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변론] 유신헌법 제53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2010-10-28 167

-유신헌법 제53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08. 11. 21. 긴급조치위반 재심청구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3차례에 거쳐 총 17명을 대리하여 긴급조치(1, 2, 4, 9호)위반 재심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변호인단은 각 재심청구 사건에서 1972년 헌법(유신헌법) 제53조와 긴급조치에 대하여 위헌심판제청신청을 제기하였습니다. 긴급조치가 1972년 헌법 제53조에 근거하여 내려진 것이기에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다투기 위해서는 긴급조치 자체의 위헌성과 함께 유신헌법 제53조 자체의 위헌성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위 53조에 대해서도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한 것입니다.


2. 헌법은 국가가 지향하는 근본 가치질서의 구체적인 실현형태로서 일정한 기본원리와 근본규범을 지니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국민주권의 원리, 자유민주주의, 사회국가의 원리, 문화국가의 원리, 법치국가의 원리, 평화국가의 원리 등을 기본원리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신헌법은 1)통일주체국민회의를 창설하고 여기에 대통령 선출 권한, 국회가 발의•의결한 헌법개정안을 최종적으로 의결 확정할 권한, 국회의원 선출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민주주의 핵심 원리인 국민주권을 찬탈하였고, 2)입법기관 및 사법기관에 관하여 법치주의 핵심원리인 권력분립의 원리를 무력화시켰고, 3)구속적부심 폐지, 자백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규정 삭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허가•검열을 금지하는 조항 배제, 나아가 기본권 제한 일반 유보 조항에서 ‘기본권 본질 내용 침해 금지 규정’을 삭제하여 입헌주의 핵심 원리인 기본권 보장을 공동화 시켰습니다.
 특히 유신헌법 제53조에서 규정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①사후조치만이 아닌 사전예방적 조치도 허용하였고, ②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긴급조치와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한 긴급조치를 허용하였으며 ③국회의 승인이 아닌 국회에 대한 통고만으로 그 요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하였고 ④특히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은 「제 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였습니다. 이는 권력분립원리나 법치국가 원리, 국민의 기본권 보장 원칙을 형해화한 것으로 법의 기본원리나 근본규범에 위반됩니다.


3. 그런데 재심담당 법원들은, ‘헌법의 개별 규정은 위헌심사의 대상이 아니고(헌법재판소 2001. 2. 22. 선고 2000헌바38 결정) 이는 구 헌법의 개별 규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면서 각하 결정을 하였습니다.
각하 결정을 받은 사건들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는데, 제2지정재판부는 헌법 개별 규정은 위헌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헌법소원 청구도 각하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3지정재판부는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하는 결정을 하였고 현재 심리 중에 있습니다.


4. 변호인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구 헌법 제53조도 헌법재판소의 사법 심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 헌법 조항은 현재의 헌법에 그대로 승계되거나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보다 확장된 의미로 현재의 헌법 조항에 구체적으로 구현되어 있지 아니하는 한 실질적으로 규범력을 상실하였으므로, 과거에 헌법이라는 규범의 형식을 띠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심사에서 배제시켜야 될 합리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이미 형식적, 실질적인 최고 규범성을 상실한 1972년 헌법 제53조에 의거한 긴급조치에 따라 상당수의 국민이 회복할 수 없는 기본권 침해를 당하였고 그 폐해가 지금까지 치유되거나 구제되지 아니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명백한 흠에 대하여 그 치유와 구제의 근원적인 방법의 하나로 제기되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사법심사를 원초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부당함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헌법에서 심사 대상을 ‘법률’로 규정한 진정한 의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한 ‘현재의 헌법’을 제외한 어떠한 규범도 그 형식을 막론하고 사법심사 대상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넷째,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법치국가 원리에 대한 파괴의 면에서 1972년 헌법 제53조를 주권자인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헌법 제정권력의 정당한 발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시정된 현재 시점에서 1972년 헌법은 당연히 헌법에 의해 조직된 헌법재판소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5. 1972년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이 대통령 개인의 인격화된 권력에 의해 아무런 실효적 제약 없이 유린당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특히 제53조는 법치주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위헌적인 헌법 규정에 대해 위헌심사를 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가치를 담는 그릇인 헌법을 지키는 길은 요원할 것이며 긴급조치로 인해 무고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것입니다.
1100건이 넘는 긴급조치위반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는 지금이라도 1972년 헌법에 대한 위헌심사를 통렬한 반성의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급조치위반 재심청구 사건 변호인단 이석태, 조영선, 이상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