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김 진 변호사를 만나다.

2015-10-12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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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이주민, 아동..그 누구보다 보호가 필요하지만 쉽사리 손길이 미치지 않는 그들 곁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김하늘을 닮았다고 하는 말간 얼굴로 소외된 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그녀가 참 예뻤습니다. 민변에서 만큼은 김진이 진리입니다^^

 

김지미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김 진 안녕하세요. 저는 김진이라고 하고요 호주와 뉴질랜드 변호사입니다. 민변에서는 아마 김진2로 알려져 있을 것 같은데 다른 김진 변호사님들처럼 열심히 활동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작년에는 주로 국제연대위 활동을 했고 올해는 새로 생긴 아동인권위원회 활동을 주로 하고 있고요, 한국에 와서는 재단법인 동천과 공감에서 1년 정도씩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우리가 회원이 늘어나면서 동명이인이 조금씩 있기는 했는데, 같은 이름이 3명 있는 경우는 아마 김진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가입 순서대로 김진1,2,3이라고 부르는데, 김진2가 되신 거죠. 혹시 다른 김진 변호사님들은 만나보셨어요?

 

김 진 김진1 변호사님은 만나 뵀는데 김진3 변호사님은 아직 못 뵀어요. 김진1 변호사님은 워낙 유명하시니까 처음에 들어 왔을 때, 이름에 누가 될까봐 걱정을 했었죠. 그래도 김진3 변호사님이 들어오시니까 조금 마음의 부담이 덜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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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는 김진1과 김진3 변호사님은 알고 있었고 자동적으로 김진2 변호사님이 어떤 분일까 궁금했었어요. 외국 변호사라고만 알고 있다가 최근에 두 번 변호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그때야 뉴질랜드 변호사라는 걸 알게 된 정도였거든요.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이렇게 기회가 되었네요. 변호사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나가자면 우선 샌타클레라 출신이신데 샌타클레라가 어디에 있죠?

 

김 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예요. 부모님이 공부를 하실 때 제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미국에 있었고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살다가 가족이 다 같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어요.

 

김지미 처음에 뉴질랜드 변호사라고 들었을 때는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신건가 했는데 그럼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나오신 거네요. 전공이 법학이었나요?

 

김 진 네. 뉴질랜드는 시스템이 법대를 졸업하고 나서 1년 정도 연수를 마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 할 수가 있어요. 법학을 학사에서 전공을 하는 게 필수죠.

 

김지미 변호사시험이 따로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김 진 네. 연수를 하면서 시험을 보고 그것을 합격을 해야 변호사 자격을 딸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그런 시험은 없어요.

 

김지미 법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김 진 외국에서 학사를 했거나 그러면 되는 것 같은데, 뉴질랜드에서 따기 위해서는 법학을 전공해야 해요.

 

김지미 우리나라에 비해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쉬워 보이기도 하는데요.

 

김 진 그런데 법대를 졸업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입학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갈 때 전체 정원의 10% 정도만이 올라가거든요.

 

김지미 아~ 그럼 졸업 때까지 몇 년이 걸리거나 유급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겠네요.

 

김 진 그런데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갈 때 3번 이상 떨어지면 못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시스템이 좀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지미 대학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네요.

 

김 진 네. 좀 그런 게 있어요. 보통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하다가 대학가서 놀고 하는데,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웃음). 좋지 않은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김지미 그런 시스템이 더 괜찮은 것 같아요. 초중고 때 좀 놀더라도 대학가서 정말 공부다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럼 법대를 나와야지만 연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처음부터 법조인을 염두에 두고 법대를 가셨겠네요?

 

김 진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법을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을 해서 법대에 갔죠.

 

김지미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 진 사실 법을 꼭 공부하고 싶다기보다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전문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 고민을 하니까 그래도 법을 공부하는 게 제일 실질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지미 고등학생이 공익활동에 뜻을 두기란 흔한 경우는 아닌 것 같은데요.

 

김 진 실수였던 것 같아요(웃음). 부모님이 그런 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지미 역시 가정환경이 중요하군요. 그러면 뉴질랜드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변호사로 일하시다가 한국에 오신 건가요?

 

김 진 네. 변호사 되기 1년 전부터 해서 2년 정도 이주연대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NGO에서 활동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김지미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던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라든지 뉴질랜드 NGO 단체의 특징이랄까 그런 것들을 좀 소개해 주세요.

