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민변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 참석 후기

2013-01-15 177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 참석 후기-


 


글_김하나 변호사


 


1년차 변호사에 민변 신입회원, 아직 입회원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지만 사무실에 앉아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변호사를 찾아올 만큼 삶의 불편함을 느꼈을 때 그 방문의 목적이 눈앞에 손해를 배상받기 위함이라면 경제적 비용이 제일 문제가 되지만, 제도를 바꾸기 위함이라면 시간과 더불어 소모되는 감정이 가장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기약도 승산도 없는 소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사무실에 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더 나아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확실히 승소가능성이 있네요.’ 라는 말을 원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도를 바꾸겠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더군다나 변호사는 많지 않다.


 


내가 ‘최강서’라는 이름의 노동자를 처음 만난 것은 포털사이트 메인에 게시되었던 한 줄짜리 기사에서였다. ‘158억 소송에 짓눌린 한진중공업 노조간부 끝내…’ 자살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끝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선 직후 팽배했던 패배의식 때문이었을까 노동자가 선택한 죽음의 의미를 아는 것이 부담스러워 기사를 채 끝까지 읽지 않고 창을 닫았다. 편하게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이도 향후 5년 안에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하루가 무겁게 느껴졌던 그날 현장에서 기약도 없는 싸움을 하는 이들은 오죽했을까.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간부, 이운남 현대중공업 노조 조직부장, 최경남 서울민권연대 청년활동가, 이호일 전국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 지부장 그리고 이기연 한국외대지부 수석부지부장. 자고 일어나면 들려오는 연이은 자살 소식이 비로소 나에게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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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책감, 의무감, 착잡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잊혀 질 때 즈음에 전명훈 간사님으로부터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 관련 메일을 받았고 버스에 올랐다. 배정받은 버스 1호차는 ‘1’이라는 숫자에 걸맞게 종교계, 학계 원로선생님들과 함께 탑승하였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약 5시간의 여정 중 돌아가면서 짧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때 비로소 버스에 동승한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백기완 선생님을 필두로 원로선생님들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들은 버스에 오르게 된 진솔한 이야기부터 노동 현실에 대한 짤막한 고견까지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소중한 이야기였다. 대학 이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청해 많이 들어왔으나 이토록 짧은 시간에 누군가와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평생을 몸담아 이루려던 길이고, 현재 누군가가 함께하고 있으며, 또 다음 세대와 같이 하면서라도 끝까지 가야하는 길이라는 것을 원로 선생님들의 존재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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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에 도착하여 올려다 본 송전탑은 참 높았다. 그 높은 송전탑 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최병승, 천의봉 두 동지의 모습을 보니 연일 계속된 노동자의 죽음에 편치 않았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송전탑 위로 하트♥를 보내는 모습에 흐뭇해서 저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향한 길, 부산은 예상했던 대로 공기의 무게감이 달랐다. 최강서 열사의 부인은 ‘남편이 불쌍하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남편의 뜻을 계속 이어가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고, 김진숙 위원의 추모사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한진중공업 사옥 앞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버스에 타 언 몸을 버스에서 녹이며 생각했다. 식이 진행되며 우리는 많은 노래를 듣고 또 불렀다. 그런데 그 중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었고, 마지막 헤어지면서도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이 노래를 불렀다. 기약 없는 싸움에서 열사가 바랐던 것은 비록 현실은 낭떠러지 일지라도 많은 이들이 함께 이 길을 묵묵히 가고 있으며, 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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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1. 10.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들이 전원 복직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2013년 희망뉴스’ 정도의 가상뉴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시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보니, 실시간 뉴스였다. 나를 포함한 전국의 노동자가 가고 있는 긴 여정에 들려온 단비 같은 희소식이 모든 복직 투쟁 중인 분들께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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