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결정 분석 및 사형제도와 범죄억제력의 관계> 방청 후기

2010-04-27 265



사형제도 긴급 토론회  방청 후기




 필자는 민변 홍보출판팀의 인턴이 된 후, 첫 뉴스레터를 준비하며 ‘사형제 위헌제청’의 소송대리인이었던 이상갑 변호사님과의 지면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당시는 김길태 사건이 한창 이슈였고, 또 줄지어 터지는 흉악한 사건들로 인해 국민여론이 매우 험악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인 필자 역시도, 이성적으로는 사형제도의 극단성과 야만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형 폐지론자로 완전히 돌아서기에는 심정적인 걸림돌이 있었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상태는 여태까지도 이어지고 있었기에, 필자는 자연스레 ‘사형제도에 관한 토론회’에 관심을 가지고 방청에 참여하게 되었다.

 
토론회가 열린 장소는 시청역 프레스센터 19층의 기자회견장. 토론회가 있었던 2010년 4월 26일 월요일에, 학교 수업이 있었던 필자는 토론회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기에, 사전순서를 놓치고 본 순서인 토론회만을 들을 수 있었다. 사전순서에서는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님의 사회로 내빈 소개가 있은 후에, 조성애 수녀님(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과 EU 의장국인 스페인의 후안 레냐 주한대사님, 그리고 민주당 김부겸 의원(사형제폐지특별법안 발의)님의 ‘여는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고 하는데,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토론회는 정미화 변호사(법무법인 남산 대표)님의 사회로, 기조발언이 있은 후에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에 대한 헌법 분석’을 주제로, 2부에서는 ‘사형과 범죄 발생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각각의 주제발표가 있은 후에 3명의 지정토론자분들이 주제발표를 보강해주셨다. 사회자인 정미화 변호사님은 세련되고 온화한 진행으로 매끄럽게 흐름을 이끌어, 토론회를 더욱 알차게 만들어 주셨다.

 기조발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힐튼 안토니 데니스 주한대사(Ambassador Hilton Anthony Dennis)가 맡아주셨다. 대사님은 남아공이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극복한 이후에 사형제를 폐지한 과정과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어째서 그러한 가치들이 소중하며 그들을 지켜내야 하는지도 말이다.

 
‘헌재의 판결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진 1부의 지정토론자로는,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의장 허일태 교수(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님이 나서주셨다. 허 교수님은 헌재가 합헌 판결을 내리며 제시한 근거 3가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논리적 오류들을 지적하셨다. 주제발표가 끝난 후에는 지정토론자들의 보충 발언이 이어졌는데, 1부의 지정토론자로는 리처드 커윈 주한영국대사관 정치담당 서기관과 오동석 교수(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님, 금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님이 나오셨다. 리처드 커윈 서기관님은 한국사회의 심도 깊은 사형제 찬반 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격려를 더하셨고, 오동석 교수님은 우리 사회의 ‘헌법규범의식 부재’와 ‘국가편의주의 및 입법만능주의’를 지적하셨으며, 금태섭 변호사님은 사형제 존폐 논의에 있어 꼭 필요하지만 앞서 논의되지는 않은 것들을 보충해주셨다.



 잠깐의 휴식 후에 이어진 2부의 주제는 ‘사형과 범죄발생에 대한 연구’였다. 앞서 보았던 1부가 ‘사형제 합헌 결정의 부당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이어진 2부는 ‘사형제 폐지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되어줄 연구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두 분의 발제자가 주제발표에 나서주셨다.

 첫 번째 발제자인 홍기원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님은 ‘사형제도에 관한 최근 미국 법경제학의 연구동향’을 알려주셨다. 미국은 35개 주가 사형제를 인정하고 15개 주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데, 이처럼 주마다 다른 입법 현황 탓에 사형제의 존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홍 교수님은 그 학문적 성과들을 소개해주셨다.
 
