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월례회 사진

2007-08-29 191

아래는 김선수 회원의 후기입니다.

인문주의자로 살기
김민웅 『자유인의 풍경』

민변 월례회

2007. 8. 28.(화요일) 민변 월례회에서는 김민웅 교수(성공회대학, 이하 ‘김교수님’)를 초청하여 “법의 세계, 상상력은 유효한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민변에서는 김교수님이 2007. 6. 15.자로 출판한 인문학 에세이집인 『자유인의 풍경』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민변 회원들과 함께 ‘법의 세계’에 대한 담론을 나눠보고자 한다면서 위 책을 읽고 올 것을 안내하였다.

『자유인의 풍경』은 김교수님이 다양한 분야의 책(문학, 철학, 경제학, 정치학, 역사, 문화와 문명, 종교 등), 영화, 연극 등을 읽거나 보고 인문주의자로서 성찰한 내용을 엮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책(또는 문학작품), 영화, 연극 등을 대충 헤아려 보았더니 185편 이상이 되었다. 각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였다.

김교수님은 고교시절 시와 평론을 썼고, 대학에서 정치철학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정치학과 신학을 비롯해 폭넓은 영역의 공부를 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폭넓은 경험과 공부 그리고 깊은 사색이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매우 협소한 법률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성장에는 열을 올리지만 성숙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역사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고 성찰하는 인문학’을 통해 ‘자유를 얻고 스스로가 창조해나가는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위한 풍성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는 글쓰기

『자유인의 풍경』은 읽기가 매우 편하다. 문장이 간결하고 의미가 분명하다. 그리고 각각의 글에는 삽화가 한 점씩 그려져 있는데, 김교수님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많은 재주를 지니신 분이다. 책에 삽화를 그려 넣은 것은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시적인 접근, 시적인 산문을 지향했다고 한다.

김교수님은 우리 지식인들의 글쓰기에 대해 한마디 하셨다. 개념어로 연결된 문장으로 나열되어 생경스럽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널리 읽히지 않는다. 계간지 등을 통해 좋은 주제에 대해 많은 글들이 발표되고 있으나 대중에게 읽히지 않는다. 주제를 아는 사람은 읽을 필요가 없고,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글과 문장에 대한 정확한 지적인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편하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써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참석

민변의 월례회는 회원뿐만이 아니라 비회원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그런데 이날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석했다. 이수호 전 위원장님은 김교수님을 잘 알고 민변 사무차장인 송호창 변호사로부터 특별히 연락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수호 전 위원장님이 전교조 위원장일 당시 연가투쟁을 전개한 것과 관련하여 기소됐을 때 김진 변호사와 내가 변호를 하였었다. 이수호 전 위원장님은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언제 뵈도 온유하면서도 원칙에 투철한 모습이다. 강연 끝나고 2차까지 같이 했다.

『자유인의 풍경』은 이수호 전 위원장님의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2006. 5. 출판)에 한 꼭지를 안배하고 있다. ‘나의 배후는 너’라고 함으로써 ‘배후’는 음모의 산실이 아니라 함께 역사의 고비를 넘는 동지를 부르는 소리가 되었다. 학교와 동네를 수몰시킨 충주호 위로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면서도 물속에 마을이 있었음을 망각하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 시도 소개되어 있다.

이수호 전 위원장님의 시들을 통해 김교수님은 눈물이 필요한 시대에 눈물을 흘릴 줄 아고, 막힌 세상과 직면하면 쾌활한 용기를 낼 줄 아는 것이 진정 시간의 파고에 휩쓸려가지 않을 인생을 사는 법이라고 설파한다.

한국에 귀국하면서 충격 받은 두 가지

김교수님은 1956년 일본에서 태어나 1961년 귀국하였다. 귀국할 때까지는 완전한 일본아이로 자랐다고 한다. 귀국하면서 배를 타고 밤샘을 했는데, 그 때 처음 밤샘을 하는 것이어서 비로소 어른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김교수님은 귀국하면서 두 가지 상황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첫째는 한국이 엄청나게 가난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당시의 군사정부가 귀국동포들의 통관과정에서 귀중품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김교수님 가족은 귀국하면서 일본에 있던 재산을 정리해서 이런저런 귀중품들을 사왔는데, 돌그릇 등 2점만 빼고 화장품 등 귀중품들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6살이던 김교수님은 세관원이 빼앗은 화장품들을 사무실로 가져가서 여직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북한당국이 북송동포로부터 귀중품을 빼앗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김일성과 박정희가 짜고 남북에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김교수님은 반공주의가 본인에게 먹혀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법은 직선인가 곡선인가

김교수님은 강연의 시작을 ‘법의 지배’라는 말의 허구로부터 시작했다. 근대사회의 특징을 보통 ‘사람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로 넘어간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지배하는 사람들이 법의 뒤로 숨어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실체규명이 어렵게 된 것뿐이지 여전히 강자들이 법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다.

