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과 이북인권상황의 실체(장창준)

2004-10-19 121

‘북한인권법’과 이북인권상황의 실체

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 ‘북한인권법안’에 명시된 이북의 인권 상황

‘북한인권법’에서는 미 의회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이북의 인권 상황을 25가지 사례로 설명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수많은 심각한 인권학대
(2) 북한 내의 모든 정보, 예술표현, 학문과 대중매체 통제, 언론의 자유와 외국방송에의 접근 규제
(3) 주민들에게 제도적이고도 철저한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 교화 주입
(4) 정부의 혁명에 역행하는 다양한 범죄들에 대해 엄격한 극형이나 재산압수형
(5) 정치범, 체제 반대자, 본국으로 송환된 탈북자들, 지하교회 조직 멤버들을 노동자들, 학생들 그리고 어린이들이 참석한 공공집회에서 처형
(6) 약 200,000명에 이르는 정치범들 수용
– 노예노동, 무술연습 상대 그리고 생화학 실험대상(미의회에 제공된 북한 수용소 생존 목격자)
– 수용소내에서의 출산을 금지하고 있으며 강제로 유산을 시키고 태어난 신생아들을 죽이는 것은 수용소의 기본 관행(미의회에 제공된 목격자의 증언을 포함한 믿을 수 있는 한 보고)
(7) 체포, 투옥, 고문 그리고 심지어 처형을 포함하는 형벌을 처함으로써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종교 활동을 철저하게 억압(미국제종교자유위원회 보고)
(8) 북한 어린이 10명당 1명이 급성 영양실조를 앓고 있으며 10명당 4명은 만성적으로 영양실조인 상태
(9) 탈북자 문제
– 심각한 식량난 등으로 탈북 문제 양산
– 탈북자 강제 송환 및 처형

간략히 정리한다면 ‘북한인권법안’에 명시되어 있는 이북의 인권 현안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이념 주입
둘째, 통제사회
셋째, 정치범 박해
넷째, 종교 박해
다섯째, 식량난
여섯째, 탈북문제

2. 이북 인권 현안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이제 위에서 정리한 6가지 현안을 중심으로 하여 이북 인권의 실태를 접근해 보도록 하자.

(1) 이념 주입

‘북한인권법안’에 명시되어 있는 ‘제도적이고도 철저한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 주입’은 사실 모든 국가가 행하고 있는 중요한 국가기능 중의 하나이다. 한국 역시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부터 교육시키고 있지 않는가.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주입’인가 ‘교육’인가의 여부이다. 일반적으로 ‘주입’과 ‘교육’의 여부는 두 가지의 의미 차이를 가진다. 하나는 자발성과 강제성의 여부이다. 다른 하나는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이다.
이념의 옳고 그름은 그 사람, 그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서 정립된다고 했을 때 사회주의 이념을 논할 때 옳은가 그른가는 사실 판단키가 어렵다.
이북은 1998년 9월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서 “국가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구현하여 후대들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로, 지덕체를 갖춘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라고 교육문제를 규정하였다.
한편 김일성 주석이 1958년 11월 20일 발표한 ‘공산주의 교양에 대하여’는 ‘사회주의 교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① 자본주의에 비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우월하다는 사상을 가르치는 것.
② 새 것은 반드시 승리하고 낡은 것은 멸망한다는 사상을 가르치는 것.
③ 사회의 공산주의적 개조에서 커다란 장애로 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반대하는 사상을 가르치는 것.
④ 근로자들을 사회주의, 애국주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으로 가르치는 것.
⑤ 사람들에게 노동을 사랑하는 사상을 가르치는 것.
⑥ 근로자들이 계속혁명의 사상으로 무장되어서 계속 혁신하는 혁명적 사상을 소유하게 가르치는 것.

