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기고] 지연된 정의는 악을 조장하고 방치한다 – 스텔라데이지호대책위 법률지원단 활동

2022-05-02 79

지연된 정의는 악을 조장하고 방치한다

-작성: 조세현 회원(스텔라데이지호대책위 법률지원단)

 

폴라리스쉬핑 주식회사(이하 ‘선사’) 소유의 14만톤급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2017. 3. 31. 13:20(한국시각 23:20경)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톤을 적재 후 중국으로 항해하던 중 남대서양 공해상에서 침몰하였다. 위 참사로 인해 승선원 24명 중 가까스로 구조된 선원 2명을 제외한 선원 22명(한국인 8명, 필리핀인 14명)이 실종되었다. 2014. 4. 16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해운업계의 선박 안전운항 위반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거듭되었음에도, 여전히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 창출을 우선시하는 선사의 경영방침으로 인해 이와 같이 비극적인 사고가 재발한 데 많은 시민들의 분노가 이어졌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제1호 민원이 되었고, 문재인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인공위성 촬영을 통한 적극적인 수색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사고발생 이후 5년간 침몰 원인 규명, 실종자 유해수습 및 책임자 처벌 중 어떠한 과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정부는 2019. 2.경 스텔라데이지호 1차 심해수색을 통해 항해기록저장장치(VDR)를 회수하고, 유해로 추정되는 사람 뼈와 오렌지색 작업복, 작업화 등을 발견했지만, 당시 정부와 계약한 심해수색업체는 ‘유해 수습이 과업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발견한 유해를 심해에 방치하는 사태마저 발생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020. 3. 국가인권위원회에 외교부를 상대로 한 인권침해 진정을 제기하였다. 인권위는 약 1년 6개월이 경과한 2021. 9. 2.경 ‘각종 재난사고 시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며,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규명과 실종자 유해 수습을 위한 추가 심해수색의 실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대책위는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찾아 2차 심해수색을 촉구하기 위한 행동에 필요한 법률자문을 요청하였고, 이에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속의 스텔라데이지호대책위 법률지원단(이하 ‘법률지원단’)이 구성되었다. 법률지원단은 이정일 변호사(단장), 김솔아, 서성민, 서채완, 조세현, 조윤희 변호사(이상 6명)를 구성원으로 하여, 대책위에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나아가 선박침몰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준비에 착수하였다.

법률지원단이 선사 임직원에 대한 고소·고발을 준비하게 된 경위는 오롯이 검찰의 늑장대응 때문이었다. 부산지방검찰청은 2019. 2. 선사의 대표이사 김완중을 비롯한 임직원 12명을 선박안전법위반(결함 신고의무 위반 등)의 일부 혐의로만 기소하고, 선박 침몰과 선원들의 사망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업무상과실선박매몰 및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에 관하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부산 해경이 2020. 1.경 위 피고인들의 나머지 혐의에 대해 추가로 사건을 송치하였음에도, 검찰은 2차례에 걸쳐 보완수사만을 요구하였을 뿐, 2022. 2.경까지 기소에 미온적이었다. 그 사이 참사 발생으로부터 5년이라는 세월이 경과하여 업무상과실선박매몰죄 등 일부 혐의는 50일 후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대책위는 법률지원단과 함께 2022. 2. 7. 침몰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고소·고발인 1,166명의 연명을 받은 고소·고발장을 부산지방검찰청에 제출하게 된 것이다.

법률지원단은 ⅰ) 피의자들이 복원성 자료상 격창적재 상태의 운항이 허용되지 않는 노후화 된 스텔라데이지호를 운항하여 지속적으로 화물을 운송케 한 업무상 과실, ⅱ) 빌지웰 전용 및 복원성유지의무 위반의 과정에서 발생한 결함에 대한 선박안전법상 신고의무 위반 등의 업무상 과실, ⅲ) 해사안전법, 선박안전법, 선원법상 선박소유자 등의 근로자의 생명·신체 상 안전배려의무 및 직무상 사고에 대한 보고의무를 해태한 업무상 과실, ⅳ) 선사가 국제안전관리규약(ISM Code)상 중부적합사항을 방치한 업무상 과실 등으로 인해 피해자 22명이 익사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바, 이에 대해 피고소·고발인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부산지방검찰청 해양·강력범죄전담부(부장검사 정보영)는 2022. 3. 18. 선사의 대표이사 등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임직원 7명을 업무상과실선박매몰 및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법률지원단이 고소·고발장을 제출한 날로부터 36일여 만이자, 공소시효 만료일을 불과 1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검찰 측 보도자료상 공소사실 요지는, 피고인들이 ① 미승인 방식으로 화물 적재하여 운항하고, ② 선체 바닥 빈 공간(빌지웰)을 폐기 혼합물 저장 공간으로 불법 전용하였으며, ③ 선체 횡격벽 변형 등 심각한 결함을 발견하고도 인접 부위 등에 대한 점검 및 수리 미실시 등의 업무상 과실 등으로 선박을 매몰케 함과 동시에 승선원 22명을 사망(실종)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부산지검은 보도자료를 통해 기소 시까지 압수물 분석, 전문가 및 전문기관을 통한 침몰 원인 분석, 심해 수색 결과 등을 토대로 부산해경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침몰 원인 및 인과관계 등 보완수사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측 공소사실 요지는 부산 해경이 2020. 1.경 사건을 송치할 당시 수사 결과와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률지원단의 고소·고발장의 내용과도 대동소이하다. 검찰이 기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심모원려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동안 실종자 가족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억겁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반면, 선사 및 그 임직원들은 참사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보험금 446억 원을 수령하고, 이를 토대로 2018년 영업이익 1,121억 원, 2020년 영업이익 1,508억 원의 성과를 거두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였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법적 정의를 확립하는 데는 그 내용에 못지않게 정의 구현에 소요되는 시간이 중요하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권석천 기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체된 정의의 해악은 정의가 아니라는데 그치지 않는다. 지체된 정의는 악을 조장하고 방치한다.”고 말한바 있다. 오로지 이윤만을 좇다가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선사가 최대실적을 자랑하는 동안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정의를 위해 온전히 행사되었는지, 자본의 생명과 안전 경시 풍조를 방치하고 조장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률지원단은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져 정의가 바로 설 때까지 대책위와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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