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5. 13. 선고 2021나47810 판결에 대한 소고_”언니라고 차별하지 마세요” (월간변론 104호)

2023-10-03 137

2017년 가을 한 단체가 체육대회를 계획했다. 코로나는 없고 청명한 하늘만 있던 때이다. 장소는 구청이 위탁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체육관이다. 대관료를 지급하고 사용허가도 받았다. 단체 활동가들은 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포스터도 뿌리고 열심히 전화도 돌렸다.

그런데 일주일 후 시설관리공단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포스터도 봤어요, 저도 그거 보고 저희 쪽으로 자꾸 전화가 오는 것 같아요.”, “저희는 구청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거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냐’라는 뉘앙스의 의견을 들었어요”라며 변죽을 울렸다. 요지는 눈치껏 다른 곳에서 체육대회를 하라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왜? 허가해줄 때는 언제고!”라는 단체의 억울함도 잠시뿐, 시설관리공단은 다음날 대관허가를 취소했다. 체육관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이 바로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벼락같이 찾아온 무속인으로부터 반드시 체육대회가 예정된 날, 바로 그날 보수 공사를 해야 된다는 예언을 받은 것처럼, 꼭 그날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3개월 전 시행 예정이었으나 기약 없이 미뤘던 공사였다. 당연하게도 허가 당시 공사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무슨 상관이랴. 시설관리공단은 위 단체가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말에도 아랑곳이 없자 갑자기 보수공사 카드를 내민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구청의 보수공사 요청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대관 허가를 취소한다는 외관을 만들기 위해 시설관리공단은 꼼꼼하게 구청으로부터 공문도 받았다. 대관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으니 자신 있게 대관취소 공문을 보냈다.

대관 허가를 받고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단체 직원들은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해주며 연신 허리를 숙여야만했다. 환불 받은 회원들은 체육관 대관 업무 하나 제대로 못하는 단체라니, 라며 혀를 찼다.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던 체육대회를 하지 못하게 돼서 아쉬움이 컸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뛰어 놀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문제의 체육대회는 ‘제1회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였고, 체육대회를 준비한 것은 ‘언니네크워크’라는 단체였다. 위 단체와 직원들은 시설관리공단과 그 직원, 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하였고,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는 피고들이 체육대회 참가자들의 성적 지향을 이유로 대관허가를 취소한 것은 불법행위이므로, 그 손해를 배상하라며 언니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를 산정할 때, “향후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는 점”도 고려하였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첫 공청회가 지난 25일 드디어 열렸다. 2007년 법안이 발의되고 무려 15년만이다.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은 국회 정문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인종, 나이, 종교, 성적지향성 등을 이유로 취업이나 교육 등에서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 법률안이다. 쉽게 말해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반대할 이유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무려 15년 동안 국회의 문턱을 넘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소수자들이 성별, 인종, 나이, 종교, 성적지향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았고, 현재도 차별받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차별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차별을 금지하자고 선언하고, 차별을 금지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귀중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코로나도 점차 시들어가고, 날도 좋아지는데, 이번 가을에는 파아란 하늘 아래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체육대회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형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월간변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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