 

김 진 제가 뉴질랜드 NGO 두 군데서 활동을 했는데, 하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뉴질랜드의 난민이 재정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NGO에서 진짜 학생차원에서 자원활동가 같은 활동을 했었고, 그 이후에는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하는 활동을 했었어요. 활동을 하는 거에 있어서는 뉴질랜드는 다문화 사회라서 그런지 일단 외국인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사회여서 외국인 관련된 활동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도 사실 뉴질랜드 사람들보다는 이민자나 특히 인도나 중동 쪽에서 이민을 와서 피해를 입고 뉴질랜드 시스템에 다시 정착하기 위한 그런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많았었어요.

 

김지미 뉴질랜드 사회에서는 김변호사님도 이민자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난민이라든지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 공감을 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이민자로서 겪었던 불편부당함이나 뉴질랜드 사회에 그런 일들이 많이 있나요?

 

김 진 저는 운이 좋게 부모님이랑 같이 갔고 영주권도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제가 겪는 어려움은 많지는 않았는데,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비자나 영어를 얼마나 하느냐 그런 것에 따라서 적응을 하는 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외국인 혐오주의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서 이민자들에 대한 반응이라든지 국민의 정서라든지 그런 것들이 뉴질랜드는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김지미 호주, 뉴질랜드하면 우리 입장에서 굉장히 가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인데 거기에서 안정적인 변호사라는 직업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공익활동도 하고 있었고, 그런데 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오셨단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김 진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웃음). 사실 처음에 한국 들어올 때는 한국에는 어떤 활동이 있을까 궁금해서 3개월 정도만 있다가 다시 돌아가려고 했었어요. 한국에 있는 유엔 난민기구 한국위원회(UNHCR)에서 인턴처럼 3-4개월 정도 활동을 하고 다시 돌아가려는 생각으로 왔는데 하다보니까 한국에도 되게 할 일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뉴질랜드보다 한국에서 더 역동적으로 매일매일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어쩌다보니까 아직까지 하고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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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한국에 들어오신 게 2011년이니까 지금 만 4년이 다 되어 가네요. 변호사님 페이스북을 봐도 그렇고 뉴질랜드에서처럼 난민 관련 활동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동천에서는 난민법률지원사업팀장을 하셨고 공감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지금은 어필이나 다른 곳에서도 차차 난민지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난민하면 사실 법의 사각지대 같은 느낌이 있단 말이죠. 변호사로서 내가 난민지원 활동을 해보니까 난민과 관련된 법률적인 지원이라든지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게 가장 시급한 것 같다 그런 걸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난민 외에 인도적체류자라는 지위가 있는데, 난민의 요건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위험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법무부에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난민보다 더 심각하게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외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 상황이에요. 외국에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 권리도 없고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첫 생활을 하는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그 사람들에 대한 지위가 시급하게 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 같아요.

 

김지미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인도적 체류와 난민의 차이는 뭔가요? 난민으로 인정되는 요건이 굉장히 엄격하기 때문에 그 요건을 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추방을 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한국에 있어도 된다는 자격만 주는 건가요?

 

김 진 네, 그런데 사실 인도적 체류자는 딱 이거다 규정이 있는 게 아니예요.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특히 인종, 종교, 특정한 사회에 소속된 사람 같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이유, 전쟁이라든지 환경이라든지 이런 이유로 인해서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체류 자격을 주는 거죠. 외국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충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고문방지협약이라든지 자유권규약에 해당하는 권리 등을 부여하게끔 정리가 된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굉장히 재량적으로 법무부의 판단에 따라서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차원에서만 체류허가를 주는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김지미 우리나라가 난민인정에 굉장히 엄격하다, 박하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그건 사실인가요?

 

김 진 네.

 

김지미 그게 법률적으로 충족시켜줘야 하는 요건이 많아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심사를 까다롭게 해서 그런 건가요?

