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테러방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2002-04-08 113


다음은 PD연합회보 259호에 실린, 이석태회원(법무법인 덕수)의 글입니다.
테러방지법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을시 현 정부는 제2의 국가보안법 제정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여야는 현재 국회 정보위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안을 3월 13일 본회의를 통과시켜 제정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권에 관한 전담 국가기구로서 지난 해 11월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이미 강력한 제정 반대 의견을 표시한 바 있고, 법률전문가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와 민변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 등에서 마찬가지로 반대 의견 및 성명 등을 발표하여 제정 반대의 의사를 명백히 하고 있는 마당에 위와같이 여야가 일방적으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기로 전격 합의하였다는 것은 그 법안의 내용은 별론으로 하고 놀라운 일이다.

국가인권위는 이 의견서에서 테러방지법안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매우 크며 따라서 테러방지법안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국제 테러리즘의 양상과 원인·주체 △한국에서 혹은 한국과 관련하여 야기될 위험이 있는 테러의 양샹과 원인·주체 △한국에서 테러의 위험을 제거하거나 축소시키고, 테러를 진압하고 수사 처벌하며 테러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대테러대책에 관련된 국가기관의 기능과 권한 및 체계, 그 문제점과 대안 등에 대한 신중한 사전 검토를 거치는 것이 테러방지법의 제정에 앞서 선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 지적이 없어도 테러방지법의 성격상 국회가 위와 같은 사전 절차를 거치는 것은 통상의 입법 절차에 비추어 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여야는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공청회 한번 열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 제정하기로 합의부터 했다는 것인데, 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가 어떻든 특정한 법을 막무가내로 제정하겠다는 것이어서 국회의 존립목적마저 의심케 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국가정보원이 이번 테러방지법안을 발의하게 된 국제적 배경은 지난해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사건과 일정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그와 유사한 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 테러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이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일이 거의 없었던 만큼, 정부는 일차적으로 현재의 법령이 과연 테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지 세밀한 사전 검토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현재의 형법,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군형법, 항공법, 항공기운항안전법, 철도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원자력법, 전기통신사업법, 군사시설보호법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법에서 각종 테러를 범한 자는 그 법규에 정한 형으로 엄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여기에다가 최근에 마련된 통합방위법은 테러행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통합방위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군, 경찰, 향토예비대, 민방위대 등 모든 국가의 “방위요소”를 통합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금년에 펼쳐지는 월드컵의 대테러사태에 대비한 안전한 운영을 위하여 국가정보원장이 겸하는 안전대책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법령에 의하더라도 우리가 테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태에 대하여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규제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점과 관련하여 이번 법안의 발의 과정을 보면, 앞서 본 현행 법령의 어디가 테러 사태의 대응에 적절하지 않은 것인지 검토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테러방지법안에 의하면, 국가정보원이 대테러대책기구의 중심이 되어 관련 국가기관을 통제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최근에 물의를 빚고 있는 ‘수지김 사건’이나 국가정보원 직원이 관련되어 구속되기도 한 이른바 온갖 ‘게이트’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권한남용과 인권침해로 비난을 받아 온 국가정보원의 위상에 비추어 국민여론을 외면한 국가정보원의 이상 비대화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이 법안에 의하면 계엄이 아닌 데도 테러 사태가 발생하면 필요에 따라 군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국정원에서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에 대한 개념 정의에서부터시작하여 세세한 조문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기회있을 때마다 국민의 인권보장을 강조해 온 김대중 정부는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고 시민단체들이 부르는 이번 테러방지법안의 제정자로서 반인권적 정부라고 불리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