 두 번째 발제자인 한인섭 교수(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님은 얼마 전 민변과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함께 발간한 <한국의 공익인권소송>의 공동 집필자이셨기에, 괜시리 친숙함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한 교수님은 ‘통계와 기초자료’들을 준비해오셨는데, 프레젠테이션 기기들을 준비하는 동안에 옆에 계시던 이호중 교수님과 함께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셨다. 
“교수님은 담배를 피우십니까?”로 시작된 이 대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몸에 해로운 담배를 끊지 않는다. 범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는 안 걸릴 거라는 요행심을 가지고, 그리고 먼 일이 아니라 당장의 이익 혹은 쾌락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른다. 사형제가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전혀 없을 거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은 마치 24가지 중의 하나 정도로 아주 작은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런 반면에 사형제를 유지함으로 잃게 되는 우리 국가의, 우리 자신의 존엄성은 어떠한가.’

 2부의 주제발표가 끝난 후에는 앞선 1부와 마찬가지로, 3명의 지정토론자 분들이 몇 가지 말씀을 더해주셨다. 이호중 교수(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님은 1부와 2부의 주제들을 모두 짚고 넘어가시며 토론회의 논의를 한 번 정리해주셨다. 이영우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 위원회 위원장)님은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고민을 더해주셨고, 마지막 지정토론자이신 한기찬 변호사(법무법인 신촌)님은 ‘사형제 폐지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더해주셨다. 

 토론회의 마무리는 내빈으로 계시던 한 변호사님이 해주셨다. 판사로 재직하시다가 38세 때 ‘삶의 의미’를 고민한 이후 교도소에서 교정교화 자원봉사를 해오셨다던 연세 지긋하신 변호사님은, 사형제의 위헌제청에도 관여를 해오신 듯했다. 오늘 토론회에서 ‘일취월장한 발제들을 접하니 사형제 폐지에 더욱 희망이 느껴진다’고 하시며, 사형제가 폐지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신다는 말로 마무리를 해주셨다.
 

 토론회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필자가 내뱉은 말은 “아, 재밌었다!” 였다.
무엇이 그리 흥미로웠는고 하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식상한 찬반논란이 아닌,
1)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분석’과 사형제도 폐지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실제적인 연구들’을 접할 수 있었고,
2) 사형제 존폐논란을,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신선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그랬다.
평소 조금 깊이 있게 알아보고 싶었던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 분들을 모시고 특강을 들은 느낌… 만족스러웠다.

 다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사회자께서도 언급하셨듯이 ‘사형제도 폐지론자들만의 토론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형제도의 존치를 지지하시는 분들도 섭외를 하려고 했으나, 나오겠다는 분이 없으셨다고 한다. 대신 찬성론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짚었으니 아쉬운 대로 ‘토론’은 된 것 같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러긴 했지만, 찬성론 측에서도 이 자리에서 논의된 것들 외에 좀 더 풍부한 논거를 갖고 있지는 않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함께 토론회에 갔던 인턴들과의 대화 중에 나온 건데, 사형제 폐지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궁극적으로는 다른 부분들이 함께 강화되어야 하고, 어쩌면 그것이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특히 ‘검거율을 높이는 것’과 ‘철저한 수사’, 그리고 ‘오심 가능성을 줄이는’ 등의 형사사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범죄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죄를 저질러서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도 ‘잡히는 것’일 것이다. 재판에서 유죄를 받고 어떤 형벌을 받는가는, 잡히지 않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들인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 무거운 형벌을 통한 위하 예방을 노리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같은 이유로, ‘철저한 수사’와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을 통해 진범을 밝히고 ‘죄를 저지른 자가 처벌을 받게 하는 것’, 즉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무척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도입부에서 필자는, ‘사형제 폐지’를 외치기엔 심정적으로 걸리는 점들이 있다고 말했다. 헌데 나쁜 짓을 했다고, 밉다고, 그 사람을 그저 죽여 버리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잠깐의 분풀이’로 끝나고, 사람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지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른 걸 다 떠나서 사형제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그 ‘응보’라는 근거 측면에서도, 사형제도는 과연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걸까? 동의하기 힘들다.





