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여성들은 언제나 시대를 넘어 광장에 있었습니다. – 3. 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참가 후기 – / 이은심 회원

2025-03-30 60

여성들은 언제나 시대를 넘어 광장에 있었습니다.

– 3. 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참가 후기 –

– 이은심 회원(법무법인 혜석)

 

생각해보면 여성의 날은 그 시작부터 광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은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에서 비롯됐다. 당시 1만5천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장시간 노동하지만 저임금으로 생계가 위협받는 성차별에 항의하며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왔다. 1)

한국에서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던 때는 1985년 3월 8일인데, 서울 명동에서 300여 명의 여성들이 전쟁과 군사독재로 단절되었던 여성의 날을 부활시키고 성평등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거리로 나왔다. 2)

한국여성대회가 40회를 맞은 2025년 3월 6일, 독재의 망령이 세월의 벽을 넘어서 국민들을 위협하는 계엄을 목도하며 여성들은 또다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거리로 나섰다. 여성들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시대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시대와 세대를 이어 언제나 광장에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 여성신문 (2025. 3. 7.), 2025년에도 ‘여성의 날’이 필요한 이유,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9072 (2025. 3. 26. 열람)

2)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공지사항, [여성대회] 2025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개최 (3/8(토), 광화문 동십자각), https://women21.or.kr/index.php?mid=notice&page=6 (2025. 3. 26. 열람)

 

한국여성대회에서 주어지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성차별적인 사회에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주어지는데, 2025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최말자씨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년)’이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으로, 1964년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중상해죄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수사·사법기관은 “결혼하면 끝나는 일”이라며 최말자씨에게 가해자와 결혼할 것을 강요하는 등 황당한 2차 피해를 저질렀지만, 최말자씨는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60살이 넘어 여성 인권 공부를 시작했고, 56년 만의 ‘미투(Me too)’를 통해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5년여 만에 재심 개시를 이끌어냈다. 3)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최말자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수상 소감을 말씀하셨다.

또한 올해 한국여성대회는 여성이 만들어낸 성평등의 가치를 성소수자운동과 연대하여 더욱 확장하였다. ‘올해의 디딤돌상’은 동성 배우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책임을 촉구하면서 건강보험 동성 배우자 피부양자 인정소송에 나선 김용민·소성욱 부부와 변호인단에게 주어졌다. 이성애중심적인 혼인제도는 애정과 신뢰에 기반한 다양한 연인과 가족들을 국가의 보호에서 배제시키며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실질적인 부부로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동성 배우자를 차별하고 혼인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3) 한겨레신문 (2025. 3. 6), 올해의 여성운동상에 최말자·온지구씨,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85673.html (2025. 3. 26. 열람)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소송에서 더 나아가 혼인평등소송에 나선 11쌍의 커플들은 ‘혼인과 가족’의 의미를 질문하며, 과거 호주제 폐지 소송이 이루고자 했던 평등한 헌법적 가치를 계승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보라색 깃발과 어우러진 성소수자의 무지개 깃발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은 금기를 넘어서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이번 3. 8 한국여성대회에 가기 전에는 이제 예전처럼 젊고 건강한 몸이 아닌데, 오랜 시간 길에서 어떻게 버틸까 싶어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70대가 훌쩍 넘는 나이에도 찬 바닥에 앉아서 누구보다도 여성의 날을 즐기고 계시는 과거의 은사님을 뵙고 나니,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집회 맞춤 복장으로 야무지게 츄리닝을 챙겨 입고 배낭에 핫팩과 1인용 방석까지 싸들고 여유롭게 참석하신 민변 여성인권위원회의 선배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던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앞서서 광장을 지킨 여성들이 있어서 뒤따라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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