악, 이렇게 막아냈습니다.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21조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그 선언이 늦고 불완전하게나마 본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세종시 수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과 함께 6월 국회의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단연 한나라당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라 함) 개정안 강행처리를 막아낸 것을 들 수 있다. 이번 집시법 개악이 저지된 것은 ‘집시법’의 가장 상징적인 독소조항의 효력을 상실시켰다는 의미를 넘어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지속적이고도 끈질긴 활동을 통해 야간 또는 심야시간대에 전면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규정의 문제점을 이슈화하고 결국은 개악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개악저지활동 과정’으로서의 의미와 시사점도 크다 할 것이다.

 2009. 9. 24.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제10조에 대하여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면서 2010. 6. 말까지 해당 조항의 잠정 적용을 명하였다(2009헌가25). 그 이후 법 조항이 위헌이기는 하지만 당분간 계속 적용되어 기소도 하고 재판도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집시법을 둘러싼 논란은 국회로 넘어왔다. 한나라당은 재빨리 2009. 11. 17. 야간옥외집회 금지라는 틀은 그대로 둔 채 금지 시간을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조진형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6606). 그리고 2010. 2. 16. 이를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한 후 2월부터 6월까지 매 임시국회마다 이 안을 처리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사진 출처 – 민중의 소리 (http://photo.vop.co.kr/photodata/208060152778.jpg)]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다수(5인)의 의견은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에 비춰 야간집회 금지를 명시한 현행 집시법은 그 자체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안은 야간옥외집회금지를 일률적,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틀은 그대로 둔 채 금지 시간만을 일부 조정한 것이어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도 반하고 위헌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헌재 결정의 취지를 살려 집회의 자유에 대한 위헌적 통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집회에 대한 시간적 제한을 없애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헌법재판소가 누차 강조해온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결정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6월까지 집시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집회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져 무법천지가 될 것이고 야간집회는 폭력집회 위험성이 커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면서 6월 내 처리 의도를 거듭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막기 위한 전방위적인 고민과 활동을 하였다. 2010년 초부터 각종 기자회견과 국회의원 접촉, 의견제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민변 역시 집시법 위헌제청 변론 과정부터 시작하여 집시법 개악 저지 활동에 참여하였다. 인권단체와 함께함은 물론 2010. 3. 23. 과 4. 26. 두 번에 걸쳐 한나라당 집시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법률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3. 24. 국회 공청회에 참가하여(박주민 변호사)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인권단체와 민변은 행정안전위 민주당 간사 의원을 만나는 등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집시법 개악을 막는 활동에 힘을 쏟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계속하였고, 6. 28. 에는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가능성에 대비하여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악 논리를 반박하는 긴급의견서도 제출하였다.

 6. 2. 지방선거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는 국민의 입을 막지 말라는 ‘촛불’의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여전히 세종시 수정안 강행과 집시법 개정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경찰도 ‘집회·시위 신고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여 시민이 집회시위 금지요청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경찰의 이해에 부합하는 집시법 개정 시도를 하였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인권단체는 6. 14. 기자회견을 여는 등 집시법 제10조 삭제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6월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6. 16. 원내부대표 회의에서 집시법 제10조 개정안을 행안위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하는 등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6월 국회의 마지막 7일간 국회는 요동쳤다. 한나라당이 6. 23.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수정안을 일방 통과시키자 드디어 논점이 폭발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인권사회단체들도 국회 안팎에서 필사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였다. 그 일지는 아래와 같다.



○ 6. 22.(화) 16시-17시 인권사회단체 대표단,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면담.
                  민변 김선수 회장 참석하여 집시법, 경직법, 개인정보보보호법, SSM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 전달.

○ 6. 23.(수)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나라당이 종래 10시-6시 금지안을
                  11시-6시로 수정한 안을 상정하여 야당 의원 퇴장한 상황에서 표결처리.

○ 6. 24.(목) 행안위 전체회의에 집시법 개정안 상정.
                  – 오후 1시, 각 인권사회단체 관계자와 민주당 백원우 의원 등 민주당 행안위원 긴급 면담 진행.
                    인권단체연석회의, 민주법학연구회, 진보연대, 참여연대, 민변 등 참여하여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실효시키는 것 외에 어떠한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설. 민주당에서도 단체 의견을 경청하고
                    최대한 집시법 제10조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 밝힘.
                  – 오후 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 행안위 회의장 점거하여 농성 진행. 이후 밤샘 농성 진행.
                  – 우윤근 법사위원장, 집시법 개정안 행안위 일방 통과되어도 여야 합의되지 않는 한
                    법사위 상정 않겠다는 입장 표명

○ 6. 25.(금) – 9시 민주당 긴급 의총. 인권단체와 민변, 민주당 의원 전체 집시법 관련 면담 진행.
                  – 10시 집시법 개정안 반대 인권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국회 정론관).
                    민변 김칠준 부회장, 박주민, 류제성, 서선영 변호사 참석
                  – 안경률 행안위 위원장, 집시법 일방 강행처리 않겠다고 약속하여 민주당 농성 풀고 행안위 협의 진행.

○ 6. 27.(일)  한나라당, 민주당에 수정안 제시.
                   △야간옥외집회 금지시간 밤12시부터 다음날 오전5시로 수정
                   △’주최자가 옥외 집회의 성격이나 목적상 부득이한 사유를 소명하고
                       옥외 집회 장소의 거주자나 관리자의 동의를 받는 경우 불허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 추가 내용

○ 6. 28.(월) – 10시30분, 인권사회단체 한나라당 집시법 개악반대 기자회견(한나라당사 앞).
                     민변 박주민 변호사 참여
                  – 민변,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 논리에 대한 긴급 의견서 제출




 6. 28.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집시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지 않기로 합의하였고 결국 6월 내 강행처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7월부터 야간 옥외집회는 허가제의 굴레를 벗게 되었다. 검찰은 기존에 야간옥외집회 금지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들에 대해 공소취소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여당이 압도적 의석을 점하고 있는 국회에서 우리는 매번 좌절과 분노를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집시법 개악저지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안겨주었다. 야간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과 6. 2. 지방선거의 민심이 기본이 되었음은 물론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론을 환기하고 국회를 설득하고 감시하는 활동을 한 각 단체의 활동이 없었다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듯 6월 국회의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이후 국회에서 정부여당은 야간옥외집회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며, 나아가 ‘마스크 금지 법안’ 등과 같은 다른 악법을 줄 세워놓고 있다. 집시법 제10조 중 ‘시위’ 부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아직 남아있고, 경찰은 야간옥외시위는 헌재에서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야간옥외시위는 엄격히 규제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정리 : 송상교, 서선영 상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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