– 글 / 홍보출판팀 김란아 인턴
     







 



 ※ 아래에서는 조금 길어지더라도 토론회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혹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 분이 읽고 계시다면,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시는 것도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한 번 차분히 읽어보시길 권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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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  ]



1. 주제 발표 / 허일태 교수(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의장,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① 헌법 제110조(군사재판)의 제4항 단서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법률이 정하는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이미 사형은 헌법적으로 긍정된 것이다.

-> 해당 조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의 비상사태 하에서라고 해도 법원이 사형을 선고할 때에는 법률에 의한 단심으로 확정할 수 없고, 반드시 3심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요청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형제도의 존치에 대한 어떠한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형법이나 형사특별법에서 사형제도가 존치하지 아니하면 당해 헌법규정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며, 존치하고 있더라도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이 역시 무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헌재의 합헌 근거와 같은 논리는 결과적으로, ‘하위법인 형법이 상위법이자 최고규범인 헌법을 구속하게 만드는 불상사’를 낳는 것이다.
 


②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명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곧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생명권의 박탈이 초래되었다고 곧바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렇듯 기본권의 제한을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할 수 있도록 한정하여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에 반할 수 없도록 하고, 제한할 경우에도 본질적 부분은 침해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하려면, 공공복리가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것보다 1) 목적에서 더 정당하고 2) 상당한 수단이어야 하며, 3)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4) 한 사람의 생명보다 월등한 이익을 가지고, 또 5) 다른 수단으로는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없어야 한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 ‘목적의 정당성’ 차원에서 사형제가 허용되려면 ‘사형제의 범죄억제력’이라는 공공이익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논란이 많지만, UN인권위의 1988년과 2002년 조사결과에서 이미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바가 있다. 2) ‘수단의 상당성’을 충족하기에는, 사형이란 형벌은 너무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며 굴욕적인 방법이라 문명국가들로부터 점차 외면 받고 있는 형벌이다. 3) 사형제도의 범죄 억제력은 증명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형이 매년 평균 22명 선고되고 평균 16명씩 집행되었던 권위주의 시절과 사형집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1998-2010년 사이의 살인범 발생률은 매해 인구 10만 명당 약 2.1~2.2명 정도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사형제도의 범죄억제력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의 단 하나 뿐인 생명을 빼앗는다는 건, ‘피해의 최소성’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4) ‘법익 간의 균형성’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5)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통해서도 반인륜적인 연쇄살인범 등을 격리하여 사회평화를 달성할 수 있으므로, 사형제도는 ‘보충성/최후수단성’ 역시 충족하지 못한다.


 앞에서 살펴본 헌법 제37조 제2항 후단은, 1960년 제3차 헌법 개정 때에 독일 기본법 제19조 제2항(동일한 내용)을 수용한 부분이다. 제헌헌법에서는 본질적 부분 침해금지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형법에서도 사형제의 존치가 가능했고, 이승만 정권은 이 제도를 통하여 정적인 조봉암을 ‘사법 살인’했던 것이다. 4․19혁명 이후에 민주정권을 인수한 장면 정권과 민주당은 이 땅에서의 사법살인을 극복하고 독재 권력으로부터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부분들을 수호하기 위해 이 조항을 헌법에 받아들였다. 헌재의 재판관들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았다면, 알면서도 ‘사형제도는 헌법상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금지조항에 위배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할 수 있었을까?


