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3사의 불공정행위와 영화산업의 구조적 개선 과제]
– 이혁 회원-
1. 들어가며: 영화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 현주소
국내 영화산업이 전례 없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3년 12월 기준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스크린 점유율이 93.5%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들과 제휴 관계에 있는 이동통신 3사(SKT, KT, LG U+) 역시 통신 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 독과점 구조는 영화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이들과의 관계에서 실질적인 협상력을 갖지 못한 채, 일방적인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 정산 투명성의 근본적 문제
영화산업의 수익분배 구조는 여타 산업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인 상품 거래와 달리, 영화는 상영 기간의 입장료 수입을 정해진 비율로 나누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부금’이라 부르는데, 이 부금 정산 과정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멀티플렉스 3사는 배급사에서 실제 영화표 발권 상세 내역이나 할인권 사용 현황, 통신사 제휴 할인 내역 등 정산의 기초가 되는 자료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는 마치 식당에서 상세 내역 없이 총액만 제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할인 제도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액 불일치다. 공정위 신고를 준비하며 영화 관계자들과 변호사들이 실제 발권한 티켓을 살펴본 결과, 이해하기 어려운 금액 차이가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14,000원짜리 영화 티켓을 통신사 할인으로 8,500원에 구매했는데, 실제 발권된 영화관 영수증에는 7,000원으로 표시된 것이다. 소비자가 실제 지급한 8,500원과 영수증상 금액 7,000원 사이에서 1,500원이 사라진 셈이다. 이는 단순한 회계상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금액으로 정산되어야 할 부가가치세와 영화 발전 기금이 실제보다 적게 책정되어 온 중대한 사안이다.
3. 공정위 조사와 변화의 움직임
다행스럽게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멀티플렉스 3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마쳤으며, 2025년 초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 부당한 공동행위,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진행될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정산 투명성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개선 방안 도출이 기대된다.
4. 상생협의체 구성을 위한 노력
영화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상생협의체 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공정위 신고를 준비하며 발견한 한 가지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자. 통신사 앱에서 15,000원짜리 티켓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11,000원을 현금으로 내고 4,000원은 마일리지로 결제했다. 그런데 극장에서 실제 발권된 영화표의 영수증에는 금액이 10,500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소비자가 실제 지급한 11,000원과 영수증상 금액 10,500원의 차이인 500원은 어디로 갔을까? 한 편당 500원씩 발생하는 이러한 차액을 전체 영화표 판매량으로 환산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된다. 더욱 문제는 이에 대한 책임 소재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사들은 10,500원으로 발권되는 영수증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며, 4,000원의 마일리지 사용분에 대한 정산 여부도 정확히 답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할인과 마일리지 정책은 영화관과 통신사 간의 입찰을 통해 결정되었지만, 정작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물론 이는 신고 과정에서 발견된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처럼 실제 결제금액과 발권 금액의 차이조차 제대로 정산되지 않는 현실은, 단순한 회계상의 문제를 넘어 영화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상생협의체의 구성이 시급하다. 협의체를 통해 정산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할인 및 마일리지 정책에 대한 공정한 논의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5. 개선을 위한 구체적 과제
영화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정산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할인내역의 투명한 공개, 정산 근거자료의 의무적 제공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현재 추진 중인 상생협의체가 실질적인 논의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영화관과 통신사가 단독으로 결정하고 있는 할인정책에 대해서도 사전협의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할인 자체를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할인으로 인한 수익 감소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수익배분 기준 역시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는 협의를 통해 공동으로 설정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영화관과 통신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창작자들의 정당한 몫이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6. 나아가며
영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우리 시대의 문화적 자산이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이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결코 과도하지 않다. 투명한 정산 체계의 확립, 공정한 협상 구조의 구축, 그리고 합리적 가격체계의 도입은 건강한 영화산업 생태계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와 상생협의체 구성이 우리 영화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민변 민생경제 위원회를 포함하여 나 역시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