자본주의의 가치관으로 위와 같은 사회주의 교육학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사회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주입’인가 ‘교육’인가의 가장 큰 차이는 강제성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북 인민들은 사회주의 교육을 거부하나 이북 정권이 폭력, 처벌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교육’시키는 행위를 ‘주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안’에는 이북의 교육 당국이 구체적으로 ‘주입’을 위해 어떤 폭력을 가하고 ‘주입’을 거부했을 때 어떤 처벌을 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곧 ‘북한인권법안’이 ‘이념 주입’과 관련하여 어떤 실증적 자료도 없이 제기되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하다 못해 탈북자나 ‘정치범 수용소’의 목격자 혹은 경험자의 증언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더디가도 사람 생각 하지요』의 다음 일화는 ‘북한인권법안’에서 이념’주입’으로 표현되고 있는 ‘사회주의 교육’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내게 큰 인상을 준 대답 가운데 하나는 부모의 직업을 물을 때였다. 이향순 어린이의 대답은 “아버지는 해방청 거리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시방역소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혜영 어린이의 대답은 “아버지는 김일성 종합대학 교원(교수)입니다. 어머니는 인민을 위해 밥공장에서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있습니다.” ‘노동자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 ‘교수 아버지와 밥공장 어머니’가 우리들 관념으로는 도저히 연결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목소리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당했다.」

(2) 통제 사회

이북의 사회주의 헌법은 제63조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를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집단주의 원칙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로 설명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북의 집단주의 원칙은 ‘개인의 이익은 철저히 차단되는 것’을 의미하며, ‘집단주의 원칙의 구현을 위해 이북 주민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5호 담당제’는 그 전형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그러나 경남대학교의 이수훈 교수는 「사회체제와 주민의 삶」(박재규 편 ,『북한이해의 길라잡이』, 법문사)에서 ‘통제적 사회’라는 접근 방식으로는 사회주의체제의 일상생활양식에 대한 일면적인 설명밖에는 제공하지 못한다며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다.

「사회통제적 관점만을 고집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 대한 결과론적 해석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리는 특정 사회가 지나고 있는 역사적인 특수성과 더불어 검토되어야 한다. 억압적 요소를 강조하는 사회생활양식에 대한 통제론적 접근은 사회주의 국가건설 초기의 눈부신 경제적·사회적 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 소련의 경제발전, 쿠바의 인민 생활향상, 전후 폐허 속에서 50년대-60년대 사이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해 낸 북한의 사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회주의국가들의 이러한 사례는 통제론이 간과하고 있는 인민의 자발적 참여와 호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수훈 교수는 ‘통제’보다는 조직적 원리를 자발적으로 승인하고, 그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계로서 ‘사회조직화’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북 주민의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주의적 생활양식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집단주의적 생활양식을 집단의 이익만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양식과 동등하게 사고한다면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이북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북에서 주장하는 집단주의는 이른바 개인의 이해와 집단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북은 이같은 집단주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5호 담당제’를 실시한다. ‘5호 담당제’는 1958년 7월 김일성 주석이 평북 창성군을 방문하여 “유급간부 한 사람이 5호씩만 책임지고 교양사업과 경제 과업 등 일체를 지도하도록 리사업을 추어주고 리당위원회에서 그들을 상대로 과업을 주고, 그 집행정형을 총화하면 일이 잘된다”라고 언급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북은 5호 담당제를 확대강화하여 1974년부터는 ‘인민반분조담당제’를 실시하여 주님 15-20세대를 인민반으로 묶고 그 단위 조직을 활용하여 당의 사업과 주민의 생활을 조정해왔다.
‘토요학습’이라는 것도 있는데, 월요일에서 금요일가지 생산적 노동이나 국가사회기관 활동에 참여한 이북의 모든 근로자들이 하루 작업을 중지하고 학습과 사업총화를 행하는 정례적인 학습이다. 주민들은 토요학습을 통해 사상적 학습과 토론을 행함으로써 주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상·하부의 의견을 조정한다.
이북이 ‘통제사회’라는 미국의 주장보다는 ‘조직화된 사회’라는 이수훈 교수의 논리가 더 설득력있다.