 헌법재판관에게 묻고 싶다, 오늘날 우리 형법이 ‘눈에는 눈, 귀에는 귀’라는 형벌을 두고 있다면, 그러한 형벌은 위헌이 아니라고 할 것인지를. 절도범죄에 대해 우리 형법이 신체를 절단하는 형벌을 둔다면 어떻겠는가? 모두가 위헌이라고 할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형벌은 복수사상을 극복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본권은 모두 인간의 생명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생명이 없는 기본권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명이 인간 기본권의 본질적 핵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본질적 기본권이 아예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헌법의 문언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는 윤리적 존재이다. 그런 국가가 국민에게 살인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면, 국가 스스로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국가 자신은 사형제도라는 형식을 빌려 고의로 살인을 한다는 것은 파렴치하다.)


③ 사형제도가 범죄자의 생명권 박탈을 내용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다.

-> 헌법재판소에 묻고 싶다.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은 무엇을 의미하며, 국가는 무엇 때문에 헌법을 통하여 국민에게 인간의 존엄을 보장해야 할 책무를 지도록 했을까? 헌법재판소에는 그러한 고민이 보이질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라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 1) 국민의 안위가 국가존립의 제1차적 목적이지 국가의 존립이 국민의 안위를 위한 최종목적일 수는 없다. 2) 인간은 합목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가졌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가졌다. 또한 그 능력을 ‘국가의 존립 및 사회평화의 형성과 유지’에 헌신하여 온 존재이므로, 국가는 그 헌신에 응답할 책무를 진다. 그렇기에 국가는 ‘국가의 인간에 대한 존경’을 헌법적으로 보장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로 간주되는 인간생명과 인격권의 핵심인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는 언제나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 우리 헌법 제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가 규정한 ‘인간의 존엄’을 이렇게 이해하면, 사형제도의 허용은 헌법상 용납될 수가 없게 된다.




< 헌재의 사형제 합헌 결정 요약문
http://minwon.ccourt.go.kr/home/storybook/storybook.jsp?eventNo=2008헌가23&mainseq=94&seq=3&list_type=05 >






2. 지정토론 
 

1) 주한영국대사관 정치담당 서기관 리처드 커윈(Richard Cowin) 

 비록 헌재의 판결은 합헌으로 나왔지만, 헌재가 판결과정에서 EU와 UN의 의견을 고려한 것을 환영하며, 한국사회가 사형제 폐지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단순히 여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이끌어가기 바란다. 사형제 폐지의 현실화를 생각할 때, 또 다른 끔찍한 범죄가 여론을 강타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 달라.

+ “The United Kingdom continues to believe that the death penalty has no place
   in a modern criminal justice system and supports a mature and informed debate on this issue in Korea.”
  (영국은 현대의 형사시스템 하에서는 사형제가 불필요하다고 계속 믿고 있으며,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사형제폐지에 대한 성숙하고도 심도 깊은 논의를 지지한다.)

+ “We see Korea as a role model and an Asian leader.
   And we believe its international reputation would be badly damaged if executions were resumed.”
  (우리는 한국을 아시아의 리더 중 하나이자 하나의 모범으로 본다.
   그렇기에 만약 사형집행이 재개된다면 한국의 국제적 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믿는다.)




2) 헌법학자 오동석 교수(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국 사회의 기본권 영역의 헌법 현실은 ‘국가편의․후견주의와 입법(법률) 만능주의’로 요약된다. 지배자가 헌법 제37조 제2항을 ‘법률에 의하기만 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용한다면, 독일 나치스의 경우와 같이 ‘불법국가’로 전화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또한 헌법 제110조 제4항의 ‘사형’은 군사재판에서의 문제로, 그를 인용한 헌재의 해석은 ‘대한민국 헌법을 전시병영헌법으로 만든’ 것이다. 군인들조차 ‘군복을 입은 시민’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데, 헌재는 ‘일반 국민들에게 군복을 입히는’ 결정을 내렸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헌법을 경시했던 입법․집행․사법의 관행이 청산되지 못한 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 헌법규범을 구현할 수 있는 ‘대의권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 결과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적 헌법체제로의 변동은 착시현상이었을 뿐 최소한의 헌법규범의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형폐지는 국가권력의 살인에 대한 헌법적 단죄”이다. “권력자 몇몇은 처벌받았을지 모르지만, 권력은 단죄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법은 ‘세련된 폭력’일 뿐이다. 사형은 그 정점에 있다.”


