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 27. 선고 2021가합512414 판결에 대한 소고_A를 죽음에 이르게 한 ‘침묵의 4자 카르텔’ (월간변론 102호)

2023-10-03 133

2020년 3월 8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한 장애인 복지시설(이하 ‘이 사건 복지시설’). 장애인활동지원사 B는 지적장애 1급 장애인인 A가 새벽예배에 참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엎드려 있는 A의 머리를 오른발로 걷어찼다. 그것도 모자라 B는 같은 날 오후 자신이 권하는 캔커피를 A가 손으로 쳐 바닥에 쏟았다는 이유로 엎드려 있는 A의 뒤통수를 다시 오른발로 걷어찼고, 이로 인해 A는 입에 거품을 물고 호흡곤란을 일으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B는 말한다.

“이 시설에서는 장애인들 때리는게 일상이기 때문에 상처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시설 운영자도 ‘장애인들을 좋게 대해주면 말을 듣지 않으니, 말을 안들을 때에는 입술에 피가 나게 때려줘라’라고 했다.”

기시감과 답답함이 든다. 형제복지원부터 영화 <도가니>의 광주인화원까지, 시설 내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와 조직적 은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째 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수십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음에도 장애인들의 탈시설과 관련한 문제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 오히려 시설이 ‘오갈데 없는 장애인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기관’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시설에서 벌어지는 장애인 인권침해와 관련하여, ‘침묵의 4자 카르텔’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① 사회복지시설, ② 수용인의 가족, ③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④ 시민이 침묵한 결과로 시설이 유지되고 온존된다는 것이다. A를 둘러싼 환경은 이런 ‘침묵의 4자 카르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 복지시설의 운영자 김모씨는 이 사건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직접 장애인들을 폭행하고, 장애인활동지원사들로 하여금 장애인들에 대한 폭행을 조장하였으며,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장애인연금, 기초생활수급급여 등을 대신 수령하여 사용했다.

평택시 공무원은 장애인거주시설 운영에 대한 지도·감독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실시하지 않거나 축소하여 실시하였고, 이 사건 복지시설에 인권지킴이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음을 인지하였음에도 ‘지적없음’으로 점검을 완료하였다.

납득하기 어렵다

국가(보건복지부)는 이 사건 복지시설이 2016년과 2019년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F등급’을 받아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2017년에는 김모씨에 대해 이 사건 복지시설 운영과 관련하여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의 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음에도 이 사건 복지시설에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김모씨와 평택시에게 A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유독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의무를 부정했다. “A에게 발생한 사고와 같은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다고 인식하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수십 년에 걸쳐 시설 내 인권침해로 수많은 장애인이 죽어나간 사실에 비추어보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시설은 태생부터 장애인을 돕기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 국가는 근대화 과정에서 장애인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세상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여겼고, 복지예산을 최소화하면서 ‘도시정화’를 하기 위해 시설로 장애인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안희제, ‘시설’은 배제와 착취의 고리, 2022. 1. 30., 시사IN 745호). 시설은 착취와 인권침해의 공간일 뿐, 더 이상 장애인들을 위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장면을 바꿔 2022년 3월 24일 강남역 오후 6시.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려하니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 지하철 승강장부터 한 층 위에 있는 개찰구까지 사람들로 빼곡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체 중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보니 “집에나 있을 것이지 뭐가 잘났다고 시위야”, “너무 이기적인거 아냐”라며 장애인을 비난하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장애인에게 집(시설)에 있기를 요구하는 것,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게 숨어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믿는 것. A를 죽음에 이르게 한 ‘침묵의 4자 카르텔’의 한 축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내내 불편한 퇴근길이다.

 

김범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월간변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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