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선언문] 막아내자, 노동개악

2015-12-24 27

[선언문]

막아내자, 노동개악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노동시장의 안전성 강화 등을 정책 목표로 내세우면서 이른바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2015. 8. 노사정위원회가 재개된 이후 정부는 노동계를 상대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정부 주도로 각종 입법안을 제출하고 지침을 작성하겠다’는 엄포를 놓더니, 여당은 사전에 모든 것을 계획해 놓기라도 한 듯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안이 도출되자마자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소속 의원 전원의 연명으로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법률안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하지 않은 사항도 포함돼 있다. 한편, 정부는 위 「노동개혁 5대 법안」의 연내 처리를 국회에 강요하면서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한 지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모임을 비롯한 여러 시민 사회 단체들은, 정부의 「노동개혁」이 정부가 내세운 위와 같은 명분과는 정반대로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노동개악」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수차에 걸쳐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이와 같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들을 모두 외면한 채 자신들만의 입장을 내세우면서 노동개악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강행하려는 노동개악의 칼날은 입법과 지침의 두 갈래로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탈하려 하고 있다. 35세 이상 노동자에 대한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의 연장, 뿌리산업 등 제조업 전반에 걸친 파견노동의 확대 등 비정규직 관련 개정 법률안들은 모두 비정규 노동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을 유발하여 근로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며,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직장을 잃은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인 실업급여의 수령마저 어렵게 할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려는 지침들은 해고와 근로조건의 변경을 사용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노동자의 지위를 바람 앞의 등불보다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시민 사회 단체만 위와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노동법 학자들도 동일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이 2015. 12. 24. 발표한 전국 노동법학자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69.7%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시 정규직 일자리가 기간제 일자리로 대체될 것이라 응답하였고, 정부의 논리대로 정규직 전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응답은 9%에 불과하였으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지지하는 견해도 15%에 그쳤다. 55세 이상 노동자 및 관리직‧전문직 파견 확대에 대하여는 80% 이상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고, 뿌리기술 활용 업무에 대한 파견 허용에 대하여는 90%가 반대의견을 밝혔다. 휴일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및 가산수당 삭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하여는 70% 이상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의뢰하여 실시한 일반 ‘직장인’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그 결과는 비슷하게 드러났다.

사용자와 정부는 머지않아 경제 위기가 닥쳐온다며 노동자들에게 위와 같은 노동개악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경제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노동자들의 지위를 안정시켜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 진작이 경제 위기의 극복이라는 해법은 정부 스스로 제출한 방안이기도 하다. 이미 위기에 처해 있는 노동자를 더 큰 위기로 몰아넣고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에 우리 모임은 국회가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의 논의를 중단할 것과 정부가 일방적 지침의 발표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국회와 정부가 ‘인간다운 노동 조건’이 우리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제반 법령과 정책을 정비해 나갈 것도 촉구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노동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 숙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이 세상이 살만한 것인지 아닌지가 좌우된다. 노동법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노동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다. 그 노동법을 흔들어 함부로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자들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여 기득권자들의 배를 불리려는 자들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노동법의 정신에 따라, 그리고 법률가의 양심에 기반하여, 지금의 ‘개혁’이 ‘개악’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선언한다.

 

2015. 12. 2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강 문 대

첨부파일

20151224_민변노동위_선언문_막아내자 노동개악.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