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와 우리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 – 원민경 변호사
주제도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공부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이제는 낯이 적당히 두꺼워져 버린 저는, 20분 이상 지각까지 하면서 이날 공부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거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모임 후기까지 쓰고 있습니다. 주제 도서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모임후기를 쓰고 있는 이 용기가 어디서 낫는지는 우리 부모님만 아시겠지요.
저자는 20대를 일컬어, 이들의 95% 가량이 이미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여 88만원 정도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88만원 세대’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조승희처럼 권총을 들 것인가, 아니며 전 세대인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참석자들은 여러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시간순서에 따라 당일 메모했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 한국사회에서 재벌에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 인적자원의 불균형적인 쏠림 현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 개인적으로 19세, 21세에 접어든 아이들을 둔 입장에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 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보았는데, 미래에 대한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대안을 만들고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데, 문제해결을 위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해결책이 있을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 새대 별로 사회현상을 분류하는 것이 다소 과학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즉모든 문제를 결코 세대문제로만 귀착시킬 수는 없을 터인데, 이 책에서는 세대문제로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 또 저자가 연공서열제를 언급하면서, 향수를 갖는 느낌이 있는데 그렇다면 다시 70, 80년대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요즘 지향하는 ‘작은 정부’대신 ‘큰 정부’가 들어서야 수립할 수 있는 것 같다.
– 저자가 취한 세대간 분석방법에는, 연구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갈 수 있어서 위험해 보이나,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 ‘선배들이 단물 다 빼먹은 것 같으냐’는 어느 분의 질문에 대하여 가장 젊은 변호사의 답변 : 요즘 리메이크된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야망은 없고 사랑만 남은 것 같아 보인다. 21세기는, 젊은 세대가 야망을 가질 수 없는 시대인 것 같다.
– 20대에 접어든 자녀들에게 ‘너희들 앞으로 어떻게 살래?’라고 물으면, ‘ 아빠들이 다 물러나면 되잖아’라고 대답을 듣는다.
– 85학번 세대는, 386 세대 중에서도 가운데 있는 세대로서 ‘실험실 개구리 세대’라는 이야기를 자조적으로 하곤 한다. 85학번은 항상 교육제도가 변화되는 초기를 지나야 했다. 세대상의 문제는 386 세대에도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어쩌면 어느 세대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다 맞는 이야기가 될 것이며, 대안이 다소 불완전해 보인다.
– 대만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산업발전단계를 거쳐 왔는데, 대만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청년실업문제, 독거노인문제 등이 없는 것 같다. 대만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에 대하여도 한 번 검토해 볼 문제다.
– 20대가 직면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수직계열화된 기업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겠다.
– 사회복지분야, 생태적 분야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등은 모두 큰 정부를 지향해야 가능한 것인데,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큰 정부가 가능한지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이 책의 해법은 어떤 세대에 대한 독특한 대안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에 대한 해법으로 보인다. 2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하여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고 하는데, 20대는 이명박의 부패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는 등 구체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지고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것 같다.
-‘ 20대는 왜 보수적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20대 중반의 어떤 분은 이렇게대답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 20대의 기본생각인 것 같다. 대안이 없기 때문에 좋은 취업자리에 연연하고 있는 것 같다. 고시준비를 하는 20대들에게 왜 판, 검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았을 때, ‘서울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다.’
– 20대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386 세대는 ‘독재타도’라는 공유된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인권문제 등에 민감하게 된 것 같다. 20대는 2002년의 경험밖에 없지 않은가.
– 일반적으로 20대는 원래 정치에 무관심한데, 지금 20대는 3, 40대의 20대 시절에 비하여 정치 참여 의사는 강하다. 불황이 파시즘을 가져오는 세계사적인 예에 비추어 볼 때 다소 걱정스럽기도 하다.