3) 금태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법무법인 지평지성)

 사형제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을 사형제의 단계적 대안으로 볼 것인지, 최선의 대체수단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절대적 종신형의 도입 없이 사형제를 폐지할 것인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어떠한 권리가 제한 가능하고 그러한 제한을 통하여 일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제도가 합헌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형제 폐지 논의의 초점이 위와 같은 곳(범죄억제력이 있느냐 여부)에 맞춰지면 본말이 전도될 위험이 있으며,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 논의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 조항’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을 말살하는 제도’는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지 정면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오심으로 인한 억울한 희생의 위험성’이 사형제 폐지론의 가장 큰 논거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 정치적 이유로 사형을 집행했던 또 다른 문제점도 있다. 구체적인 케이스들, 그리고 오판의 가능성이 실제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심각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  2 부  ]



1-1. 주제발표  / 홍기원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미국 연방법원은 1971년 퍼맨 대 조지아주 사건(Furman v. Georgia)에서 “사형의 부과와 집행은 수정헌법 제8조와 제14조를 침해하는 잔인하고 비정상적 형벌”임을 인정하였다. 그로부터 향후 몇 년 동안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모라토리움(Execution Moratorium) 상태가 이어졌다.
 그런데 1975년에,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아이작 에어리히(Isaac Ehrlich)는 ‘사형집행이 이루어질 때마다 살인범죄가 8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이는 뜨거운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76년, 미 연방대법원은 그렉 대 조지아주 사건(Gregg v. Georgia)에서 ‘극악무도한 살인에 대해서는 선고절차를 엄밀히 준수한 경우 사형이 헌법적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하여, 모라토리움 시기의 종언을 고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미국의 학계에서는 사형제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한 쪽에서는 ‘사형제도는 범죄억제효과를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도덕적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였고, 다른 한 쪽은 ‘사형제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며 ‘범죄억제효과를 갖지도 않는다’는 입장으로 말이다.

– 하버드 대학의 로렌스 카츠(Lawrence Katz)를 비롯한 3인의 연구자
  : 1950-90년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교도소 환경 차원에서의 죄수들의 사망률과 범죄발생비율은 역관계에 있는 반면, 사형집행비율과 범죄발생비율의 관계를 증명하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 듀크 대학의 필립 쿡(Philip J. Cook)
  : 사형선고와 집행은 계속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사형을 폐지했을 경우와 비교할 때 현재 많은 관리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사형을 폐지하게 된다면, 형사사법활동(교도행정포함)에 있어서 1년에 약 1100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존 로만(John K. Roman)을 비롯한 3인의 연구
  : 메릴랜드 주가 사형제를 유지함으로써 1978-1999년 사이에 메릴랜드 주의 납세자들은 1억 7천만 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왔다(여기에는 변호비용과 시간당 계산한 각종 사법 비용들, 그리고 항소와 상고에 따르는 비용과 교도행정비용 등이 포함되었는데, 전체비용들 중 교도행정비용의 비율은 ‘극히 일부’였음을 밝혀둔다). 사형 선고 사건은 일반형사사건보다 더욱 많은 비용이 드는 절차이며, 공공자원이 희소한 상황에서 사형관련 사건에 자원을 투여하는 것은 분명 재고의 여지가 있다.