(3) 정치범 박해

형법이 존재하는 이북 사회에서 수용소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안’에서 서술하듯이 20만명이 넘는 정치범이 온갖 박해를 받고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것은 믿을 만 하지 않다.
미국은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근거로 “미의회에 제공된 북한 수용소 생존 목격자의 증언”이나 “미의회에 제공된 목격자의 증언을 포함한 믿을 수 있는 한 보고”를 들고 있다. 아마도 탈북자들을 상대로 한 증언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북한에서는 (유태준씨와 같은 탈북자에 대한) 공개처형이 일상처럼 돼있고, 북한 주민이면 공개처형 장면을 몇 번씩은 목격한다.”(조선일보 2001년 3월 26일)

이 기사는 ‘탈북’하여 한국으로 왔다가 재입북하였던 유태준씨가 이북 당국에 의해 공개처형되었다는 보도이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30일 문화방송은 유씨가 8월 18일 이북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고 남쪽에 있는 유씨의 가족과 ‘탈북자’들로부터 테이프에 담긴 사람이 유씨가 맞다는 확인을 받아 조선일보의 ‘공개처형 보도’가 완전 날조였음이 드러났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공개처형’되었던 유태준씨는 2002년 재’탈북’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유태준씨의 기자회견 내용도 온통 거짓말이었다.

– 북한에서 감옥 생활은 어땠나?
= 잠 못자고 맞아가며 조사를 받았다. 식사는 옥수수와 콩 삶은 것을 줬다. 조사를 받으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언제든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하게 됐나
=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수갑을 풀고 담장을 넘어 탈출했다. 걷거나 기차를 타고 국경부근까지 이동해 압록강을 건넜다. 낮에는 산 속에 숨었고, 밤에 주로 움직였다. 군인복을 훔쳐 입고 있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한겨레 2002년 2월 14일)

그러나 유씨의 탈출 경위에 의문이 일자 국정원 쪽은 뒤늦게 “유씨는 지난해 5월 초 교화소(감옥)에서 풀려나 평남 평성 양정사업소(양곡도정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작업장을 벗어나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유씨의 어머니 안정숙씨도 “아들이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배려로 감옥에서 풀려나 노동자로 일하다 탈출한 것으로 안다”고 뒤늦게 말을 바꾸기도 하였다.
탈북자의 입장에서는 이북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악화시켜야 자신의 ‘상품가치’가 올라간다고 판단할 것이다. 미국이나 이남의 일부 언론들은 이같은 탈북자들의 처지를 악용하여 정치적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통일연구원의 김수암 박사는 “북한 내부, 사회 내부 발생 상황들은 첨단 장비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북한이 워낙 폐쇄적이라 미국 역시 북한 내부 인적내트워크가 취약한 만큼 탈북자 증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내 입국한 한 탈북자는 “확인이 안되는 소문을 마구잡이식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며 “인권을 얘기하면서도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 것이나 또 다른 탈북자 역시 “그 쪽에서 직접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도 듣고는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다”라고 한 것은 미국 ‘북한인권법안’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4) 종교 박해

얼마 전 미국 국무부가 이북에서 기독교인들을 끓는 쇳물을 부어 살해했다거나 생체 실험을 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종교보고서가 공개되었다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남의 대다수 탈북자들조차 미국 종교보고서의 내용을 보고 반박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북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허구라는 것은 615 공동선언 이후 각종 종교인들의 남북 공동 집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남의 기독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 단체들은 이북의 교단과 이미 여러 차례 공동종교 집회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물론 이북의 종교계에는 서울 시청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휘두르는 광신도들은 없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같은 반공광신도들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 과정에서 청산되었거나 이남으로 도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 정국에서의 문제는 종교 박해가 아니라 역사청산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에 ‘종교 박해’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북 헌법 제68조에는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수 없다.」

어쩌면 미국 ‘북한인권법안’에서 이북이 종교를 박해하고 있다는 것은 ‘외세를 끌어들이’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것을 두고 이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세의 간섭을 애걸하고 외세의 침략을 묵인하는 종교를 허용하는 것을 종교의 자유라고 한다면 이북에게는 종교의 자유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데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0월 7일자 조선신보는 이북의 종교활동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하느님을 믿어도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라〉는 가르침을 주시였습니다. 불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어떤 종교를 믿어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신앙을 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같은 발언 속에서 이북은 ‘종교도 나라와 민족의 이익(즉 자주성 실현)에 복무해야 한다’는 종교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교 뿐 아니라 기독교, 천도교 등에서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종교관을 갖고 있다고 하여 이북이 종교를 박해하고 있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5) 식량문제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식량문제가 곧 인권문제로 될 순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잣대로 따진다면 과거에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이남의 경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당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이남을 두고 ‘인권 유린’ 운운했던 기억은 없다.
다만 그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권’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북은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자농업, 이모작 등을 장려하고 있으며, 이남을 포함해서 국제사회에 인도적 식량 지원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북의 식량난은 분명 극복해야 할 문제이긴 하나 식량문제를 인권문제로 등치시키는 것은 어불설성이다.

