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도시 나가사키 워크숍 후기
– 과거사청산위원회 권태윤 회원
과거사청산위원회는 매년 과거사의 현장을 방문하는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지금까지 광주(5·18), 여수(여순사건), 경산(코발트광산 학살), 제주(4·3) 등 국내의 중요 지역을 방문해오면서, 저희 위원회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외 워크숍을 한번 기획해보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해외 워크숍 후보지로는 주로 중국 난징(일본군 위안소 유적지)을 고려했었는데, 월례회 중간에 장완익변호사님께서 일본 나가사키를 제안하시면서 첫 해외 워크숍은 나가사키로 정해졌습니다. 어쩌면 대일과거사 소송의 사실상 시작은 손진두 선생님의 피폭자건강수첩 사건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다만, 손진두 선생님의 피폭지는 히로시마였습니다)은 , 원폭 피해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과거사청산위원회 해외 워크숍의 첫 시작으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워크숍 일정의 큰 틀은 이동준변호사님께서 준비해주셨고(안타깝게도 워크숍에는 함께 가지 못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양성우변호사님,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경험이 있으신 박규훈변호사님이 같이 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숙소, 군함도 배편 예약과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활동가 분들과의 교류회 등은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가사키 직항 항공편이 코로나 시기에 폐지되어서,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서 약 2~3시간가량 버스를 타야 나가사키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3박 4일의 일정 중, 첫날과 마지막 날은 나가사키에서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워 사실상 이틀 동안 모든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대신 첫 날은 저녁에 도착해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후쿠노유 온천에서 저녁식사와 온천욕을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진 : 후쿠노유온천]
둘째날은 주로 피폭 관련된 지역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구성됐습니다. 오전에는 재일조선인피폭추모비를 참배하고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원폭자료관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이학이 걸려있었는데, 시민들의 반핵, 평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전시관에서는 방금까지 걸으며 보던 풍경이 한때 원폭으로 폐허였다는 사실을 보며 조금이나마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 조선인추모비]
오후에는 원폭의 충격으로 날아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종루를 본 뒤 폭심지에 세워진 나가사키 평화공원을 산책했습니다. 우라카미 천주당은 피폭 당시 대부분 부서져서 일부 외벽만 평화공원 인근에 보전되어 있고, 새로 지어진 성당 옆에는 원폭의 충격으로 날아간 종루(종이 달려있던 건물 꼭대기)와 부서진 석상 등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의 학생들도 수학여행을 와서 현장을 보고 있었는데, 최근 일본에서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를 수학여행지로 잘 선정하지 않는 등 반전·평화 메시지에 관심이 적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는 가장 유명한 상징물인 평화기념상에 대해서도 작가가 군국주의자라는 논란이 있어,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 우라카미 천주당 종루]
둘째 날 마지막 일정은 평화자료관 관람 및 활동가 분들과의 교류회로 마무리했습니다. 평화자료관은 시민들의 힘으로 설립·운영되는 곳으로, 일본의 전쟁책임을 고발하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료관 1층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숙소, 일하던 탄광 등을 재현한 형태로 되어있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에 방문해서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날 때마다, 일본의 전쟁책임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일본 시민의 노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법정에서 강제동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불법성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점을 느끼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진 : 자료관]
[사진 : 교류행사]
세 번째 날에는 오전에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구라바엔(글로버 가든), 오우라천주당을 방문하고, 오후에 군함도를 찾았습니다. 오우라천주당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성당으로, 박물관에서는 일본 천주교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천주당 바로 옆에는 구라바엔은 16세기 나가사키 개항 후 일본에 살던 서양인들이 살던 건물을 모아둔 공원이 있습니다. 구라바엔에서는 가구와 생활상을 전시하는 건물들 사이로 일본 근대화의 창이었던 나가사키 항구와 강제동원 가해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의 조선소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오전 내내 바람이 너무 강해서 군함도에 못 들어가는게 아닌가 걱정했고, 실제 오전에 출항한 배는 군함도에 정박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잦아들었고, 우리는 강제동원의 현장인 군함도를 직접 걸어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볼 수 있는 지역은 군함도의 극히 일부분이었고, 조선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은 통제구역 중에서도 깊은 안쪽에 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섬 대부분은 건물이 무너지고 철근이 노출되어, 일반인이 들어가기에 위험해보였습니다. 군함도로 가는 배 안에서도 군함도에 내려서도 일본인 가이드는 탄광 산업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군함도의 역사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강제동원의 역사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군함도에 세워진 안내판에도 강제동원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진 : 군함도]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이전과 달리 전체 회원 공지를 하지 않고 기존 위원들 위주로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준비하는 해외 일정인데다 나가사키가 작은 도시여서 많은 인원이 함께 가기에 어려움이 많아서 어쩔 수없었지만, 여전히 신입위원들을 많이 모시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많은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를 더 많이 기획하고 준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