 

김 진 2가지 다인 것 같은데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것도, 일단 사법부라든지 법무부에서 난민 신청자들에 대해서 난민제도를 남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 많은 것 같아요. 난민 신청자들은 자국에서 위험에 처해서 시급하게 건너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료 같은 것을 준비를 할 수도 없고 그런 처우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할 수도 없고, 와서 바로 인터뷰를 하다보면 생각 정리도 잘 안 돼서 횡설수설할 수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신빙성이 없다 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그럴 때 옆에서 누군가가 법률적인 조력을 해주면 좋을 텐데요. 얼마 전에 어느 주간지에서 난민 관련 기사를 봤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그 나라의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이 3명 정도밖에 없는데, 그 중 1명의 관련 기사가 난 걸 봤어요. 그 분도 난민인정이 안 돼서 추방될 위기에 있었는데, 우연찮게 어떤 변호사가 그걸 알게 돼서 조력을 해줘서 난민으로 통과가 됐다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혼자서 난민신청 절차를 준비하기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변호사 그룹이라든지 단체라든지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난민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나 NGO단체가 있나요?

 

김 진 제가 알기로는 변협 차원에서 난민법률지원단이라고 해서 재작년쯤에 변호사들을 모집을 해서 교육을 시키고 그런 게 있었어요. 그리고 난민 지원하는 NGO나 변호사단체는 말씀하셨듯이 어필이나 공감이나 피난처 같은 NGO 단체들이 있고, 그리고 난민 활동하는 NGO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난민지원네트워크라고 해서 회의하면서 현안도 공유를 하고 그런 시스템이 있어요.

 

김지미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도 밥을 굶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어린이들이 굉장히 많은데 왜 해외에 있는 아동까지 도와줘야 하냐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법률적인 조력이 필요한 분야들이 얼마든지 많은데 왜 난민을 도와주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 혹시 받아보셨나요?

 

김 진 우리나라에 힘든 아동들이 굉장히 많은데 왜 해외 아동을 도와주느냐는 이런 질문은 굉장히 많이 받았죠. 난민관련해서도, 사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난민이 정확히 뭔지 모르고 해외에서 온 흑형이라든지, 이 사람들이 한국 여자들을 데려가려 한다라는 이상한 생각들 때문에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난민이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 실제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수긍을 하시는 분들이 조금 계시는 것 같아요.

 

김지미 그럼 여기서 난민은 이러이러한 사람들이고 이런 이유로 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라고 정리해서 말씀을 해 주세요.

 

김 진 난민은 난민협약에 의해서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인데요, 고국에서 박해를 받을 충분한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국적국 밖에 와서 신청을 하게 되는데, 난민 요건이라고 한다면 인종·종교·특정사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정치적 의견 5가지 요건이 있어요. 그래서 그 요건에 해당하는 사람이 국적국 밖에서 이런 이유로 나는 박해를 받을 충분한 위험이 있다고 신청을 해서 난민 지위를 받는 거에요. 난민협약상의 난민의 정의와 우리나라에 난민법이 있어서 그 난민법에 의해서 난민 지위를 받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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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만약에 난민으로 신청을 했는데 인정이 안됐다 그럴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제3국을 가거나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이 사람은 결국은 박해를 받는 신체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라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김 진 신체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그런 위험이 있는 거죠.

 

김지미 그렇기 때문에 이 분들이 결국은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서 그런 박해와 고통을 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정리를 하면 될 것 같네요. 동천이나 공감에서 펠로우를 1년 정도 하셨다고 했는데, 동천이나 공감에서도 난민지원 활동을 하시기 위해서 그 쪽으로 가신 건가요?

 

김 진 UNHCR에서 인턴활동을 하다가 동천이라는 단체가 있고 이 단체에서 난민활동 열심히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마침 그때 동천에서 난민지원 사업을 시작하고 있어서 거기 합류를 하게 되었고 동천 활동을 하다가 공감 황필규 변호사님이랑 알게 돼서 공감에서도 국제인권법이나 난민법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갔었어요.

 

김지미 그러다가 세이브더칠드런으로 오게 된 게 올해죠. 난민에서 아동으로 어떻게 보면 약간 분야가 달라졌는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김 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도 사실 연관이 돼 있는데, 공감에서 활동을 하면서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옹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알게 됐고, 이주아동인권에 관련해서도 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몽골의 학생이 추방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에서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이 활동을 하다가 여기서도 이런 활동을 하는구나 이런 걸 알게 돼서 오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세이브더칠드런은 구호 NGO 단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곳에서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김 진 지금 제가 속해있는 팀은 권리옹호부에 국내옹호팀인데요, 주로 정책개선 활동이나 국내이슈에 관해서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 어떤 개정이 필요한지를 같이 논의를 해서 로비활동을 하고 실질적으로 법개정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요, 세이브더칠드런 산하에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있고 다른 국제구호개발 하는 팀도 있고 그래서 그쪽에서 만약에 국내이슈 관련해서 질문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도 조력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한국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국내법 개정 활동하기가 조금 어렵지는 않으신가요?