식량문제에서 ‘북한인권법안’이 문제삼는 것은 “식량의 분배에 관련된 투명성” 문제이다. 즉 미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북지원식량이 군사용으로 전용될 ‘우려’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국제기구들이 그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하기도 하였고 올 상반기에는 대북지원식량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남측 당국이 이북 내륙으로까지 분배현장을 확인키로 합의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같은 합의가 과거에는 대북지원식량을 군사용으로 전용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식량으로 전용한다는 미국의 주장 역시 근거 없다.

(6) ‘탈북’문제

‘북한인권법안’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미국은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탈북자들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정치경제적 조건을 구비하게 되었다.
‘북한인권법안’은 이북의 “심각한 식량난 등”이 탈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탈북’와 ‘월경’은 다른 범주의 문제라는 것이다.
탈북이라 함은 정치경제 등 다양한 이유로 하여 이북의 정치체제에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월경은 식량 등을 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경을 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의 신문기사들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십여년 전만 해도 양쪽 사람들이 강 건너 친척을 찾아 저녁 마실을 다니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색이 강한 탈북보다 도강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박창익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 교수, 한겨레 2002년 7월 29일자)

“지난 5월 이후 세번이나 두만강을 건너다니며 2∼5일 동안 머물다 집에 돌아가곤 했다.”(중국에서 만난 이북 소년(한겨레 2000년 7월 5일)

“-북으로 돌아갈 생각은?
=(김)조국을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고 가야지. 돈벌어서. 지금까지 7백위안(10만5천원)밖에 못모았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김)돈버는 것밖에 없다.”(한겨레 2002년 8월 2일)

소위 ‘탈북현상’는 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월경’한 이북 동포들을 북-중 국경 일대에서 암약하는 기획탈북단체들에 의해 야기된 문제이다. 즉 애초에 ‘탈북’의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월경’했다가 기획탈북단체들의 유혹 등에 의해 탈북하는 것이 탈북 현상의 주된 경로이다. 기획탈북단체들이 미국 의회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수많은 대북지원단체들이 ‘기획탈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북 정권이 탈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북한인권밥안’의 지적은 현상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그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기획탈북단체들이 탈북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그렇게 탈북해서 이남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인권이 과연 개선되었는가의 여부이다. ‘탈북자’들 중 86.6%가 부동산을 갖고 있지 못하고, 전체의 71% 남짓은 월 평균 개인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으며(한겨레, 2001년 8월 27일), ‘탈북자’ 중 63.5%만이 취업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 정규 직원은 25.1%에 불과하다. 또한 과반수가 넘는 ‘탈북자’들이 제3국으로의 이전을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위한 ‘기획탈북’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북한인권법안’은 또한 강제송환된 ‘탈북자’들이 처형받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국가의 승인 없이 국경을 넘는 것은 형법으로 처벌한다. 따라서 ‘탈북자’들을 ‘처형’한다는 것이 인권 문제가 될 순 없다. 문제는 처형의 정도가 될 것이다. ‘북한인권법안’에서는 “투옥되거나 고문을 당하고 종종 처형”당한다고 명시하였다. 여기서 ‘처형’이란 ‘사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지적 역시 근거없는 추측의 성격이 강하다.
앞에서 유태준 씨의 사례를 언급한 바 있다. 유씨는 1차 탈북 했다가 다시 가족을 데리고 오기 위해 다시 입북하여 이북 당국에 검거되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배려’로 풀려나서 노동자로 살아가다가 재탈북에 성공하였다.
만약 ‘북한인권법안’의 지적대로 극심한 처형이 이북에서 자행된다면 유태준 씨는 극형에 처해져야 할 인물이다. 단순히 중국으로 ‘탈북’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남에 살다가 다시 입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내용을 보면 유태준 씨는 ‘법적 처벌’을 받고 풀려났을 뿐 ‘극형’에 처해지지는 않았다. 또한 감시의 정도 또한 높지 않았기에 재탈북에 성공했을 것이다.
이같은 경우는 유태준 씨 이외에도 박충일 씨(아사히신문 2001년 6월 27일), 남수 씨(한겨레2003년 10월 27일) 등 여러 명이 있다. 2002년 이북을 다녀온 이홍 선교사에 따르면 “단순 탈북자의 경우 처음 잡히면 일주일 정도 조사만 받고 풀려나고, 두 번째는 노동 교화를 받게 되며, 세 번째 탈북하다 체포되면 비로소 감옥에 갇히게 된다”(한겨레 2002년 8월 22일)고 한다.