– 예일 대학의 존 도노휴와 펜실베니아 대학의 저스틴 월퍼스 (Donohue and Wolfers)
  : 2003년 이후 발표된 사형제도의 범죄억제효과에 관한 연구 6편의 방법론을 검토해보면, 결론적으로 잠재적 범죄자들이 ‘사형에 처해질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패널자료 연구 중 어떤 것도 사형제도의 범죄억제효과를 입증해내고 있지 못하며, 단지 3편의 특정 연구만이 그런 결론을 이끌어 내고는 있지만, 이 3편의 연구 역시 “조악하게 측정되고 이론적으로 부적절한 유사확률에 근거한, 확실치 않은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사형제는 정부와 시민에 고비용을 부담케 하는 ‘비효율적인 형사제재수단’일 뿐 아니라 ‘범죄억제효과가 확실하지도 않은 수단’이다. 그리고 사형제의 존폐를 논함에 있어서는, 먼저 현대적 형벌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단순히 일반예방이 형벌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사형제의 본질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1-2. 주제발표  / 한인섭 교수(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소장)
 

▷ 전국의 형사법교수 132명(전체의 3/4 이상)이 작성한 선언문
    – “우리는 사형 집행의 재개를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의 어필
    – “한국은 사형 집행의 ‘공식적’ 모라토리움을 선언해야 한다.”

▷ 사형폐지국(법률상/실질적)은 138개국, 사형집행국(10년 내 1건 이상)은 59개국 (2008년)

▷ 사형집행건수가 높은 나라
     :  1) 중국 2) 이란 3) 사우디아라비아 4) 미국 5) 파키스탄 6) 이라크

▷ 사형폐지추세 : 법률상, 사실상 사형폐지국가의 증가

▷  동아시아 국가들(대만/한국/일본)의 사형 집행
     : 한국은 98년도부터 지금까지 쭈욱 ‘0’, 그 영향으로 대만도 확연히 줄어드는 추세.

▷ 일본의 사형집행실태 : 1877년부터 급감
    -> 교도소가 들어서면서 장기적인 대체효과를 낳았고, 현대적 형사사법제도가 정착되었기 때문.

▷  미국에서의 사형집행 통계
     : 모라토리움 기간 이후에 아주 적은 수만이 집행되다가 급증하게 되어 지금은 꽤 높다.
       이렇듯 사형제를 한정적으로라도 유지한다면, 1-2건으로 끝나지 않고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높다.

▷ 미국의 사형폐지 주와 존치 주, 지역에 따른 집행 : 남부와 텍사스&버지니아가 대다수 차지.

▷ Deterrent Effect(억제효과)? Absolutely not(전혀 그렇지 않음)!
    : 미국을 대표하는 형사학 학문계의 전․현직 의장들에게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8%의 전문가들이 ‘사형제가 살인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부정했다. (Radelet & Lacock, 2009)

▷ USA : 살인범죄율 비교
    : 2008 FBI Uniform Crime Report는, 전체 사형집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남부지역이 가장 높은 살인범죄율을 보인다고 밝혔다. 전체 사형집행의 1% 이하를 차지하는 북동부는, 또 다시 가장 낮은 살인범죄율을 보였다.

▷ 사형-약자에 대한 편견의 반영
    : 불분명한 혐의 + 편견(인종,종족,소수자) = 유죄확정 -> 사형선고 -> 집행
    : 사형제도는 흑인에 대한 인종적 무기라는 비판
    : 한 인간을 짐승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광기와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잘 아는, 가깝게 느껴지는 부류라면, 그래도 사형을 선고할까?)

▷ 오판의 위험성
    : 미국의 경우, 1973-1999년에는 매년 평균적으로 사형확정수 3.1명이 풀려났고,
                        2000-2007년에는 평균적으로 5명이 풀려났다.