– 20대 내면에 들어가서 20대를 보고, 20대가 보지 못하는 20대를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80년대 초반, 변호사 300명 시대가 열렸을 때 변호사직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했었다. 변호사의 생활기반 악화로 인해 변호사들이 문화적 보수성을 띄고 창발성이 떨어져서 민변 변호사 숫자가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과 오히려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기도 했었다. (민변은 현재 양적으로 확대재생산 중이다)
– 386이 보수화의 물꼬를 튼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386은 386에게 배신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86 정치인은 386 대중을 배신했고, 386 세대는 다른 세대를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결과 서울에 사는 40대가 이명박을 지지하게 되었다. 호남출신 서울 40대가 정동영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자기분열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들이 진보적인 부분으로 서로 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 386은 생활적인 면에서부터 비전을 세워갈 필요가 있다.
– 흔히 ‘진보적인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세대를 정말 진보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학시절 4년 내내 집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나, 몇 번 시위 현장에 같이 있던 동료들, 선후배가 10, 20년 뒤 전혀 진보적이지 않게 변하는 모습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독재타도를 외쳤던 386세대가 정말 진보적인 세대였는가에 대하여는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표명했지, 실제로 진보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본인이 속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배려, 관심을 ‘진보적’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렇다면, 여전히 20대에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전에 비하여 더욱 활발해진 각종 시민단체에는 20대가 여전히 많이 일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을 보고서도, 20대 비정규직이 받는 급여가 정말 88만원일까 의심스러웠는데, 바로 오늘 20대의 비정규직 여성 의뢰인이 조정실에서 본인의 월급이 70, 80만원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현실임을 확인했다. 위 의뢰인으로부터 급여 이야기를 듣고, 조정하는 판사님은 그러면, 매월 위 돈에서20, 30만원씩 절약해서 상대방에게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법조인들에게 백 몇 십만원의 월급으로 살라고 한다면, 그 돈으로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텐데, 겨우 7,80만원의 월급 중 일부를 절약해서 조정금액을 지급하라는 판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는 20대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20대의 문제는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20대, 88만원 세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 세대가 살아갈 길을 찾는 중요한 문제이다.
– 추석 때, 젊은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이야기했더니 다들 무관심한 표정을 내비쳤다.
– 지방에 가서 이야기를 해 보면, 잘 나가는 지역 대기업이 순이익이 많이 발생해도 지역 경제(하청업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여러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를 괴롭혀서 원가를 절감시키는 방법으로 순이익을 증대시키고 있다.
–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하청계열사에 대하여 원가보다 훨씬 낮은 단가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증대하고 있다. 그 동안 삼성전자가 욕을 덜 먹는 것은 이보다 더한 기업(하이닉스)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삼성이 구조적으로 하청업체의 기술을 뽑아가고 하청업체의 피를 뽑는 구조에서는 하청업체, 중소기업이 살아나갈 수 없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 불안정해지고, 저임금 비정규직 젊은 세대가 양산되게 되었다. 삼성은 국내 하청업체에 대하여는 다른 유사 기업에 대한 납품자체를 금지함으로써 하청업체를 옥죄고 있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전망이 불투명한 중소기업(하청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 같다.
– 노키아 같은 회사는 오래 거래한 하청업체의 단가를 점점 높여주고 하청업체와 상생을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자하청업체는 어떻게든 노키아와 거래를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공정거래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중소기업이 살게 될 것이다. 대기업은 대기업이 살아 남으려면, 하청업체이자 소비주체가 될 수도 있는 중소기업이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모임에 참가한 회원들은 책 내용을 비롯해서 저자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서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책 내용에 대하여는, 주장이 강한 반면에 입증자료가 부족하다는 의견과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견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원래 위 공부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저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더욱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참석자들은 2시간이 넘는 열띤 토론을 마치고 생활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아오던 제게, 사실 이날 공부모임에서 보여준 회원들의 진지함과 열정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백 모 회장님 민변 내?외부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위원회들과 달리, 순수하게 사회와 인간, 역사를 공부해보겠다고 모인 ‘공부모임’은 그래서 더욱 귀한 모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 후, 오늘 모임도 좋았지만 이전까지의 공부모임은 더 재미있었다는 회장님의 말씀이 저를 계속 공부모임으로 이끌기 위한 ‘혹세무민(?)’이었는지는 앞으로 차차 확인이 되겠지요.
조악한 저의 정리 글을 보신 분들도 언제가 한 번 오셔서 회장님 말씀의 진위여부를 확인해 주시기를 & 멋진 정리 글도 한 번 써 주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