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센터][성명] 대법원의 법원장 후보 추천제 폐지와 위태로운 제도 변경에 반대한다

2024-12-09 72

 

 

 

[성명] 

대법원의 법원장 후보 추천제 폐지와 위태로운 제도 변경에 반대한다

 

1. 최근 대법원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 폐지 입장을 밝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2024. 11. 18. “법원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새 법원장 보임 절차를 마련했다”고 공지한 것이다. 새로운 보임 절차의 핵심은 모든 법관과 직원이 잠정적으로 어느 법원에나 보임될 수 있는 법원장 후보를 추천한 후 법관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법원장을 보임하는 ‘전국 단위 의견수렴’과 한시적으로나마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일부 지방법원장으로 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법관인사 이원화의 예외 인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경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우리 민변 사법센터는 당초 ‘추천제’를 도입한 취지와 목적을 몰각할 수 있는 개악안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2.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사법농단 사태를 반성하면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 및 관료적 사법행정 구조 개선,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 안착에 따른 합리적인 법원장 보임 제도 마련이라는 기조하에 도입된 개선책이었다.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법관들의 의사를 반영한 법원장 보임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고(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2018. 6. 5.자 건의, 전국법관대표회의 2018. 9. 10.자 의결), 이후 약 5년에 걸친 시범실시, 예규 제정, 성과 검토 등을 통해 정착된 제도였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법원장 보임 절차에 법관의 의사를 반영함으로써 사법행정에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사법관료화 우려를 해소하면서 해당 법원 동료들의 신임을 받는 법원장이 재판을 충실하게 지원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얻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제도 변경안에 따르면, 전국 단위 의견수렴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법관들의 법원장 보임에 관한 의견은 정보 부족과 참여율 저조로 힘을 잃게 될 우려가 있고, 법원장 후보 선정에 관한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장의 영향력은 지나치게 커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지위를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종래의 수직적 사법행정 시스템으로의 회귀를 통해 법관과 재판의 법원 내부에서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정한 대안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현 대법원장의 의도는 선하더라도 제도에 내재된 위험성은 언제라도 다시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다.

 

3. 또한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구성・운영을 상호간에 분리・독립하고 심급마다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가 점진적으로 정착되면서, 지방법원장은 지방법원 소속 법관이, 고등법원장은 고등법원 소속 법관이 보임되는 이원화 법원장 제도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제도 변경안은 한시적으로나마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지방법원장 보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 또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의 안정적 추진과 명백히 배치되는 조치이다. 

이러한 제도 변경의 취지는 결국 지방법원장 보임을 원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고충을 해소한다는 것인데, 법관인사 이원화가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왔던 상황을 되짚어 보면, 수많은 지방법원 법관들에 앞서 소수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지방법원장 보임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항소심을 전담하던 법관이 제1심의 사법행정을 담당하고 다시 항소심 법관으로 복귀하는 것은 심급 사이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형해화하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는 점에서도 불합리하다.

 

4. 그럼에도 추천제가 폐지된 배경에는 일각에서 이 제도를 재판지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취임 이래 ‘재판절차 지연의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장이 법관들의 눈치를 보느라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못하고, 일선 법관들은 고법 부장 승진, 법원장 보임이라는 유인이 없어 충실한 근무에 대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평가는 재판 업무 자체에서 자긍심을 느끼는 법관들을 폄훼하는 발상이다. 실제로 어디에서도 법원장 후보 추천제로 인한 재판지연을 실증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 재판지연은 법관 증원과 재판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인기투표가 될 가능성, 인사 이동으로 인해 ‘법원장 후보 추천절차에 참여한 소속 법관’과 ‘해당 추천에 따라 보임된 법원장과 함께 근무하는 소속 법관’ 간 인적 구성이 동일하지 않은 점, 법원공무원은 사후적 의견제출 기회만 보장된다는 대표성의 한계,  책임감 있게 사법행정을 펼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 등도 추천제의 문제점으로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 제시된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문제는 전국 단위 의견수렴에서 더 크게 문제되는 사항들이며,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통해 법원장으로 보임된 법원장들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볼 수 없다.

아울러 제도 변경 과정에서 법원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이 충실하게 이뤄지지도 못하였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 법원장회의 등을 통한 법관들의 공론 과정은 생략한 채 사법정책자문위원회만을 거친 후 일방적으로 11월 법원장 후보 추천제 폐지 및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발표하였다. “사법부 전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다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명분과 달리,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법원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충실히 이뤄지지 않은 것은 지극히 모순적인 모습이다.  

 

5. 어떠한 제도도 완전할 수는 없기 때문에 늘 개선책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진단으로 온전한 처방이 나올 수는 없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보임 권한을 다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시키는 것은 제왕적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관료사법으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사법행정으로의 변화를 역행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법 관료화와 사법농단의 재발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 사법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요구하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으로 ‘합리적인’ 법원장 보임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소속 법관들의 의견 반영과 법관인사 이원화의 정착이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를 허물어뜨리지는 않아야 한다.    

우리 민변 사법센터는 모든 시민들이 충실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사법행정의 퇴행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024. 12. 9.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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