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를 맞은 한 회원의 연합산행 후기
– 이진영 회원(대전지부)
산행 후기를 써달라는 요청에 쓴다고는 하였으나, “나에게 있어 민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쓰기가 쉽지 않아졌다.
지금은 대전에 있지만 나는 서울에 오래 살았다. 2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지금은 변호사지만 예전엔 아니었다. 서울에 살았을 때는 시민단체 상근 활동가였다. 그 일을 그만두고 대전에 왔고 변호사로 살고 있다. 그리고 둘 중에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지금이 나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서울서 알고 지내던 변호사님께서 대전까지 오셔서(물론 재판 때문에 오신 거였지만) 민변 가입서를 주고 가셨을 때는 고민이 되었다. 내가 민변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지금의 나에게는 “좋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 먼저이고, 변호사로서의 내가 어떤 사회 참여를 할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변호사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일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후 나는 민변에 가입은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권태기 회원”이 되었다. 이번 산행은 대전지부에서 준비하였고,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였는지 잘 알기 때문에 참석한다고 하였다.
역시나 가을의 대청호는 정말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적어도 뒤풀이 전까지는). 아침 9시 반까지 대전역 근처 구 충남도청사에서 집결하여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대청호로 이동하였다. 지금은 충남도청이 홍성군쪽으로 이전했고, 대전에 남아있는 도청 건물은 근현대사전시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아있는 건물의 2층까지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이고, 해방 이후 3층이 증축된 것이라고 이현주 변호사님이 이야기해 주셨는데, 일제시대에 지어진 부분이 훨씬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고 한다.
대청호에 가기 전에 도청 근처에 남아있는 옛 충남도지사 공관 및 관사촌인 테미오래에 먼저 들렀다. 도청 이전 전까지 실제 관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직장과 집이 너무 가까운 데다 도지사 공관을 중심으로 직급 순서에 따라 나머지 관사가 배정되었다고 하니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산행(이라기보다는 대전 인근 문화유산과 경관을 탐방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은 사단법인 대전문화유산울림의 안여종 대표님이 가이드를 해주셨다. 대절한 버스를 타고 대청호로 이어지는 굽이길을 따라 가는데, 익어가는 감나무의 감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타났다. 대청호가 대전과 청주의 중간 지점에 만들어진 대청댐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것, 그곳에 있었던 수몰마을이 지금은 대청호의 주변에 새로 지어졌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파란 물 아래에 그대로 잠겨 있을 마을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대청호를 둘러싼 길을 오백리길이라 부르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짧은 구간을 골라 걸었다. 잘 닦여져 있는 길은 아니었지만 걷기 좋은 고즈넉한 길이었고, 돌아가는 굽이마다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정말 아름다웠다. 황새바위 전망대에서는 꽃차 시음과 대금 공연까지 준비되어 있었는데,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고생한 우리 지부 김우찬 변호사님과 같이 준비하셨을 것이 분명한(!) 김가미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점심과 뒤풀이는 대전역 근처 친친양꼬치를 빌려 하였다. 1시 반~2시쯤 식당에 도착하였는데, 집에 가려고 보니 6시였다. 중간에 슬쩍 집에 가려다 걸려서 다시 앉게 되었는데, 못 가게 한 변호사님은 나중에 물어보니 기억도 못 하신다. 억울하다.
김우찬 변호사님이 잔뜩 찍어서 공유해 주신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문득 다시 느끼는 거지만, 민변 변호사님들은 인상이 서로 비슷하다. 약간 촌스럽지만 웃는 모습이 어여쁘다. 사실 나도 그렇다. 여전히 나는 권태기지만, 내가 이곳에서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은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았다면 충분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