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의 소멸시효 문제

2013-04-01 206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의 소멸시효 문제

 

 _이상희 변호사

 

 

1.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 2013. 3. 21.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에서의 소멸시효 문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2011년 대법원은 울산보도연맹사건과 문경석달사건에서 소멸시효 항변을 인용하여 국가책임 부인한 기존 판례와
달리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였다.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고려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을 때까지 유족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하고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 등에 비추어 보아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대법원의 법리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실제 위 판결 이후 대부분의
하급심이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하급심이 위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맞서며 기산점을 1950년 또는
4
대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진상조사일로 보고 소멸시효를 원용하거나, 시효정지규정을
인용하면서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에도 시효정지기간에
준하여 장애사유가 소멸한 때로부터 늦어도 6월 이내에는 채권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국가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이에,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문경석달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확인하고, 소멸시효 항변을 인용하고 있는 하급심 판결의 문제점을 검토하기 위하여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2. 그 동안 법철학적, 법인권적 관점에서 과거사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오신 이재승 교수와 문경석달 사건 주심 변호사인 박갑주 변호사가 발제를 하였고, 소멸시효 문제를
꾸준히 연구해온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제완 교수, 과거사 사건 변론을 담당하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민간인학살 사건을 담당했던 신기철 전 조사관, 보은 유족회장이자 한국전쟁 유족회 상임부의장인 박용현 선생이 토론을 하였다.

 

3. 이재승 교수의 발제는 자기고발로부터 시작되었다.  

형식적인 법률가는 기존의 해법에 맞춰 문제를 처리한다. 기존의
법체계를 완전한 우주라고 생각하며 안주한다. 그가 좋은 시대의 좋은 법적 여건에서 작업하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쁜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는 법률적 참화도 수행한다.
그는 규범준수로 치장하며 현실을 숭배한다.(중간생략). 실천적
법률가는 문제를 지향해 사고하며 거기에서 소우주를 본다. 그에게 기존의 해법이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현안의 해결에 끌어올 후보일 뿐이다. 그는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기까지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고 기존의
것들을 거듭 변형한다. 끝도 없는 변화의 세계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지적 작업은 인생에 봉사하는 것임을
안다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을 다루는 법률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 지점에서 민간인학살 국가책임을 어떤 관점과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주셨다.

 

이재승 교수는,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배제론이 국제인권법에서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2005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피해자 권리장전이 피해자 구제에 관한 유권해석인데, 이에 의하면 시효규정은 국제법상 범죄를 구성하는 국제인권법의 총체적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수는, 법원이
민간인학살, 고문사건, 간첩조작사건에서 침묵했던 역사를 간과하고
과거의 법원이 학살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해줄 역량을 갖추었거나 관행을 확립했던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사실의 착오이자 유체이탈화법이며
법조윤리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일부 재판부가 시효정지 이론을 유추적용하여 신의칙상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신의칙은 개인들이 서로 대등하게 장군멍군 식으로 행동하는 정상적인 관계에서 거론할 수 있는 항목일 뿐, 끔찍한 살육의 장치로서 국가와 피해자로서 개인 사이에는 신뢰와 배반을 언급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특히 책임을 제한하거나 부정하기 위해
사적인 평등관계의 논리를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범주착오라고 하였다.

이교수는 진실을
알고도 소송할 수 없는 사회진실을 알았다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사회를 질적으로 구별한 뒤, 권리구제가 없는
곳에서는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인권법의 법리인바 울산 보도연맹 판결 이전에는 한국전쟁에서의 집단희생자들에게 효과적인 구제수단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울산판결선고일이 집단희생사건에서 시효기간에 대한 새로운 표준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박갑주 변호사는 문경석달사건 대법원 판결을 소개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하였는데, 시효 자체의 배제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 울산보도연맹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사법기관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 곤란하였다고 판시함에 반해 이 사건에서는 국가에 의하여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함으로써 소멸시효 기산점을 대법원
판결시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없앴다는 점, 적극적으로 사법의 자기반성으로 기존 거창학살사건 이후
판례변경임을 분명히 하여 새로운 소멸시효 표준시를 울산보도연맹 사건 또는 문경 사건 대법원 판결 선고시임을 선언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하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박갑주 변호사는 위 대법원 판결 선고 후, 기존에 소제기 사실을 몰랐거나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유족들을 대리하여 추가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 법원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무시하고 소멸시효 항변을 인용하였다고 한다(항소심 진행 중).

 

5. 토론자 김재완 교수는, 우리나라 소멸시효가 영미법과 달리
절차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법상의 문제이므로 당사자의 권리와 직결된 이상 법원의 판단재량은 적고 좀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법부는 입법부에게 책임을 지우고(소멸시효를 원용한 재판부의
판결을 보면 법률 제정을 통한 해결을 권고하고 있음), 입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는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모두 국가기관이니만큼 누구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배상책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6. 조영선 변호사도 시효 기산점은 울산보도연맹 대법원 판결선고시인
2011. 6. 30.
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소멸시효를 이유로 국가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시효학살이라고 주장했다.

 

7. 신기철 조사관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실종을 가장한 불법집단학살이라고 하였다. , 연행 주체도 숨기고, 사망
사실도 통보하지 않고, 시신 수습도 방해함으로써 사실상 실종으로 가장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처음부터 모르게 죽이려 의도했고, 의도대로 실행한 후 암매장
한 자들이,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이제 와 ‘(죽음을) 알지 않았냐고 묻는 다면 이건 인간의
조건을 넘는 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 전 조사관은 국가가 1953년부터 전국 희생자 명부를 작성하여 관리하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있는데,
1978
년 중앙정보부가 발행한 ‘6.25 당시 처형자 명부에는 26,330명의 처형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명부가 작성되고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인데, 1979년 충남경찰국에 대한 청양경찰서의 질의서에서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질의서에는 ‘…현재 부역자 명부는 본서에 일부, 지파(지서와 파출소를 말함)
일부가 보관되어 있으며 신원조사시 및 사실조사시 사용되고 있는바, 동 명부가 1953년도에 작성되어 무려 26년간 사용됨으로써, 지면이 훼손되고 내부 기재사항이 변색되어 곤란하므로…’라고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8. 박용현 상임부의장은 유족 입장에서 어떻게 진상규명 활동을 제지 당했는지, 그리고 희생자 유족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핍박 받고 살았는지를 말씀해 주었다.

 

9. 이 교수는 시효계산법은 수학이 아니라 규범학이다.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응용된 역사학이라고 하였다. , 소멸시효는 민사법상 만고불변의 법리가 아니라 사람과 인권, 역사를 바라보는 법관의 시선이자 우리 사회 인권의 수준일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그 지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법적인 무장
논리를 서로 공유했다는 점에서 유익한 자리였다.

토론회 발제와 토론을 담당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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