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기지촌과 미군기지, 현재진행형인 미군문제의 역사 – 햇살 사회 복지회, 대추리 평화박물관 방문기

2013-01-16 352

기지촌과 미군기지, 현재진행형인 미군 문제의 역사

 – ‘햇살 사회 복지회’, ‘대추리 평화박물관’ 방문기


글_ 9기 인턴 이경빈

1월 15일 화요일, 민변 미군위원회에서는 평택 햇살사회복지회관과 대추리 평화박물관을 찾았습니다. 햇살사회 복지회, 두레방 등 여러 기지촌여성인권 운동 단체들이 모인 ‘기지촌 여성 인권 연대는 특별법 제정 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민변 미군위와 함께 집단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군위에서 평택 안정리의 햇살 사회 복지회를 방문한 것은 기지촌 여성문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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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군사정권 당시의 기지촌 정화운동에서 드러나듯이, 역사적으로 기지촌의 성매매는 몇몇 여성과 포주, 미군 간의 사적인 거래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 두 국가가 정책적으로 조장하고 후원한 국가적 산업이었습니다. 이번 소송 또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국가의 체계적 개입, 묵인, 관리를 입증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기 위해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한 할머니께서 일어나서 말씀을 하시자, 비슷한 일을 겪은 할머니들이 여기저기서 증언을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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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미군헌병과 한국 경찰들이 검진증을 불심 검문하는 것을 ‘토벌’이라고 불렀다)에 걸리면 보건소에 붙잡혀 가서 최소한 일주일, 깨끗하다(성병이 없다)는 검진 나올 때까지 계속 거기 있는거지. 보건소에 쇠창살이 있었는데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고. 이부자리 대여섯개 있고. 무슨 병실처럼”


“무슨 병실이야. 창고 같은데지.”

“에이. 창고는 아니지.”

“보건소에서 맞춰 주는 주사 맞고 쇼크로 죽은 친구들도 여럿 있어요.”

“(한국) 경찰들은 뭐 우리가 미군한테 맞는 거 봐도 아무런 힘도 없어요. “

“우리가 무슨 말해도 그냥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지.” “절대 우리편 아니지.”



그 외에 포주가 기지촌 여성을 감금했었던 것, 포주와 경찰이 유착관계 였을 것이라는 증언, 직접 포주가 경찰에게 봉투를 건네는 것을 본적 있다는 증언 등이 나왔습니다. 한 할머니가 말씀하실 때면 때로는 ‘맞어맞어’ ‘것보다 더했지’하는 목소리들이, 때로는 ‘그게 아니지’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면서, 할머니들 개개인의 경험은 ‘집단적 경험’으로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했습니다. 다른 할머니의 증언을 듣다가 여기저기서 생각나는 경험들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바람에 활동가분들이 여러개의 녹음기를 가지고 동시에 여러 할머니의 이야기를 녹취하기도 했고, 때로 할머니들은 ‘저기서 이야기하고 있잖어, 조용히 좀 해.’ 라며 서로 핀잔을 주고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10번이나 낙태수술을 해서 몸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나 보건소 직원에게 모욕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이야기 앞에서는 서로 슬픔과 안타까움을 나누셨고요. 앞으로는 오늘 간담회에서 나온 증언들과 기존 증언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추가적 인터뷰 그리고 실증적 기록 조사를 통한 본격적인 소송 준비가 진행될 것입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나서, ‘기지촌 여성 인권 연대’의 회의에 잠시 참여한 후에는 대추리 평화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평화마을 대추리의 신종원 이장님을 만나, 평택 미군 기지 확장으로 인한 마을 강제이전과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은 정부의 약속들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들었습니다. 이전 후에도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대추리 지명 문제, 원래 살던 마을을 잃고 이전된 마을로 옮겨오면서 대부분 주민의 생업이었던 농사를 더이상 짓지 못하게 된 것, 투쟁 과정에서 노와리 주민들과 생긴 오해와 갈등 등 미군 기지 확장으로 시작된 문제는 지금까지도 주민들의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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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지나간 역사이지만 현재 진행형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미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낡고 쓸모없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하거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주제’라고 짐작하며 불편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말 못할 이야기들’을 담아둔 채, 우리 사회의 미군 문제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 그 어려움을 듣고 느껴 보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편견, ‘역사’의 부정 등 다양한 모습으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상처… 앞으로 계속될 민변의 연대를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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