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광화문 서십자각 터, 농성장의 밤 / 양정규 회원

2025-03-30 135

 

광화문 서십자각 터, 농성장의 밤

– 양정규 회원

 

2025. 3. 8. 윤석열이 집으로 돌아가자, 시민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돌아가지 못하였다. 법원은 ‘눈을 질끈 감고’ 형사소송법 제정 후 70년 넘게 일관해온 구속기간 계산법을 돌연 바꾸어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을 취소했고, 황당한 법원의 결정에도 검찰 역시 약속이나 한 듯 ‘눈을 질끈 감고’ 순순히 그를 풀어주었다. 보다 못해 거리로 광장으로 뛰쳐나온 시민들만 ‘눈을 부릅뜨고’ 밤을 지새는 날들의 연속이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손을 흔들며 구치소 밖으로 나온 그자가 이제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란 우두머리의 석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자, 광화문 서십자각 터에서는 우리 모임을 비롯하여 각 시민단체 대표들이 비상행동 의장단의 이름으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곧이어 몇몇 야당 의원들과 정치인들, 대학생들이 동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여기에 저마다 어떻게든 힘을 보태려는 시민들이 농성장에 모여들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불씨 하나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절박하고 결연한 마음들이 농성장의 밤을 소중히 밝히고 있다.

철야를 할 때마다 서십자각 터의 의장단 천막에서 출발하여 광화문 앞까지 대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무방비 상태로 늘어서 있는 천막들과 거기 걸린 현수막 문구들을 살펴본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절박한 마음들이 각오했을 많은 것들을 헤아려본다. 그러면 농성장의 밤을 책임지는 지킴이로서는 자꾸만 농성장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염없이 돌고 또 돌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집시단 노란 조끼를 입고 적막해진 농성장 주변을 끊임없이 돌다 보면, 밤을 지새는 시민들과 매 바퀴마다 마주치게 된다. 처음에는 목례였던 것이 다음에는 가벼운 인사말이 되고,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작은 이야기 꽃으로 피어났다.

장안동에서 오셨다는 한 중년의 여성은, ”20년 넘게 장사하다가 1년만 쉬려고 지난 11월에 접었는데 계엄이 터져서 쉬지도 못해요. 밤사이 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불안해서 그냥 혼자라도 지키려고 매일 저녁 시간에 맞춰서 나와요”라고 말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는 정말 아침이 밝을 때까지 꼬박 밤을 새며 농성장을 쉬지 않고 돌고 또 돌았다. 한남동에서부터 계속 투쟁해왔다고 하는 한 할아버지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여기서 농성을 시작한 후 일주일간 밤에 잠을 자본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매번 농성장과 집회에서 마주치는 다부진 체격에 경광봉을 든 한 청년도, 계엄 이후 하던 일도 멈추고 매일 밤 철야 농성을 하며 인근 지역 순찰을 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생업은 하셔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으나, 그는 “어차피 윤석열 때문에 일도 안 되고, 모아놓은 돈이 있어서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에도 광화문 농성장에서는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평화로운 방식으로 윤석열이 한순간에 망가뜨린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십수일이 넘도록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의장단과 정치인들, 그리고 대학생들은 매 순간이 그 자체로 생사를 건 투쟁이다. 그들이 견뎌내고 있는 영원과도 같을 순간들과 그 순간을 가득 채우는 고통을, 나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자신이 한순간에 망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보낸 계엄군 총칼에 맞선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의 절박한 외침으로 되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아직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절대, 다시는, 윤석열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그 어떤 사건보다 최우선이라고 선언한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심판의 변론을 종결하고도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좌고우면하고 있다. 이토록 탄핵사유가 명백한 사건이 앞으로도 없을 정도인데도, 선고일조차 지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 헌법재판관들의 귀에 대고 가장 큰 목소리로 고함을 치고 싶다. 당신들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이, 이 나라는 온갖 궤변과 억측, 폭력과 불법이 난무하는 수렁에 아주 빠르게 빠지고 있다고. 나라 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윤석열을 파면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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