 

김 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주로 다루는 이슈로 아동체벌근절, 아동의 놀 권리 확보, 대안양육이라고 해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어떻게 발견이 돼고 어떻게 이들을 복귀시킬 수 있을지 그런 거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있고, 무국적 아동들 관련해서 법을 개정하는 활동이 있어요. 그런 활동들에 있어서 제가 한국 변호사가 아니라서 실질적으로 소송을 지원한다거나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슈가 있고, 이슈에 관련해서 국제법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개정이 되어야 하고 비교법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리고 국내법적 요소가 필요한 부분은 다른 한국 변호사님들이랑 네크워크 활동을 하면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법 개정 얘기 하시니까 생각난 건데, 이자스민법이라고 한국에 있는 이주아동 관련 법이 지금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잖아요. 이 법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 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사실 이전 국회에서부터 계속 시도를 하고 있었던 부분인데, 이주아동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지원을 하자 라기보다는 이주아동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동들은 법적인 지위와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기본권은 보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든지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든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 이런 것들이 보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내용의 법이에요. 그런데 말씀하셨다시피 엄청난 반대 댓글이 달리고 굉장히 많은 반대가 있어서 그럼 점에서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관련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서 로비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국회에는 꼭 통과가 되기를 바랬었는데, 사실 지금 국감이 끝나고 쉽진 않을 것 같아요.

 

김지미 이 법이 이주민과 아동이 결합되어 있는 법인데,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의 권리 보호에 앞장 설 국회의원이 있겠느냐, 우리가 아동학대 얘기 나오면 모처럼 끓었다가 확 수그러드는 게 아동은 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라는 얘기가, 가슴 아프지만 현실적인 말인데, 여기에 이주민까지 붙었으니 이거를 어느 국회의원이 나서겠느냐 라는 말들이 있는 게 사실이죠. 이 법은 최근에 한창 논란이 되었었는데 오늘 같이 오신 자원활동가들도 궁금한 게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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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성(14기 자원활동가) 페이스북을 하니까 친구들이 이자스민법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영상 같은 것을 ‘좋아요’를 많이 누르더라고요. 저는 사실 내용자체는 모르는데 그것에 대해서 토론회도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제가 속해있는 학회에서도 그걸 가지고 토론을 하더라고요. 토론이 된다는 것 자체가 찬반 양론이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반대하는 쪽에선 보통 어떤 얘기를 하길래 이런 거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그리고 변호사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김 진 반대여론이라고 한다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세금으로 외국 애들을 돕느냐 하는 게 제일 큰 것 같고요. 우리나라에도 배고픈 아이들이 많은데 왜 외국아이에게 우리 돈을 쓰냐. 그냥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라. 그리고 불법체류 아이까지 우리가 뭘 해야 하느냐. 그런 의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생존의 권리라든지 교육받을 권리라든지 그런 것은 정말 기본적인 권리라서 모든 아이들에게 제공이 되어야 하고 모든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아동권리협약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용이고 우리나라도 아동권리협약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지원을 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도 있구요.

 

안혜성 아동권리협약 가입국인데 우리나라 법률에 아직 명시가 안 되어 있는 거에요?

 

김 진 명시가 되어있는 부분도 있는데 사실 안 되어 있는 부분이 많죠.

 

장현경(14기 자원활동가)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이 되지만 여론의 환기가 필요한 것 같은 시점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 진 여론이라는 게 이슈가 될수록 안 좋은 부분이 많아서.. 저희끼리는 농담으로 조용히 있다가 국회 회기 말에 민생법안 통과될 때 그때를 노려야 하는 건가 그러기도 해요. 저희 기관차원에서는 홍보물을 통해서도 계속 홍보를 하고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생각을 많이 하고는 있어요. 서명운동이라든지 그런 캠페인라든지 기획을 하고 같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김지미 전략적으로 오히려 이자스민이 아니라 다른 의원이 발의를 했으면 오히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김 진 그런데 사실 이자스민 의원만큼 이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이 안 계신 건 사실이에요. 사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이외에도 세부적으로 전략적인 활동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무국적과 출생등록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동들이면 일단 출산 등록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법안도 마련하고 있고요.