2. 국제협약상 인권의 정의

분명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은 인권에 대한 개념을 잘못 설정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북의 상황을 갖고 ‘인권’을 걸고 들어 ‘모략’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인권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미국의 ‘모략’에 혹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인권의 정의는 무엇일까.
1948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발표되었다. 이 선언문은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전제로 하여, 인권에 대한 “모든 국민들과 국가에 대한 공통의 기준” 30개를 발표하였다.
그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② 모든 사람은 인종, 성,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출신, 재산,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③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④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⑤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⑥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세계 인권 선언에 기초하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생명권과 종교의 자유를 갖고, 법 앞에서 평등하며, 표현의 자유를 갖는 것을 인권의 기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과 관련하여 이북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이북의 사회주의 헌법은 5장에서 「공민의 기본권리와 의무」를 규정하였다.

제64조 국가는 모든 공민에게 참다운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제65조 공민은 국가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다같은 권리를 가진다.
제66조 17살 이상의 모든 공민은 성별, 민족별, 직업, 거주기간, 재산과 지식정도, 당별, 정견, 신앙에 관계없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67조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68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제75조 공민은 거주, 여행의 자유를 가진다.
제77조 여자는 남자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
제79조 공민은 인신과 주택의 불가침, 서신의 비밀을 보장받는다.

이상의 조항들을 살펴보면 이북 역시 「세계인권선언」에서 제시한 인권 기준을 충족하는 헌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헌법이 이북 사회에서 적용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여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쳐도 탈북자들의 근거없는 발언 등을 증거로 하여 이북이 세계인권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볼 수는 없다.

최근 탈북문제와 관련하여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난민이란 무엇인가.
국제사회는 1951년 7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합의하였다. 이 협약에 의한 난민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및 이들 사건의 결과로서 상주국가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즉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소위 ‘탈북자’들은 대부분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월경’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난민의 지위를 받는 자격 요건에서 벗어나 있다. 국제협약을 운운하며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국제협약에 위반하는 주장들인 것이다.

3. 이북의 인권 정의

이북의 인권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4년 발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논문을 봐야 한다.

「인권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외세의 지배를 받는 나라 인민들에게는 결코 인권이 보장될 수 없다. 인권은 정치, 경제, 사상, 문화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인민들이 행사하여야 할 자주적 권리이다.」

이북은 인권을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인민들이 행사해야 할 자주적 권리’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북에서 인권은 ‘민족의 자주권’과 직결된다. 한편 이 논문은 미국 등 ‘제국주의’의 인권 개념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말하는 인권이란 돈만 있으면 별의별 짓을 다할 수 있는 부자들의 특권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실업자들의 노동할 권리, 무의무탁자들과 고아들의 먹고 살 권리 같은 것을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들에게 초보적인 생존의 권리도 주지 않고 반인민적 정책과 인종적 및 민족적 차별정책, 식민주의정책을 실시하는 제국주의자들은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도 없다.」

한편 이북의 김일성 주석은 1994년 <워싱턴 타임즈>의 기자단이 인권에 대해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인민이 좋아하면 그것이 공정한 인권기준으로 됩니다. 미국식 가치관에 기초한 인권개념이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없으면 더욱이 그것을 정치적 목적에 리용 하거나 나라들 사이의 관계발전의 전제로 내세우는 것은 옳은 처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한편 이북은 독재 정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민정권이 인민대중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력과 요소에 대하여 독재를 실시하는 것은 인권유린이 아니라 철저한 인권옹호입니다.」(『우리 인민정권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자』, 1992년 발표)

