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집시단의 기억,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 윤재은 회원

2025-01-28 144

 

집시단의 기억,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 윤재은 회원

 

민변 집회ㆍ시위 인권 침해 감시단 (이하 ‘집시단’)에 합류한 것은 작년 여름 즈음이었습니다. 다른 사건 변호인단을 함께 하고 계시던 변호사님들께서 제안을 해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설명을 듣기로는 집회 시위 현장에 직접 나가 감시 활동을 하거나 조를 짜서 돌아가며 집회 및 시위 도중 연행당한 분들에게 법률 조력을 드리는 것이 집시단의 주요 활동이었습니다. 사실, 대학생 시절 세월호 관련 시위로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유치장에 있던 저에게 접견 와주신 분이 바로 하주희 변호사님이셨습니다(변호사님 감사합니다).

부끄럽게도 집시단 합류 이후로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2월 3일 내란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그날, 저는 충남 당진으로 강아지 이동 봉사를 다녀왔었습니다. 강아지를 안전하게 서울의 임시보호처로 데려다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있었는데 TV화면에 갑자기 ‘비상계엄 선포’라는 속보가 떴습니다(심지어 당시 보고 있던 프로그램은 707 출신들이 출연하는 ‘강철부대W’였습니다).

 

깜짝 놀라 메신저를 살펴보니 난리가 나 있었습니다. 국회 앞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에 저도 바로 택시를 잡아타 국회로 출발했습니다. ‘내가 비록 탱크는 막지 못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포고령으로 부당하게 연행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막겠다, 반드시 돕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집시단도 내란범 탄핵 집회에 집중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내란범을 끌어내리자는 시민들의 집회는 탄핵안이 가결되던 12월 14일까지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이어졌고 여의도, 한남동을 지나 지금도 광화문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집시단 변호사님들과 상근자분들께서 항상 집회 현장을 든든히 지켜주셨습니다.

 

집시단 활동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초반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감이 잡혀 있지 않아 멀뚱히 서 있다가 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때 함께 계신 선배 변호사님들이 큰 의지가 되었습니다. 집회 도중 이동 경로가 막히면 누구에게 어떻게 항의해야 하는지, 참가자 간 시비가 붙으면 어떤 기준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연행자가 발생한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는 큰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탄핵안 가결 이후 윤석열 체포까지 한남동에서 집회를 이어가는 동안 탄핵 반대 집회측과의 마찰이 점점 심화되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강진역 2번, 3번 출구와 한남초 앞 육교는 접경지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를 향해 빨갱이는 기본이요 온갖 혐오 발언들이 고성으로 오갔고, 작은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 경찰이 질서 유지 차원에서 마찰을 일으킨 사람들을 분리하였지만, 이런 일이 점점 잦아지다 보니 경찰이 막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집시단은 각 집회가 맞닿는 부분이나, 경로가 겹치는 부분에 배치되어 최대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게 중재하거나 현장 상황을 채증하였습니다.

 

특히 얼마 전 일어난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보며, 집회에서 집시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사전에 차단하고, 평화적으로 집회가 마무리 되도록 지원하는 집회 현장의 평화 유지군이 바로 집시단이라고생각합니다.

집회 현장에 직접 나가지 못하는 날은 혹시라도 발생할 연행자 대응을 위해 대기하였습니다. 실제로 어느 날 한 분이 집회 참가 도중 연행당해 접견을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경찰은 연행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기각을 받아내기도 했었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고 광장에 서 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집회 현장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집시단 활동을 하는 것 보다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일이 더 춥고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일인데도 시민분들께서는 집시단에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초콜릿, 핫팩, 에너지바, 초코파이, 귤 등등 간식은 물론이고 어느 날은 뒷풀이 자리에서 선결제(!!)를 해주신 시민분도 계셨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오히려 시민분들께 챙김을 받는 느낌이었는데, 노란 조끼를 보면 든든하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시단 활동을 하면서 또 좋았던 점은, 많은 민변 회원님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모임은 아무래도 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위원회가 겹치지 않는 회원 분들과는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집시단에서 많은 회원 분들을 뵙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집시단에는 집회 참여 이후 함께 식사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자주 집회가 열리는 상황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매우 비극적인 일입니다. 다만 앞으로 윤석열이 파면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날까지 집회가 계속 이어지는 이상, 더 많은 회원분들을 집회 현장에서 뵙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역사에 남을 페이지마다 민변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우리 모임 회원들과 환호하며 함께 응원봉을 흔든 장면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납시다! 민변 집시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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