 

곽자홍(14기 자원활동가) 난민이 우리나라에서 보호가 안 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협약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국민의 여론개선이나 법제적 방안 등 가장 먼저 필요한 부분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 진 난민법도 민생법안 통과될 때 갑자기 통과됐던 거였거든요. 난민법이 통과된 이후에 법제도는 계속 확립이 되고 있고, 미비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개정 활동을 하고는 있어요. 그런데 아까부터 말씀드렸던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지위에 대해서는 좀 문제가 많고 난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난민이 우리 곁에 있는, 우리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좀 부족한 것이 있어서 난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어려움을 갖고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정착하고 싶어 하는지 알리는 게 좀 필요한 것 같아요.

 

김지미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의 경우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건데, 실질적으로 활동하시는 입장에서 굉장히 심정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난민도 그렇고 이주아동도 그렇고 사람들의 공감대가 넓지 않은 활동을 하실 때 지치거나 힘들거나 그런 일이 꽤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럴 때에 그런 걸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 이런 게 있을까요?

 

김 진 아무래도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지고 그리고 예를 들어 난민관련해서는 해마다 몇 년 전부터 난민의 날 행사를 진행을 했었어요. 활동하는 활동가들이랑 되게 많이 친해지고 같이 공부모임도 만들어서 불만이라든지 고충도 같이 토로하면서 다독이면서 활동을 하는 게 있고요. 사실 그렇게 공감대가 없고 어렵기 때문에 또 뭔가가 이루어졌을 때 더 많이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내가 활동했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거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진 변호사로서 활동을 한 건 아니고 옛날에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건데, 제가 난민들이 뉴질랜드 사회에서 정착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스리랑카에서 온 가족을 뉴질랜드에서 제대로 정착을 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활동을 했었는데, 예를 들면 학교에 등록을 해준다든지 영어학원 등록을 해준다든지 그리고 받을 수 있는 정부의 지원금을 제대로 잘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든지, 그리고 통역이 필요할 때는 통역을 해주고, 그때 제가 고등학생 정도 되는 스리랑카 여자아이를 영어학원에 등록을 해 준 적이 있었어요. 영어를 정말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그런데 그 아이가 처음에는 너무 숫기가 없고 얘기를 해도 잘 대꾸도 안하고 진짜 얌전한 아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1,2년 후에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아이가 너무 밝아진 거에요. 그러면서 학교에서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정말 재밌게 놀았다 그런 거를 영어로 얘기를 하는데, 그때 정말 이런 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지미 그랬던 경험이 지금까지 쭉 끌고 온 힘이 되는 거군요. 그런 일들이 요소요소에 계속 있을 것 같은데요.

 

김 진 변호사들이랑 같이 활동을 할 때도 이 사람은 난민으로 인정받기 되게 어렵다하는 사람을 저희가 국적국의 정보를 찾아준다든지 해서 그 사람들이 난민 인정이 되는 사건이라든지 그래서 한국사회에 적응해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김지미 변호사님이 세이브더칠드런으로 오시면서 거의 동시에 민변에 아동인권위가 생겼고 준비모임 때부터 결합을 하셨던 거죠. 지금 아동인권위 활동을 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아동인권위가 신생위원회여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아동인권위 회원을 대표해서 소개를 좀 해주세요.

 

김 진 아동인권위는 작년 겨울부터 준비모임을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저는 올해 초부터 세이브더칠드런 합류하면서 같이 하게 되었는데, 아동인권위에서는 아까 말씀하셨듯이 아동이 투표권도 없고 실제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어서 정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잖아요. 그래서 그런 아동들을 돕기 위해서 아동권리협약이나 아동에 대한 권리에 관련된 법을 같이 공부하고 실질적으로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성명서도 같이 내고 그리고 소송을 지원도 하고 가족적으로 분위기 좋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지미 아동인권위 텔방에 장난 아니게 글들이 올라온다는 소문이 있더라구요.