▷ 사법살인의 역사
   1) 6.25 당시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최창식 공병감 총살 : 처형 14년 뒤 재심에서 무죄판결
   2) 민족일보 조용수 : 1961년 5월 18일, 영장 없이 연행
                                          6월 21일, 특수범죄처벌법 제정
                                          8월 28일, 사형판결
                                2008년 1월 16일, 재심에서 무죄 판결
   3) 인혁당재건위 사건 (한국 사법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 : 1975년 4월 7일, 대법원 사형판결
                                                                                                  4월 8일, 처형 (8명)
                                                                                       2007년 1월 23일, 재심에서 무죄판결

▷ 재심을 통한 무죄사건들  : 위에서 본 것들 외에도 多

▷ 아람회 사건(1981)의 2009년 판결문
   : “법관은 진실을 밝히고 반드시 이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에 대한 소박한 신념을 가진
      교사, 대학생, 마을금고 직원, 검찰공무원 등 각자의 직역에서 일상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에
      불과하였던 피고인들이 이 사건 재심대상 재판 과정에서 국가기관에 의하여 저질러진 약 한 달간의 불법구금과
      혹독한 고문 끝에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조작․둔갑되어 허위 자백을 하였다고 절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재심대상 재판 당시 법관들은 그 호소를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오늘 그 시대 오욕의 역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을 본 재판부의 법관들은
      대신하여 억울하게 고초를 겪으며 힘든 세월을 견디어 온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힌다.”

▷ 진범 여부를 다툰 살인사건 : 김시훈 사건 (무죄-유죄-진범 잡힘)
                                           김기웅 순경사건 (유죄-유죄-진범 잡힘)
                                           치과의사 모녀살해피고사건 (유죄-무죄-파기환송-무죄-확정)
                                           춘천강간살인 조작사건 (‘78 무기징역- ’08 재심무죄- ‘09 항소심무죄- 대법원 계류)

▷ 오판가능성
 : 정치적 이유(정적 제거, 희생양 만들기), 자백 문제(고문, 심리적 압박, 조작, 유도에 의한 자백), 수사기관의 과도한 정열(승진, 포상, 범인적발 압력, 증거 왜곡), 변호인의 조력(실제 변론조차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증거의 결함(목격자, 과학(?)수사), 집단편견의 영향(여론의 압도, 소수자에 대한 편견), 피해자의 허위신고, 편견의 역할(전과자), 검사>>변호사, 짐승/악마vs인간

▷ 사형은?
    : 국가가 주체/ 본질은 살인(합법화․제도화된)/ 성격은 다수가 관여한 예모범(격정범 없다)/
      ‘살인하는 국가가 개인에게는 살인하지 말라 하며, 네가 살인하면 그 응징으로 나도 살인하겠다고 하는 셈’이 되는 모순

▷ 사형은 반민주주의적 지향
    : 사형은 군주제의 유산으로, 공개처형과 사면은 군주권의 무기
    : 민주국가에서 사형은 가장 전제군주적 권력의 잔재
    : 사형은 인간의 차별과 악마화를 부르며, 인간의 이해를 가로막는다.
    : ‘신속한 집행일수록 비민주적 권력의 행사’
    : 권위적 정권일수록 사형 선고건수가 많고, 집행은 신속하며, 가족 등 관련자의 존엄성을 무시
    : 그러나 사형은 곧잘 정치적 슬로건화

▷ 사형은 피해자의 열망을 충족?
    (Don’t kill in our names – Families of murder victims speak out against the death penalty / Rachel King)
    : 피해자의 이름으로 국가, 정치, 여론이 사형을 정당화함
    : 피해자(유족)이 원하는 바, 알고자 하는 욕구
      원한을 갚자 – 불의한 자가 처벌받고, 정의의 실현을 보고 싶다
      절차에의 참여권
      치유와 원상회복
      공동체의 관심
      ->  이 모든 욕구가 충족되면 원초적 복수심은 누그러지지만,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불행의 원인이 된 가해자에 대한 중형 추구

▷ 사형 집행자 (영화 ‘집행자’)
    : 사형집행이 고귀한 법집행이라면 왜 회피? 심리적 부담일 뿐인가, 비인간적 실현인가.