‘법의 지배’라는 말 속에는 법은 ‘지배’를 전제한다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 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 목적인데, 정의는 실종되었다.
법률가는 훈련받은 내용에 따라 실정법에서 출발하고, 밑바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김교수님은 질문한다. 법은 아파할 줄 아는가? 법에는 희망이 있는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법이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인의 풍경』은 진한 향기의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사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커피 주생산지인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수단 등의 국경선은 모두 직선이다. 이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이들 지역을 정복, 지배하면서 만들어낸 제국의 경계선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설정된 38선도 직선이다. 고딕식 디자인도 그렇고 직선에는 생명의 발랄함이 없다. 생명을 담은 선은 곡선이다. 사람의 몸 역시 곡선이다. 그렇다면 법은 직선인가 아니면 곡선인가?

나도 최근 커피에 맛을 들였다. 휴일에 식사 후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하고 원두를 갈아 내려 아내와 함께 한 잔 마시면 그윽한 향기에 묻어오는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마시는 커피의 원두를 따기 위해 아프리카 아동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이런 행복이 바로 소시민적 안락함인가 하는 고민에 잠시 빠지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직선의 국경선을 가진 국가들의 역사까지 생각해보지는 못했었다.

법은 아무래도 곡선보다는 직선에 가까울 것이다. 이수호 전 위원장님은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 직선이므로 법은 ‘부드러운 직선’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문학적 상상력을 발동하면 부드러운 직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건에 법을 적용해서 판단을 하고 결론을 내야만 하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법이 직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법은 곡선이다. 어떠한 상황도 법의 논리로 정당화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이 변호사이다. 변호사가 주장하는 곡선인 법이 법관을 설득하면 직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을 직선과 곡선 어느 하나로 잘라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언어사용의 모순과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의 차이

우루과이 출생의 유배된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노는 『뒤집어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도시의 범죄자들은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간다. 그러나 이 지구촌의 자연과 인권을 가장 폭력적으로 파괴하는 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그들은 도리어 그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썼다.

‘가난한 사람들’을 ‘저소득층’이라 하고, ‘강자에 굴종하는 패배주의’를 ‘현실주의’라 하며,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를 ‘전투적’이라 하며, ‘전쟁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을 ‘부수적 손상’이라고 한다. 갈레노가 제시한 의도를 담아 조작된 말들의 예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할 때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에 미국이 참전한 것은 잘못이라는 관점에서의 반성이 있는가 하면 미국이 이길 수 있었는데 전략적 실수로 졌으므로 침략주의적 기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관점에서의 반성도 있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 50주년인 2005년에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 대신에 대동아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인사들이 생겼다. 대동아전쟁은 미군정 이후 퇴각된 용어인데, 이는 미국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성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는 일본의 장래 진로를 놓고 전혀 다른 길을 추구한다.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

『자유인의 풍경』에 이중섭의 은지화에 관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김교수님은 강연 중에도 이에 대해 특별히 설명했다. 『자유인의 풍경』 표지에 물고기 그림들이 있는데, 이중섭의 은지화 중에서 취한 것이란다.

은지화는 전란 중에 버려지고 폐기되고 구겨진 담뱃갑 은박지를 펴서 그 위에 철필을 꼭꼭 눌러 그려낸 작품이다. 3점이 1950년대 중반에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이중섭이 환희를 표현한 것이다. 폐지에 불과했던 은박지가 화가의 영혼을 불어넣은 작업의 결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 작품이 되었다.

김교수님은 법률가들이 흔히 접하는 소위 쓰레기 같은 존재들도 영혼으로 대하면 좋은 작품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적어도 변호사는 그러한 자세로 의뢰인을 대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양과 인문주의자

김교수님은 서경식 교수 등이 엮은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교양은 적당한 수준의 상식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힘이다. 일본의 어느 과학자가 전쟁 중에 인간을 살상하는 전투기 설계에 참가했을 때도 즐거웠고, 전후에 평화적 건설을 위한 교량설계에 참가했을 때도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 것에서 일본의 교양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미국인 다수가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것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교양교육이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그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 갈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교양은 후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김교수님은 지식의 출처와 고민의 출처가 만나야 한다고 주문한다. 지식은 외국의 것을 가져온다고 해도 고민의 출발점과 그 지식을 적용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벗어나 고민하고 지식도 우리 것이 아니면 우리 사회에서 효용을 발휘할 수 없다.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올 줄 하는 자가 진정 세계를 말할 줄 아는 자이다.

김교수님은 법률가나 정치가나 모두 교양을 갖춘 인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사소한 계기에서도 역사적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병주의 소설 『쥘부채』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몬』을 들고 있다. 이 대목은 조지 레이코프가 진보주의자들에게 진보주의의 가치와 용어와 프레임을 되찾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부터 노력하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교수님은 늘 따뜻하고 열정을 가져야 하며, 냉철하지만 따뜻해야 하며, 강하지만 부드러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법조인도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분단의 아픔을 깨달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마디로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들을 상대로 노동법을 강의할 때 항상 맨 마지막에 노동사건의 판결을 읽을 때 건조한 법리만을 보지 말고 그 뒤에 숨어있는 전국 방방곡곡에 배어있는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읽으라고 요구한다. 해고자가 대법원까지 가서 재판에 졌을 때, 특히 2심까지 이겼는데 대법원에서 뒤집어졌을 때 그 노동자의 피눈물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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