 

김 진 이슈에 관해서 선배 변호사님들이 후배 변호사님들한테 많은 조언도 해주시고 활동도 같이 할 수 있도록 많이 지원도 해주시고, 그리고 후배 변호사님들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참여하시고, 그래서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김지미 지금 위원장이 김수정 변호사님이고, 간사 변호사가 김영주 변호사님이시죠? 그 둘의 카리스마만 해도. 뭔가 케미가 잘 맞을 것 같아요.

 

김 진 네. 맞아요. 최근에는 김차연 변호사님의 순산을 기원하기 위해서 돼지고기를 같이 먹는 모임도 가졌어요.(웃음)

 

김지미 아동인권위 많이 가입을 해주시라 광고할 수 있는 기회를 좀 드릴게요.

 

김 진 말씀하셨듯이 정말 가족적인 분위기로 본인의 개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변호사 활동하면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까지 다 같이 보듬으면서 활동을 할 수가 있고, 실질적으로 아동인권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어요. 같이 공부모임도 하면서 아동권리협약에 대해서 발제하면서 공부를 하는 시간도 가졌었고, 아동분야에 있어서는 최전선에서 저년차 변호사님들이어도 같이 활동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그런 위원회입니다. 사실 저년차 같은 경우에는 다른 위원회는 기라성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시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자기 의견 존중 받으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많이 배울 수 있는 위원회입니다.

 

김지미 남자 변호사님들 같은 경우에 여성 변호사님들만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약간 꺼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남자 회원들도 있죠?

 

김 진 네. 남자 변호사님들도 계세요. 그런데 사실 남자 같지 않다는 건 아닌데(웃음). 남녀의 구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남자 분들이라고 해서 차별을 받는다든지 일을 더 해야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같이 잘 활동을 하면서 재밌게 지내는 것 같아요. 귀여움도 받으시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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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제가 사전에 변호사님 페이스북을 봤는데, 특이한 게 있었어요. 필레오 오케스트라는 뭔가요?

 

김 진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는 건데 취미생활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플룻 담당이구요.

 

김지미 아, 역시.. 사진이 멀리서 얼굴이 작게 나오고 가면 비슷하게 쓰고 한 것도 있더라고요 누굴까 했는데, 자태가 플룻 부시는 분이 김진 변호사 같다고 생각은 했었거든요. 이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모인 건가요?

 

김 진 진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라서 저는 사실 검색 통해서 했고요, 아마추어 직장인 오케스트라여서 악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2주에 1번씩 같이 연주하고 1년에 1번씩 공연도 하고.

 

김지미 이런 취미가 있다는 것도 어떤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김 진 예, 그런 것도 있어요. 사실 제가 잘 못할 때는 오히려 더 스트레스 받기는 하는데, 연습을 제대로 안하면, 그런데 가끔 이렇게 플롯으로 고음을 불면서 아, 스트레스 풀린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더라고요.

 

김지미 공연할 때는 티켓도 오픈해서 정식으로 판매를 하시는 거에요?

 

김 진 네. 그런데 지인들이 대부분이죠. 우리끼리(웃음).

 

김지미 연습을 해서 무대에 올리고 공연이 끝났을 때 성취감도 굉장히 클 것 같아요.

 

김 진 이번에는 심포니 어려운 곡을 해서 왜 이런 곡을 선택을 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딱 끝나고 나니 올해도 뭐가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친한 분들 초대하고 재밌었다 이런 얘기 해주시면 기분도 좋고.

 

김지미 다음 공연에는 민변 차원에서 공지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김 진 너무 부끄러워서. 제가 민변활동을 잘 못하게 될 것 같은데요(웃음).

 

김지미 뉴질랜드라고 했을 때 한번 부러웠는데 공연을 할 정도로 악기 연주를 하실 수 있다니 두 번 부럽네요. 변호사님의 가족들은 뉴질랜드에 계신 거죠?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다고 생각하고 계신건가요?

 

김 진 네. 가족들은 뉴질랜드에 있죠. 사실 되는대로 살았던 것 같고요, 그리고 인생이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

 

김지미 저 같으면 당연히 뉴질랜드로 갈 것 같은데.