미국 심슨대학교 종교철학부의 신은희 교수는 2004년 5월 29일 {민족 통일학회}의 월례 발표회에서 이북 인권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북조선의 인권문제와 통일 다원주의』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이북의 인권 개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 교수는 논문의 목적을 “북의 인권문제를 문화철학적 차원에서 재해석하여 봄으로써 북의 주체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인권개념과 인본주의 사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이북의 고유문화인 주체문화가 지향하는 인권의 개념과 이해를 보다 ‘내재적’으로 접근하여 서구식 인권개념과의 문화적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라 밝혔다.
신교수는 이북의 인권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첫째, 계급 통합적 성격이 강한 민중의 권리인 민권(people’s rights)으로서의 인권; 둘째, 공동체적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소수권 (minority rights)으로서의 인권; 셋째, 자주적 원리에 따른 민족 자결권 (self-determination rights)으로서의 인권이 그것이다.

첫째, 민권으로서의 인권
이북 사회에서 인권은 특정인간의 개인이 아니라 근로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의 권리라는 것이다. 민중의 권리라는 차원에서 신교수는 이를 ‘민권’이라 명명하였다. 이북에서 인권은 서구의 인권개념이 기초하고 있는 천부인권석에 회의론을 제기하면서 인간의 권리는 신적 존재에 의하여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대중 인민들의 계급 투쟁을 통하여 이끌어 낼 수 있는 민중들의 권익옹호에 기초하는 개념으로 민중들의 법적, 제도적, 물질적 보장을 위한 계급적 토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신교수의 요지이다.

신교수는 “사회주의 사회는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된 사회인 것만큼 사회에 대한 관리도 인민대중 자신이 주인으로 되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방식에 의거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인민 대중에 대한 주체적 관점과 입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라는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논문을 인용하며, 인권논리도 민중으로 연대되는 계급 통합적 성격을 띤 민권적 인권관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북은 이와 같은 민중중심의 인권개념은 궁극적으로 민중정권을 수립함으로서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소수권으로서의 인권
신 교수는 북의 인권개념에는 공동체적 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소수권(minority rights) 옹호로서의 인권개념이 있다고 본다. 즉, 사회에 속한 인민 개인은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의무와 동시에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권리로서의 인권을 가지는데 이것은 국제 사회에서 소수 공동체 문화를 지켜야 하는 소수권으로서의 그 기능을 하여야 함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소수권으로서의 인권이란 지구촌 사회를 지배하는 서구 강대국 중심의 지배문화의 양식에 따라 모든 윤리관과 가치관이 설정되어 적용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서구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중요성은 공감하지만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결정하는 인권의 기준은 각 문화마다 다를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며, 서구식 인권측정이 북의 사회에 참다운 인권개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지극히 희박한 것으로, 인권은 출발부터 강요되지 않은 합의를 통하여 각각의 문화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문화적 동등성 (cultural equivalence)”의 원리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북은 자국민이 내부적으로 설정한 도덕적 가치체계를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명목 하에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거세할 수 없는 것이며 소수민족이 규정한 윤리관도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통하여 그 문화차등적 가치가 인준되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신교수는 설명한다.
이렇듯 현재 북에서 주장하고 있는 소수권으로서의 인권은 소수국가인 북이 현재 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자주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일종의 소수민족의 저항권리로서의 인권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민족자결권으로서의 인권
신 교수는 북의 인권개념에는 국가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인권개념으로 민족자결권 (self-determination rights)으로서의 인권을 들고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인권문제를 중요한 국제정치의 의제로 간주하며 국가주권이 개인주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북의 공동체 문화에서는 국가주권이 개인주권보다 상위개념이며 국가주권이 담보되지 않은 개인주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다고 신 신교수는 설명한다. 국가의 독립성이 선행되어야만 그 국가에서 살고 있는 개인의 권리가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에 북은 국제 인권기구가 소수민족의 주권과 민족자결권의 권리를 인권개념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국제사회에서 북을 인권 억압국가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이는 동시에 북에게 적대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정부에게도 소수권과 자결권을 보장하지 않는 반인권적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권개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적용될 수 없는 서구 인권개념의 한계성과 문화적 갈등양상의 존재를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오늘날 인권에 관한 국제보호는 각 민족의 “내적 자결권 (internal self-determination)”을 모든 인간 존재의 근원적 자유의 기초로 담보해 주어야만 한다고 신 교수는 주장한다.

