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를 위한,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대한민국 제6차 국가보고서 심의 대응기
황인형
저는 그간 주로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에서 시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아동・청소년 보호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서 공부하고, 탈시설을 목표로 하는 연구와 공론화 활동에 조금씩 참여해오고 있었습니다. 제 일을 한다고 바빠 국제연대활동에는 참여한 경험이 없었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다른 멋진 변호사님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감사한 마음, 약간의 부채감을 가지고 지내왔습니다. 국제 인권규범에 관해 들어보기는 했지만 ‘고문방지협약’이라 줄여 부르는, 유엔의 「고문 및 그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국제연대위원회의 김진 변호사님께서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제출된 제6차 국가보고서의 심의 대응에 참여할 것을 청해주셨을 때, 저의 무식이 부끄러웠습니다. 당시 상황이 잘 기억이 안 날 정도지만 “제가요?” 같은 반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답은 못 했지만, 점차 한국 정부가 장애인, 아동, 이주민 등 소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사실상 감금 상태로 방치해온 것에 대해,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고문’인가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심의대응 사무국에서 성심껏 주최해주신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협약과 유엔 문건들을 살펴보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시민사회 보고서로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런 방식의 보호제도는 공무원에 의해 자행되거나 묵인된 비인도적이고 모멸적인 처우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2024년 6월, 시설수용 피해 생존자이신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님과,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님을 포함한 12명의 현지 출장팀이 꾸려졌습니다. 대한민국 심의 담당 국가보고관을 파악하고, 사이드이벤트와 시위를 기획하고, 주제를 분담하여 로비문서를 준비하고, 여러 유엔 특별보고관과 관련 단체 미팅을 조율하고,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유엔 청사 통행증을 신청하는 등의 실무가 숨 가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미 경험 많으신 여러 분들께서 일사불란하게 업무를 처리해주셨는데, 저는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를 되뇌며 상황을 따라가기만도 벅찼던 것 같습니다.
2024년 7월 7일 일요일,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밟아보는 유럽 대륙이었습니다. 대응팀은 곧바로 유엔 제네바본부 근처 굿네이버스 제네바 사무소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시민사회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을 요약하고 쟁점별로 추천 질의 목록을 만들었고, 다음 날 있을 사이드이벤트에 필요한 원고와 화요일 있을 NGO 브리핑 원고를 준비했습니다. 장시간 비행 이후 다들 피곤할 만도 했을 텐데, 뜻을 함께 하는 좋은 분들과 작업을 하는 것이 즐거웠는지 시간은 금방 지나가 밤늦게 모두 함께 트램을 타고 퇴근하였습니다.
7월 8일 월요일 오전엔 두 분 시설수용 피해 생존자의 경험을 청취하고, 과거 시설수용 정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임 인정과 적극적인 탈시설 정책의 도입을 촉구하는 사이드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행사 장소를 급히 섭외하고 민변 유튜브 생중계를 준비하느라 서채완 변호사님, 한림세영 간사님께서 특히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그 덕인지 행사는 물 흐르듯 잘 진행되었습니다. 오후엔 팀을 나누어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사법특별보고관실 등 관계자를 만나고, 다함께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과 교육권 특별보고관실의 사무관(desk officer)을 만났습니다. 정부와 언론의 NGO들에 대한 적대적 서사와 탄압, 인권위원의 전횡, 학생인권조례의 폐지 등에 관하여 한국의 상황과 우려를 전했는데, 적극 경청하는 유엔 사무관들의 모습과 공감의 제스쳐가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고 힘이 되었습니다.
7월 9일 화요일은 유엔 제네바본부 앞에서 시설 수용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인정을 촉구하고 시민사회 보고서에 담긴 여러 의제를 알리기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조형물 보수 공사 소음이 심해 장소를 조금 옮겼다가 현지 경찰관들이 찾아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별 탈 없이 진행하였습니다. 오후에는 대한민국 담당 국가보고관들과 박경인, 손석주 두 분 당사자의 면담이 성사되었습니다. 국가보고관들이 면담 요청에 응한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피해경험을 듣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심의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이어 NGO 브리핑을 위해 처음 가 본 고문방지위원회 회의장은 상상보다 엄숙한 분위기를 띄었습니다. 위원들에게 사방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모여 앉아, 각자 2-3분 내외로 준비한 원고를 읽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부분의 질문이 나올까 조마조마했고, 실제로 질문에 답하기도 꽤 어려웠습니다.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제한된 지식 내에서 억지로 답하려 하기보다, 과감하게 ‘나중에 확인해서 메일 보내겠다’ 하고 넘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브리핑 이후에는 각자 맡은 부분의 질의사항에 관해 조사하고 의견을 정리하여 보내는 작업을 밤까지 계속했습니다.
7월 10일과 11일 양일간은 국가보고서 심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후의 일정은 심의를 들으며 현장에서 위원에게 추가 질문을 추천하거나 정부 답변 중 정정 또는 확인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고, 심의가 마무리되면 관련 정보를 조사하거나 의견 및 추천 질의를 정리하여 위원에게 보내는 작업의 반복이었습니다. 정부 대표단의 매우 형식적이고, 또 많은 경우 질의와 무관한 답변을 들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가, 시민사회 보고서나 로비문서를 토대로 국가보고관이 질의를 하면 큰 보람도 느꼈습니다. 속기록을 다 같이 작성하며 각자 실시간으로 정부 답변의 문제점을 메모하거나 대화방에서 논의했는데, 서로 호흡이 잘 맞아서 좋았고, 곧바로 허점을 지적해 위원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경험 많으신 변호사님/활동가님들의 능력이 마법 같기도 하였습니다. 11일 2차 심의가 마무리 된 후, 대응팀은 호텔 로비에 모여 앉아 끼니도 잊은 채 새벽까지 최종견해에 들어갈 추천 권고 리스트와 보도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에 가는데, 일주일이 꿈만 같았습니다. 적극적이고, 인정 많고, 배려심 가득하고, 유능하고 또 유쾌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헤어짐이 아쉬웠습니다. 일만 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유엔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트램을 타고, 아름다운 레만 호수 풍경을 보고, 식료품점의 아이스크림과 와인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누군가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열쇠를 안에 둔 채 사무실 문이 잠겨버리는 등의 곤란한 해프닝도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위원회의 최종견해를 기다리는 것도 두려우면서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고문방지위원회의 최종견해는 7월 26일 발표되었습니다. 이전부터 반복 지적되어 온 국가보안법, 사형제의 폐지, 과밀수용 개선 필요성 등 쟁점 이외에도, 과거사 및 시설수용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최초의 권고가 있었고, 군 사망사고에 대한 독립적 조사와 책임 규명, 군형법상 추행죄의 폐지, 이주구금 제도 개선, 젠더 기반 폭력의 사법조치 강화 등 시민사회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한 권고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탈시설 정책의 도입 권고를 기대했기에 아쉽기도 했으나, 많은 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한국의 제도를 국제 인권규범에 맞추어 바꾸어 나가는 일, 그런 어렵고도 중요한 작업에 제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초심자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배려・격려해주시느라 더 고생하셨을 여러 분들께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