 

김 진 그런데 뉴질랜드가 노후를 보내거나 아이들이 살기에는 되게 좋은 나라인데, 젊은 사람들이 살기에는 약간 지루하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훨씬 더 역동적으로 재미있는 일들도 많고 저는 개인적으로 뉴질랜드가 너무 지겹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고요, 재미있게 잘 지냈었는데, 한국이 훨씬 할 일도 많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마지막으로 변호사님이 지금 일하시는 세이브더칠드런에 대해서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하시는 일도 좋고 후원 홍보도 좋구요. 저만 해도 아동 후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는데 일부러 시간 내서 홈페이지 들어가서 신청하고 하는 게 잘 안되더라구요. 이번 기회에 꼭 하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저 같은 분들 꽤 있을 것 같거든요.

 

김 진 세이브더칠드런은 전 세계 120여개의 국가에서 아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국제구호 NGO단체이고요, 우리나라에 6·25때 들어 왔어요. 6·25때는 긴급 재난 상황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들어왔는데, 지금은 회원국으로서 외국과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로 성장을 했고요, 왜 우리가 외국 아동까지 도와야 돼? 라고 얘기 했을 때 사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도움을 받던 상황이었지만 그런 도움을 통해서 지금 발전을 하게 된 거예요. 세이브더칠드런이 하고 있는 활동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모든 아동에게 어떤 상황이든 어떤 형태로든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체벌근절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고. 그리고 아이들의 놀 권리, 놀이터를 지켜라 라고 요즘에 놀이터가 많지 않고 아이들이 나가서 놀지를 않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제공 하고 활발하게 놀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슬프지만 어쨌든 그런 활동을 하고 있고, 이주아동이나 난민아동을 지원하는 사업들을 하고 있고요.

일요일에는 국제어린이마라톤 행사를 했어요. 전 세계 어린이들이 5세 이하에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에게 약을 지원하는 캠페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3천명 정도가 같이 모여서 뛰면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라는 구호로 뛰는 그런 활동도 했었고, 그리고 올해 11월 21일 아동학대예방주간에는 저희가 폭력으로부터의 아동보호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동이 학대되지 않고 체벌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서명 캠페인 같은 것을 진행을 하면서 서명을 받아서 내년에 국회가 새로 열리면 의원들 접촉하면서 법제화 하려는 활동을 하려고 하고 있고요. 저희 팀은 법개정 활동을 하고 사업팀에서 사업활동을 하고 후원팀에서 후원활동을 하면서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는 믿을 만한 단체입니다. 많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이유진 아동하고 1대1 결연하는 형태의 후원도 가능한가요?

 

김 진 저희 결연활동도 있고요, 결연활동이라고 하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와 1대 1로 연결이 돼서 그 아이들이랑 서신교환도 하고 그러는데 그게 아이에게 개별적으로 후원금을 전달한다기보다는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커뮤니티로 가서 그 커뮤니티 전체적으로 잘 살 수 있도록 사업을 지원을 하고 도움 제공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리고 1대 1 후원이 아니더라고 해외 후원이 있어서 해외에 필요한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활동도 있고, 그리고 국내 후원도 따로 있고 국내후원 같은 경우에는 국내에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있고, 그리고 긴급 구호 재난에 대해서 후원을 하는게 있어서 일정한 금액이 있으면 그 금액을 모았다가 갑자기 재난이 터지면 즉각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서 이번에 네팔이라든지 아이티라든지 그런 곳에 기금이 바로 전달이 돼서 구호활동에 지원이 되는 식으로 이루어졌고요, 그리고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제일 많이 아시는 게 모자뜨기 캠페인이잖아요. 그 모자뜨기 캠페인도 아마 10월부터 다시 시작할 것 같은데, 후원하신다는 분들이 모자를 뜨면 그 모자가 아프리카에 저체온증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전달이 돼서 그 아이들이 그 모자만 써도 체온이 1,2도 정도 올라갈 수 있대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그런 모자가 제공되는, 그것이 모자뜨기 캠페인입니다.

 

김지미 모자를 떠서 여기다가 보내주는 건가요?

 

김 진 네. GS25랑 저희가 협약을 맺어서 GS25에서 모자 키트를 사시면 거기에 털실이랑 바늘이 들어있거든요. 그걸로 모자를 떠서 주시면 여기에서 그걸 점검을 해서 좀 수선을 해야하는 모자는 수선을 해서 보내는 거예요.

 

김지미 오히려 일을 만들까봐 저는 못 보내겠네요.(웃음)

 

김 진 그런 자원활동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수선해주시는 분들이.

 

김지미 마음이 중요하니까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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