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싸우는 사람을 믿는다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대리인단 인터뷰
-인터뷰어: 허진선
지난 2월 겨울, “평등”, “사랑”, “돌봄” 피켓을 든 사람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울고등법원 앞에 모였다.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한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날 사건의 2심 재판부는 건강보험제도상 이성사실혼 배우자와 동성커플을 차별하는 것은 평등권위반이라며, 동성결합 상대방에게도 피부양자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대리인단을 만나 소송 준비과정과 2심 판결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대리인단에는 법무법인 원의 조숙현 변호사, 희망법의 박한희, 류민희, 조혜인 변호사, 공인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백소윤, 김지림 변호사,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도경 변호사가 함께하고 있다.
세 분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감의 김지림, 희망법과 민변 소수자인권위원장 박한희, 희망법 류민희입니다.
2심 판결 당시 상황, 기분은 어땠나요?
김지림: 이 사건을 진행하는 도중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이성결혼을 한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문제되지 않는 것들이 동성커플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 거죠. 동료들 중에는 10년이 넘게 함께 살아가는 동성커플도 있는데 말이에요. 주변 동료들 생각하면서 꼭 이기면 좋겠다 바랐는데 실제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박한희: 사람들을 인솔해서 선고를 들으러 갔어요. 함께 간 사람들이 그 선고의 의미를 바로 이해를 못 했어요. 딱 두 마디였거든요.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어요. 끝났으니까 가자고, 제가 먼저 벌떡 일어났어요. 1심에서 졌을 때는 선고날 법정에서 판결문을 다 읽었거든요. 이번에도 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다들 같이 가서 (선고를) 들은 건데. 다들 뭐지? 하고 있을 때 ‘이겼어, 빨리 나와, 빨리.’했어요.
류민희: 선고들으러 간 분들이 다들 대리인단 얼굴 보고. 한희가 웃고 있으니까 다들 안심하고 일어서서 나가셨다고 합니다.
처음에 소송은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김지림: ‘동성혼인대리인단’이 따로 있어요. 2017년 당시에 그 모임에서 동성 커플 배제되는 여러 가지 권리들 관련해서 소송을 진행한다면 뭐가 있을까 이렇게 여러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돌린 적이 있는데 그중에 피부양자도 있었거든요. 근데 (소송에 참여할) 당사자분들이 안 계시니까 소송이 진행이 안 되다가, 오소리-소주 커플이 실제로 피부양자 등록 신청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졌고, 이분들이 동성 커플이라는 게 밝혀지니까 바로 사실상 취소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가 검토했었던 소송을 진행해보자고 한거죠.
박한희: 제3회 모의헌법재판 경연대회 주제가 독일에서 생활동반자 관계로 등록된 동성커플이 한국에서 건강보험 상 피부양자로 등록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때 우승팀한테 연락해서 자료를 받기도 하면서 스터디를 했었죠. 실제 사건 진행가능한 당사자가 없어서 진행은 안 됐지만 이후에도 대한항공 등 항공사에서 외국에서 결혼한 동성부부한테 가족 마일리지 등록해준 일도 있었고. 일본도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동성커플의 불륜, 상간 소송에서는 신의성실의무가 인정된다고 한 판결이 있어요. 법률적으로 혼인을 하지 못했어도 사실혼 배우자 정도의 인정을 받는 경우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죠.
류민희: 학술 논문에도 보면 사실혼 배우자 관련 혜택은 안 될 이유가 있냐는 논문이 2000년대 중반부터 있어왔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디어로도 오래됐고 학술적으로도 어느 정도 확립이 된 내용인데 ‘용감한’ 당사자가 안 나타났었죠.
아무래도 당사자면 언론으로 사회에 드러날 수밖에 없으시잖아요.
김지림: 드러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시더라도 드러날 수도 있고, 또 만약에 이 커플처럼 드러나서 인터뷰를 하면 사실 더 이슈가 되기도 하죠.
여러 가지 가상의 시나리오를 돌린 사안들은 법률혼 배우자뿐만 아니라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어떠한 혜택을 인정하는 제도들이었어요. 법적으로 혼인신고는 못했지만, ‘혼인의 실질’을 가지고 있는 게 이성 사실혼 배우자잖아요. 사실혼 동성 배우자를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 제약들 때문에 법적으로 혼인 신고는 못하지만 여전히 혼인의 실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성 커플은 이성 사실혼 배우자들과 다르지 않은 거예요. 같은 요건을 가진 두 커플이 있는데, 한쪽에만 인정해주고 한쪽에는 인정을 안 해준다? 이건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이다고 생각했죠.
