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위][성명] 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 –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에 부쳐

2024-09-20 90

 

 

[여성인권위원회][성명]

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
–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에 부쳐 

 

 

  1. 지난 8월 말, 딥페이크 성폭력이 대대적으로 공론화된 이후, 가해자들은 그들만의 가상 공간에 모여 서로의 범죄를 두둔하며 ‘딥페이크는 범죄가 아니다’, ‘텔레그램은 잡을 수 없다’, ‘잡혀도 가벼운 처벌에 그칠 거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위악을 부렸다. 그들이 위악을 부리면서까지 두려워했던 것은 피해자들의 연대다. 가해자들은 헛된 위세로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겁먹은 피해자들이 고립되기를 바랐다.

 

  1. 그러나 ‘우리’는 지난 2024. 9. 6. 서울 보신각에 모여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며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였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에 숨어야만 비로소 위악을 부릴 수 있는 그들과 달리 우리의 연대는 떳떳했다.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에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비록 오늘은 울면서 산을 내려가더라도 내일은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갈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포에 떨기보다 부조리에 분노하며, 현실에 좌절하기보다 변혁을 요구한다.

 

  1. 딥페이크 성폭력의 근저에 자리한 그릇된 성적 가치관은 현실에는 발붙일 수 없는 비루한 것이나,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소수의 일탈이 결코 아니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지인능욕, n번방, AV스눕, 소라넷 등 오래된 디지털 성폭력의 또 다른 아류다. 그 오래된 범죄는 텔레비전 속 연예인부터 학교 친구, 직장 동료, 가족에 이르기까지 상대가 ‘여성’이라면 관계를 가리지 않고 품평과 성적 대상화를 일삼던 일상적 성폭력의 변주다. 최근 몇 년 사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성 혐오를 정면으로 내세운 공약과 정책을 남발한 결과 일상의 성차별, 성폭력은 정당화되고 공고해졌다. 정책과 교육의 부재 속에 청소년들이 왜곡된 성적 가치관을 습득하는 동안, 누구도 다른 사람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그 사람의 자기결정권, 인격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폭력이자 범죄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디지털 성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잡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하던 수사기관, 그들도 공범이라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n번방, 박사방의 ‘관전자’들을 솜방망이 처벌한 법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국가적 재난에 이르는 현 딥페이크 사태에서조차 ‘딥페이크 대응 커뮤니티’를 발빠르게 개설하며 ‘가해자의 감형’을 팔아 돈을 벌며 이윤을 챙기는 변호사 시장의 상황은 더이상 직업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선해할 수 없는, 변호사법이 정한 변호사의 사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위법한 행위이자 딥페이크 가해자의 적극적 동조자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1. ‘우리’는 일부 자극적인 사건만을 부각시키는 단발성 대책이 아닌, 디지털 성폭력 그 자체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사회에 깊이 자리한 성차별적 문화를 전복시킬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그 시작은 단연 딥페이크 성폭력 전반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다. 디지털 성폭력의 근절은 형사체계 전반의 재고를 요한다. 기존의 고소, 고발로부터 시작되는 수사방식이 아니라 그 단서를 발견한 순간부터 수사기관이 즉각 증거를 보전하고 접근을 제한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할 권한과 책무가 명확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시끄러워지면 주범에게만 중형을 선고하고 동조자, 참여자들에게는 벌금형 위주로 선고되고 마는 양형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제대로 된 삭제조치를 했는지도 제대로 심리하여 양형에 반영해야 한다. 플랫폼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성착취물을 방치, 유포를 방관할 경우 불이익한 처분을 할 수 있는 근거조항도 필요하다. 법조계 또한 더이상 ‘기본적 인권 옹호 및 사회정의 실현, 사회 질서 유지’라는 책무를 저버리는 변호사들의 위법한 영업행위를 방관하지 말고, 변호사의 윤리적 직무수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며 사법 질서 회복을 위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가해현장이 되어버린 학교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된다’라는 주의보다,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건 범죄다. 가해자가 되어선 안 된다’라는 교육이 필요하다. ‘성’이라는 제한을 넘어 다른 이를 온전한 한 사람, 동등한 인격으로 평등하게 바라보는 보편적 성교육이 절실함은 물론이다. 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로 더욱 선명히 드러난 구조적 성차별과 성폭력을 더 이상 부인하지 말고, 범죄의 온상이 된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제재,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삭제 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 

 

  1. 2024. 9. 11.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9. 10.을 기준으로 경찰이 수사하는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은 513건으로, 7월말 297건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였다. 사건 수가 늘어난 만큼 용기를 낸 피해자들도, 앞으로 용기가 필요한 피해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 위원회는 가해자들의 검거와 처벌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들 속에 피해자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고 우리 사회가 보다 성평등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피해자가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평온한 일상과 권리들이 온전히 회복될 그 날까지 끝까지 지지하고 연대할 것이다. 

 

2024. 9. 20.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첨부파일

MWRC20240920_[성명]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 –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에 부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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