▷ 사형의 교육적, 문화적 효과
    : 생명을 경시한 자에 대한 사형이, 생명경시적 풍조를 불러일으킴
    : 사회갈등에 대한 해결방식으로, 폭력의 악순환. 눈에는 눈으로?
    : 연쇄살인마/사이코패스 -> 우리 사회의 산물, 중첩적 박탈의 한 결과, 효과적인 대응은?
    : 영구격리가 문제해결일까?  
        격리의 실험-실패의 역사 (삼청교육대, 보호감호 등), 격리의 장기화에 따른 문제에 무관심,
        인간의 가변성 무시, 희망은 교정을 위한 최상의 자원



2. 지정토론
 

1) 이호중 교수(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선 헌재의 논증은 어떠한 논거도 제시되지 않은 ‘재판관들 개인 가치관의 일방적 선언 내지 고백’일 뿐이며, ‘직관과 본능에 입각하여’ 사형이 범죄예방효과가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사형의 가능성을 범죄자가 인식할 때, 그것은 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증인을 살해하는 등의 동기를 형성하게 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형의 집행은 오히려 야만적 대응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다. 일반예방주의자이면서도 사형폐지론자였던 형벌이론의 선구자 ‘베카리아(Beccaria)’는 “사형제도는 사람들에게 야만성의 본보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유용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위하를 통한 예방 전략은 범죄자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결과가 되어 인간의 존엄에 반하며, 헌재는 우리 헌법상 정당한 형벌목적이 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헌재는 또 무기징역이나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며 ‘명백한 근거가 없다’는 한 마디로 그간의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배척해버리고 있는데, 헌재의 이런 태도는 잘못된 것 같다. 입증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사형이 피해최소원칙 하에서 용인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사형이 무기징역형보다 훌륭한 범죄예방효과를 가짐’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사형이 범죄억제효과를 가지려면 범죄자가 ‘합리적 계산’에 의해 범죄 실행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오늘날 사형이 선고되는 자들은 대부분 자아통제력을 상실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 정도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형의 예방효과를 믿고 사형제 존치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사형제의 적용범위를 광범위하게 확대하자고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사형의 적용범위를 축소하면 하는 만큼, 사형의 범죄억제효과는 더더욱 인정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다면 자기모순에 빠진 궤변일 뿐이다.


2) 이영우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 위원회의 위원장)

 저는 우리가 ‘모두가 죽임을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언론들이 선정적으로 마치 스포츠를 중계하듯이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합니다. 범죄가 왜 일어나는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감싸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그런 움직임은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한 5년 전,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던 연쇄 살인범 사형수를 만나게 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 사형수가 ‘이 사건 나기 전에 OO구치소에서 신부님의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 나는 이미 인생을 접었기에 신부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듣고는, 멍해졌습니다. 교도소, 구치소에서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상처를 감싸주었다면, 그래서 삶에 작은 희망을 심어줄 수 있었다면, 엄청난 사람의 생명을 지켰을 것이고 그 역시 지금처럼 사형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사회가 그렇게 두려움과 공포에 떨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교도소가, 벌을 받는 곳이라기보다 치료받는 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법의 심판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우리 가정과 사회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벌만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 ‘보안 중심의 교정에서 교정교화 중심의 교정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며, ‘출소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3) 한기찬 변호사(법무법인 신촌)

 “사형제 폐지론이 옳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다.”
 사형제가 살인범죄의 억제책이 된다는 실증적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형제 존치론자들의 이론적 근거는 몇 안 되는 반면에 폐지론자들은 근거가 무척 많다. 아는 분 중에 사형집행을 하시던 분이 계시다. 그분은 지금 사형 폐지론자가 되셨는데, 말씀을 들어보면 이렇다.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의 시간(3-5년가량)동안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회개하고 반성하고 유족들에게 사죄를 한 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떠나는데, 그런 이들의 목에 밧줄을 걸 때면 ‘성자의 목에 밧줄을 거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는 것이다. 사형제도는, ‘무익’하고 ‘유해’하고 ‘야만적’이다. 폐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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