류민희 : 성소수자 운동에서 혼인관계의 배우자로서의 혜택 하나하나를 쟁취하는 일이 우선순위는 아닐 거에요. 나와 내 배우자의 관계를 공적으로 동등하게 인정받겠다는 것이겠죠. 혼인제도 안에 있는 관계를 잘라서 하나하나 가져가겠다는 관점은 아닙니다. 물론 또 다른 사안이 발생하면 대응을 해야겠지만요
1심과 2심 변론에서 어떤 부분이 쟁점이었는지 이런 부분에 좀 중점을 둬야겠다라고 생각하셨던 부분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박한희: 저희는 이 사안이 동성혼에 관한 소송이 되지 않기를 원했어요. 그렇게 하면 재판부입장에서도 부담이죠. 혼인 자체에 대해 다투고자 하는 게 아니다.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염두에 두고 그 특성과 운영방식을 살펴 보면서 같은 사람, 같은 관계, 돌보고 살아가는 관계인데, 왜 이 동성 배우자는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건강보험 피부양제도가 직계 가족이나 배우자로만 한정하지 않거든요. 형제자매, 계부모, 한때는 3촌까지도 피부양자가 가능했어요.
김지림: 2심에서도 동성배우자가 사실혼 배우자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똑같은 커플로서의 삶을 영위하면서 살고 있는 이 두 존재를 오로지 성적 지향에 의한 차이가 있다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는 인정해주고 누구는 인정 안 하고 이거는 ‘평등권 위반이다’라고 2심에서 인정을 해준 거거든요. 입법부까지 갈 필요 없이, 이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봤을 때,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이라고 판단한거죠.
판결문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김지림: 아마 다 똑같은 문구를 생각하실 걸요? 마지막 부분에 “성적 지향을 근거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정말 멋진 선언이었죠. 현행법상 ‘배우자’와 관련된 규정이 1,000개가 넘는데,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동성 배우자에 대해 공적 제도에서 처음으로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니 그 자체로 기억에 남아요.
박한희: 정말 공들인 판결문이라고 생각해요. 법률상 가족에서 가져오게 되는 좁은 의미를 더 넓혀갈 수 있는 거죠. 동거 가족도 물론 포함되고요.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사회와 제도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준 판결 같아요.
소송에 임하는 자세? 각자의 스타일은 어떠세요?
김지림: 류민희 변호사님은 ‘파워당당’하시고, 저는 항상 ‘긍정적’입니다. ‘잘 될 거다!’. 근데 또 질 때는 우울하죠. 소송에서 지게 될 때 한없이 의기소침해지죠. 우리가 잘 못하나? 주장을 바꿀까?
류민희: 차별에 싸우는 사람들이, 우리(서로)를 믿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헷갈리죠. 자꾸 지면. 이거 안 되는 건가? 하고.
박한희: 스스로를 의심하는 거예요.
류민희: 그래서 서로 확신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괜히 또 어려운 싸움을 만드나 움츠러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 시기 가장 기 좋은 사람의 등을 타고가면 됩니다. 지면 진대로, 다음 할 일을 생각하는 편이에요. 감정이 곧바로 안 오고 나중에 오는 편이기도 하고요. 공익소송할 때 항상 그런 거 배우잖아요. 공익소송은 이길 때도 법률적 효과가 있지만 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에 해당 이슈를 알리고 고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뭐 그런 거. 모든 시도에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거죠. ‘지면서 나아가기’라는 말처럼.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은요?
박한희: 연초에 좋은 판결이 나와서 이슈파이팅을 준비하고 있던 무지개행동, 성소수자연대 등의 단체들이 기운을 많이 낼 수 있었어요. 10년 이상 누적된 운동의 결과가, 물꼬가 터진 소송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민희: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차별은 없애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송 진행에 큰 도움이 된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공익변론기금 감사합니다!
김지림: 한희는 정말 꼼꼼하고좋은 소송 파트너입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 함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