부분적으로 소개된 신 교수의 논문은 이북의 인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최소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북 사회의 가치관에 의한 인권 개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인권 개념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북의 인권 개념이 또한 국제 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권 개념에 위배된다고도 볼 수 없다. 국제 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권 기준이 보편적인 것이라 한다면 이북의 인권 기준은 그같은 보편성에 바탕한 특수한 개념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북의 특수한 인권 개념이 보편타당한 인권 개념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북이 2000년 3월 제67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2차 정기인권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북은 2차 보고서에서 ‘최고형인 사형에 대항하는 범죄를 33개에서 5개로 감축시켰고, 신체의 자유와 관련 피심자 또는 피소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국가위기 시에도 인권침해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북은 또한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인권규약을 존중하고 이를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와 관련하여 ‘국제인권규약이 정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임의적인 해석을 금지하고, 규약에 명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제한하거나 저하시키지 않고, 국제인권규약의 내용을 국가기관, 공공기관 및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거 밝히기도 하였다.

4. 결론

지금까지 이북의 인권 상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물론 구체적인 접근이 어려운 조건에서 대단히 피상적이며 추상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글이 갖는 추상성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이 갖는 추상성이 더 크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북 인권 문제를 대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가 갖고 있는 인권 잣대로 이북의 인권을 규정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권과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인권이 모두 동일한 내용일 수 만은 없다. 자본의 축적을 최대 가치는 사회와 인간의 평등과 자주성 실현을 최대 가치로 여기는 사회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북의 인권을 평가할 때는 이북의 인권 규정에 대한 이해를 전재로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은 결코 이북의 인권을 개선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위 ‘탈북자’들의 이남에서의 생활 실태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또 하나의 이산가족으로 될 뿐 아니라 극심한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오히려 ‘북한인권법안’은 이북에 대한 정치적 공세 목적을 갖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북에 대한 붕괴 시나리오, 전쟁 준비의 사전 단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미 2002년 말에 ‘북한붕괴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추진하였던 것의 연장선에 존재하는 것이다.
셋째, 이북 인권 상황이 “최악”이라는 미국의 평가는 전혀 근거가 없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1976년 이란 장악을 위해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형률,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 역사”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어떤 나라보다 인권상황이 열악한 나라”로 규명한 바 있다. 미국의 지난 역사를 보면 미국이 ‘인권 시비’를 벌였던 모든 나라들은 미국이 전복시키고 싶어하는 정권이 장악한 나라였다. 리비아의 카다피, 쿠바의 카스트로, 이라크의 후세인 등 말이다.
넷째, 이북의 인권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이북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우선 식량문제와 경제난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시키는 것은 그 출발이 될 것이다. 그같은 선행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서 이북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여론 조사에 의하면 ‘북한인권법안’과 관련하여 “北주민 인권 개선 기여”한다는 의견이 9,548명(53.35%)으로 “北반발, 남북관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7,439명(41.57%)로 더 많았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인식 속에 미국이 심어놓은 잘못된 인권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에서 진행했던 여론 조사 역시 ‘북한인권법안’ 찬성 의견이 2,790명(70.1%)로 반대 의견의 1,137명(28.6%)를 압도하기도 하였다.
이같은 여론 조사 결과는 냉전시대의 반공반북 악령이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한 몫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들이다. 자주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미국이 심어놓은 그릇된 인권 잣대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북 인권과 관련하여 미국이 주장하는 내용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려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권은 쉽게 말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이다. 이북 사람들이 이북 사람답게 살 수 없도록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포기시키는 것이 이남에서 전개할 수 있는 이북 인권개선 운동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